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0
“퀘스트 심리전이란 거죠. 몇 번 써먹고 나서는 퀘스트가 뜬다고 상대가 퀘스트 덱이라고믿는 인간이 사라져 버렸지만.”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해 대는 전익현을 두고 여진성은 생각에 잠겼다. 치밀하기 그지없는 심리전이다. 가장 소름이 돋는 건···.
‘아버지에게 빛의 시대라는 신카드를 주저 없이 넘겼다는 거지.’
그는 빛의 시대 덱을 통해 퀘스트의 강렬함을 장내의 모든 인간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넉살좋게 퀘스트 덱과 완전히 관계 없는 방식으로 승리를 얻어냈다.
어처구니가 없는 승부수.
여진성은 생각에 빠졌다. 눈앞의 전익현이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탑에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탑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은 기괴하고 뒤틀려 있다. 순수한 목적으로 학생을 위해 움직이는 교사가 탑에서 만들어진 존재일 리 없다.
“···자네는 믿을 만한 인간이군. 내가 졌네.”
“뭐. 제가 이긴 건 이긴 거고.”
[패배가 수락되지 않았습니다.]패배가 수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에 여진성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
“죽창은 맞으셔야죠.”
여진성의 떨리는 손이 듀얼 룰을 확인했다. 선명하게 떠 있는 ‘기권 불가능’ 창.
여진성의 눈이 전익현의 필드에 올라와 있는 「수룡」을 바라봤다.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수룡의 공격력이 30까지 커 있었다.
여진성은 기권 버튼을 계속해서 눌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패배가 수락되지 않았습니다.] [패배가 수락되지 않았습니다.] [패배가 수락되지 않았습니다.]“자···잠깐!”
“여한설 학생이 아카데미에서 참 말썽이 많아요. 존댓말도 안 하고. 걸핏하면 남을 무시하고.”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는가!”
“왜요. 학생 잘못은 학부형이 지는 거지. 이렇게 큰 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사니까 싸가지가 없지. 누구는 지하에서 투룸으로 이사갔다고 기뻐서 방방 뛰는데. 집에서 헬기나 타고 다니고. 집에 버스도 대절해서 다니고. 문도 수십개나 있고. 이런 환경에 학생을 내버려 둔 학부형 잘못이 큽니다. 그쵸?”
“잠깐만!”
“그러니까. 죽창 딱 한 대만 맞읍시다.”
수룡의 아가리가 벌려졌다.
콰과과과과! 거대한 물줄기가 여진성의 몸을 정통으로 후려갈겼다. 여진성의 몸이 듀얼 필드 가장 바깥부분까지 밀려나간 다음 벽에 엄청난 속도로 쳐박혔다.
콰아아앙!
‘이런 미친 새끼.’
여진성이 정신을 잃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끝
여한설은 병실에서 나왔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을 여기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수작이다.
여진성이 없다면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집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있다고는 하지만 증조부가 자신을 막아선 적이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나오니까 살 것 같네.”
그녀는 조그마한 크기의 연못을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연못 한 번 크기도 하네.”
여한설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전익현이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지? 가로막는 사람들이 수백은 될 텐데. 설마 죄다 때려눕히고 온 건가? 여한설은 전익현의 옷을 바라봤다. 듀얼을 했다면 옷이 찢어졌을 텐데도 멀쩡했다. 무릎에 흙이 조금 묻어 있을 뿐.
“무릎에 흙은 왜 묻어 있지?”
“대나무 없나 찾아다닌다고. 아쉽게도 없더라.”
대나무를 어디 쓰려는지에 대해서 여한설은 굳이 묻지 않았다. 기껏해야 대나무 밥이나 소주 따위를 만드는 데 쓰려는 것일 테니까.
그가 찾아온 이유 따위는 뻔하다. 자신이 아카데미를 그만둔다는 사실이 아카데미에 퍼진 거겠지. 그리고 자신의 자퇴를 막으러 온 것이리라.
그녀의 자퇴는 이미 결정된 사실이다. 누가 찾아와서 여진성을 날려 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아니. 누군가 날려버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자퇴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자퇴를 한다면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아카데미에 고작 3년을 살자고 그녀가 누려온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여한설은 전익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뭔가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이 전익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둠 속성. 재밌지?”
하. 여한설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여기까지 와서 하는 첫 이야기가 듀얼 이야기라니. 하긴. 그런 인간이었지.
“재미없어.”
“왜. 재미있지 않냐? 여러 코스트들을 지불하는 걸로 이득을 쉽게 쉽게 쌓아가는 덱. 무덤이라는 컨셉 쓰는 것도 재밌고. 물론 빛 속성이랑 컨셉이 살짝 겹치기는 하지만.”
“재미 없다니까.”
“아쉽네. 다음 시즌에 나올 카드들 입수해 왔는데.”
“대체 그런 극비 정보는 어디서···아니. 나랑은 상관없어.”
“문자로 보낸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음. 여한설은 휴대폰을 보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봐. 보고 싶잖아.”
“안 봐.”
생각보다 잘 버티네. 전익현은 말했다.
“빛 속성 덱은. 재밌냐?”
“···재미없어. 하지만 해야 하는 덱이야.”
“해야 하는 일 같은 건. 세상에 없어.”
퀘스트 빼고. 영문 모를 소리를 전익현은 지껄였다.
“어둠 속성 덱은 못 써.”
“누구 맘대로? 그냥 한 속성의 덱일 뿐이잖아.”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예전에 내가 지역 대회 우승하고 바로 세계 대회 나갔던 적이 있었거든? 그때 분위기 장난 아니었어. 참가자들은 사기 덱이라고 욕하지, 중립이어야 할 해설들은 편파해설을 하고 있지, 주주들은 계란 들고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지.”
