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다시 한번 우승 축하드리며…, 과거 한국 최초의 콰르텟이었던 KH 콰르텟의 계보를 잇는 존재로서, 앞으로의 K 콰르텟의 행보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음? 이건 또 무슨 소리?
고작 글자 하나 차이지만 갑자기 전혀 다른 콰르텟 언급에 서진은 어리둥절해졌다.
“KH 콰르텟이라뇨?”
그건 오래전 KH 아시아 재단의 후원을 받아 창립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콰르텟 이름이 아닌가.
우리 K 콰르텟과는 아무 상관 없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그런 기사를 얼핏 본 것도 같았다.
KH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내용이었는데, 대충 자기네 최초의 콰르텟인 KH 콰르텟의 이야기인가 하고 넘긴 내용이었다.
KH 콰르텟은 KH 아시아 박회장의 후원으로 탄생한 국내 최초의 현악 4중주단으로, 당시 현악 4중주의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던 콰르텟이었다.
후문으로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 박회장이 단원들에게 엄청난 보수를 지급해가며 키워왔다고.
하지만 기업 메세나에만 의존하는 악단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는 법. 결국 잦은 단원 교체로 해체되었다. 멤버들 간의 호흡과 신뢰, 유대감이 기본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콰르텟은 안정적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국내에 이렇다 할 현악 4중주단이 없다가, 대중들의 관심 증대에 힘입어 기업의 후원과 상관없이 몇몇 콰르텟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게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의 일.
그런데 우리가 그 계보를 잇는다고?
“KH 콰르텟이 과거 한국을 대표하는 콰르텟이었듯, 현재의 K 콰르텟 역시 이름 그대로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콰르텟이라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게다가 서진 군이 KH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기도 하니, 어찌 보면 KH 콰르텟의 계보를 잇는 셈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요?”
뭐래, 이 양반이 약을 먹었나. 아니 KH한테 돈을 먹었으려나…?
이건 너무 억지다. 아무리 자신이 KH의 후원을 받고 있다지만… 심지어 이성 그룹 손녀가 멤버로 끼어있는데, KH 현악 4중주단을 승계한다는 듯한 기사라니….
‘두 회장님들 대판 싸우시겠군.’
티격태격하시면서도 잘 지내시긴 하지만, 이번엔 조금 너무 나갔다.
아무튼 대체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서진은 정석적으로 가기로 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니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서요. 특히 한국을 대표한다니… 그런 타이틀은 아직 부담스러워 사양하고 싶습니다.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 다른 유수의 현악 4중주단 여러 분들께 실례이기도 하고요.”
젠장. 이름을 잘못 지었어…! 망할 윤수자식.
“야, 너 인터뷰 스킬 짱이다. 어디서 따로 말빨이라도 배우냐?”
속도 모르고 뒤에서 윤수가 숙덕였다.
…인생 2회차 살아 봐. 절로 능구렁이가 되더라.
“겸손하시군요, 호호. 참, 그런데 서진 군은 유학 생각은 없나요? 물론 유학 한번 없이 순수 국내파로서 이러한 쾌거를 이루어냈다는 점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긴 하지만, 클래식 전공은 보통 유학을 택하는 게 대부분이지 않나요? 현재 일반고에 재학 중이라고 들었는데, 예고에 가지 않은 게 혹시 유학을 염두에 두고 그런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아…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현재 서진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작곡 콩쿨의 개최 요강을 보고 준비를 시작했던 게 중3 말 겨울방학. 예고에 별 뜻이 없던 서진은 따로 입시를 병행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진은 예중이든 예고든 굳이 미련이 없었다. 회귀 전 생에서, 중학교 내내 예고 입시에 시달렸던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이번 생에서는 아예 다른 길을 택한 것이었다.
따로 특수고를 가지 않는 한 어차피 진학은 저절로 이루어지기에, 서진은 남들이 그러하듯 때 되니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고고 일반고고를 떠나서, 서진은 학교를 다니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나마 중학교 초반까지는 학창 생활도 조금 신경 썼었지만, 손가락 문제 이후 학교에는 거의 발만 찍다시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 처박혀 보냈던 서진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학교급만 달라졌을 뿐 서진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고, 더더군다나 콩쿨 준비로 내내 바빴던 탓에 예전보다도 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다.
‘이래서 다들 예고를 가는 거겠지.’
어차피 고등학생 신분을 오래 유지할 생각은 없으니 상관없지만.
일단은 콩쿨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그냥 일반고에 진학한 상태로 내버려 두고 스위스로 떠나왔었는데, 이제 돌아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때.
“유학 생각은 아직 없고요, 조만간 한예종으로 갈 생각입니다.”
고민 끝에 서진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한예종에 조기 입학하기로 했다.
콩쿨 우승 특전으로 이후의 연주 일정이 잡혀있는 게 제법 많았기에, 어차피 제대로 고등학교를 다니긴 힘들 터. 차라리 곧바로 예술사 과정(대학 학부 과정)에 들어가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거기에는 찬윤과 지연의 영향도 있었다.
이미 같은 코스로 예술사 과정 중에 있는 찬윤과, 마찬가지로 다음 해에 입학하기로 한 지연이 있으니, 서진 역시 함께 다니고 싶어진 것이었다.
“한예종이라면… 지금의 영재원 말고, 예술사 과정을 말하는 거죠?”
