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7
아마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미친 인간에게 오랫동안 노출된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완전히 미쳤군.”
“알아요.”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아는 신하연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이클립스님이 쓰신 덱 중에 좋은 덱은 뭐가 있었습니까?”
김태양이 애드온을 다 단 다음에 나에게 물었다. 애드온이 완전히 달렸다면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무시해도 상관은 없지만, 애드온은 이제 특이성을 하나 추가해 줄 뿐이다.
이게 최대 수치가 될 때까지는 서로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봅니까?”
“뭐, 이런저런 잡담이라도 하고 싶은 거죠. 수없이 많은 덱을 쓴 사람이신 것 같기도 하니까….”
음. 사기덱의 역사야 이야기하자면 전공책 하나를 다 뒤덮고도 남는다. 소울 커맨더스의 긴긴 시대의 계보는 사기덱들의 점철이니까.
보통 현 메타의 사기덱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메타는 지나가기 마련이고, 사기덱이라고 생각되던 덱도 그리 강하지 않은 덱에 속하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리고 소위 사기덱이라고 불리는 덱들은 반짝일 뿐이다. 한 순간의 메타나 카드에 힘입어서 군림하는 덱 말이다. 기껏해야 몇 달간의 최전성기를 누리고 카운터 카드의 발매나 카운터 덱의 득세로 힘을 잃어버리는 게 사기덱의 태반이 겪는 일이란 말이지.
하지만, 이런 사기덱의 역사에서도 역사에 남을 사기덱이 있기는 한 법.
“속성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물 속성입니다.”
물 속성이라. 딱 조건에 들어맞는 사기덱이 있지.
“「타임 워커」라는 카드가 있습니다.”
“타임 워커라고요? 들어 본 적 없는 카드인데요.”
그럴 만도 하다. 「타임 워커」는 일종의 실패작에 가까운 카드팩에서 나온 부산물이니까.
이 카드도 이 세계에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카드일 것이다. 「?」카드로 만들까 고민을 해 보기는 했지만… 타임 워커가 탑 공략에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 않는 탓도 있고, 다른 만들어야 할 카드들이 넘치는 것도 있어서 일단은 순위에서 보류다. 대충 10위권 내외에는 들어가겠지만.
“뭐, 세상에는 특이한 카드들이 많으니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나에 대한 신뢰의 눈빛을 쏘아보내는 김태양.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꽤나 신뢰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 눈을 해 봐야 내가 당신에게 신회를 줄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타임 워커에 대해서 떠올렸다. 소울 커맨더스가 발매하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소울 커맨더스는 많은 국가들에서 정식 발매를 시작했다.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부터 유럽, 북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해외지사가 설립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처음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27번째 카드팩이 발매될 쯔음 영국지사에서 일어났다.
무슨 오류였는지, 영국 지사에서는 ‘카드팩을 발매할 권리’를 ‘자신들의 오리지날 카드를 발매할 권리’로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리고 자신감에 충만한 영국 지사는 자신들만의 카드팩을 찍어냈지.
그 카드팩의 메인 카드가 바로 「타임 워커」다. 희대의 메타 카드이자 주류가 된 카드들 중 최고가의 카드.
처음에는 비트 카드들이나 템포를 올려 타임워커 덱을 상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실제로도 꽤 먹혀들기도 했고.
문제는 어느 똑똑하고 덱 최적화 실력이 뛰어난 듀얼리스트가 최적화를 통해 카운터 덱들도 타임 워커 덱을 이길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몰라도 ‘소커아’에 떨어질 나쁜 짓은 해 본 적이 없는 선량한 듀얼리스트일 것이다.
아무튼 그 이후는 솔직히 좀 지옥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 입장에서도 역대급에 들어가는 지옥.
타임 워커 카드를 쓰는 놈들만 세계대회에 진출하고, 타임 워커 덱의 효용을 아는 놈들은 타임워커를 매수해서 시중에 매물은 없고, 새 카드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으니 대회에서 사람을 고용해 상대의 타임워커를 찢어버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베트남 쪽에는 전국에 네 장만 풀렸는데, 한 명이 두 장과 예비용으로 한 장을 가져간 다음 나머지 한 장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폭행하고 카드를 빼앗는 일까지 있었다.
잔악무도한 놈 같으니라고.
