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
***
* 글: 글리세롤
* 책 소개
세상 모든 일들을 카드 게임의 듀얼로 해결하려는 세계관을, 『듀얼 만능주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듀얼 만능주의 세계의 아카데미에 떨어져 버린, 고일 대로 고여 버린 카드 프로 게이머의 생존기.
( 본편 & 외전 만든 이 다름 )
***
프롤로그
「소울 커맨더스」는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CCG(Collectible Card Game)이다.
다양한 카드 풀, 신기한 기믹, 낮은 진입장벽 등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다 이거지.
그리고 나는 소울 커맨더스의 프로 게이머였다. 5년 연속 세계대회 진출, 2년 연속 우승, 4연속 8강 진출.
명실상부 역대 최고의 소울 커맨더스 프로게이머가 바로 나다.
그러니 소울 커맨더스의 개발사인「소울Soul」사에서 내게 싱글 소울 커맨더스 게임 검수를 맡기게 된 것은 반쯤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카드 게임에 관해서 몇 가지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언 하나.
카드 게임 검수 같은 건 하지 마라. 시간도 더럽게 많이 들고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듀얼을 하나하나 봐야 한다.
고역 그 자체다. 대충대충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겠지만···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간단 말이지. 어줍잖게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나는 플레이 하나하나에 코멘터리를 달아넣었다.
– 이 부분은 말이 안 돼요. 「윤회」의 판정상 「절대마신」의 무효 효과를 카운터칠 수 없습니다. 발동 효과와 지속 효과는 발동 시점에 따라 판정이 달라진다니까요?
– 싱글 게임용 신 카드를 넣는 건 좋은데, 뇌를 좀 장착하고 만들면 안 됩니까? 밸런스를 다 부숴버리잖아요.
– 암만 게임이라지만 덱을 이따위로 짜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 이러니까 밸런스가 개판되는거 아닙니까. 욕 쳐먹는게 좋아요?
– 소울 커맨더스 한 판도 안 하죠? 패치 다섯달에 한 번 쳐 할 때 알아봤다.
– 중간보스 인공지능 플레이 볼 바에는 그냥 눈에 염산 뿌리는게 눈이 덜 아플 것 같네요.
조언 둘. 아무리 상대방이 개판으로 작업을 해 놨다고 해도 무례하게 대하지 마라.
···조금 자기 변호를 하자면 근 1년정도 내 성적이 많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내 안의 조그마한 악마가 합리적인 문제점에 합리적인 지적은 합리적으로 해도 괜찮다고 말한 덕에 나는 마음대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칼침 안 맞은게 용하긴 하네.
아무튼 이런 내 코멘터리들을 모두 받은 소울사에서는 메일 한 장을 보내왔다.
『바쁜 시간 중에 시간을 내어 게임 「커맨더스 아카데미」의 검수를 맡아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검수에 대한 검토 결과 스토리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만약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보수 백억 원정(10, 000, 000, 000)에 스토리와 싱글 게임 내 듀얼 환경 전반에 대한 검수를 맡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조언.
누군가가 해야 될 일에 비해 수상할 정도로 돈을 많이 제시한다면. 그 의뢰는 절대로 받지 마라.
절대로.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고?
「당신은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의 시간강사가 되었습니다. 스토리를 마지막까지 이끌어나가 주세요.」
돈에 혹해서 앞뒤 안 가리고 그냥 얼씨구나 하겠다고 해 버리면 밸런스는 개판 오분 전이고 스토리고 세계관이고 개막장인 세상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
지금 내가 그런 것처럼.
“개씨발.”
##첫 수업(1)
자고 일어나 보니 낯선 방의 내부였다.
대학교 자퇴하기 전에 봤던 시간제 강사들이 쓰는 방과 매우 흡사한 형태였다. 다른 게 있다면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어야 할 책장에 전공책 대신 카드들이 꽂혀 있다는 것 정도.
비현실적일 정도의 현실감과 조잡하지 않은 세계의 움직임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게임 안이 아니라 현실임을 실감하게 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황하고 잠시간 패닉에 잠겨볼만도 하지만, 카드 게임프로 생활을 꽤나 오래 하다 보면 느는 것이 있다.
바로 눈치다.
이건 꿈도, 게임도 아니다.
“빌어쳐먹을.”
자그맣게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런다고 나타나는 것은 없다. 아니. 뭔가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게 내가 욕을 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다.
「당신은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의 시간강사 ‘전익현’이(가) 되었습니다. 스토리를 마지막까지 이끌어나가 주세요!」
「메인 퀘스트 : 수업을 완료하기 (보상 없음)」
「일일 퀘스트 : 게임에서 1회 승리(150p)」
「일일 패널티 : 게임에서 패배시(-1500p)」
「소울 커멘더스 아카데미」, 속칭 소커아에서 봐 왔던 익숙한 시스템창이다.
