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8
으음.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김태양이 신음했다.
“생각지도 못 했던 이야기군요.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파악해내시다니. 보통 시간이라는 자원은 잊어버리기 쉬운데 말입니다.”
그게 실력이라는 거지. 모래시계 카운팅때문에 트로피 두어개 날려먹고 나면 누구라도 시간에 대해서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역시나. ‘시간용 자르카날’과의 연결도가 가장 높은 이유가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그건 아닌데요.”
“네? 하지만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는데요. 마치 덱에서 한 번도 빼지 않은 것처럼….”
빼지 않은 게 아니라 빼지 못 한 거지. 제기랄. 자르카날이 멋대로 내 덱에 들어가서 안 나가는 것 뿐이라니까.
자르카날 자식은 내 덱에서 제발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지난 번에는 어떻게든 없애려고 연탄불에 불 피워서 집어넣어 봤는데 멀쩡하더라.
나는 품속에서 자르카날을 꺼내 노려봤다. 쓰레기같은 자식. 네놈을 언젠가는 내 덱에서 없애버리고 말 거다.
“그러면, 공짜로 준다고 해도 탑주를 공략할 때에는 안 쓰실 거라는 말입니까?”
“공짜로 주면 쓰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카드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만들고 싶은 카드가 많으니까 후순열이라는 거지. 덱 파워가 낮고 고타점이 낮으니 안 만드는 것 뿐이다.
하늘에서 타임 워커가 만들어진다면 나는 좋다고 쓸 자신이 있다. 그걸로 만들 수 있는 덱도 이미 있고.
아아. 갈수록 아쉽다. 왜 「?」카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걸까. 그나마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게 탑주들인데 탑주들을 공략하려면 시간도 많이 들고.
풀무불꽃을 없애면 「?」카드를 받을 수 있으려나. 진짜 한 번 시험해봐야 하나.
“안 되지. 안 돼.”
나는 욕망을 참아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풀무불꽃은 카드를 강화하는 데 쓰이는 재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수는 없다.
궁금해도 참자. 필요한 카드들을 모두 강화할 때까지만.
***
“자. 이제, 시련을 통과했으니. 보상의 시간이네요.”
“그러게.”
[보상?]“네. 보상이요. 탑은 시련의 크기만큼 커다란 보상을 약속하는 장소잖아요.”
‘그런 거 없는데.’
풀무불꽃은 침을 꼴딱 삼켰다. 자신을 노려보는 세 명과 한 마리의 눈빛이 따갑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도전자들이 자신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제련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제련은 그냥 시련 통과만 해도 해 주는 거잖아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소문 다 났어요.”
[자네들이 시련을 통과하면서 얻은 전우애와 서로를 위하는 뜨거운 마음이 진정한 보상….]세 명의 눈총이 한 층 더 차가워졌다. 더 말했다간 퇴마용 소금이라도 사 올 기세다.
[…일 리가 없지. 보상은 기대해도 좋아!]“와아. 어떤 보상일까요?”
“보통 이런 시련을 극복한다면 히든 피스같은 게 나오더군.”
풀무불꽃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그냥 적당한 카드 쥐어주려고 했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그랬다가는 무슨 깽판을 칠 지 알 수 없다. 신하연은 그 전익현의 제자다. 보아하니 남연철도 전익현과 연관이 있는 인간인 것 같고.
놈과 관련된 인간들이 온전한 인간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풀무불꽃이 신음했다. 이 사태를 극복할 만한 물건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물건이 아니라서 문제지.
[시련을 극복한 자네들에게 무한한 축하를 보내네. 보상은 이 가판대에 있는 지도들일세.]“지도?”
[히든 피스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들일세. 이 지도들은 탑의 곳곳에 숨겨져 있던 물건이지.]세 명의 시선이 가판대에 있던 지도들로 쏠린다.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벼려낸 히든 피스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들.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판매액의 97%는 전익현에게 가는 지도들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자란 판매액은 자신이 메워야 한다는 뜻.
다음 달에 살 수 있는 웹소설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또르르.
풀무불꽃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탓해 보려 했지만 어쩌겠는가.
자업자득인 것을.
##웨이브 대비 (1)
[그렇게 얻은 게 바로 이 지도인 거죠!]“그래. 잘했다. 잘 했어.”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신하연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대답하며 나는 카드들을 이리저리 배열했다.
너무 반응이 건성건성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덱 튜닝은 랭크 듀얼만큼이나 신성한 작업이다. 전화통화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의무 이상의 호의를 보여 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 지도를 쓰면 엄청 대단한 소울 스톤을 얻을 수 있대요.]“어.”
[퍼즐 같지 않아요? 제가 딱 맞게 각성한 거라던지. 딱 맞게 물 속성의 소울 스톤이 준비돼 있다던지. 누가 다 알고 준비를 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요.]“그렇구나.”
