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99
99화
“그러게. 이제 구박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쓸모있는 정보도 알아 오고 말이야.”
평소 클래식 공연에 관심이 많던 여자는 얼마 전, ‘슬슬 교향악 축제 시즌이…’ 하며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를 끄적이다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서진…? 이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남편이 최근 들어 열심히 보던 너튜브 국뽕 컨텐츠에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궁금함에 검색을 해본 결과,
-어머어머, 유명한 국제 콩쿨에서 1위를 했다고? 그것도 최연소로, 두 개 부문에서 동시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공연에 꼭 가보고 싶어진 건 당연한 수순.
안 그래도 ‘빈필’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연이었지만, 티켓값이 워낙 비싸 그것만이었다면 다음에 넉넉할 때 다시 기회가 오겠지 하며 아마 안 갔을 터였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다른 법.
최연소로 콩쿨에서 우승한 한국인 소년이 그 유명한 빈필과 협연을 한다는데… 괜히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게, 남편이 이런 맛에 국뽕 콘텐츠를 보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이런 공연을 놓칠 수야 없는 일. 가격이 후덜덜했지만, 말석이라도 꼭 가보고 싶었다.
심지어 생전 이런 델 같이 안 오던 남편마저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 아닌가. ‘동영상에서 조금 보여줘서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듣기 좋더라?’라며.
그렇게 중년 부부는 함께 공연에 가기로 결정했고, 덕분에 그들의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대신해 티켓팅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다는 뒷이야기.
‘우리 서진이가 그런 데에도 나온다고?’
선희는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딱히 국뽕 콘텐츠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친구들이 가끔 요상한 링크나 파일을 보내주는 걸 본 적이 있어 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동영상에 서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니… 뭐랄까,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런 건 진짜 K-팝 스타에게나 해당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뿌듯함에 입술이 씰룩이려는 걸 간신히 참는 선희의 귀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젊은 커플들이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서 안 오려 했는데…,”
라디오에서 들은 그 곡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보고 싶어서 결국 티켓을 질렀다는 이야기였다.
“다시듣기도 안 되니까 별수 있나 뭐. 물론 녹음한 거랑 실황은 완전히 다르니, 음원 파일이 있다 해도 왔을 테지만 말이야.”
얼마 전 서진의 음악을 틀어준 클래식 FM에서는 곡과 함께 서진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함께 해 주었다. 콩쿨 수상에 대한 것을 비롯한 이런저런 정보들과, 곧 기념 공연으로 빈필과의 협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그걸 들은 청취자들은 자연스레 예매 사이트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결국 이렇게 직접 발걸음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면서까지 온 관객들은 조금의 후회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선택을 매우 칭찬했다.
그만큼 충분한 값어치를 하는 음악이었으니까.
* * *
K 콰르텟과 빈필의 협연으로 선보인 엘가의 곡을 마지막으로 끝난 1부. 이어지는 2부에서는 K 콰르텟 멤버들끼리만 연주하는 곡이 두 곡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중 첫 번째는 역시나 대중들을 고려해 모두가 알 만한 곡으로 골랐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8번. ‘Razumovsky’
이 곡은 콩쿨 제시곡으로 연주했던 곡이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이날다 콰르텟과 겹쳤던 곡이었다.
당시 저 곡의 연주가 이날다 콰르텟에 살짝 밀렸던 듯한 느낌이 살짝 찜찜했던 멤버들은, 이번엔 보다 완벽한 연주를 함으로써 털어내고자 했다.
불이 꺼지고, 서로를 바라본 멤버들은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시작했다.
단 네 명의 악기가 내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성한 소리가 교교하게 장내를 울렸다.
서진은 콩쿨에서의 아쉬움을 경험 삼아, 이번에는 특히 전체적인 소리의 조화로움에 신경 쓰고자 했다.
사실 그때도 각자는 분명 잘했었다. 한데 약간 전체적인 조율이 안 된 느낌, 그러니까 조화로움이 부족했던 느낌이랄까?
희한하게도 K 콰르텟 멤버들은 서진의 곡을 할 때면 알아서 척척 손발이 맞으며 완벽한 소리를 내는데, 다른 작곡가의 곡을 할 때면 약간 어우러짐이 부족한 구석이 있었다.
지연을 제외하면 멤버의 대부분이 서진이 작곡할 때 함께 참여하던 이들인 탓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진은 이 부분을 개선하고 싶었다.
그에 이번에는 작정하고 집중해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그 부분에 특별히 신경 쓰기로 한 것.
각 파트의 소리를 살리면서도, 그 소리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전체의 조화를 극대화하도록 만든다면 훨씬 풍성한 울림이 될 것이었다.
‘비싼 돈 내고 온 공연일 텐데, 돈값은 해야지.’
물론 ‘빈필의 내한공연’이라는 이름값으로 인해 저토록 비싸진 것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2부의 대부분은 빈필과 함께하지 않는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저 티켓값의 무게는 K 콰르텟도 만만치 않게 지고 있다는 뜻.
‘다행히 서울시향 활동을 했던 때의 경험이 꽤 도움이 되겠어.’