아무튼 그 이후로는 ‘거지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절반 정도는 영국 탓’이라는 말이 소울 커맨더스 커뮤니티를 떠돌았다.
나머지 절반이 누구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 탓이 아닐까.
“크흠…아무튼, 타임 워커라는 카드는 세 가지 효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나 코스트를 줄이는 ‘주문혼’, 사용시 추가 턴을 얻는 ‘타임 워프’, 그리고 마지막이 소환되는 ‘환상마법수 자운’이죠.”
타임 워커는 덱 튜닝을 통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덱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사기중의 사기 카드다.
“이 카드의의 사기성은 「환상마법수 자운」에게서부터 비롯됩니다.”
나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김태양을 향해 쩌는 옛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뉴비에게 옛날 사기카드 이야기하는 거. 생각보다 재밌네.
##쉬는 날(7)
결과적으로. 신하연은 죽지 않았다.
기계 풀무불꽃의 주먹은 새벽녘의 몸을 후려갈겼다. 풀무불꽃은 괜찮은 상태였다. 바닥을 몇 번 구르고, 울혈을 토해내고, 갈빗대 몇 대가 부러진 것 같기는 하지만.
“죽겠네 진짜.”
불평은 했지만 크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 그것도 아카데미의 2학년짜리 옆에서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그만한 추태가 없다.
“하지만 그만한 효과의 카드여야 할 거다.”
새벽녘은 피를 바닥에 뱉어냈다.
“그럴 거에요. 아마도.”
신하연은 패를 뽑아들었다. 핸드에 남아 있던 더미 마법을 털어내고.
[‘타임 워커’의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타임 워커를 발동하겠습니다.”
+
【타임 워커】
【mana : 0】
【이 카드를 사용했을 때, 추가 턴을 얻습니다.】
【「환상마법수 자운」을 소환합니다.】
+
시공이 뒤틀리며 차원의 문이 열렸다. 아니, 열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이라는 표현도 틀릴 것이다.
지지직! 지직!
차원의 문이 짓이겨지듯이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으니까. 뒤틀리고 휘어져 있는 앞발이 차원의 문에서 튀어나왔다. 그 다음은 발목, 머리, 몸통.
시공의 뒤틀림을 넘어, 이 세계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해서는 안 될 괴수가 이 땅에 강림했다.
+
【환상마법수 자운】
【지속물】
【이 게임에서 자신의 모든 마법이 「주문혼」을 얻습니다.】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환상시」를 핸드에 생성합니다.】
+
“이어서, 나는 「물나비」를 발동.”
+
【물나비】
【1 mana】
【마나를 1 얻습니다. 마법 한 장을 발견합니다.】
+
살랑. 작디작은 날개가 흔들렸다. 작디작은 미풍微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미풍은 미풍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짓이기는 태풍도 작디작은 바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미풍에 화답하든 자운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환상마법수 자운」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환상시」가 생성됩니다.]+
【환상시】
【2 mana】
【주문혼】
【주문혼(환상마법수 자운)】
【데미지를 6 줍니다.】
+
신하연은 환상시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그녀가, 이 듀얼에서 승리했음을.
“물나비로 발견한 「바람길」을 사용하고─.”
+
【바람길】
【1 mana】
【주문혼(환상마법수 자운)】
【이 턴에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데미지가 1 상승합니다.】
+
핸드에 한 장 더 생성되는 한 장의 「환상시」. 그리고 마나가 제로가 된, 첫 환상시.
“환상시를 발동.”
자운의 몸에서 반투명한 화살이 떠올랐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비현실적인 형태의 화살이었으나, 그 비현실적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화살.
“대상은─. 저 빌어먹을 풀무불꽃.”
화아아악!
화살 한 발이 풀무불꽃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택도 없다는 말을 하려던 남연철의 입이 멈췄다. 두 장에서 한 장으로 줄어들었어야 할 신하연의 패가, 여전히 두 장이었기 때문이다.
“…「환상시」도 마법이군.”
“─이어서, 환상시를 발동, 환상시를 발동, 환상시를 발동, 환상시를 발동!”
자운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환상시들이 떠올라 만들어져 있는 바람길을 따라 날아들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화살들은 나비가 만들어낸 폭풍이 되어 있었다.