[시레나는 잘 있어요? 집에서 또 괴롭히고 있는 거 아니죠?]“잘 있어.”
덱 튜닝 더럽게 안 되네.
스마트폰은 이렇게 발전해놓은 주제에 왜 ‘나 대신 대충 대답해주기’기능 같은 건 없는 거지.
사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도 별다른 집중은 안 했었다. 지금 풀무불꽃의 난이도는 대폭 너프된 상태다. 신하연은 내가 가르친 학생이고, 사기적인 특이성까지 가지도 있다. 공략에 실패했으면 그대로 파문행이었을 거다.
그러니 듀얼 로그고 덱의 형태고 들을 이유가 딱히 없다. 알아서 어련히 잘 했겠지. 중요한 정보는 신하연이 새롭게 얻은 특이성인 「타임 워커」가 관계성 부족으로 장착이 안 된다는 것 정도.
내가 전화기를 끊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는 것도 바로 이 타임 워커와 관계가 있다. 관계성이 ‘높음’으로 올라갔는데도
그래도 이야기를 대충 듣는 척이라도 했으니 지금은 장착이 되지 않을까?
[「타임 워커」장착에 실패했습니다.] [관계성이 부족합니다.]안 되네. 내일은 음료수 사 주고 다시 한 번 해 봐야지. 신하연의 길고긴 통화가 끝났다.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고, 집에 신하연의 어머니가 찾아온 모양이다. [애가 카드에 미쳐서는 방 청소도 안─!]이라는 소리가 들리며 다급하게 전화가 끊어졌으니 100%다. 나도 몇 번 당한 적 있거든.
덱 튜닝도 거의 끝났다. 나는 덱을 나눠서 덱 슬롯에 밀어넣었다. 슬슬 몸에 지니고 있는 덱의 갯수가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다행인 건 가을이라 코트 안에 추가 덱 슬롯을 넣을 수 있다는 점 정도일까.
나는 덱을 정리한 다음 시레나가 있는 어항으로 다가갔다.
[시레나! 신하연이랑 친해졌어!]“그보다 물어 볼 게 있는데.”
[뭐든지! 뭐든지! 시레나 똑또캐! 뭐든지 대답해줄 수 있어!]발음이나 씹히지 않으면 똑똑하다는 말에 조그마한 신빙성이라도 생길 텐데.
“시레나. 남을 각성시켜 줄 수도 있어?”
[응! 힘을 많이 써야 하지만!]“근데 왜 나는 각성 안 시켜주냐?”
시레나의 헤엄이 뚝 멎는다.
“스핑크스.”
집 밖을 살금살금 탈출하려던 스핑크스가 나갈 구멍을 잠궜다.
“시레나가 가능하다면 너도 날 각성시켜 줄 수 있다는 뜻일 텐데.”
[으음. 이몸은 오래 일을 했더니 졸리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니가 오늘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물 먹고 해태랑 드잡이질 한 것 뿐이잖아. 해태한테 매일같이 맞으면서 왜 저렇게 시비를 걸어대는 건지 모르겠다. 통짜 쇠로 된 해태랑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스핑크스를 들어다 내 무릎 위에 얹었다. 시레나는 도망치려 열심히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엄청난 속도의 유영이다. 어항 안이라 도망갈 데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했을 텐데.
콩! 시레나는 유리벽에 머리를 두세 번 박고서야 도주를 포기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사료에 모래를 섞겠어.”
[어떻게 그런 짓을!]“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이야. 우리는 한다면 하는 한민족이라고.”
나는 국사시간에 배운 지식을 적극 활용했다. 국사 선생님이 말했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배급에 모래를 섞는 것은 한반도의 유구한 전통이지. 그리고 전통을 지키는 것은 후손으로써 마땅한 역할 아니겠는가.
스핑크스가 괴물을 노려다보는 눈으로 나를 노려다보다 길게 한숨을 뱉는다.
[사실, 네게 각성을 시키려고 한 것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래서는 안 돼.]“누군가가 명령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하네.”
[시레나는 몰라! 아무 말도 안 했어!]“말을 하면 안 될 정도의 관계이기도 하다는 거고.”
다시 침묵. 이 침묵은 동의에 가까운 것이리라. 수호자 둘이 입을 다물 정도의 존재라. 딱히 떠오르는 존재는 없다. 내가 이 세상의 설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긴 하지만.
추측해 보자면 수호자들의 행동을 제지할만한 존재가 이 세계에 있다는 뜻이다. 일단 「소커아」스토리상의 존재가 구태여 이런 일을 할 동기는 없다.
그렇다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나’와 관계된 존재가 있다는 뜻이겠지.
‘전익현’이라는 인물과 관계되어 있는 존재일 가능성은 희미하다. 전익현은 본래 이 세계의 주역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더미 데이터의 캐릭터 중 한명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니 나한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의 대부분은 죄다 내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탓이다.