소커아에서 카드를 모으기 위해서는 이 포인트를 모으고, 카드팩을 구매해 카드를 모아야만 한다.
그보다. 지금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그러니까 빙의한 인간은 누구지?
전익현이라.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시간 강사라고 하는 걸 봐서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 정도의 강사였던 모양.
···뭐. 중요한 건 내가 누구냐보다. 어떤 덱을 가지고 있느냐지만 초반기 덱에 따라 소커아는 게임 플레이방향이 많이 달라진다. 카드를 구할 수 있는 수단이 꽤나 한정적인 탓이다. 정말 좋은 스타터덱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쉽게쉽게 게임을 풀어나갈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다면 내내 고생하고도 덱 파워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
나는 몸을 뒤져 찾아낸 덱을 꺼내들었다. 카드를 하나하나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덱을 만지는 순간 바로 덱 리스트가 머리에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홀리 엘프 x1
그렘린 x1
요새의 익룡 x1
···
★시간룡 자르카날 x1
천안의 마법서 x1
1:1 대응! x1」
“씨발.”
덱 리스트를 확인하자마자 입에서 욕설부터 튀어나왔다.
뭔데. 이 똥덩어리는? 마나커브도, 카드 분배도, 마법비율도 죄다 엉망진창이다. 애초에 ‘소커아’의 시작 시점에 주어지는 카드풀보다도 한참을 뒤떨어진 카드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게다가 덱의 테마를 고정시키는 에이스 카드는···.
머릿속으로 이 덱으로 누군가를 이길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봤다.
···아무도 없다.
손패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잘 풀린다면, 그리고도 상대가 똥플레이만 연발하면 1승정도 해 볼 수도 있을지도.
그런 1승을 위해서 999패정도를 쌓아야겠지만.
명색이 강사인데. 덱 파워가 왜 이따위야. 그래서 시간제 강사인 건가.
어떡하지.
삐빅!
「메인 퀘스트 : 수업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위해 강의 실로 이동해 주세요.」
···일단. 수업에 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도록 하자.
***
강의실에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수업을 해야 하는 강의실이 휴게실의 바로 옆이기도 했거니와, 바닥에 퀘스트 동선을 표시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화살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환경들 덕분에 시작하자마자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서 게임오버 당하는 낯뜨거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적혀 있는 여섯 글자.
「덱 튜닝학 개론」
덱 튜닝이 ‘학’이라는 접미사에 ‘개론’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야 하는 거였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이 세계가 그딴 곳이기 때문이다.
「소커아」의 세계는 모든 것이 「소울 커맨더스」 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취업도, 연봉도, 죄다 소울 커맨더스 순이다.
이 세계가 얼마나 개막장인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 둔 채, 나는 강의에 들어와 있는 학생들을 확인햇다.
총 여덟 명. 겨우 폐강을 면한 것 같은 인원수다.
낯선 얼굴의 일곱 명과, 낯익은 얼굴의 한 명.
가장 뒷자리에서 나를 평가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오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계단식 강의실이었던 탓에 내려다볼 수밖에 없지만 아무튼) 차가운 얼굴의 여자.
여한설.
그녀가 시작점에서 가지고 있는 덱의 테마는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하는 「굿 스터프 드래곤」. 특히나 초반 환경에서 승리를 따나가기 좋은 덱이다.
지금 내 덱이 걸레짝인 것도 있긴 하지만 밸류(value)가 심각하게 부족한 내 덱과 힘으로 찍어누르는 그녀의 덱은 완전히 상성 관계다.
“반갑다. 새내기 여러분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려는데, 눈 앞에 예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덱 튜닝에 대한 설명하기.」
···본래 게임에서는 그냥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했다.’ 라면서 한 줄짜리 팁을 보여준 다음 스토리가 넘어가게 할 수도 있다.
뭐. 그런 설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쓰지 않을 생각이긴 했지만.
덱 튜닝이라. 구구절절 교수마냥 튜닝(tuning)의 유래가 뭔지, 이 말이 왜 카드덱을 만드는 것에 적용됐는지 썰을 푸는 것만으로 시간을 떼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덱이라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튜닝이 필요한 것이다. 덱 튜닝이란 것은 덱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구성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크게는 덱의 아키타입(archetype)을 베껴오는 것부터 한 장 단위의 카드를 수만 가지 카드가운데서 찾아내는 것까지가 모두 튜닝의 일부다.”
