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4
“어떻게 들킨 거지?”
“탑에서 만났다던데.”
“···미친.”
생각해 보면 일어날 일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고, 듀얼광마가 강한 듀얼리스트를 지나칠 리 없다.
전익현이 강해 보이는 듀얼리스트들을 찾아다닐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됐대?”
“···30층.”
“30층?”
“30층이 돌파됐다.”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에 남연철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체력 6000을 자랑하는 「신앙거석」이 파괴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어떤 덱으로? 파티원들은 누구지?”
“안 알려 주더군. 자신에게 안 알려줬던 복수라면서.”
“치졸한 자식.”
“이런 듀얼리스트를 보고 안 한 놈들이 가장 치졸한 놈들이다. 라고도 전해달라던데.”
남연철이 무어라 꿍얼거리고 있는 동안 새벽녘은 생각에 잠겼다. 탑을 모두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다소 의도적으로 남연철의 탑 공략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으로 탑주를 만났을 때에 살아남을 확률은 희박하니까.
아니, 애초에 닳고 닳은 듀얼리스트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탑주와의 듀얼이다.
‘그런데도 그걸 해 낸 인간들이 있다는 말이지.’
정보에 따르면 「신앙거석」을 공략할 수 있는 인원수는 10명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고르디우스」의 인원이나 「집행자」측에서의 인원 변동은 한 명도 없었다.
새로운 듀얼리스트가 탑 안에 열 명이나 생긴 것이다. 지난 번 「풀무불꽃」의 상대로 증가했던 네 명을 제외하고서도 또다시 세네 명이 더 늘었다.
10명에 가까운 인원이 자신의 감시를 피해 탑에 숨어든 상황.
새벽녘은 자신과 남연철이 설치했던 감시망을 떠올렸다. 전 세계에 있는 탑 주변의 카메라망을 해킹해 오고가는 인원을 모두 확인하고, 덱 리스트와 어디까지 올랐는지도 확인했다.
“···감시 인원 중에서 20층에라도 올라간 인간이 있었나?”
“없었지.”
전익현의 무리는 자신이 설치해놓은 카메라와 사람들을 뚫고 10명에 가까운 듀얼리스트를 탑 안에 잠입시킨 것이다.
“···아무래도 감시망은 풀어야겠군.”
“그렇겠지. 감시망을 그렇게 촘촘하게 짰는데도 돌파하고 인원들을 수급할 정도면, 더 이상의 감시는 무의미할 테니까.”
역시 이클립스는 만만한 인간이 아니다.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도 한참을 조사했는데도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철두철미하기 그지 없는 뒷공작이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무기는 듀얼 실력도, 듀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도 아닌 무시무시한 첩보능력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건 아니지. 듀얼하는 거 못 봤나?”
“···아무튼. 제왕의 말로는 반드시 우리 쪽으로 포섭해야 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 같더군.”
“말이야 쉽지.”
놈을 대체 무엇으로 포섭을 한다는 말인가. 몬스터들이 가득 들어 있는 고독 항아리라도 준비하면 낚여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전익현을 포섭하기보다는 다음 층계를 공략하는 교두보로 쓰는 것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마찬가지 생각이야.”
전익현의 무리가 탑을 공략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상황이다. 아마 다음, 다다음 층계도 놈은 공략을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전익현이 탑주를 처치할 확률은 꽤나 높다. 4층계 이후의 탑주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전익현 이상의 괴물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탑주가 처치되고 나면, 그 층계의 난이도는 급락하지.”
튜토리얼 역할을 하던 첫 번째 층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지만, 두 번째 층계인 「풀무불꽃」의 난이도는 실제로 급락했다.
「대지의 투기장」으로 알려져 있는 세 번째 층계도 투기장의 제왕이던 「신앙거석」이 처치되었으니 난이도가 내려갔을 것이고.
“우리는 놈의 뒤를 쫓으며 바싹 따라붙기만 하면 돼.”
“층계를 오르되 공략은 한 박자 늦게 하는 게 최선이겠지.”
전익현이 거느리고 있는 집단의 힘만으로는 공략이 벅찰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적은 전력으로도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력. 특히 「고르디우스」에게 속하지 않은 전력이다.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질 좋고 실력 있는 듀얼리스트만이 탑의 상층의 전력이 될 수 있으니까.
