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8
‘법으로 문제 없으니 문제 없는 일이다!’라는 반응. 인간으로써 글러먹은 대답이 신하연에게서 흘러나오자 풀무불꽃의 얼굴이 다시금 찌그러졌다.
룰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소리는 전익현이나 할 만한 반응이다. 물든 것이 분명하다. 중간중간에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는 둘이 만난지 반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런 오염도라니.
“···아! 그러고 보니 무기 골라야 되는데!”
신하연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써 버렸다. 시간이 여유롭게 있는 것도 아닌데.
“혹시 풀무불꽃님은 저한테 맞는 무기가 뭔지 아시나요?”
“흐음. 너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을 보면 이 「자웅일대검」이 좋아 보이는구나.”
“자웅일대검요? 그거 「간장막야」하위 호환이잖아요. 같은 2번 공격에, 데미지가 1 적다고요.”
“그렇지만 모양이 멋지지 않나! 이 아름다운 모양새를 보거라! 이 음각이 새기는 데에 엄청 힘든 건데 말이야, 먼저 용광로의 온도를···.”
풀무불꽃의 조언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 풀무불꽃이 조언을 해 주는 무기를 쓴다고 해도 그게 전익현이 말했던 ‘자의적인 선택’이 되지도 않을 테고.
신하연은 눈 앞에 떠오른 창에 있는 글귀를 찬찬히 다시 훑었다.
[검림에 있는 어떤 것이건 단 하나를 선택해 나갈 수 있습니다.]“단 하나. 단 하나라···.”
여기에 있는 어떤 것이건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 그녀는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될 지 안 될지를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될 지 안 될지 모르면 해 봐라.’
전익현이 언젠가의 수업에서 했던 말이다. 카드의 판정과 효과라는 것은 미묘하거나 애매한 부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도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하연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
[승리하셨습니다.]나는 신하연을 기다리며 흑일삭과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대전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전적은 23승 0패. 오늘도 꽤 좋은 컨디션이다. 시험해 보고 싶었던 테마덱이나 컨셉덱들이 많았는데 내친 김에 그것까지 죄다 돌려보고 있었다.
[다음 판 ㄱㄱ] [안 해] [상대가 대전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대전을 신청합니다.] [ㄱㄱ] [*** *** ***!!(욕설 차단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좀 졌다고 욕을 하냐. 자주 당하는 일이라 차단을 활성화해 놔서 다행이지.
근성 없는 놈 같으니라고. 신하연은 30패 할때까지는 멀쩡하게 덤벼들었는데. 요새 애들은 근성이 없다.
뭐. 그래도 사람의 멘탈이라는 건 재미있어서 내일쯤 되면 또 다시 슬그머니 게임을 할 수 있는 멘탈이 된다. 내일부터는 최대한 빨리 층계만 오르면 되니까 같이 듀얼할 시간이 넘쳐날 거다.
“그래도 좀 심심하네.”
탑에서 나오지 말 걸 그랬나.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침낭같은 걸 가져다 놓고 외박을 하겠지만 규정상 신하연을 제대로 숙소에 대려다줘야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해야 한다.
규정을 회피할 방법을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는데, 신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강사님!”
“왔냐?”
“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냐?”
“파티 구한 다음에··· 무기 골랐어요. 파티는 금방 구했는데 무기 고르는 건 한참 걸렸거든요.”
“뭐 골랐어?”
내가 해 줬던 조언인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을 해 본 모양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신하연의 특이성과 덱에 맞는 무기는 검림에 존재하지 않는다.
워낙 덱이 강하기도 하고. 테마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음··· 다른 사람이 상상도 못할 무기 골랐어요.”
“상상도 못할?”
나는 머릿속으로 검림에서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되돌아봤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다 해 봤는데. 그중에서 특이할 수 있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인 「미스틸테인」은 내가 들고 있고. 문짝도 내가 썼으니 아니고. 남는 것이라면···
“천장에 있는 구슬 뽑았냐?”
“아뇨. ···그 구슬, 뽑을 수 있는 거였어요? 뽑으면 안 되죠!”
안되긴 뭘 안돼. 다음 카드 볼 수 있는 나름 괜찮은 성능의 무기인데. 아무튼 수정구슬도 아니라면 남는 특이한 선택지는 딱 하나다.
“보아하니 강사님도 맞히지 못할 것 같네요! 제가 고른 건 바로바로! ‘풀무불꽃’님이에요!”
“······.”
“놀랍죠!? 그냥 거기 있는 유령인 줄 알았는데, 고를 수 있더라고요! 풀무불꽃님도 엄청 놀라셨어요!”
