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
“······.”
태진호가 나를 노려본다. 아까 물 떠온 거 다 마셔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내 얼굴에 그대로 엎어 버렸을 표정이네.
그보다 국내 최고의 아카데미인데도 신입생들에게서 쓸모있는 능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능력 있는 학생들은 죄다 개인 트리트먼트를 찾아가서 그런 걸지도.
하긴. 나 같아도 공짜로 해 주는 속성 선택보다는 돈이 좀 많이 들더라도 전문적인 분석관이 해 주는 속성 선택을 할 테지만.
그렇게 수십 명쯤의 학생들의 속성을 선택해 줬다.
하아암.
나는 하품을 참지 않고 뱉어냈다. 지루하다. 처음에야 태진호 놀리는 맛으로 재밌게 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학생 수 : 1]그래도 보아하니 한 명만 더 속성을 골라주면 끝나는 모양이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아,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을 하고 있는 얼굴이니 중요한 인물이다. 아카데미의 중요 인물이라고 해 봤자 학생, 교사 정도가 전부지만. 그녀는 학생도, 교사도 아니다.
“···신하연?”
“네? 아! 네! 신하연입니다.”
신하연.
다소 맹해 보이고 반응이 굼뜬 데다가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는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 첫 1학기의 보스 캐릭터이자.
이 게임의 초반부 난이도를 엄청나게 올려버린 장본인이다.
근데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사 이비는 아닌(1)
“신하연 학생. 1학년이 아니라 2학년이로군.”
“아. 네, 네에. 맞아요.”
“지난 해에도 한 번 신청한 경험이 있군. 학점은··· 0.0.”
죄다 F다. 모든 것이 F가 되는 어떤 소설을 생각나게 만드는 학점이다. 이럴수가. 내가 소울 커맨더스에 빠져서 수업을 놨을 때보다도 낮은 학점이라니.
선동렬조차도 가볍게 압살해 버리는 학점을 바라보며 어째서인지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하···학점이 많이 낮죠···?”
초췌하고 자존심이 없는 모습이다.
내가 테스트했던 신하연과는 성격이 엄청나게 다르다. 테스트에서 만났었던 신하연은 아카데미의 사람들이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흑화된 웹소설 지망생 같은 인간이었는데.
“···하. 신하연. 아직도 자퇴를 안 했나?”
“태진호 지도교수님. 그게···.”
“내가 작년에도 말했잖아. 너 같은 학생은 우리 아카데미와는 맞지 않는다고.
그 증거로 특이성조차도 받지 못했잖아.”
“하, 하지만···.”
“이래서 옆길로 들어온 놈들이 안 된다는 거야. 쯧.”
대화를 듣고 있으니 그녀가 왜 흑화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태진호가 지도교수였군. 신하연은 사회자 배려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못한 인간이라면 일단 깔보고 보는 태진호에게는 누구보다 좋은 먹잇감이었지. 놈이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1년 내내 괴롭혔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렇다 보니 태진호의 앞에서 쥐 앞의 생쥐, 혹은 생쥐 앞의 치즈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거겠지.
아카데미의 제적 기준은 학사경고 3회다. 이번 학기 사이에 그녀는 아마 제적 당하거나 자퇴를 택하는 거겠지.
그리고 아카데미의 인물들 전부에게 증오를 가지게 된 것이리라.
“당장 돌아가.”
“하지만···.”
“쯧.”
“일단. 왔으니 테스트부터 해 보죠.”
내 말에 신하연이 쪼르르 달려온다. 갈굼당한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소나기 맞은 겨울잠쥐 꼴이 돼 있다.
“테스트해도 안 바뀌어.”
“자. 학생. 선택의 카드를 만져 보도록.”
“아! 네!”
나는 태진호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선택의 카드를 건냈다.
핑그르르!
카드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멈췄다. 나는 선택의 카드를 바라봤다. 카드는···
“···텅 비어 있군.”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보라고! 재능이 없다니까? 1학년도 모조리 발현하는 특이성을 2학년이 되고도 발현하지 못하고 있잖아!”
