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6
“내 이름은 어떻게 알죠?”
새벽녘은 구태여 ‘남연철이 네 덱이 귀찮은 덱이라고 매일같이 조잘거려대서’라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아카데미 2학년생이 해 내기에는 꽤 어려운 묘수풀이였을 텐데.”
“심심하면 이상한 문제 내는 사람이 옆에 있거든요.”
“누군지 대충은 알 것 같군.”
전익현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실력이 급증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의 지각이라는 것은 신기한 것이다. 주변에 듀얼을 잘 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실력은 늘어나는 것이다. 고수의 플레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실력은 늘어날 수 있다.
“일단은 묘수풀이를 풀어냈다는 것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묘수풀이를 잘 했다고 실전까지 잘 한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묘수풀이라는 건 시간이 무제한적인 탓에 실질적인 실력을 알아내는 건 어렵기도 하고.”
“···1분 30초만에 풀었는데요?”
“뭐?”
“묘수풀이. 1분 30초만에 풀었다고요.”
“그 묘수풀이를 90초만에 풀었다고? 그보다 90초라는 걸 어떻게 알지?”
“대충 감으로 알아요. 전익현 강사님이 묘수풀이 시킬 때마다 제한시간이 1분 30초거든요.”
1분 30초는 통상적인 룰에서 플레이어에게 턴 당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 내에 그 묘수풀이를 했다고? 그보다···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풀이를 해 왔다는 게 말이나 되나?’
일반적으로 묘수풀이는 시간제한이 없게 만들어진다. 특이한 상황에서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것이 바로 묘수풀이니까. 그렇기에 묘수풀이는 다분히 실전과는 동떨어져있다. 그런데도 구태여 90초라는 시간을 제한했다는 건···.
“어떤 때에도 답이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하려는 생각일 거에요.”
“···그렇겠군.”
“강사님은 묘수풀이에 매진할 시간에 실전이나 한 판 더 하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하지만요.”
전익현이 미친 인간 치고는 주도면밀하다는 것은 꽤나 오랫동안 입증되어 온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눈 앞에 있는 신하연의 실력이다. 자신이 만든 묘수풀이는 꽤나 생각을 해야만 풀 수 있는 묘수풀이었다.
과거에 실전에서 한 번 나왔던 묘수풀이. 덱의 주인인 새벽녘 본인은 묘수풀이에 실패했었다. 반면 눈 앞에 있는 신하연은 여유롭게 함정을 피해냈다. 자신의 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허허.”
새벽녘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대체 아카데미에서는. 아니, 전익현의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감정 없는 듀얼리스트를 양산해내는 알파-듀얼리스트 양산공장이라도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년에 나도 아카데미에 잠입하게 해 달라고 해야 하나.’
실없는 생각을 하던 새벽녘이 픽 웃었다. 이 세계에 남은 시간이 얼마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매듭」실격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신하연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고르디우스랑 같이 탑을 공략하는 건 좀···.”
신하연이 망설였다. 아무리 탑을 공략하고 싶다고 해도 고르디우스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테러리스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카데미의 평범한 학생에게 고르디우스와 함께한다는 일은. 잘못하면 퇴학만으로도 끝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런가. 아쉽군. 이번 주에 20층의 공략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네 명으로 공략할 거다.”
“···이번주에요?”
“그래. 내가 알기로는 이 플로워에서 지금 20층을 공략하려는 인원은 우리뿐이야. 고르디우스건 집행자건 팀을 짜서 이미 올라간 뒤니, 앞으로 20층을 공략하려는 놈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나오겠지.”
“흐으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새벽녘의 말. 신하연은 입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전익현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과거에 수호자였던 그가 세상에서 도움받을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었으므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결국 전익현의 비원이 「탑」의 종말이라면, 올바른 시점에 전익현의 옆에 있을 수 있어야만 한다.
“···20층은 혼자서 돌파하는 건. 무리겠죠?”
“아무리 적어도 네 명은 필요하다. 혼자서 이 탑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죽고 싶은 놈이거나 뇌에 이상이 있는 놈이 아니라면 파티 플레이를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
“···이번만 협력할게요.”
“정체를 숨기고 싶겠지. 가면 필요한가?”
새벽녘이 신하연에게 가면과 망토를 내밀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는 정체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
“멈춰!”
내달리는 내 양 어깨를 두 손이 붙잡았다.
“왜 또?”
