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1
“딱히 없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기 있는 네 명은 강한 듀얼리스트들이다. 아마도 교수들 중에서도 약한 교수들은 이 네 명을 상대로 승률이 50%가 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저 학생에 불과하다. 탑에 도전하는 것이 자의에 의한 공략이라면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러 떠나는 것은 희생에 가까운 일이다. 이들은 아직까지는 의무가 없는 학생들. 단순히 강하다는 이유로 죽음을 각오할 이유도, 희생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라. 그게 현명한 생각이니까.”
“우리가 도망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래.”
나는 대답했다.
“나는 사람을 잘 보거든.”
“올해 최고의 헛소리상! 전익현 강사님!”
“나 사람 잘 본다고. 진짜야.”
“강사님은 사람 이름도 덱 보고 기억하잖아요.”
어떻게 알았지.
불신 가득한 네 명의 눈초리가 쏘아진다.
초일류 듀얼리스트는 상대의 사소하기 그지없는 행동 하나하나로 상대의 심리를 읽어낼 줄 알아야만 한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초초초일류 듀얼리스트다. 당연히 듀얼하고 있는 상대의 내면을 손바닥 보듯 읽어낼 수 있다.
내가 듀얼하고 있을 때가 아니면 살짝 대강대강 사는 편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사람 보는 눈이 그리 틀린 적은 없다. 아니, 없을 것이다. …조금은 실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주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너희에 대한 판단은 듀얼 플레이를 보고 한 거다. 그러니 틀릴 일 없어.”
“그렇군요.”
“그러면 믿을 만한지도.”
“수긍했다.”
듀얼을 보고 판단했다는 말에 시선들에 팽배해 있던 불신들이 사그라든다. 나에 대한 평가, 이대로 괜찮은걸까. 가끔 보면 나를 듀얼만 아는 듀얼바보로 아는 느낌이다. 한 마디를 하려던 나는 그만뒀다. 정상인인 내가 참아야지.
“도망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설명을 계속하지. 오늘의 수업은 라이프를 제한한 상태로 몬스터와 듀얼을 하는 거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지.”
“시뮬레이션이요? 하지만 아카데미에는 시뮬레이션 기기가 없어요. 학생들 상대로 시뮬레이션을 하게 해 주지도 않을 거고.”
“곧 올 거다.”
쿠웅. 하고 문 바깥에서 무거운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맞춰서 왔군.
“흐아아!”
문을 열자 김태양이 등 뒤에 커다란 기계장치를 든 채 주저앉아 있었다.
“오, 오랜만입니다.”
나는 할딱대는 김태양에게 물을 건냈다. 김태양은 물을 마시는 대신 자신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빌려 쓸 때에는 시뮬레이션만 봐서 몰랐는데 이거, 크기가 상당하다. 언뜻 봐도 100kg은 넘어 보이는데 여기까지 잘도 들고 올라왔네.
“대 몬스터용 듀얼 시뮬레이터다. 불법판이긴 하지만 웬만한 몬스터들은 다 구현해 놨어.”
효과가 잘못 알려져 있는 몬스터 몇몇은 수정도 했고, 웨이브에서 턴 진행시 몬스터가 나오는 주기도 실제와 맞게 개선했다.
추가로 내가 아는 몬스터를 넣어 주는 대가로 나는 시뮬레이터의 대여권을 받아냈지.
“일단, 시뮬레이터를 켠 다음 이야기하도록 할까.”
시뮬레이터에 전원을 연결하자 교실 안에 치직거리며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높은 퀄리티의 홀로그램을 본 학생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오른다.
나야 홀로그램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 김태양이 죽어도 홀로그램까지 들고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탓이다. 반응을 보니 들고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이 시뮬레이터에는 웨이브 상태의 듀얼 모드도 만들어져 있다. 실제와 동일한 몬스터, 동일한 체력, 동일한 특이성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실전과 크게 괴리되지는 않을 거다.”
“이걸로 연습을 하는 거군.”
“그래. 먼저 내가 한 번 시범을….”
“막아!”
기기에 덱을 세팅하려던 내 몸이 석화라도 된 것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진슬아가 내 몸을 붙잡은 탓이다.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 했다.
