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3
수호자들의 인간 멸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시레나! 많이 놀랐어! 전익현 나빠 마귀! 사탄! 악마족!]악마족은 지원도 빵빵하고 티어덱에도 심심하면 올라가는 전통의 강세 덱이다. 칭찬과 욕을 헷갈리다니. 역시 물고기다.
“힘들었지? 무던한 강사님한테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전익현! 나빠! 며칠 전 어항에 넣는 소금에 이상한 거 탔어!]“히말라야 소금은 비싸다고. 다른 거 좀 쓰면 안 되냐?”
[안 돼!]시레나가 빽 소리를 지른다.
너는 애초에 바닷물에 살고 있던 주제에 무슨 히말라야 소금이야. 젠장. 평소에 섞어 쓰던 일반소금이 다 떨어진 탓에 주방에 있던 맛소금을 탔던 게 실수였다.
[전익현 혼내줘! 나쁜 인간! 제일 나쁜 인간!]“그래. 내가 나중에 강사님 혼내줄게. 알겠지?”
둘이 대화가 안 통할 텐데 왜 이렇게 죽이 잘 맞는 것 같지. 그러고 보면 신하연도 물고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덱 리스트를 잘 못 외운다거나, 전 날 진 덱한테 똑같이 진다거나.
발포비타민도 무서워하려나?
“지금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전익현! 괴물 얼굴! 또 나쁜 생각해!]“아닌데.”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를 쳐낸 뒤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슬슬 신하연이 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신하연과 찍은 사진을 권보람에게 보낸 다음 시레나와 산책을 해야 한다.
본래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데···.
“혹시 시레나랑 같이 탑 올라가 볼 생각은 없냐?”
“얘랑요?”
“그래. 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구경시켜 주고. 얘가 듀얼도 꽤 잘 하거든.”
“저야 상관 없는데··· 물고기가 어떻게 듀얼을 해요?”
“있어. 지는 사람도 있더라고.”
“에이. 물고기한테 듀얼 질 바에는 어항물에 코 박고 죽죠.”
진슬아 앞에서는 그 말 하지 마라. 까딱하다 붕권 맞으면 니가 죽을수도 있어. 저번에 보니까 모기 잡을때 콘크리트 벽도 같이 부서지더라.
“시레나야. 너도 탑 가 보고 싶니?”
[시레나! 탑 구경하고 싶어!]어항을 바라보던 신하연이 잠시간 고민하더니 어항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좋아요! 대신 산책비 주시는 거에요? 산책비로 밥 한끼 사 줘요!”
“지도대국으로 대체는 안 되냐?”
“안 돼요.”
대체 안 되냐는 말에 도끼눈 뜰 필요까진 없잖아.
***
나를 귀찮게 하던 한 명과 한 마리가 탑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 나는 몸을 쭈욱 펼쳤다.
뜻밖에 쉬는 시간이 생겼다. 나는 휴대폰을 잠시 뒤적였다. 샌드백 2호 역할을 맡던 흑일삭도 좀 바쁜 것 같고. 매칭은 한 판 하는데 한시간씩 걸리고.
할 게 없네. 한참을 휴대폰을 뒤적이던 나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운이 좋다. 전방 300미터에 은행 하나가 있다.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으니 얼굴 가릴 스타킹도 하나 살 수 있고.
완벽하다.
그렇게 은행을 향해 걸어가려고 하는데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이 가격이 말이나 돼?”
“···안 된다면 안 돼!”
소리의 근원지는 탑 앞에 있던 매대들 가운데 하나였다.
“무슨 외골격 가격이 이렇게 비싸! 사기꾼 아니야?”
“최고급 원단을 사용했다고! 사기 싫으면 말아!”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 것은 두 남자였다.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안이 보이지 않는 검은 선글라스에 금색으로 염색된 머리. 거기에 갈색으로 태닝된 피부색까지.
김태양이네. 언제 봐도 이유 없이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이다.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은 듀얼용 외골격들이었다.
“네놈. 이 외골격 장사는 허가는 받고 하고 있는 거야?”