마지막 일격 직전에 공격을 멈춘 탓에 내가 상대하고 있던 「스콜피온」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안 돼. 살려줄 생각 없어. 돌아가. 애완동물은 지금 세 마리로도 벅차단 말이야.
파악! 내 일격이 스콜피온의 명치에 먹혀들었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동그란 눈 여섯 쌍이 나를 쳐다본다. 이러니까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아무튼, 22층의 모든 몬스터들은 클리어다.
“설명을 들은 건 맞나?”
“다 들었다니까.”
사실 안 들었다. 죄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계속 모래알 스택을 쌓아나가고 있는 거지?”
“별로 쌓이지도 않았는데.”
나는 내 모래알 스택을 확인하며 이야기했다. 고작 43스택밖에 안 쌓였다. 목표치에는 한참 부족하다. 뭐, 애초에 목표치를 채우려고 사냥하고 있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30층까지 도달하기 전에 최대한 몬스터들을 적게 처치하는 게 공략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몬스터들을 최대한 처치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보일지도.”
“그리고 몬스터들을 다 처치해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나 해?”
“알아.”
“알기는 뭘···!”
쿠르르르!
바닥의 진동에 흑일삭의 말이 멈췄다.
“제기랄.”
흑일삭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과 반대로 나는 목을 풀었다. 바닥을 치는 난이도의 몬스터들을 상대해 나가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시레나수를 몸에 단단히 묶은 나는 자리에 앉았다.
모래가 소용돌이칠 때 넘어지면 팔목이나 발목을 삘 수 있기 때문이다.
사르르르륵! 바닥이 소용돌이치며 내려앉기 시작했다. 사라진 바닥 아래에서 거대한 집게로 된 아가리가 철컹거리며 움직였다.
[히든 몬스터 : 「유사의 모래지옥」이 등장합니다.]“듀어어얼!”
끼긱거리는 괴성과 함께 듀얼이 시작됐다. 사르르륵! 머리 위에서 모래가 떨어져내렸다. 모래지옥의 특이성이다.
[죽음의 모래 : 「모래알」스택을 1 추가합니다. 모래알 스택은 매 턴마다 랜덤하게 증가합니다.] [‘죽음의 모래’를 당한 후, 덱을 더는 초기화할 수 없습니다.]“드디어 등장했구만.”
“뭘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혹시 문맹인 건가?”
나를 문맹으로 취급하던지 말던지 상관없다. 고작 22층에서 모래지옥을 만나게 된 내 기분은 한껏 좋아져 있었으니까.
모래지옥은 한 층의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했을 때 나오는 히든 몬스터다. 모래알 스택을 미친 듯이 주기 때문에 디메리트처럼 보이는 히든 몬스터.
몬스터들을 계속해서 처치하는 대신 최대한 빠르게 올라가라는 제작자의 의도···
“···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30층 공략의 핵심 몬스터지.”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첫 핸드를 덱에서 뽑아올렸다. 나쁘지 않은 손패다.
“턴 엔드.”
[모래지옥의 턴입니다.]파칭! 파칭! 파칭! 모래지옥이 칼날같은 집게를 튕기자 모래로 된 벽이 모래지옥의 앞에 펼쳐진다.
[모래지옥의 방패 :「보호의 모래」스택을 1 추가합니다.] [보호의 모래 : 데미지를 한 번 무효화합니다.]보호의 모래 스택이 1로 늘어났다. 그다지 큰일은 아니다. 미스틸테인··· 그러니까 ‘지존신살검’이 내 덱에 들어 있는 이상 저 보호의 모래 스택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나는 패를 확인한 채로 턴을 넘겼다.
“턴 엔드.”
“뭐 하는 거야! 모래알 스택이 쌓이기 전에 최대한 빨리 모래지옥을 처치하라고!”
왜 이 세상에는 음소거 버튼이 없는 거지. 저 자식. 내가 플레이 할 때마다 훈수를 둘려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나는 내일은 반드시 삽을 가져오겠다고 다짐하며 패를 모아나갔다.
“제기랄···나는 네놈이 쓸만한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턴 엔드.”
사르륵! 사르르륵!
“턴 엔드. 턴 엔드. 턴 엔드.”
“아아···.”
사락! 사라락! 모래가 내 등 뒤로 쌓이면 쌓일수록 흑일삭의 눈에서 희망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표정 하나는 풍부한 캐릭터일세.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궁금한 것도 많다. 하지만 턴 엔드 말고는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잠시간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아주 예전에. 온라인으로 소울 커맨더스를 할 수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손으로 셔플을 해야만 했다.”
