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1
※공식 듀얼에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은, 공식 듀얼에서만 쓸 수 없다. 즉. ‘공식 듀얼이 아니면 써도 된다’는 뜻이다.
뒷면이 삐까번쩍 빛나서 드로우를 언제 할 지 알 수있는 데다가 효과도 준수한 카드를 쓰지 않는다?
듀얼리스트 실격이다.
나는 카드를 받은 당일부터 소울 커맨더스 매장 순회공연을 돌았다. 그리고 사흘 만에 여섯 군데의 매장에서 밴을 당했다.
“···솔직히 좀 너무했지. 그건.”
세계대회 우승자를 매장에서 쫓아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15회 세계대회 이후로는 요청 가능 카드가 실존하는 카드만 제작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그 다음 우승 후에 내가 요청했던 카드는···.
─ ···턴을··· 종료하지.
아. 상념이 너무 길었다. 아직 듀얼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신앙거석은 패배를 직감한 듯 눈을 감고 있다. 그냥 여기에서 항복 선언만 해도 될 텐데.
항복 선언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조금 불쌍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려줄 수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될 테니까.
“일회용 선천의 소울 스톤을 사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빨리 목숨을 끊어 주는 것 뿐.
“정신 공격을 발동.”
두 번의 정신공격의 발동 후에,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거석이 원래대로의 무기질로 돌아갔다.
“마···말도 안돼!”
“신앙거석이···졌다고?”
“저 인간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콜로세움을 둘러싸고 있던 수없이 많은 몬스터 무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 원칙에 따르자면 내가 신앙거석을 해치웠으니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때까지 콜로세움의 왕좌는 공석일 거다.
다시 30층에 올 일이 없는 내 입장에서야 알 바 아닌 일이지만.
나한테 중요한 일은 30층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아니라 보상이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카드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이번에도 「?」카드가 한 장 들어와 있다. 그래. 새 카드를 안 주면 섭하지.
나는 기분 좋게 「?」카드를 품 안에 우겨넣었다. 이제 남은 일은 흑일삭에게서 「버블맨」과 「에어맨」을 받는 일 뿐이다.
***
흑일삭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저 살아나오기만 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인간이 신앙거석을 처치하다니.
“카드 내놔.”
그런 업적을 저질러 놓고 하는 짓이라고는 생양아치나 다름없다. 흑일삭은 품에서 두 장씩의 「에어맨」과 「버블맨」을 넘겼다. 카드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커다란 지출이지만 상관없었다.
전익현이라는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것으로 충분히 낼 만한 지출이었으니까.
‘이 인간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대체 이런 인간이 어떻게 아직까지 능력이 안 알려지고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마 아카데미 내에서 정보를 은폐한 거겠지.’
그리고 정보를 제공해야 할 첩자 둘은 이 놈과의 듀얼을 위해 자신에게 인위적으로 정보를 누락했다.
실력은 검증된 것 이상이다. 열 명이서 도전해야 하는 「신앙거석」을 박살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전적으로 그가 들고 있었던 사기 카드인 ‘정신 공격’에 기댄 덕분이기는 하지만.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느냐도 듀얼리스트의 본질적인 부분들 중 하나다.
‘···문제는. 이런 카드들을 어떻게 입수하느냐인데.’
그가 가지고 있던 신살검과 정신 공격. 이것 말고도 숨기고 있는 카드들이 많을 확률이 높았다. 만약 이 인간이 아카데미 쪽의 인간이었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기에서 전력약화를 시켜야 했겠지만.
‘하는 짓을 보아면 아카데미 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은 걸로 보이고.’
탑주를 사냥한 시점에서 「심장」을 처치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것도 확실해졌고.
‘아마도, 첫 번째, 두 번째 탑주의 처치도 이 자가 한 짓일 거다.’
흑일삭은 자신이 모아왔던 정보들을 취합한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까지는 자신이 아닌 누구라도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의 이야기다.
하지만 흑일삭의 머리는 아직도 세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한 듀얼리스트 정도라면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다. 갑자기 실력이 늘어난다거나, 특이성이 갑자기 각성한다거나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하아암. 졸려.”
흑일삭은 눈 앞에서 나른하게 하품을 쩍쩍 뱉는 전익현을 바라봤다.
‘저 정도 실력의 인간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가능한가?’
흑일삭은 전익현에 대한 정보들을 꽤 찾아보았다. 올해 이전까지 전익현이 보여준 듀얼로그와 올해의 듀얼로그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실력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듀얼실력을 얻게 된 것일까.
본래라면 ‘자신의 실력을 숨겨왔다’라는 결론에 도달했겠지만. 실력을 얻는 것만으로는 「신살검」이나 「정신공격」과 같은 초 희귀 카드를 얻을 수는 없다. 이런 카드들을 얻는 것은 전적으로 운에 따르는 일이었기에.
흑일삭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다른 한 가지의 가능성이었다. 희미하디 희미한. 하지만 가능성이 존재하는.
하지만 불가능을 제외한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도 진실인 법이다.
‘시험해 봐야겠군.’
“너에게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이야기 해 주도록 하지.”
“그래.”
그런데 어째 반응이 시원찮다. 아니, 시원찮은 것을 넘어서 무기질적인 수준이다. 전익현의 동공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방금 얻은 카드들을 투입한 가상의 듀얼이라도 돌리고 있는 것 같은 동공의 움직임이지만 아마 착각일 것이다.
사람이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는데 머릿속으로 듀얼회로를 돌리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군.”
“하고싶은 데서부터 해.”
“태초에, 카드가 있었다.”
“···그러시겠지.”
심각하게 짜디짠 반응을 들으며 흑일삭은 화를 속으로 참을 인자를 속으로 새겼다.