“탑 주변은 국가적 중립 구역이라 허가 없어도 외골격을 팔 수 있어!”
“···큿. 중립 구역이면 네놈을 때려패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큭큭거리며 웃는 남자의 주변에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몇 명 와서 에워싼다. 놈의 부하들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험악하네.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다. 그냥 지나가도록 할까.
“저기 저, 멱살 잡고 있는 사람. 주지육 시의원 아니야?”
“주지육? 시의원중 듀얼승률 1위라는 사람?”
호오.
“소문으로는 과거에 첩보공작원 일도 했었다고 하더라.”
“첩보공작원이면 듀얼 실력은 말도 안 되겠네.”
“뒷돈도 받는 모양이던데, 듀얼 실력 때문에 제지하려는 시의원이 별로 없는 모양이더라고.”
호오오.
“김태양만 안 됐네. 꽤 유명한 외골격 제작자로 알고 있는데.”
“지금 누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괜찮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시의원을 상대로 누가 나서겠어?”
생각해 보니 지금 내 외골격의 상태는 좋지 않다. 몇 번 전문수리점에 갔었는데 수리비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나왔었지. 그래서 인터넷에서 산 수리키트로 대충 떼워서 쓰고 있는 상태다.
“안 팔겠다면 어쩔 수 없지. 어이. 압수해!”
“안돼!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유명한 외골격 제작자에게 빚을 지워 놓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외골격 수리를 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이유는 조금도 없다.
가령 은행보다 가판대가 가깝기 때문에 나선다거나 하는 이유는 절대 아니다.
나는 들고온 외골격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외골격으로 갈아입었다. 슈퍼히어로들은 그냥 손만 까딱하면 변신하던데.
외골격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김태양은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하고 있다. 외골격은 거의 철거된 채고.
“거기까지.”
“네놈은 뭐야?”
“보아하니 법적으로는 물건 파는 데 크게 문제 없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 하지?”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서···.”
“혓바닥 길게 말하지 말고. 듀얼리스트라면 듀얼로 증명하도록.”
내 타당하기 그지없는 정론에 주지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좋아. 도발이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 당장이라도 듀얼 요청을 받아들일 것만 같은 표정이다.
“···저 사람.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정확하진 않은데··· 예전에 더블 게이트가 나타났던 때 혼자서 막아내는 영상을 본 적 있어.”
“아. 그 화질 안 좋은 영상?”
“그거 말고도, 폐공장에서 키마이라 수십 마리를 때려잡는 영상도 있었잖아.”
주지육의 눈이 불안하게 꿈틀거린다. 나에 대한 정보가 언제 이렇게 퍼진 거지.
“도시 괴담 아니었어? 그게 아니면 합성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팬 메이드 카페도 있더라고. 봐. 이클립스? 인가 하는 네이밍이래.”
“···그 카페회장이 타임스퀘어에 광고했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팬카페까지 생겨 있다니.
그보다 수상할 정도로 돈 많은 카페장이네. 뭔데 타임스퀘어에 광고까지 한대. 타임스퀘어에 광고할 돈 있으면 그 돈을 나를 달란 말이야.
주변의 웅성거림이 계속 커졌다. 웅성거림에 밀려나듯 주지육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크윽. 이, 이번에는 용서해 주지!”
전형적인 삼류 악당의 말을 내뱉은 주지육은 냅다 도망쳐 버렸다.
안 돼!
듀얼 해 주고 가!
제기랄. 이렇게 된 이상 원래의 계획대로 은행으로 간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은행으로 가려고 하는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태양이 내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아. 네. 그럼 수고···.”
“보아하니 외골격 수리한 지 꽤 오래 돼 보이시는데 제가 외골격의 수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롱초롱한 눈이었다.
제기랄.
끝
김태양은 자신이 만들어온 모든 외골격들에 애정이 있었다. 하나하나를 만들 때마다 최선을 다했고, 서로 같은 외골격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만들 수 있는 재료나 규격을 따라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국가의 인증을 받을 수는 없었다. 상관없었다. 개인적으로 외골격을 모으는 사람들은 꽤나 있었으니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만든 외골격이 알려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김태양이 만든 외골격들을 살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몬스터들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이 외골격을 사는 이유는 단순했다. 과시욕. 그들은 비싼 외골격을 사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것을 원했다.