“그···그랬구나.”
진짜 똥 같은거 골랐네. 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아냈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황금이 아니듯, 특이한 선택지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미스틸테인」과 「보루방패」, 그리고 천장에 있던 수정구처럼 「풀무불꽃의 영혼」도 특이한 선택지이기는 하다.
하지만 단언컨데 쓰레기같은 선택지다. 옆에서 계속 훈수를 두는 것 말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까.
“아마 풀무불꽃님처럼 오래 살면 듀얼능력도 엄청날 거에요!”
오래 살기만 했지 대장장이 일만 해 댄다고 실력은 개판 오분 전인데.
“그리고 그 커다란 망치로 몬스터들을 처치할 수도 있을 거고요!”
당장 내 머리통도 못 깨는 영혼망치인데 그거.
‘당장 환불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신하연은 이미 자신의 선택에 푹 빠진 상황이다. 뭐. 지금으로선 그냥 특이한 선택을 한 것을 칭찬해 주도록 할까.
“잘 했어.”
“이런게 ‘자신만의 선택’ 인가 봐요! 덱도 이런 식으로 짜면 되는 거겠죠?”
선택지를 고르는 능력을 보니 가만 내버려두면 무슨 개똥덱이 탄생할지 벌써부터 두렵다.
당분간은 신하연의 덱을 예의주시해야겠다. 남의 덱이 어떤 꼬라지가 나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신하연의 덱이 개판나면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를 붙을 만한 상대가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젠장. 그냥 남들 따라 덱 만들라고 조언할 걸 그랬나.
“그보다. 강사님은 뭐 하셨어요?”
“탑 공략.”
“세 번째 층계는 괜찮은 곳인가요?”
“뭐. 나쁘지 않아. 좀 심심한 곳이기는 한데, 그래도 같이 듀얼할 수 있는 놈이 생겼거든. 꽤 재밌는 상대야.”
내가 휴대폰을 흔들자 신하연의 표정이 바뀐다.
“······전적은요?”
“23승 0패.”
“원턴킬 덱들은 거의 다 쓰셨을 거고··· 무한분열 슬라임 덱도 쓰셨나요?”
“어. 쓰니까 욕하던데?”
“욕할만 해요.”
“세상에 욕할만한 덱은 없어.”
욕을 해야 하면 본인의 부족한 실력을 먼저 욕해야지. 1데미지 슬라임에 맞아 죽으며 비명을 내지르던 흑일삭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어쩌다 강사님의 마수에 걸려든 거래요?”
“그냥 오던데? 그보다 나랑 듀얼하는 걸 마수라고 한 거냐? 너도 나 덕분에 실력 엄청 늘어 놓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혹시 아시나요?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신체능력이 엄청 향상된대요. 하지만 너무 많이 복용하면 몸도 영혼도 병이 들게 된대요.”
너 그거 무슨 뜻이야. 추궁하듯 신하연을 노려보자 신하연이 헛기침을 하며 눈을 돌린다.
“아! 저 집 가는 버스 왔어요! 가 볼게요!”
젠장. 타이밍 좋게 버스를 타고 가 버리다니. 처음에 퇴학 안 당하게 해 줬을 때에는 완전 신도처럼 내 말을 들었는데. 가면 갈수록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편해진다. 언제 한 번 날 잡고 실전듀얼을 해 줘야 되나.
···아니지. 매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애초부터 듀얼로 쥐어패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됐잖아! 듀얼만능주의 뇌! 내 머릿속에서 나가!
나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이 기묘한 세상에 머리가 물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만 한다.
“그보다. 숨겨진 이 세상의 이야기란 거. 무슨 이야기려나.”
사실 추가 카드를 받는 것도 받는 거지만, 이 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세계의 침식도 증가가 왜 이렇게 빠른지에 대한 것이다. 권보람이 보내 주는 침식도 수치들을 본 적 있는데, 내 기억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단 말이지.
늘어나는 침식도 수치로 인한 게이트 발생은 이제는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탑주 두 마리를 끝냈고 이제 세 마리째를 해치울 테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누적 침식도 수치다.
“누적 침식도도 일정 수치 이상이면 배드 엔딩이 된다고 했었는데.”
머릿속에 있는 희미한 설정들을 더듬으며 나는 생각을 이어 나갔다. 누적 침식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배드 엔딩’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빌어먹을 제작자 놈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 침식도가 이렇게 빨리 올라가는 세계에 나를 집어넣어 놨냔 말이다.