“주식을 걸고 듀얼을 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주가가 살짝 내렸었거든. 주가 내린 게 내 잘못은 아닌데 엄청 뿔이 났더라고.”
100% 전익현의 잘못일 것이다. 안 들어도 훤하다.
“내가 신박하고 엄청 센 덱을 만들었는데 지역대회 이후에는 쓰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 너무 덱이 악랄하다고.”
“그래서?”
“그냥 썼어.”
종종 여한설은 전익현이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 궁금하곤 했다. 엄청난 듀얼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암살 시도가 수십만 번은 있었을 텐데.
“그보다.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군.”
“돈이 필요했거든. 그것도 꽤 많이.”
“어디 쓰려고?”
“병원비.”
잠깐의 침묵. 전익현을 찬찬히 바라보던 여한설은 입을 열었다.
“···말해 두는데. 듀얼 중독은 국비로 무료 치료가 가능해.”
“듀얼 중독 아니다.”
“검사는 해 봤나?”
“그딴 거 검사를 왜 받냐?”
전익현이 멀쩡히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직 듀얼 중독 테스트를 받지 않았기 때문인 모양이다.
이렇게 위험한 인간을 사지멀쩡하게 풀어두다니. 한국도 치안이 그리 좋은 곳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요점은,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마음대로 살기에는 잃을 게 너무 많아.”
“마음대로 안 살면 인생을 잃는 거지.”
그 말을 마친 전익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다음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할 일이 다 끝났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투다.
여한설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정자의 기둥에 몸을 기댔다. 말로는 쉽지. 말로는. 국수國手는 구 단이고 훈수는 십 단이라던가. 훈수 두는 인간들의 말은 들을 게 못 된다.
여한설이 전익현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이 빼꼼 나왔다.
“홀홀. 아가씨는 뭔 일로 여기에 왔나?”
“증조부···할아버지.”
여일후와 만나는 것이 얼마만이던가. 얼마 전에 또 집 안에서 실종됐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뭔 고민이라도 있나?”
“없어.”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인데 말이여.”
여일후가 뭐가 좋은지 웃었다.
“방금 간 놈. 네 할애비 상대로 이기더구나.”
“···정말?”
“그럼. 정말이지.”
사실 엄청나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진성도 무적은 아니었으니까. 진짜 덱을 쓴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결과가 안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아니. 그건 무리일지도.’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전익현이 구태여 이 집에 들어와서 여진성과 듀얼을 했다는 점이다.
왜일까.
“네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반대로 자의식 과잉일지도.
하지만 그렇든 아니든 관계없는 일이다. ···전혀 관계없는 일은 아닐지도. 아니. 진짜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여한설은 말을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이 주제로 여일후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할아버지는 괜찮아?”
“제대로 후드려맞았지. 일어나는 데 사나흘은 걸릴 게다.”
“그 정도야?”
“30데미지를 한 방에 두드려맞았거든.”
“항복 안 했어?”
“고 놈이 항복 금지 룰을 설정을 해 놨더구나. 여우 같은 놈이야.”
자신의 아들이 두드려맞았는데도 여일후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놈도. 너도, 너무 많은 걸 안에 들고 있으려고 해. 멍청한 놈들.”
“난 속에 별 거 없는데.”
“탑을 공략하겠다고 설쳐대는 놈들 중에 속에 별 것 없는 놈은 한 번도 본 적 없다.”
“탑 공략 안 할 거야.”
딱! 여한설의 머리에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모를 나무몽둥이가 꽂혔다. 여한설은 고통에 머리를 문질렀다. 대체 얼마 만에 맞아 보는 몽둥이던가.
“왜 때려!”
“증조부가 막 나가는 증손녀 대가리 좀 후릴 수도 있지!”
“가업 잇겠다는 게 뭐가 막 나가는 거야!”
“젊을 땐 막 사는게 제대로 사는 거야!”
여한설은 이를 악다물었다. 전익현도 그렇고, 여일후도 그렇고. 막나가는 인간들의 전형들만 나타나서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여댄다.
“아무리 그래도 난 안 가.”
여일후는 눈 앞의 증손녀를 노려봤다. 하여간. 이 집 식구들이 솔직하지 못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강제력을 동원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줘야 한다. 자신이 정신머리가 남아 있는 동안.
“여씨 가문 32대손 여한설.”
“왜.”
“너는 버릇 없는 행동과 반말, 어둠 속성의 덱을 사용하는 등의 행동으로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여한설의 눈에 여일후의 손에 들려 있는 가주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가문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가문의 권위를 상징하는 카드.
“그거. 할아버지 거잖아.”
“어허. 원래 내 물건이었느니라. 진성이 녀석이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 뿐!”
“가주 카드를 할아버지 누워 있다고 훔쳐 온 거야?”
“조용히 하지 못할까!”
가주의 권위가 살아 있는 불호령에 여한설은 입을 닫았다.
“네놈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봐 온 바. 본 가주는 가주 카드의 권위를 빌어 여한설 너를 가문에서 추방한다! 금일 이후로 너는 가문의 어떤 비호도 받지 못하며, 어떤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추방?”
“이 추방은 여씨 가문 29대손인 이 몸. 여일후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되돌릴 수 없다!”
“이게 증조할아버지가 생각한 해답이야?”
“어허! 죄인은 입을 닫으라!”
여한설은 증조부를 바라봤다. 자신을 끔찍이도 아끼던 증조부가 하는 가주로서의 명. 그것도 마지막이 될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