“대체 왜 막는 건데? 설명 중이었잖아! 내가 시범을 보여줘야 될 거 아냐!”
“시범한다고 덱 세팅한 다음에 하루종일 할 거잖아요! 슬아야! 강사님 못 나가게 꽉 붙잡아!”
“꽉 붙잡으면 부서져 버릴 텐데.”
“…그럼 살살만 잡고 있어.”
“딱 한판만 한다니까? 시범듀얼이잖아!”
나는 몸을 버둥거렸다. 이거 놔! 이건 내 수업이야! 나는 내 수업에서 시범듀얼을 할 권리가 있다고!
내가 버둥거리거나 말거나 남아 있는 세 명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나는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가위를 내서 이겼지만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나는 첫 번째 타자인 여한설이 덱을 세팅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감시망은 여전히 살벌하다. 듀얼에 이토록 진심이라니 대체 누구에게 배워먹은 건지.
[듀얼 필드가 세팅됩니다.] [듀얼 스타트!]내가 슬퍼하거나 말거나 게임은 시작되어 있었다.
[첫 번째 몬스터 「플라워 댄서」가 생성됩니다.]“진짜 딱 한 판만 하려고 했는데. 너무하잖아.”
“강사님.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삐져서는 아니다. 교사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에 맞서싸워 묵비권을 행사한 것 뿐이다.
“웨이브에서 나온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을 때마다 기록돼.”
입을 다물고 있는 내 옆에서 설명이 시작되었다. 김태양이다.
[「플라워 댄서」가 처치됩니다.] [플레이어 「여한설」이 지금까지 입은 데미지 : 7]“저 누적 데미지는 회복하더라도 전부 사라지지 않아. 실전에서 몸에 쌓이게 되는 데미지와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져 있지.”
“…근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 시뮬레이터를 만든 김태양이라고 해. 잘 부탁해.”
김태양이 선글라스를 슬쩍 들며 손을 건냈다.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알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네.
듀얼은 계속되고 있었다. 여한설이 밀리는 상태였다. 필드 위에 몬스터가 세 마리나 쌓여 있었다. 덱 자체를 원래의 덱을 튜닝 없이 그대로 들고 온 탓이다. 핸드의 말림도 다소간 있고.
하지만 여한설의 덱은 약하지 않다. 회복 카드들이 원래부터 갖춰져 있는 탓에 차분히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내며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약속된 8턴.
“데스 나이트를 소환!”
데스 나이트를 소환해 필드를 역전하는 데 성공한 여한설이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몬스터 세 마리가 추풍낙엽처럼 데스 나이트의 검에 쓰러졌다.
“별 것 아니군. 이 정도라면 수백 마리도 상대할 수 있겠어.”
완전히 비어버린 필드를 바라본 여한설이 입꼬리를 올렸다.
hp여유도 충분한 데다가 데스 나이트도 키웠으니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뭐, 여유는 얼마 가지 못할 테지만.
[여섯 번째 몬스터 「리빙 나이트」가 생성됩니다.] [「리빙 나이트」의 특이성 「창끝의 명예」가 발동됩니다.]+
【창끝의 명예】
【passive】
【매 턴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2 데미지를 줍니다.】
+
카가강!
갑주로만 이루어진 기사의 창끝이 여한설의 몸을 후려갈겼다.
“그래 봤자 내 체력은 아직 28이나….”
삐빅!
[판정 중.] [입은 데미지 수치가 높습니다.] [사망 판정.] [듀얼이 종료됩니다.] [처치한 몬스터 수 : 7마리]홀로그램이 꺼지고, 여한설의 듀얼이 강제적으로 종료되었다. 여한설은 입술을 깨문 다음 자신의 덱을 시뮬레이터에서 꺼낸 다음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자신만만했던 다음 턴에 진 것이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수백 마리 뭐 어쩌고 하던 사람. 어디 갔지?”
“죽어. 쓰레기.”
여한설의 실패를 확인한 나머지는 덱을 빠르게 튜닝하기 시작했다. 실험용 쥐 한 마리가 나서서 게임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덕분이다.
“그러게 왜 처음으로 나서냐. 내가 시범 듀얼 하려고 가져온 「뱀파이어 로드」덱으로 2000마리쯤 처리하는 걸 봤으면 이런 꼴 안 나는 건데.”