“···우리들만의 세력을 구축하자.”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은 있나?”
“생각해 둔 사람은 몇 있어. 가장 먼저··· 오늘 올 신하연.”
새벽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실력이 있어 보이기는 했다. 성장세도 가파른 데다가 전익현의 최측근 인물이기도 하다. 제 4의 세력의 멤버로는 제격이다.
대화가 마무리되고 나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신하연이 나타났다. 옆구리에 무언가를 끼고 있는 채로.
“안녕!”
“그건 또 뭔데.”
“얘 이름은 시레나라고 해!”
“이름을 물어 본 게 아닌데.”
왜 탑 공략을 하는데 생선을 끼고 나타났는지 물어본 것인데 말끔하게 기각당했다.
“예쁘지?”
어항 안에 들어 있는 물고기가 뽐내듯 지느러미를 휘저었다.
‘신하연. 얘도 가면 갈수록 정상이 아니네.’
전익현에게 가장 오래 노출되더니 듀얼 실력이 는 만큼 상태가 안 좋아진다.
자신들의 멤버로 영입하는 것을 보류해야 할 모양이다.
[흐음.]“아! 풀무불꽃님!”
신하연의 뒤에서 풀무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내 시련에 도전할 준비는 다 됐나?]“대충은요!”
[행운을 빌지.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냐?]풀무불꽃의 코가 킁킁거렸다.
“무슨 냄새 나요? 안 나는데?”
[뭔가···기분나쁜 냄새가 나는데. 마치 수호자들에게서 나는 냄새같아.]“수호자가 여기 올 일이 뭐가 있겠어요. 오자마자 들킬 텐데.”
[아니야. 불쾌한 냄새가 나. 생선 비린내나 소금 짠내 같은 기분나쁜 느낌. 이건 분명히 수호자 녀석의 냄새야.]“의심 하나 많으셔.”
일행은 주변을 돌아봤다.
열대어가 유달리 불안하게 어항 안을 뱅뱅 도는 것을 제외하면 주변에 이상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풀무불꽃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있을 리가 없는 수호자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이에 나머지 두 명의 일행까지 합류했다.
준비는 만반이다. 쓸데없는 유령 한 명과 불안하게 헤엄치는 생선 한 마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오늘, 자신들은 20층을 공략할 것이다.
끝
나는 매의 눈으로 김태양을 감시하고 있었다. 생긴 것으로 인한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것이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식칼을 들고 밤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인지상정.
금발 태닝 선글라스를 한 남자가 이름이 김태양이기까지 하다면 의심을 아무리 품어도 이상하지 않다.
“대단하군요. 꽤 많은 듀얼을 한 모양인데 이렇게까지 잘 버텨내다니. 솔직히 자랑스럽네요.”
“뭐가 자랑스럽죠?”
“이 외골격. 제가 만든 물건입니다.”
저거 봐.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물건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잖아. 자연스럽게 본색을 드러내다니.
“게다가 용해면과 마모면을 보면 꽤나 강한 존재, 이를테면 탑주나 게이트의 보스급 몬스터와 듀얼을 한 것 같군요.”
“잠깐 본 걸로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듀얼 물리학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테크닉입니다.”
나중에 이 세계를 나가면 나도 카드 때려치우고 기계공학과나 들어갈까. 거의 초능력 수준인데. 토니 스터크가 괜히 센 게 아니었군.
“그보다 중요한 건··· 외골격에서 나오는 듀얼 파장(wave)입니다.”
듀얼 파장이 뭔데. 일단 내가 있던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게 있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으니까.
이 세계의 고유 설정이 분명하다. 하. 소울 사 놈들. 이상한 고유 설정 같은 거 만들 시간에 밸런싱 고민이나 더 할 것이지.
“듀얼 파장이란 건 듀얼을 할 때마다 새어나오는 듀얼혼魂이 주변의 물체에 녹아드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듀얼혼이 무엇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내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김태양이 헛기침을 했다.
“듀얼혼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듀얼관의 반영입니다. 덱을 계속 쓰다 보면 자신이 바라는 카드나 좋아하는 카드가 자주 드로우되는 것을, 듀얼리스트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겁니다.”