‘그렇다는 건. 내가 원래의 이 세상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건데.’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소울 커맨더스 제작진들이다. 뭐 하는 놈들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어떤 사람을 게임 안에 집어넣는다는 거. 실제로 가능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일반적인 게임을 만드는 팀과는 다른 사람들일 것이다. 그냥 게임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이 사람을 게임에 빙의시킬 수 있었다면 개나 소나 게임에 빙의하고 있게.
계속해서 경험을 적층해 나가고 있는 「심장」도 그렇고, 이 제작진이라는 놈들도 그렇고. 호기심이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이 있으니 참는다.
다음 에피소드인 「침공」이 곧 시작될 테니까.
침공 에피소드는 타임라인에 따라 발생하는 다른 메인 에피소들과는 다르게 조건이 갖춰지면 시작되는 에피소드다. 발동 조건은 ‘플레이어가 탑을 30층 이상 돌파하는 것’과 ‘누적 침식도가 1500 이상일 것’.
후자는 이미 충분하게 만족하고 있고, 엊그제 탑의 30층도 공략을 끝냈으니 남은 건 준비뿐이다.
“시레나. 스핑크스.”
[왜?]“듀얼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그치만 특이성 많이 약해졌어! 시레나 그래도 강해!] [나도 마찬가지다. 힘이 많이 약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본래의 시레나 정도로 약해졌겠지.]펄떡!
스핑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레나가 어항을 탈출했다. 시레나의 몸통이 스핑크스의 머리에 꽂혔다.
[갸아아! 이 빌어먹을 생선대가리가!] [머저리 고양이! 멍청이!] [고양이라고 하지 마라! 이 몸은 위대한 사자란 말이다!]맨날 둘이 티격태격 싸우는데. 사실 사이 좋은 거 아닐까.
아무튼 듀얼이 가능하다는 거네. 그러면 충분하다. 둘은 수백 년이 넘게 듀얼을 해 온 듀얼의 정령 같은 존재들이다. 기본적인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지.
이번 에피소드에서 도움이 충분히 된다는 뜻이다.
* * *
‘어디서 본 적 있는 고양이인데.’
여한설은 교정의 볕 좋은 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가 왜인지 낯이 익다.
“아는 고양이야?”
“주인이 있는 고양이지.”
진슬아의 질문에 여한설은 가볍게 대답하며 어깨를 주물렀다. 가출을 하고 난 이후부터 몸이 찌푸둥하다. 방 크기가 작은 탓에 침대도 작은 탓이다.
“공지는 봤나?”
“등급전을 좀 일찍 한다는 거?”
“그래.”
본래라면 중간고사 이후로 일정이 잡혀 있는 등급전의 일정이 앞당겨졌다. 중간고사 이후로 일정을 일정을 잡으면 듀얼을 위한 교수진의 부족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교수진들이 부족할 것인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듀얼 데미지를 상쇄하기 위한 보수 공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곧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조금 이상하군. 세 번째 층계가 공략되었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는데.’
아직 공식 발표가 되지는 않았지만 세 번째 층계가 공략되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정보망에 들어와 있었다. 아카데미측이 쉬쉬하며 숨기는 것으로 봐서는 이번의 공략 성공측은 고르디우스 측일 터. 제왕이 공략에 성공한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남은 층계는 넷. 겨우 일 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층계들이 돌파되어 나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마지막 층계를 목표로 하고 있는 그녀 입장에서는 슬슬 파티원을 모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단 최우선으로 포섭해야 할 듀얼리스트는 역시나 전익현. 그러나 파티라는 것은 최소한 비슷한 격의 실력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것. 그러니 전익현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적이 필요하다.
아카데미의 성적은 전익현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필요한 것은… 그만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이번 웨이브의 성과가 도움이 될지도.”
웨이브에서 나온 필드 보스(field boss)를 잡아낸다면 전익현도 자신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웨이브? 웨이브가 곧 일어나는 거야? 어떻게 아는 거야? 신문에 난 거야?”
“외벽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추측할 수 있지.”
“…외벽 공사랑 몬스터 웨이브랑 무슨 관계가 있어. 너. 바보지?”
여한설의 머리에 가느다랗게 힘줄이 돋아났다. 바보에게 바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간에, 웨이브 상황에서 아카데미 내부를 활보하기 위해서는 파티원이 필요하다.
듀얼 실력이 뛰어나고, 몬스터를 상대로 하기 좋은 덱을 가지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실적을 가리지 않도록 교수진이 아닌 학생 쪽의 듀얼리스트.
여한설의 눈이 옆에서 고양이에게 강아지풀을 흔드는 진슬아에게 고정됐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까다로운 듀얼리스트들이라면 역시나 자신과 함께 전익현의 연구실에 있는 학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