거대하다는 것은 인간의 시각에 불과한 것. 거대한 물건, 거대한 병기, 거대한 건축물. 오만하게도 인간은 거대하다는 이야기를 쉬이 꺼낸다. 그러나 실로 거대한 것은 인세에 존재하지 않는다.
태풍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미물微物에 불과한 것이기에.
카각! 카가각!
풀무불꽃의 몸이 으스러져 부러져내렸다. 어떤 기어도 엔진도 톱니바퀴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먼지가 될 때까지 화살의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승리하셨습니다.]***
“그딴 카드. 사기 아닙니까?”
“뭐, 사기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죠.”
기본적으로 무한 루프(infinite loop)는 여러 장의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환상마법수 자운은 그 한 장 만으로도 무한 루프가 완성되어 있는 카드.
영국 놈들 생각으로는 기본 마나가 30이나 되니 마나를 쉽게 줄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탓에 오버 밸류 카드를 보상으로 준 모양이지만, 발견 테마를 너무 물로 봤다.
발견 카드들에서 발견 카드들을 생성하고, 그 발견에서 발견 카드들을 생성하는 것은 물 속성의 기본 플레이 중 하나다.
심지어 물 속성은 토큰 마법카드들도 쉽게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가. ‘주문혼’은 상대의 효과에도 발동한다.
퀘스트 카드라서 핸드에 1턴부터 들어가 있는 건 덤이고.
“…핸드 파괴로 저격하는 건 안 됩니까?”
“생성 카드들이 꽤 많아서 저격 확률이 낮습니다.”
한두 판쯤은 운으로 이길 수도 있겠지만 핸드 파괴로 상대하는 것은 발견 테마 상대로는 쓸모없다.
“발동하기 전에 체력에 데미지를 누적하면….”
“나쁘진 않은데, 물 속성의 방어능력은 발군이죠.”
같이 나왔던 턴에 발동한 마법수만큼 회복하는 ‘시레나의 치유약’덕도 좀 봤다.
직접 써 보니까 효과가 좋을 만도 하더라.
“그럼, 그런 덱을 이기는 게 가능은 합니까?”
“안 될 건 없죠.”
메타가 박살나자 소울 사에서는 영국 지사에 카드 리밸런싱을 요구했다. 기본적으로 제작권이 영국 지사에 있었으니까.
영국 지사는 어떻게 했냐고?
씹었다.
메타가 개판이 나고 있는데 남의 요구를 묵살하다니, 인간이 안 된 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영국의 마이웨이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 아무튼 타임 워커 카드팩이 나온 이후부터 지사에서는 카드 발매 권한이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리밸런싱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난 순간부터 소울 사는 타임 워커 카드를 저격한 카드들을 발매해줬다. 카드 한 장만을 저격한 카드들이 나온다는 게 정상은 아니지만 카드 게임이 정상이었던 적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던가. 그러려니 생각하는 게 편하다.
세상에 이딴 카드가 어딨어! 라고 생각하면 보통은 그런 카드가 세상에 있다.
“그런 사기 카드가 있다면 탑주들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실 내가 타임워커 카드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탑주를 공략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PVP 룰에서는 타임워커 카드는 카운터 카드가 없는 이상 굉장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덱이다. 더럽게 필드를 계속 막아내고 시간만 버티면 방어도고 나발이고 개박살을 내 버리는 덱이니까.
근데 탑주를 상대로는 조금 애매하다. 존재 자체가 무한 루프 덱의 카운터인 ‘심해의 군주’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탑주들을 상대로도 원턴킬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죠? 무한 루프라면 데미지가 무한이잖습니까. 계속해서 환상시로 후려갈기면 탑주고 뭐고 없을 것 같은데요.”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요.”
소울 커맨더스는 턴마다 시간 제한이 있다. 탑주와의 듀얼에서의 한 턴의 시간은 90초. 반면 「환상마법수 자운」이 만들어내는 환상시의 발동 속도는 1초에 1발 정도. 느리기 그지없다.
누군가들은 발동 이펙트가 멋지다고 좋아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시간낭비일 뿐이다.
무한 루프 카드의 이펙트는 최대한 간결하게! 효과 발동! 효과 끝! 타닥! 하고 빠르게 끝나야 좋은 거라고. 시간 없어 죽겠는데 무슨 놈의 이펙트야.
아무튼, 게임을 알지도 못하는 놈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