뭐래. 인생 살면서 좋은 패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세상에서 제일 드로우 운 없는 인간이 나인데.
다른 프로들도 자신이 운이 가장 없다고 징징거렸지만 가장 드로우 운 없는 듀얼리스트는 단연코 나다. 운이 없는 나는 언제나 실력으로 상대를 이겨야만 했다. 진짜 운만 조금 더 있었어도 세계대회 전관왕이었을 텐데.
“그게 일종의 듀얼혼의 예시입니다. 물리학에 따르면 카드가 한 번 섞이면 그 순서는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카드를 뽑을 때마다 카드의 순서가 바뀐다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이 듀얼혼은 우주의 법칙에 가까운 것이죠.”
맨날 내 패가 말리는 게 우주가 방해해서 그런 거였군. 이제야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다.
원래의 지구에서도 듀얼 파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 나는 물었다.
“이 듀얼 파장의 존재 때문에 대부분의 듀얼리스트들의 특이성이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 개 있는 경우도 있던데요?”
당장 여한설만 해도 두 개고, 아카데미에 있는 테뉴어 급 이상의 듀얼리스트들도 각성 후의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 특이성은 파장의 변주일 뿐입니다. 같은 주파수의 특이성이 다르게 발현되는 것뿐이죠.”
이를테면 우주를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거다. 사기꾼 같은 놈들. 인성이 못돼 먹었어.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만 승부해야지 특이성의 갯수로 듀얼 실력이 나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 제 외골격에서 방출되는 파장이 뭐가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이상하다기보다는 독특한 거죠. 보통의 파장이 오르내림이 있는 반면에··· 이클립스씨의 파장은 고저가 없습니다.”
고저가 없다는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안 좋은 거겠지. 나는 운 없는 놈이까.
“추측의 영역이지만··· 아마 파장의 형태가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특이성 여러 개. 그러니까 네다섯 개의 특이성을 한 듀얼에서 동시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진짭니까?”
“아직은 추측의 영역이지만요. 여러 개의 특이성을 같이 쓰는 것은 법칙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거나 다름없···.”
“사기가 아니라 정당한 능력의 사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특이성 두 개 쓰는 것쯤 그렇게 큰 일이 아닌 것 같다. 결국 특이성도 룰의 일부. 즉 자신의 실력 아니던가.
자신의 실력을 듀얼에 활용하는 것은 정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으니 괜히 꼬투리를 잡고 싶어하는 것이다. 신포도를 욕하는 여우 같은 인간들 같으니.
반박시 듀얼알못.
“그러면, 어떻게 하면 특이성을 여러 개 쓸 수 있는 겁니까?”
“내면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꾸준한 수련, 그리고 끝없는 시련···.”
내 시선이 급격하게 말라붙었다. 내 메마른 시선을 느꼈음인가. 김태양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같은 건 구태의연한 전근대적 발상이죠. 제가 개발한 듀얼 시뮬레이터를 통해 파장 분석을 하고 외골격에 추가 애드온(add-0n)을 다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기계공학이야. 현대과학 만세다. 나는 머릿속으로 병행사용할 특이성들을 골라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탑 공략이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공략에 탄력이 붙는 것은 사실상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는 일.
“제가 뭔가 해야 할 일은?”
“시뮬레이터에서 몇 번 시뮬레이션된 듀얼을 하시면 됩니다.”
역시나.
후. 나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나는 운 없는 놈이다.
이렇게 중대한 능력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
20층에 도착한 신하연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긴장한 기색이 다른 멤버들에게도 역력했다. 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죽을 걱정이 없는 유령 하나와 생선 한 마리 뿐.
[20층의 시련에 도전하시겠습니까?]파티원 전원의 고개가 결연하게 끄덕였다.
[「풀무불꽃의 시련」이 시작됩니다.]크하하하하! 하는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섯 개의 용광로가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용광로 너머에 서 있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드워프의 모습.
풀무불꽃··· 인가?
20층에 있는 상대는 풀무불꽃밖에 없으니 풀무불꽃인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저게 뭐에요?”
[나잖아.]“키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