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8
“꼬리겠지.”
“여유롭네.”
게이트가 열려서 난장판이 나고 있는데도 코스프레 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깡이라.
쓰고 있는 덱도 「사막모래여우」덱이다. 기괴한 카드로 자신의 덱을 엄청나게 불려 「여우떼」로 막대한 데미지를 쏟아넣는 덱.
정상인이라면, 특히나 정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굴릴 만한 덱이 아니다.
“집행자 쪽의 인간은 아니군.”
“그렇겠지.”
일단 저런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집행자에 있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이클립스 쪽의 인간이겠군.”
“···아마도 그렇겠지.”
하긴, 이렇게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클립스 측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추리할 만한 근거가 아직 부족하기는 하지만···
[죽어라! 버러지! 전익현같은 것!]“확실하군.”
“확실하네.”
이상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싸이코 듀얼리스트인 시점에서 이미 반쯤 확정된 일이었지만.
“청룡탕 쪽의 방해전파는 워낙에 커서 영상 수집이 안 됐다. 아마도 아카데미 측도 우리와 같은 상황일 터.”
고양이 귀 듀얼리스트의 실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덱의 형태는 기괴할지언정 덱 튜닝은 엄청나게 신경쓴 티가 팍팍 났다.
“이런 인원을 두 명이나 파견했다는 거지.”
흑일삭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런 방해전파가 발생한 곳은 두 곳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머지 장소들은 전익현이 가르친 학생들이 막아냈다.”
“웨이브는 몇 개 정도를 막았지?”
보통 대형 웨이브의 경우에는 두세 명의 듀얼리스트들이 맡게 된다.
대형 웨이브를 막는 듀얼은 기본적으로 항복이 불가능한 듀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듀얼리스트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당한 데미지, 되도록이면 0, 혹은 마이너스 3 이하로 이탈할 수 있다면 즉시 치료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생환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일종의 파티 플레이인 것이다. 「탑」이 내 줄 수 있는 시련의 크기만큼 공략의 방법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당장 자신과 새벽녘도 태그 듀얼로 게이트 하나를 막아내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학생 입장에서는 4,5마리 정도가 한계였겠지. 하지만 그 정도도 훌륭해. 대형 게이트를 막아내고 그 사이에 다른 테뉴어급 교수가 올 시간을 번다. 좋은 전략···.”
“혼자서.”
“뭐?”
“혼자서 막아냈다.”
“누가?”
“네 명 전부가.”
“······.”
흑일삭은 입을 다문 채 새벽녘이 보내온 동영상을 차례대로 바이저 위에 띄웠다.
네 명 모두가 리스키하기 그지없는 덱을 굴려대고 있었다. 파티 플레이는 염두하지도 않은 채.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듯 위태하게 해 나가는 듀얼.
정상적인 듀얼리스트라면 절대 이런 식의 덱을 웨이브를 막기 위해서 굴리지 않는다.
“···이것들은 파티 플레이란 걸 모르는 건가?”
흑일삭은 눈살을 찌푸렸다. 전익현은 초일류 듀얼리스트였다. 그가 「신앙거석」을 박살낸 듀얼은 혼자이긴 했지만 그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
그 정도 되는 듀얼리스트가 게이트 공략의 기초 중의 기초인 파티 플레이를 모를 리도 없을 터.
파티 플레이를 가르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만무하다.
“그런데 제대로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이런 듀얼을 한다라.”
“효율적인 듀얼이라기보다는 시험이라도 받는 것 같은 듀얼이군.”
영상 속의 네 명은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약하게 지는 선택을 택하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이기기 위해 칼날비 안으로 한 발짝을 더 걸어들어가는 선택들.
생존을 위한 듀얼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듀얼을 하는 것 같은 듀얼이다.
“어쩌면 정말 시험을 받았는지도.”
“「이클립스」에 들어오기 위한 자격 증명 말인가?”
“아마도.”
“강철의 말로는 전익현에게서 별 말 없었다는데.”
