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6
패가 말라붙은 기계화 풀무불꽃의 거대한 주먹이 남연철의 필드에 있던 가제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연약하기 그지없던 가제트의 몸이 조각나 터졌다.
하지만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그 옆에 있던 가제트로,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가제트로···
연쇄폭발하듯 가제트들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망했어! 제기랄! 저런 사기 특이성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말이나 되냐고!”
파티원 한 명이 소리쳤다. 지금 파티원들의 덱은 용광로를 처리하기 위해서 다량의 소환수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전제로 한 덱.
자연스럽게 평균적인 체력은 낮다. 다수의 소환수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특이성을 상대로는 이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포기하겠어!”
“잠깐만요!”
저지하기도 전에 파티원의 손이 항복 버튼을 눌렀다.
[도전자 ‘김태현’이 도전을 포기하셨습니다.] [도전의 포기로 탑에 다시는 도전할 수 없습니다.]화아악! 포기한 파티원의 몸에 빛이 어리더니 팍 꺼졌다.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해 보면 안 될까요? 아슬아슬할 때까지만 버티다···”
“죄송합니다.”
“보내드려.”
“하지만···!”
탑에서의 데미지는 회복되는 속도도 느리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탑에는 기본적으로 ‘침식’의 힘이 흐른다. 데미지를 입을 때마다 상처들에 침식이 조금씩 스며들어 약화시킨다.
덱과, 듀얼리스트의 영혼 모두를.
[도전자 ‘유지태’가 도전을 포기하셨습니다.] [도전의 포기로 탑에 다시는 도전할 수 없습니다.]“남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강요할 수는 없어.”
그나마 탑주가 소멸된 이후 시련이 약화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포기라는 선택지가 새로 생겨났으니까.
“포기하는 게 맞는 선택지겠지?”
“남은 체력은 적고, 파티원은 세 명에. 핸드는 말라붙었고, 덱은 전용 덱도 아닌 상황.”
“절망적이네.”
“이성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바로 포기하는 게 맞겠지.”
담담하게 포기를 말하는 남연철의 눈에는 포기의 기색이 없었다.
“솔직히 나는 포기했으면 하는데.”
“새벽녘. 네가 포기하고 싶다면 해도 돼.”
“포기 안 해. 네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포기하면 나도 포기하고 나갈게.”
도대체 새벽녘은 왜 자신을 이렇게나 챙겨 주는 것일까. 사실 그와 자신간의 관계에는 크게 대단한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해 봐야 슬럼가에서 같이 오래 지냈다는 것 정도.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새벽녘은 가볍게 말을 돌릴 뿐이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손패에나 집중했다.
[플레이어 「신하연」의 턴입니다.]신하연은 패를 바라봤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손패가 말라버렸으니까.
잘못해서 저런 공격에 맞아 리타이어를 한다면 치료에만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그냥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포기한다면 다시는 탑에 올 수는 없겠지만 목숨을 보존할 수는 있으니까.
신하연은 문득 어항을 바라봤다. 시레나는 자신을 기대하는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자의식 과잉일 것이다.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냥 주변이 시끄러우니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는 것이겠지.
‘···하지만. 강사님은 날 믿어줬어.’
탑에 도전한다고 말했을 때 전익현은 별 말 없이 도전하는 자신을 내버려뒀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탑에 도전하지 못하게 했을 테니까.
그렇게 강한 듀얼리스트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면.
아마, 그녀에게도 강함이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러니. 싸워야겠지?”
시레나가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신하연이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잡은 다음 순간에─
[당신의 의지에 「수호자」가 공명합니다.] [새 특이성이 주어집니다.] [퀘스트 : 타임 워커]그녀의 눈 앞에 창이 떠올랐다.
끝
##쉬는 날(6)
“타임 워커?”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울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거울 안에는 지금까지의 턴이 기록되어 있는 필드가 비쳐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각성?!”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각성.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었다. 생사의 기로 앞에서 얻게 되는 힘.
신하연은 저도 모르게 빙벽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온 몸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한기가 몸을 쓸어올렸다. 두렵지는 않았다. 이 차가움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수없이 긴 시간을 지나 왔을 것만 같은 빙벽 안에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감촉이 손끝에 걸렸다. 수억 번은 만져왔던 카드의 감촉.
+
【타임 워커】
【mana : 30】
【주문혼 : 주문을 발동할 때마다 마나 코스트가 1씩 줄어듭니다.】
【이 카드를 사용했을 때, 추가 턴을 얻습니다.】
【퀘스트 : 「타임 워커」를 0마나에서 사용했을 때. 「환상마법수 자운」을 소환합니다.】
+
‘환상마법수 자운?’
처음 들어 보는 카드의 이름이다. 아마 실제 카드로 존재하지 않는 카드. 즉 이 카드를 통해서만 생성되는 토큰 카드일 것이다.
‘토큰 카드이니만큼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는 없을지도.’
무슨 효과의 카드인지도 알 수 없다. 쓸모없는 카드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만약 쓸모있는 효과라고 해도 지금의 상황에 알맞는 카드라는 보장또한 없고.
덱과 핸드에 비효율적인 카드들이 많이 쌓여버린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카드들을 털어 아군에게 추가 턴을 만들어주는 것 뿐.
퀘스트 완료는 추가적인 도움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러니 천천히 플레이를 해야 한다. 랜덤성에 기대는 것만큼 위험한 플레이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 건. 지겠다는 생각이지.’
“나는 핸드에서 「대해의 발견」를 발동!”