태진호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면접장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확실히. 특이성은 이 게임의 매우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거의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역시. 안 나오네요.”
신하연은 우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긴. 2년째 특이성을 받지 못했으니 우울 해질만도 하다.
“저는. 재능이 없는 걸까요?”
하지만 조금 다르다. 나는 머릿속으로 여기에서 읽었던 보고서를 기억해냈다.
##- 선택의 카드는 특이성을 발현할 때 맹렬하게 회전함. (*손가락을 가져다 댈경우 자상을 입을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
– 특이성이 발현되지 않는 학생의 경우에는 선택의 카드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음.
···
내가 읽었던 선택의 카드는 특이성이 발현하지 않으면 반응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카드는 분명히 회전했다.
그녀의 특이성을 생각해 봤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겠지.
발현은 완료되었지만. 보여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특이성은 【물의 부름】팩 이후에야 쓸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물의 부름】팩의 카드들을 만지작거렸다. 이 카드들을 그녀에게 준다면 그녀는 특이성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특이성의 강함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퇴학당하는 일은 결코 없을 터.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동안···감사했습니다.”
나는 고민했다.
여기에서 내가 나선다면. 그리고 그녀가 학교에 남는다면 이야기는 바뀌게 되는 걸까? 여기서 나서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스토리를 커다랗게 바꾸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
“잠깐.”
하지만 상관없다. 앞서 말한 적이 있듯. 나는 카드 게임 유저라서. 스토리 같은 건 별로 기억도 못하거든. 나를 여기에 쳐박은 놈의 계획을 터트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무엇보다, 1학기의 최종보스를 여기서 처리해 놓으면 내 벌레나 다름없는 덱을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적을 믿나?”
***
“기적을. 믿나?”
자신을 멈춰세운 교수···아니, 강사가 대뜸 처음 한 말이었다. 어디 사이비나할 법한 말.
“기적이요?”
그녀는. 근 1년동안 기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근 몇년동안 무언가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필사적으로 살아왔었다. 입학 전에는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입학 후 초반에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기 위해, 그 이후부터는 특이성을 얻은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온 탓이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려 봤지만. 아득하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벌어졌다. 서서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깊디깊은 심해에 가라앉은 기분. 이제는 뭘 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됐다.
그래서, 발버둥쳐야 할 2학년의 첫 학기인데도 그녀는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혹시나. 만약에. 라는 생각으로 왔지만. 오늘로서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은 끝이었다.
“생각해본 적 없네요.”
“만약. 기적이 있다면. 믿어볼 생각 있나?”
“···정말 죄송하지만. 사이비이신가요?”
강사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애초에 사이비도 본인이 사이비냐는 소리를 들으면 불쾌해한다.
그녀는 소울 커맨더스 실력이 없는 것이지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었다.
“믿으면, 뭔가 달라지나요? 아카데미에···남을 수도 있을까요?”
“아마도. 내가 보기에 너에겐 재능이 있어 보이거든.”
“그걸 어떻게 알죠?”
“그냥. 보면 알아. 내가 조금만 손을 보면. 너는 충분히 강해질 수 있어. 당장 조금만 손을 보기만 하면···.”
‘그냥. 보면 안다.’라.
“···사이비. 진짜 아니시죠?”
“어이! 자퇴생! 당장 꺼져!”
“저기서 지금 지랄하고 있는 교수도 이길 수 있지.”
지랄. 자신이 1년간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교수를 보고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자신만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모든 사이비가 그렇듯이.
그는 진심으로 그녀가 태진호 교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이 모든 것이 연극처럼 느껴졌다.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바뀌는 연극처럼.
“그럼. 한 번 해 볼까요.”