나는 입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욕을 중얼거렸다. 누적 침식 수치는 얼핏 생각해도 데드라인 근처에 와 있었다. 탑의 공략이 시일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데드 엔딩인 ‘웨이브’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할 터.
카드 게임으로 따지자면 똥패 중의 똥패를 받은 상황이다. 초반에 명치가 너덜너덜해지는 맹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뭐. 상관없지.”
똥패를 받았다고 해서 세상을 욕하고만 있다면 듀얼리스트가 아니다.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듀얼리스트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닥친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세 번째 탑주를 처치한 다음에, ‘웨이브’를 틀어막을 준비를 해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나는 품에서 「?」카드를 뽑아들었다. 슬슬 재료도 거의 다 갖춰졌고. 내가 바라는 카드로 변환해도 괜찮을 법한 타이밍이다.
나는 손에 카드를 쥐고 변하기를 바라는 카드를 떠올렸다.
이번에 만들 카드도 ‘승리의 여신’처럼 이 세상에 있지 않은, 그리고 있지 않을 카드다. 이 세계에 이런 카드들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 괜찮은 일일까?
[「?」카드를 「정신 공격」카드로 변환하시겠습니까?]“···뭐. 룰로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본래 듀얼은 안 된다고 심판이 제지하고 명문화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법이다.
끝
“제기랄. 또 졌어.”
흑일삭이 짜증을 부려대며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마음은 이해되지만 요새 휴대폰 가격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버릇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대회 떨어지고 모니터 부숴먹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커브드 모니터 수리비를 한 번 보고 난 뒤로는 다시는 졌다고 주변에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이게 바로 금융치료라는 거지.
“그런데. 여기에서 죽치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죽치고 있는 게 아니라 뽑기 중이라니까?”
지금 우리는 세 번째 플로워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30층까지 ‘밀어’놓기는 한 상태다. 마지막 필요 파츠인 ‘선천성’ 소울 스톤은 결국 뽑기로 얻어야 하기 때문에 주구장창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소울 스톤」재발급이 가능해졌습니다!]“오. 드디어.”
나는 시간이 되자마자 뽑기 기계··· 아니, 신상을 향해 달려갔다. 최대한 빨리 뽑아야 리셋 시간이 빨리 돌기 때문이다.
“나와라. 나와라···.”
나는 손을 비비며 신상에게 경건하게 기도를 바쳤다. 리셋 시간이 돌건 말건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손바닥을 비비고, 신상 주변을 세 바퀴 돌고, 집에서 가져온 꽃소금을 뿌린 뒤에···.
[「소울 스톤」을 발급받으시겠습니까?]고개를 끄덕인다.
“···정작 소울 커맨더스 할 때에는 기도라곤 쥐뿔도 하지 않는 놈이.”
“내가 기도하는 행동이 보이면 상대가 내 상태를 유추할 수 있게 되잖아. 내 승률이 낮아지는 행동이라고.”
“지금 하는 기도는 그럼 뽑기운이 올라가는 행동이냐?”
“그래!”
내 타당한 반론에 흑일삭이 아랫입술을 깨문 채 나를 노려봤다. 나는 흑일삭을 무시한 채 손바닥으로 가린 상태창을 타짜처럼 쪼았다.
+
【일회용 선천의 소울 스톤】
【덱에서 카드 한 장을 선택해 가져옵니다.】
+
“떴다!”
세 번째 ‘선천성’이 나왔다. 이걸로 내 일회용 소울 스톤 슬롯은 모두 「일회용 선천의 소울 스톤」으로 채워지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기도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드디어 나왔냐?”
“그래! 기도 한 번 영험하지?”
“나올 때까지 기도하니까 언젠가는 나올 수밖에. 그런 식이면 나도 로데 야구단 우승할 때까지 응원···.”
“시끄러.”
그보다, 여기도 야구가 있구나. 난 애초에 야구같은 것에 관심따위 한 톨도 없지만. 기본적인 룰도 모른다. 알 생각도 전혀 없고.
“듀얼야구의 가을을 본 지도 한참 됐네.”
흑일삭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야구가 아니라 듀얼야구었군. 나중에 룰이 어떤지 한 번 확인해 봐야지. 듣기만 해도 긴박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룰일 것 같다.
각설하고.
“이제, 마지막 카드가 구해졌으니 네가 바라는 대로 ‘공략’을 해 주도록 하지.”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네가 죽건말건 도와주지 않을 거다.”
뭐 어떻게 도와줄 건데. 뒤에서 훈수라도 둘 거냐.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해 대는 훈수를 극혐하는 나로서는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고맙다.
“만약 네가 죽으면···카드들은 어떻게 해 줄까? 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