“원래 소울 커맨더스는 온라인으로 못 해.”
조용히 하고 듣기나 해. 이 세상에서 온라인으로 소울 커맨더스를 하는지 안하는지 내 알 바냐?
“···그 때의 소울 커맨더스의 덱 매수제한은 아주 심플했다. 덱은 30장 이상일 것. 30장 이상이기만 하면 몇 장이든 괜찮다는 룰이었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어느 똑똑한 유저는 생각해냈지. ‘게임을 시작할 때, 상대방은 덱을 제대로 셔플해서 넘겨줘야만 한다.’는 규정을 말이야.”
“아주 오래 전 듀얼 디스크가 없던 시절에는 손으로 셔플을 하기도 했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 규정이란 말이지?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상상력이 부족하기는. 좋은 듀얼리스트가 되기에는 글렀다.
“상대방이 덱을 제대로 셔플하지 못하는 덱 두께를 만들면. 문제가 발생하지.”
“···설마.”
“그 설마가 맞다. 그 똑똑한 유저는 3천장이 넘는 두께의 덱을 대회에 가져왔고, 상대방이 셔플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승리를 거머쥐었지. 규정집에 ‘셔플’은 ‘한 손에 덱을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덱을 섞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었거든.”
“지독한 새끼네.”
지독한 새끼라니. 말이 심하잖아. 나는··· 아니, 그 똑똑한 유저는 규정집을 지켰을 뿐이라고.
“대체 뭐가 걸린 듀얼이었기에 그렇게까지 한 거지?”
“아무것도.”
“뭐?”
“아무것도 안 걸려 있었어.”
소울 커맨더스 초창기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룰도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고, 운영도 주먹구구식인 시절. 상금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매장에 걸린 초대 우승자 사진이 전부였다.
하지만 때때로 보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대답에 흑일삭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아주 길게 쉬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그게 지금의 상황이랑 무슨 관계인데?”
“그 이후로 덱의 최대 매수가 200장으로 줄었단 이야기다. 턴 엔드.”
일반적인 듀얼 환경에서 덱 매수가 200장이라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덱 크기다. 듀얼은 아무리 길어도 40-50턴이면 끝나게 되니까.
하지만 이 세계의 듀얼환경, 특히 탑주와의 듀얼환경은 일반적인 듀얼과는 동떨어져 있다.
[「죽음의 모래」가 발동합니다!] [「모래알」스택이 50 증가합니다!]사르르륵! 모래가 요란스럽게 바닥에 튀어올랐다.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데.”
“안 되면 말고.”
모래알 스택은 덱의 최대 매수 이상으로 덱을 늘릴 수 있다. 그래서 모래알 스택이 30층의 공략에 중요한 것이다.
물론 모래알 스택도 무한은 아니다. 모래알 스택의 최대치는 2048스택.
「신앙거석」의 6000체력을 작살내기 위해서는 총알 세 발이 필요하다.
“턴 엔드.”
사라락! 모래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내 등 뒤에 쌓였다.
끝
[검림에 입장하셨습니다.]신하연은 수없이 많은 무기들이 놓여져 있는 도산검림을 바라봤다. 10층대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수적이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무기를 다 구해 놨다고 했지.”
새벽녘의 말로는 파티에 데미지는 충분하다고 하니 유틸리티 쪽을 신경쓸 수 있는 무기를 고르라고 했다.
“···유틸리티라고 해도. 어떤 무기가 유틸리티가 좋은지 모르는걸.”
신하연은 중얼거렸다. 명확한 대답이 없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선택들. 그녀는 무기의 능력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검림을 걸어나갔다. 어떤 무기도 마음에 들고, 어떤 무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검림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구멍 하나와 그 옆에서 네모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드워프?”
반투명한 드워프를 바라본 신하연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이 탑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은 적이라고 들은 탓이다.
신하연은 드워프가 들고 있는 네모난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노려봤다. 네모난 액정 안에 「천마님 우주듀얼 가신다」라는 표지가 들어 있다.
···탑 안에 이북리더기라니. 기묘한 조합이다.
“요즘은 검림에 손님이 많구만. 제련소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이지만.”
“···누구시죠?”
“위대한 철의 의지이자 대장혼의 계승자.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제련의 장인. 풀무불꽃이라고 하네.”
설명이 오그라든다는 생각을 설핏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