“그러면 수업 시간 다 끝나는데요.”
“아마도 그렇겠지?”
“…처음부터 하루종일 듀얼할 생각 맞았네요.”
너희들 왜 날 그렇게 봐.
딱 한 판 맞긴 맞잖아.
나는 나의 결백함을 항변했지만 내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슬픈 수업이었다.
##웨이브는 때려치고 이스터 에그 (1)
내가 강의실에 대 몬스터용 시뮬레이터를 가져다놓은 지도 근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네 명의 듀얼리스트들은 틈만 나면 강의실에 와서 대 몬스터용 듀얼을 해댔다. 신하연이 사라지면 남연철이 오고, 남연철이 가면 여한설이 오는 식이었다.
하루에 최대 몇 마리를 처치하는지를 놓고 청소 내기까지 붙고 있으니 열정 하나는 있다고 봐야겠지.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등급전 준비는 안 해도 되냐?”
“아 몰라요! 지금 잘못하면 내가 청소하게 생겼는데 그걸 어떻게 준비해요!”
신하연이 투덜거렸다. 청소야 좀 시간 내서 하면 되지. 라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당장 내가 같은 상황이어도 죽자사자 시뮬레이터에 매달리고 있었을 테니까.
어쩌면 나는 그다지 좋은 교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아. 권보람 씨. 오랜만이네요.”
“…근데. 강의실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청소도 안 돼 있는 것 같고.”
“어제 청소 당번이 여한설이었거든요.”
“여한설 양에게 청소를 시킨 겁니까?”
“내기에서 꼴찌 했으면 황제라도 청소를 해야죠.”
어떻게 청소를 했는데 방이 청소하기 전보다 더러워질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청소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는 걸 분명 봤는데 결과물은 이 지경이란 말이지.
돈이 많아서 그런지 집안일에 요령이 전혀 없는 걸까. 근데 아무리 요령이 없어도 어떻게 청소를 했는데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지.
내가 풀릴 리 없는 우주의 미스테리를 고찰하고 있는 사이에 권보람이 내게 손짓을 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신호다.
“잠시 나갔다 올게.”
“저 버리고 가는 거에요? 둘이서만?”
“안 버려. 곧 올게.”
신하연은 입이 삐죽였지만 듀얼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오늘 청소가 확정이니까. 여한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을 치우는 것은 죽어도 사절이겠지.
그렇게 나와 권보람은 신하연을 놔둔 채로 교실 밖의 테라스에 나왔다.
“곧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공식적으로 웨이브가 나타날 것이란 예측이 곧 올라올 겁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라면 암암리에 알고 있지만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조금 더 일찍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몬스터 웨이브는 중대한 기밀사항이라….”
“시간강사인 저한테 전파하기는 무리였겠죠.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보람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나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으니 그런 것들쯤 전파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보다 겨우 그걸 전파하려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물론 아닙니다. 전익현 강사님을 부른 것은 웨이브 게이트를 닫는 것을 요청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퀘스트 : 권보람을 도와 아카데미의 웨이브 게이트를 닫으십시오.(0/5)] [보상 : 공격의 중급 소울 스톤] [공격의 중급 소울 스톤 : 내 모든 몬스터의 공격력을 2 올립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웨이브 발생에서 게이트 공략을 요청받는 것은 아카데미 내부의 신뢰도 수치가 꽤나 높아야만 발생하는 이벤트다. 이 이벤트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모든 몬스터의 공격력을 2 증가시켜주는 소울 스톤이다. 나쁘지 않은 효과의 소울스톤이라서 웬만하면 받는 게 좋은 의뢰.
군침이 도는 의뢰지만.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도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퀘스트를 거절하셨습니다.]나는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없다.
“상당히 의외로군요.”
“당분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웬만한 일은 저희가 대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라서요.”
권보람은 더는 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익현 강사님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뭔가 급한 일이 있으신 것이겠지요.”
여전히 믿음이 과하다.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이렇게까지 맹목적인 신뢰를 보여 주는 걸까.
내 몸에서 나도 모르게 페로몬 같은 게 나오는 거 아닐까. 나도 모르게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 덕분에 주변의 신뢰를 얻게 되는 거지.
어찌됐건 나를 믿어 준다니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