+
【대해의 발견】
【mana : 8】
【발견 마법 카드 네 장을 핸드로 가져옵니다.】
+
그녀는 빠르게 핸드를 소진해 나갔다. 발견에서 만들어내는 카드는 효율적인 카드 대신 발견 카드를 찾아냈다. 추가적인 마법을 만들어내는 카드들과, 자신의 특이성인 「토템」과 맞는 저마나의 카드들 위주로.
“카드를 좀 아껴서 써!”
남연철의 말은 이성적인 조언이다. 패의 수가 적다면 그만큼 한 장의 필요 밸류는 올라간다. 한 장으로 해줘야 하는 플레이가 많은데 그냥 마법을 난사하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평소라면 조언을 받아들여서 플레이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 그리고 직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믿어야 할 때.
‘자신만의 듀얼을 한다.
“턴 엔드!”
신하연 핸드의 「타임 워커」의 마나 코스트는 한 턴만에 9나 줄어들었다. 빠르게 줄어들어 버린 마나 코스트와 별개로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지만.
[「기계화 풀무불꽃」의 턴입니다.]+
【폭주 증기 펀치】
【2 mana】
【랜덤한 적에게 40데미지를 줍니다. 남은 데미지만큼 적을 공격합니다.】
+
콰아아아!
다시 한 번의 뇌명과 같은 주먹질이 필드에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지 않았다. 증기 펀치가 작렬한 것은 가장 왼쪽의 「가제트」.
가제트의 몸이 찌그러지며 옆으로 날아갔다. 그 옆으로, 그 옆으로.
세 명의 필드가 연결되어 있던 가장 왼쪽에 공격이 작렬한 탓에, 모든 필드가 휩쓸렸다.
“운도 안 좋군. 중앙에라도 맞았다면 몇 마리 정도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제기랄.”
“남아 있는 가제트의 수는?”
“핸드에 한 장. 덱에는 없어. 덱을 재셔플을 해야 가제트를 가져오는데… 드로우 수단도 없어.”
“내 핸드도 마찬가지다.”
새벽녘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핸드에도 손님이 말라붙어 있었다. 콤보로 방어도를 좀 쌓아 두기는 했지만 폭주 증기 펀치의 데미지는 50.
직격당하면 한 번밖에 살아남을 수 없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패배 직전의 상황에서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드로우.”
남연철은 패를 뽑아들었다. 앞으로의 세 턴은 아군의 턴이다. 하지만 그녀의 패에도, 덱에도 쓸만한 카드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턴 엔드.”
[새벽녘의 턴입니다.]이어지는 새벽녘의 드로우. 하지만 이번에도 꽝이었다. 덱 리사이클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덱은 콤보 위주의 덱이다. 한 장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카드는 없다.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없다. 이어지는 턴 엔드.
그리고, 신하연의 턴.
“드로우.”
이번에도 신하연의 선택은 마법의 난사였다. 쓸 수 있는 카드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무의미하게 공중에 난사했다.
하지만…
“부족해.”
타임 워커의 줄어든 마나는 1.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다.
“이제, 이탈할 때가 된 건가?”
“제기랄. 제대로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빌어먹을 폭주가 벌어지는 일 따위가 생기다니.”
[운이 안 좋구만. 자네들. 무운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세 명의 눈이 풀무불꽃을 노려보자 풀무불꽃은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체력이 100밖에 안 되니까 나름대로 합리적인 폭주 아닌가?]“만약에 내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살아남는다면?”
“엑소시스트랑 퇴마용 소금을 들고 탑에 올라올 거야.”
[…….]‘그보다. 이 각성… 너무나도 비자연스러운데.’
이번의 각성은 보통의 각성과는 다르다. 오히려 수호자들의 선택과 비슷한 종류의 각성이었다. 마치 물 속성의 수호자인 시레나….
풀무불꽃의 눈이 바닥의 어항에서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생선에게 가 닿았다.
‘아니겠지.’
수호자들의 자긍심과 힘은 엄청나다. 자신의 거의 모든 힘을 잃고 초라해진 상태가 될 바에는 죽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무슨 사기라도 당하지 않는 한 저런 조금 화려한 물고기가 시레나일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운이 조금 좋은 것이리라.
[자. 여기까지. 뭔가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나? 본래 실패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지만 이번에는 이 몸이 특별히 선물을 줄까 하는데.]“아직 포기 안 했어요. 풀무불꽃님.”
신하연의 단호한 목소리가 풀무불꽃의 말을 잘랐다.
“다음 턴이면 40의 데미지가 들어온다. 우리의 필드는 텅 비어 있고. 한 턴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패배가 확정된 상황이라고.”
“확정은 아니에요. 제 핸드에 타임 워커라는 카드가 있으니까요.”
신하연은 침착하게 타임 워커에 대한 설명을 해 나갔다.
“…그러니. 이 퀘스트의 발동을 위해서라면.”
“한 턴을 버텨라. 라는 거군.”
남연철은 셋의 체력 상황을 확인했다. 자신의 총 체력은 42. 새벽녘의 체력은 25와 방어도 30. 신하연의 체력은 그보다 적은 25.
“새벽녘과 나는 공격에 직격당해도 죽지는 않는다. 반면 방어력이 하나도 없는 너는 공격에 직격당하면 죽어. 알고는 있는 거야?”
“알아요.”
─그리고. 상관 없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1/3의 확률. 세 번에 한 번이라는 높은 확률이지만 목숨을 33.3%에 걸 수 있는 미친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