「수업에 학생들이 조금 집중하고 있습니다. (+0.1p)」
확실히. 소커아의 시스템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소커아는 수업을 하거나 토론, 청강 등의 소위 귀찮은 옵션들을 스킵하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 놨지만, 그러지 않고 직접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직접 하는 것은 발품이 심하게 들어가는지라 나는 거의 무조건 스킵을 활성화시켜 놨었지만, 지금 내 덱의 꼬라지를 보아하니 스킵을 활성화해서는 답이 없는 지경이다.
되도록이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서 포인트를 긁어모을 필요가 있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가 부족합니다(+0.1p)」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는데 고작 0.1포인트 단위로 올라간다는 것이 마음아프기는 하지만.
집중도가 이렇게 최악이라니.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서 말하고 있는 건데.
그나마 여한설만이 내 수업을 제대로 쳐다보고 있다. 눈매가 사나운 탓에 집중을 하고 있는 건지 불만을 가진 채 노려보고 있는 건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 일단. 예시 덱을 살펴보도록 하지.”
보통 교수가 하는 강의에는 수업을 설명하기에 알맞는 덱이 준비되어 있다.
준비해 놓지는 않았지만 나는 웬간한 덱은 보면서 이해할 수 있으니-. 크게 상관없다.
나는 교단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설명용 덱을 잡아들었다.
「미세한 꽃송이 x2
귀여운 민들레 x2
···
퍼져나가는 꽃말 x2」
···한 때 메타를 완전히 개박살내고 다녔던 ‘꽃잎 토큰’덱이잖아.
필수카드 한 장이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완성되어 있는 덱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8년 4강전 입상 덱.
···아니. 예시 덱으로 이런 오버파워 덱 집어넣지 마라고. 박탈감 오지네 진짜로.
이런 티어덱이 이런데 쳐박혀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커아」세계관의 인식과 현실 세계의 인식이 다른 탓이다.
현실 세계. 그러니까 내가 몸을 담고 있던 「소울 커맨더스」프로 세계는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전부다. 강함은 승률과 트로피 갯수, 랭크전에서의 전적, 등수로 매겨지고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되는 세계.
하지만 「소커아」의 세계는 조금 다르다. 이 세계의 「듀얼」은 신성하기 그 지없는 행위다. 자신의 테마(theme)를 관철하는 것으로 승리를 따내는 것이 중요하기 그지없다는 인식이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박혀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방식에 따라 정정당당한 승리를 따내겠다는 기사의 마음가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 정정당당하지 못하는 이런 덱은. 누구도 쓰지 않는 거겠지.
줍기만 하면 1학년 1학기 내내 모든 듀얼을 도살하다시피 할 수 있는 티어덱을 눈 앞에 둔 채로 나는 입술을 다셨다.
아니. 수업에 집중하자. 어차피 먹을 수도 없는 것에 눈독을 들이지 말고 지금 수업에 집중하는거야. 한발한발 정진하다 보면 쥐구멍에도 밝은 날이 오지 않겠어?
“지루해 보이는 튜닝도 듣다 보니 흥미가 생기지 않나? 하하.”
「학생들의 열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미한 적의마저 느껴집니다.
(+0.001p)」
쥐구멍에 밝은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쥐구멍은 평생 가도 쥐구멍이고 한푼두푼 월급을 모아 봤자 LH에 입사해 정보를 다 알고 온 건물주들의 횡포에 의해 조망권을 침해당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은 한방이다. 코인으로 대박을 터트리던지 주식으로 대박을 터트리던지 이도저도 아니면 웹소설 대박을 쳐서 한탕 해먹던지.
어차피 수업 해봤자 포인트 주지도 않을거 눈앞의 토큰덱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나 고민하자.
나는 건성건성 수업을 하면서 덱에 있는 카드들을 빼내 보려 안간힘을 썼다.
「옮길 수 없는 덱입니다.」
「선택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소유권이 없는 카드입니다.」
역시나 덱을 훔치거나 가져가는 것은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른 캐릭터들은 카드 잘만 훔쳐 쓰는데.
불공평해.
나는 세계의 불공평함에 대해서 불평하며 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30분. 수업시간이 90분이니 벌써 60분이 훌쩍 넘었다.
60분동안 내가 강의로 번 포인트는 0.3포인트.
1팩 구매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100포인트이니 내가 1시간동안 열심히 강의한 인건비는 카드팩 0.003개 분량이다. 확신하는데 산업혁명 때 착취당하던 미취학 아동들이 나보다는 더 잘 벌었을 거다.
대충 마무리하고 집 가서 배갯잇에 눈물이나 흘려야지.
“···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모든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덱이라는 것은 없다.”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