“그녀가 제대로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새벽녘은 입을 닫았다. 그녀와 자신은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근래 듀얼에 임하는 남연철의 눈에서는 기묘한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 시간강사의 눈짝에서 보이는 것과 닮아 보이는 광기 말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농후하군.’
“그러나 생각하기는 편해졌군. 전익현이 파티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명확해졌으니까.”
“아마도 강철이라면 파티원에 들어가는 데 전혀 무리가 없겠지.”
이중첩자 노릇을 해 준다면 이클립스 내부의 인원과 탑 공략방법에 대해서 정보를 빼내 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겼어! 이겼다고오오!]새벽녘은 자신의 바이저 안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남연철의 영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늘 얻은 수확은 절대 적지 않다. 베일에 꽁꽁 싸여 있던 놈의 파티원들에 대해서 알아냈으니까.”
“그렇지.”
[이겼다아아악! 보고 있나! 보고 있냐고오오!]반대로 「고르디우스」의 해킹 전문 멤버의 뇌가 상당히 오염됐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다.
[딱 기다려! 이 자식들아아아아악!]···모든 일이 끝난 뒤에 듀얼 중독 치료기간이 필요하긴 해 보이지만.
##웨이브가 끝나고 (2)
[이번에 발생한 사상 최대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의 중심지역이었던 아카데미의 피해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대규모의 뒤틀림이 발생할 수 있는 끔찍한 순간을 막아낸 것은 학생들이었습니다.]
뉴스 앵커의 말이 끝나고 나온 자료화면에서는 여한설이 듀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데스 나이트」를 소환!]“저 저. 안일하게 듀얼하는 꼬라지하곤. 저기서 왜 「흑염룡」을 안 내냐고.”
나는 쯧쯧 혀를 찼다. 저러니까 내부 듀얼에서 제일 승률이 낮은 거 아냐. 그래봐야 1%정도 차이일 뿐이지만.
“뭐. 그래도 잘 끝났으니 괜찮은 걸지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카데미의 웨이브는 문제 없이 끝났다. 대규모 왜곡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내 덕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차 안전장치로 만들어 놨던 수호자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싸움박질을 한 것 치고는 매우 훌륭하기 그지없는 결과물이다.
[대체 이건 언제 벗겨주는 거지?]“너 하는 거 봐서.”
스핑크스가 목에 걸려 있는 ‘저는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명패를 불만스럽게 두드렸다.
시레나는 어항에 넣어 놓은 상어 구조물이 무서운지 아직도 돌 사이에 틀어박혀서 안 나온다.
내가 집어넣은 게 가짜 상어란 걸 알아채려면 이삼십 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테니 충분한 벌이 됐으리라고 믿는다.
“흐아암. 2학기는 묘하게 편하네.”
이번 웨이브의 발생으로 꽤 많은 건물들이 파손됐다. 수리뿐 아니라 건물의 안전도도 새로 점검을 해야 하는 상태라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내가 맡아야 할 등급전도 증발했고, 시험도 비대면으로 하게 됐다는 말이지.
수업 녹화도 거의 다 진행이 되어 있는 상태다.
나는 손가락으로 앞으로 남은 이벤트들을 꼽아봤다. 남은 탑주는 셋. 그리고 능력이 공개되지 않았던 「심장」을 처치하는 것까지가 남았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 있을 3학년의 이벤트들은 별 것이 없다는 점이다. 「겨울 온천여행」이나 「유원지 답사」, 「문화유적지 관광」과 같은 듀얼이랑은 별 관계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이벤트들이 남았다.
특히나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들판 위의 유성우」같은 이벤트는 이펙트만 화려하지 소원같은 건 전혀 안 들어주는 이벤트다.
이 이벤트들은 내가 처음에는 모조리 스킵을 한 이벤트들이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카드도 안 주는 이벤트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카드 게임에서 카드팩도 안 주면 그냥 삭제해도 상관없는 이벤트들 아니야?
“…문제는 패치 이후에는 반드시 참여를 해야 하는 이벤트가 됐다는 거지.”
개발진이 오버파워 카드인 「파워」카드들을 강제적으로 집어넣지만 않았어도.