서진은 지난 몇 년간 서울시향의 객원으로 활동하며 단순히 단원 역할만 했던 게 아니었다.
장명훈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바, 정식으로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협연 리허설도 몇 번 했는데, 서진은 그를 통해 협연자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집중적으로 배워나갔다.
장명훈은 솔리스트로 선 협연자가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까지 전부 완벽히 이해하고 이끌어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다른 협연자와 연주할 때에도 그러한 부분을 강조했는데, 서진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그러한 모습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며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한 공부는 협연자로 선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서진은 예전보다도 더욱 합주 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자신이 내는 음뿐 아니라 전체적인 소리를 어루만진달까.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 느낌인데, 마치 소리를,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이번 연주를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처음의 그 능력은 아직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인가….’
물론 거창하게 표현하는 느낌과 달리 그리 전능하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약간의 영향력을 끼치는 게 전부.
게다가 아직 오케스트라급의 규모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앙상블, 실내악 정도가 한계.
‘지금은 이 정도지만, 만약 이 능력을 더 키워나갈 수 있다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연주도 연주지만, 지휘자로서 이런 능력이 있다면 그야말로 사기캐일 듯하다는.
그렇게 딴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도 서진은 최선을 다해 제 능력을 발휘했다. 이번엔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제대로 연주해 보일 수 있도록.
서진뿐 아니라 모두 부쩍 더 애쓴 덕분인지, K 콰르텟의 멤버들은 끝내 만족스러운 연주를 이뤄낼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활이 멈추자,
“와아아!!”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익숙한 곡을 더 좋아하는 법. 서진의 곡도 좋았지만, 감격스러울 만치 완벽한 울림을 자랑한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 * *
서진의 지도교수 김무현은 한때 이런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장르는 이제 영영 끝나버린 걸까.
전공을 시작하던 어린 시절, 그도 한때는 왜 요즘은 옛날처럼 명곡이라 부를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 탄생하지 않는 건지 궁금해했다.
현대의 음악가들은 대부분 과거에 작곡되었던 곡을 재현할 뿐이었다. 후원자들의 관심 속에서 늘 신곡을 발표하며 새로운 음악의 장을 열어가던 예전과 비교하면 한탄스러운 현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과는 시대가 다르니까.
사회·문화 전반이 달라진 세상에서, 현재의 클래식 문화가 귀족문화가 꽃피었던 모차르트 시기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무현은 현시대에 진정으로 클래식을 계승하는 음악가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클래식 곡이 만들어지긴 했다. 시대가 달라진 탓에, 클래식 음악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기에 묻힐 뿐.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클래식 곡이 100년, 200년 후에,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차이코프스키니 드뷔시니 하는 천재들이 남긴 곡에 이어 언급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듯 보였다.
‘그래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 클래식은 죽었다, 라고….’
한데 무현은 지금, 과거 그렇게 말했던 평론가를 탈탈 끌고 와서 눈앞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연 지금 시대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곡이 가능할까 했던 의심. 그 역시 한때 마찬가지의 의문을 품었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그동안은 아직, 이 시대의 천재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첫 곡부터 무현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현조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서진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 황홀한 충만감에 무현은 몸을 떨었다.
이후 루이 슈포어와 엘가의 작품, 두 곡이 더 연주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된 후에도, 무현은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다음으로 들은 베토벤까지.
그렇게 연달아 세 곡이 대중들이 알 만한 곡으로 채워 넣어진 후,
이번엔 드디어 다시 서진의 곡이 등장했다.
이번엔 또 어떨까. 어떤 기적을 보여줄까.
4명이 연주하는 마지막 곡은 그들이 콰르텟 부문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만들어주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 그 곡이 제네바에서 했던 구성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었다.
* * *
연주를 시작하기 전, 서진은 잠시 숨을 고르며 물끄러미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한 연주로 새삼스럽게 능력에 대해 자각한 덕분일까.
갑자기 곡에 대한 이해도가 껑충 뛰어오른 느낌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적어도 이 곡에 대해서만큼은 전능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
사실 이 곡의 작곡자, 즉 창조주가 서진이었으니 그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아까보다 한층 확신 어린 표정으로 서진이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살짝 끄덕인 고갯짓을 신호로,
K 콰르텟이 영롱한 음색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단순한 음표들의 나열에 영혼을 불어넣어 생명을 갖게 한 곡.
서진이 만든 그 곡이 시리도록 맑은 음색으로 장내의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서진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함이 깊이 차올라 올랐다. 자신이 만든 곡이 이토록 사랑받으니, 작곡한 보람이 차고도 넘치는 것이다.
사실 서진이 작곡을 하게 된 계기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기존에 작곡된, 다른 사람이 만든 곡만으로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걸 전부 전달할 수 없기에. 작품이란 건 기본적으로 작곡가가 자신만의 의도로 만든 곡이니까.
그래서 직접 작곡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제대로 전하기 위해. 음률, 화성 하나하나에 전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 특히 심상 능력을 사용해 전달하기에 최적의 곡을 만들고자 했던 것.
그렇게 애초에 곡부터가 서진에게 맞춤인 상황인 만큼, 서진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완벽히 제 것인 곡, 그만큼 능력도 훨씬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