사실. 1년동안 태진호에게 쌓일 만큼 쌓였다. 잠깐이라면 이런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 한 순간도 주인공이 될 수 없는 1년간이었지만, 주인공이라는 기분을 잠시라도 느끼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혹시라도. 모르지 않는가. 이 자신만만한 사이비의 도움으로 저 짜증나는 교수를 자신이 정말로 이길 수 있을지도.
##사 이비는 아닌(2)
나는 신하연의 눈을 바라봤다. 맹탕 죽은 눈에 조금의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물탱크 속에 한 방울 잉크가 떨어진 것 만큼 희미한 농도였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으로 충분하다.
“그럼 이제는 뭘 하면 되죠?”
“일단 속성 선택부터 해야겠지.”
“잘 생각해 열등생! 속성을 선택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어! 속성을 선택한 이후의 듀얼은 속성이 없기 전과는 다르다! 다치는 건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어차피. 지금도 살아 있는 건 아니에요. 신하연이 낮게 읊조렸다. 태진호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의 덱을 점검했다.
덱의 상태는 솔직히 말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기본만 안다면 되어 있어야 할 튜닝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 내 덱을 상대한다고 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다. 누가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카드를 보관하는 프로텍터와 덱 슬롯은 얼마나 만져댔는지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속성은 뭘 고르면 되죠?”
“물.”
내 대답에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의 카드를 집어들었다.
“신하연! 네 지도교수는 나야! 지금 속성선택은 네가 평생 후회하게 될 결정이다! 내 말을 들어!”
“왜 물속성인지 안 물어보냐? 다른 학생들은 몇십 번은 물어보고 고르던데.”
“사이비한테 속는 사람은 의심이 없거든요. 멍청하게도.”
“사이비 아니라니까.”
“내 말을 들으라고!”
“사이비가 스스로 사이비라고 하는 거. 봤나요?”
선택의 카드는 특이성을 판별하는 것과 별개로 속성을 선택할 수 있는 매개채 역할도 한다. 속성을 선택하는 방법은 카드를 집고 바라는 속성을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읊는 것이다.
신하연은 선택의 카드를 손에 집고 눈을 감았다. 선택의 카드는 처음 만졌을 때 회전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작게 공명했다. 백색이던 선택의 카드가 서서히 파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속성 선택이 끝나자 선택의 카드는 파란 빛을 띄고 있었다.
“이제 됐나요?”
“충분해.”
빠드드득!
몇 번이나 자신의 지도학생에게 무시당한 것이 분했는지 태진호가 발작하듯 이를 갈아붙였다.
“자퇴생.”
“아직 자퇴 안 했어요.”
앞으로도 자퇴는 안 할 거에요. 스스로에게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였다. 옆에 붙어 있었던 탓에 나에게만 들렸지만.
“뭐든 상관없다. 네년의 지도교수의 자격으로, 지도대국을 시작하겠다.”
태진호는 이를 앙다문 채 말했다.
“진다면, 이 학교에서 꺼져라.”
***
지도대국.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실력이 부족한 자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위해 하는 것이 바로 지도대국이다.
신하연은 태진호와의 지도대국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와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기는 하지만.’
“듀얼 필드 세팅!”
태진호의 외침에 방 안에 설치되어 있던 필드가 세팅되기 시작했다. 갈림길 내부에 있던 면접장이 바깥으로 개방되어 나왔다.
“듀얼이야?”
“저기, 갈림길이잖아. 속성 선택 중인데 갑자기 듀얼을 한다고?”
“그보다 저기 서 있는 거. 낙제생 아냐?”
“유명한 애야?”
“사회자 전형으로 온 애. 1년간 한 판도 못 이겼다던데.”
꿀꺽.
몸이 가볍게 떨려온다. 하지만 이렇게 됐으니 되돌릴 수 없다.
“지금부터 지도대국을 시작한다. 5분 내에 덱 준비를 완료하도록.”
덱 준비시간이 주어졌다. 태진호는 덱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튜닝 따위 없어도 퇴학 직전인 자신 따위는 밟아버릴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