“네. 맞아요.”
“예술 영재 선발제도를 염두에 두고 있나 보군요.”
“네.”
예술 영재 선발제도는 한예종 입학전형 중 하나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예술 영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예종 예술사 과정 특별전형에 지원해 조기입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현재 서진이 다니고 있는 한예종 영재원과는 또 다른, 별도의 구분된 개념이지만, 전체 선발 인원 중 한두 명 정도는 영재원 출신에서 뽑기도 했다.
지원 대상은 17세 이하의 나이로, 중3에서 고2까지, 혹은 중학교를 졸업한 자였다.
고1인 서진은 올해로 17세. 만으로는 콩쿨 막판 즈음에 생일이 지나 16세가 된 상황이니 당연히 해당하였다.
“한예종도 좋지만… 조금 아쉽지 않겠어요? 더 큰 세상에 나가볼 기회를 놓치는 건….”
서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유학계획이 없는지, 혹시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아직까지는 그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서진은 입을 열어 덧붙였다.
“유럽에나 미국에서 영재가 탄생했을 경우, 그 누구도 유학계획은 어떻게 되냐 당연하다는 듯 묻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 나라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한국에 훌륭하신 스승님들이 있기에, 아직은 한국에서 배우고 싶은 것뿐입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인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하는 기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서진 일행은 곧바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 * *
“서진아, 우리 아들!”
“다녀왔어요, 엄마.”
드디어 집에 돌아온 아들의 모습에 선희는 밥을 하다 말고 그대로 현관으로 뛰쳐나왔다.
“우리 아들, 어쩜… 못 본 새 언제 이렇게 훅 컸어…! 엄마가 함께 못 가서 걱정 많이 했는데, 혼자 괜찮았어? 장하다, 정말… 대단해 우리 아들. 너무 대단해서 엄마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몰라. 공항에도 마중 꼭 나가고 싶었는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선희의 목소리에 서진은 담담히 웃었다.
“엄마 저 벌써 고등학생인걸요. 아주 잘 지내다 왔으니 걱정 마세요.”
콩쿨에 보호자가 따라갈 나이는 지났다. 공항에 마중 나오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물론 선희는 귀국에 맞춰 데리러 온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서진은 애도 아니고 혼자 온다며 극구 사양했다.
어차피 공항버스 타고 가면 되는 것을 굳이 뭐하러 고생인가. 자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공항까지 데리러 온다니,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 무슨 그럴 필요가.
“그리고 지연이가 데려다줘서 집에도 편하게 왔어요.”
짧게 인터뷰를 끝낸 후 주차장 쪽으로 가니 지연을 데리러 온 비서가 있었다. 기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주차장에서 대기해달라 부탁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편안히 집에 도착한 서진은 일단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래? 너무 고맙네. 지연이도 잘 지냈대?”
“네, 뭐. 여전하더라고요. 아… 역시 집이 제일 좋다…!”
그녀는 지연의 소식도 꽤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무심한 서진은 대충 답하며 넘어갔다. 딱 서진다운 태도였다.
“배고프지? 엄마가 얼른 맛있는 거 해 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김치찌개요!”
다른 건 몰라도 한국 음식은 좀 많이 그리웠다.
특히 엄마의 손맛이라면.
* * *
서진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잔뜩 와 있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김무현 교수님, 찬윤, 다비트, 빈필, 이성, KH, 클레어, 송여름, 서울시향 등등에 이어, 어디의 공연장, 어느 음반사, 어쩌고 영화사까지…
온갖 곳으로부터 온 연락이 가득이었지만, 이미 따로 인사를 해야 할 이들에게는 미리 전화를 돌린 바였기에, 나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근데 웬 영화사지…?’
음반사까지는 그렇다 쳐도, 영화사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영화 파가니니를 찍었던 곳이면 모를까, 전혀 다른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아무튼 나중에 생각하고,
“에구구, 삭신이야….”
지금은 한 번 늘어지니 더 죽겠다.
아무리 즐기며 했다지만, 두 부문에 복수 지원해서 그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걸로도 모자라 양쪽에서 전부 1위를 하기까지 했는데, 지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그게 한꺼번에 몰려오니 손도 까딱하기 싫은 기분.
사실 손가락 문제도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기에 서진은 한동안은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콩쿨 영상은 잘 나왔으려나…?’
영상을 찍은 건 알았는데, 아직 겨를이 없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침대 위를 뒹굴던 서진은 궁금함에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응? 이게 무슨 개소리야?”
대부분은 최연소 팀이 이뤄낸 쾌거에 자랑스러움을 가득 느끼며 축하하는 댓글이었지만, 일부는 까는 댓도 있었다.
그중 압권은, 재벌 버프로 우승했네 어쩌고 하는 개소리였다.
“뭐…?”
어이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지연이 재벌가 출신인 건 사실이나, 국제 콩쿨에 한국 재벌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건지.
헛소리도 정도가 있어야지….
또, 그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지만, 일부는 이런 악플도 있었다.
콰르텟으로 상을 받은 것인 만큼 한서진이라는 애 혼자 잘해서 받은 건 아니지 않냐는. 그런데 왜 다 한서진 이름만 언급하냐며 불편하다는 반응.
그리고 그 아래로, 거의 키보드 배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댓글들이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