“태초에 있었던 카드의 의지에 의해 세계는 세 영역으로 나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인계」와 「탑」, 그리고 「카드」지.”
“아하.”
“반응이 너무 약한 것 같은데.”
“내가 원래 리액션이 약해서 그래.”
전익현의 입에서 ‘···「증원」을 넣는 것도 괜찮겠네.’라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 인간. 역시 덱 메이킹 하고 있는게 맞았다.
내면에서 피어오른 살의와 씨름하던 흑일삭은 전익현의 뇌내 덱 메이킹이 끝나는 것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이걸 이렇게··· 넣고 나면··· 꽤 괜찮겠네.”
“다 짰나?”
“대충은.”
“···아무튼. 이 세계의 균형은 오랜 시간동안 이루어져 왔지만 현재는 깨어진 상태지. 「탑」이 세계의 종말을 바라는 탓이다.”
“그래서 탑을 까부수려는 거구나.”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지.”
“···물론 나도 알고 있었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잠시 비쳐보였지만 이 정도 이야기쯤이야 유치원생도 아는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카드로 시작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시작되겠는가.
하지만 핵심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카드’의 세계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그런 것 치고는 밸런스가 너무 개판인데.”
“카드모독적인 말을 하면 천벌을 받을 수도 있다.”
“천벌은 이미 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튼. 이 균형에 따르면 인계가 가지고 있는 힘과 탑이 가지고 있는 세계의 힘이 엇비슷해야만 하는데.”
“지금은 이상하다는 거군.”
“그래. 지금의 힘은 너무나도 탑에게 쏠려 있어. 놈의 움직임은 효율적이기 그지없다. 마치 우리들의 반응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지.”
“그래?”
“놈의 움직임은 마치··· 몇 번, 혹은 몇십 몇백 번의 반복된 경험이라도 있는 것 같다.”
움찔.
자신이 던진 떡밥에 전익현의 몸이 들썩였다. 듀얼 때의 철옹성같은 포커페이스와는 달리 정직하기 그지없는 반응이다.
“가령··· 게임의 베타 테스트같이.”
움찔.
“반복되는 세계가.”
움찔움찔.
“있었던 것처럼.”
“그···그래? 참 트···특이한 일이네.”
“목에 땀이 흐르는데. 괜찮나?”
꿀꺽. 목으로 침을 삼키는 전익현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 반응을 보니 생각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내 추측이 맞는 모양이군.’
흑일삭은 눈을 감았다.
하나. 놈이 가지고 있는 희귀하기 그지없는, 시간강사로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게 뻔히 보이는 카드들.
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탑주들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처치해낸, 그것도 단신으로 처치해낸 실력.
셋. 자신이 하는 말에 보이는 기묘하기 그지없는 반응.
‘···마지막으로, 듀얼이라면 눈알이 돌아가 버리고 죽음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마모될 대로 마모된 인간성까지.’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답은 단 하나.
전익현. 눈 앞에 있는 인간은 ‘탑’과 마찬가지인 존재. 즉─
─‘회귀자’다.
끝
당황을 겨우 지워냈더니 흑일삭의 표정이 이상하다. 눈이 새초롬해져서는 나를 꼬라본다. 저런 눈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경우는 단 하나.
아무래도 내 카드들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 희귀카드들을 네 장이나 뺏긴 데다가 신살검과 정신공격까지 봤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이 세계가 회귀하고 있지만, 「심장」은 예외라는 거군.”
“그래. 하지만 회귀의 조건이나 회귀를 위한 상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삶을 한 번 밖에 살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심장을 공략하는 것 밖에 없다는 말이군.”
나는 카드를 도난당하지 않도록 품 속에 깊게 찔러넣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뭘 할 거지?”
“글쎄.”
일단 최대한 빠르게 카드 도둑에게서 멀어지려고.
“30층을 공략했는데. 31층으로는 가지 않나?”
“어? 그러니까. ···31층을 가려면···.”
31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네 번째 층계인 ‘불’의 층계를 공략하기 위해서 얻어야 하는 히든 피스가 있는 탓이다.
문제는 이걸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건데.
“흠. 네가 하지 않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바로 그거야.”
왜인지 그러려니 납득해준다. 내 입장에서야 설명할 필요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흑일삭이 처음에 ‘게임 플레이’니 ‘리셋’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할 때에는 등줄기에 소름이 내달렸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거든.
이 세계가 어쩌면 진짜가 아닐 수도 있고, 외계에서 온 인간이 있다면?
외계에서 온 인간은 잡혀서 해부당하는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영화에서 봤다.
“회귀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짐작가는 바는 없나?”
“모르겠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의심할 데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소울 사의 개발진이 벌이는 짓이라는 것을 발설할 수는 없다. 그 개발진이라는 놈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계속 버틴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흑일삭의 이야기가 맞다면 이 세계는 수없이 많이 ‘리셋’된 세계일 것이다.
리셋의 이유나 시점 따위의 일들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말 자체는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이 세계의 침식 속도가 가장 큰 증거다.
‘이게 모두 사실이라고 치면···.’
머릿속에 정보들이 꽤 모였다는 직감이 들자마자 내 생각의 지평선이 확장된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추론하는 과정은 듀얼에서 상대의 플레이를 역산해 상대의 패를 추측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높은 추측을 해 놓는다면 다음 행동의 속도나 판단의 반경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제 조건. 이 세계는 회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왜 회귀되고 있는 것일까.
이 세계는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라는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세계다.
게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세계가 회귀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이유는?
물론 ‘게임 오버’다. 소커아에서는 「세계의 종말」혹은 「플레이어의 사망」. 두 가지겠지.
세계가 종말하는 경우야 뭐 특이할 것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