그렇게 외골격이 전시되는 것도 외골격이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누군가는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태양의 심장 한 켠에는 언제나 조그마한 불만이 있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에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다.
듀얼용 외골격은 대 몬스터용으로 만들어진 보호장비.
그렇기에 종종 화가 났다. 자신이 만든 외골격이 제대로 듀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착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갑옷이 보호하는 대신 보호용 유리 안에서 프라모델처럼 보관된다는 것이.
‘···하지만.’
아쉬움은 영원하지 않았다. 우연히 접했던 하나의 동영상. 멀리서 찍은 탓에 도트 그래픽으로 서툴게 찍은 것처럼 흐릿하기 그지없는, 외골격을 입은 남자가 몬스터들과 듀얼하는 영상.
흐릿하기 그지없는 영상이었지만 그 영상 안에 있는 외골격은 분명히 자신의 작품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부모가 아무리 멀리에 있더라도 자식을 알아볼 수 있듯, 아무리 흐릿해도 외골격 제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동영상을 확인한 그날로 김태양은 그 동영상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찾기 시작했다. 찾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클립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경단이었다.
“놔! 일단 놔봐!”
“도망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요!”
“안 간다니까!”
김태양은 끈질기게 다리를 붙잡았다. 이클립스의 외골격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가 남겨져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듀얼으로 인해 녹아내린 부분과 모래로 인해 마모된 부분, 얼었던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백전연마의 물건. 군부, 경찰, 아카데미를 통틀어도 이렇게 다양한 전투를 치른 외골격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반드시 붙잡아야 해!’
“아니! 안 도망간다고! 잡지 마라니까! 당신 지금 땅에 뭐 박아넣는 거야! 저거 철근이야? 철근을 사람 몸에 왜 매다는 건데?”
외골격을 보수한다는 핑계로 외골격에 쌓인 데미지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료채취를 하고, 물성분석을 하면 더 나은 형태의 외골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건 못 참지.’
그가 한때 지도교수였던 단요구에게 배운 가르침 중 하나는 ‘기회를 놓치지 마라’는 것이었다. 단요구가 오랜만에 학회에 나갔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퇴를 했던 것처럼. 지금도 놓쳐서는 안 될 타이밍인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호감을 사 놓는다면 눈 앞의 남자와의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외골격이 탑을 공략하고, 몬스터를 처치하고, 켜켜이 쌓인 시간들을 몸에 새겨나가는 것을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 들어오시면 됩니다! 제가 외골격을 정비하는 정비소입니다. 고출력의 장비들은 없지만 수리에 필요한 장비들은 다 있죠!”
자신의 연구용 트럭에 들어오자마자 단요구는 이클립스의 보호구를 빠르게 벗겨냈다. 모든 부분을 다 벗겨내지는 않았다. 헬멧 부분은 남겨두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는 것을 탐탁찮아 할 것이 분명하니까.
“수리하는 데는 얼마나 걸립니까?”
“한 예닐곱 시간 정도는 걸릴 겁니다.”
“좀 기네요. 은행 영업 시간도 끝나고.”
무료해하는 목소리가 헬멧 너머로 들려왔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다.
“혹시···심심하십니까?”
“조금은요.”
“혹은 뭔가 할 일이 있으셨다거나.”
“하려고 했던 일은 있죠.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반응으로 보아하니 자신이 잡지 않았다면 해야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공익을 위한 일일 터다. 이를테면 몬스터를 퇴치한다거나, 은행강도를 잡는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자경단이란 것 자체가 원래 영웅심의 발로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당장 방금 전만 해도 악한으로부터의 위험에 쳐해 있던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던가.
‘정비를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군.’
시료 채취와 보수 준비를 하는 김태양의 손이 빨라졌다.
***
“제왕에게 들켰어.”
“무얼.”
“전익현.”
꿀꺽. 새벽녘의 대답에 남연철의 목울대가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