쯧. 하고 나는 혀를 찼다. 쓸데없는 시간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가 있다. 가서 대충 이야기를 들으며 소울 커맨더스를 하다 보면 지나가겠지.
남은 세 마리의 탑주는 파워 카드를 좀 모으고… ‘각성’을 모은 다음에 공략을 하도록 할까.
나는 선택의 카드를 꺼내들고 내 특이성인 「시간강사」를 확인했다.
일단 지금 「시간강사」에 표기되는 유일한 각성은 신하연의 「타임 워커」다.
+
【타임 워커】
【mana : 30】
【주문혼 : 주문을 발동할 때마다 마나 코스트가 1씩 줄어듭니다.】
【이 카드를 사용했을 때, 추가 턴을 얻습니다.】
【퀘스트 : 「타임 워커」를 0마나에서 사용했을 때. 「환상마법수 자운」을 소환합니다.】
+
신하연이 얻게 된 「타임 워커」는 굉장히 효율 좋은 특이성이다.
“문제는 이 타임 워커를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 신하연을 상대로 10연승하기, 카운터덱으로 이기기, 7속성 전부로 돌아가면서 이기기, 소환수 없이 이기기 같은 짓들을 모두 해 봤는데도 여전히 장착이 불가능했다.
‘더 졌다가는 강사님 머리를 벽돌로 찍어버릴지도 몰라요.’ 같은 소리를 해 대는 탓에 남아 있는 듀얼방식은 아직 보류 상태다.
서윤하에게 물어 봤더니 ‘너는 평생 해도 못 얻을 테니 그냥 얌전히 하던 데로 싸이코 공략이나 계속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서윤하 자신도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 왕도적인 공략들을 싸이코 공략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물론 이 각성이라는 게 없어도 탑의 끝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아무래도 「심장」이 걸린다.
나보다 앞서서 이 세계에 들어온 듀얼리스트 가운데에는 프로게이머도 꽤 섞여 있었다.
나와의 듀얼에서 승률이 더 높은 듀얼리스트가 없기는 하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들은 아니었을 터.
그런 듀얼리스트들도 공략에 실패했다면 「심장」이 가지고 있는 힘이 꽤나 강력하다는 점은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 얻을 수 있는 카드들과 특이성들, 소울 스톤은 모조리 얻어 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체 카드로 준비하는 사이드 덱을 최대한 두껍게 준비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삐빅!
[강사님. 뭐 해요?]타이밍 좋게 신하연에게 문자가 왔군. 보아하니 어제 졌던 멘탈이 슬슬 회복이 된 모양이다. 오늘은 어제 하다 그만뒀던 방금 뜯은 카드팩만으로 승부하기를….
[지난 번에 약속했던 거. 기억하죠?] [뭘?] [밥 사 준다는 약속 말이에요!]그런 약속을 했던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죠? 시레나 봐 준 댓가로 밥 사 주기로 했잖아요!] [물론 기억하고 있지.] [오늘 밥 사줄 수 있어요?]싫은데.
[싫다는 표정 짓고 있는 거 아니죠?] [아니야. 어디서 볼래? 학식 먹을래? 아카데미에서 학식 먹고 앞에 듀얼관에서 듀얼 몇 판 하면 될 것 같은데.] [싫은데요.] [왜.] [그냥 싫어요. 오늘은 듀얼 같은 거 없이 지내는 거에요! 듀얼 디톡스 데이! 어때요?]진짜 싫은데.
[진짜 싫다는 표정 짓고 있는 거 아니죠?] [아니야.]뭐지. 내 집에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해 놨냐?
[그럼 한 시간 뒤에 종로역에서 봬요!]그리고는 문자가 뚝 끊겼다. 일방적인 통보가 끝난 다음에는 문자를 읽지도 않는다.
“아주 자기 멋대로네.”
[거울을 본 게냐?]나는 스핑크스의 목에 걸어놓은 판넬을 단단히 고정한 다음 집을 나섰다.
* * *
후, 하. 후, 하.
신하연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저 멀리서 길다란 코트를 입은 전익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되는 대로 약속을 정했지만 전익현은 의외로 순순히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