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
뭔가 이상함을 느낀 태진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항복 선언을 받아야 할 심판은 여유롭게 귀를 파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말이 잘 안 들리네.”
“이런 개새ㄲ-!”
태진호는 항복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손가락이 얼어붙는 것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와지지지지직!
+
【빙결핵】
【마나 코스트 : 10】
【「냉각」 스택의 2배의 데미지를 줍니다.】
+
얼어붙은 철옹성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태진호의 몸은 얼음에 갇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 있었다.
“······.”
주변은 완전한 침묵이었다. 얼음으로 뒤덮인 이 세계는 마치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꿈인지도. 이 모든 것이 꿈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꿈이 깨지를 않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을 감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지 두려웠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떴는데도
【승리 : 신하연】
세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기적처럼.
##오늘은 운이 좋군(1)
“와아아아!”
“미친. 방금 봤어?”
“개쩐다!”
상황이 파악되자 주변에서 함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우레와 같은 갈채도 함께 쏟아진다.
사실 좋은 듀얼로그는 아니다. 실제로 있는 듀얼 로그였다면 「운빨겜 수준」
같은 소리를 엄청나게 들었겠지. 그런데 이 세계는 그런 것에 꽤나 관대한 편인 것 같다.
“계속해서 생성해내는 거 봤어?”
“진짜 실력. 엄청나다!”
내가 게임할 때 저런 채팅이 올라오는 거면 100% 비아냥거리는 건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진지하게 칭찬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 비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태세변환이 한턴에 태세를 여섯번씩 바꾸는 사신수덱 유저들 수준이다.
“수고했다.”
나는 신하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의 승리는 나에게도 이득이다. 그녀의 덱은 강하다. 앞으로 그녀가 퇴학당할 일은 없겠지.
주변의 분위기를 보니 딱히 흑화할 일도 없어 보이고.
「빙결핵」한 방으로 체력 총계 100 정도를 한 방에 보내버렸다. 그녀의 특이 성이 사기인 탓이다. 본래 「물의 토템」은 5마나 하수인이며 토템이 부서지면 효과도 사라진다. 반면 그녀의 특이성은 같은 효과에 효과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물론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발견」테마. 더 정확히는 「얼음창」이다.
발견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카드들은 존재하는 카드 풀 내에서 3장을 확인하고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물의 부름」 카드팩이 나올 때 존재하는 얼음 주문은 세 장 뿐.
즉. 얼음창에서 얼음창을 확정 생성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 얼음 주문들이 여럿 발매되면서 이 무한 루프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거 만드는 놈들 개념 없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테스트하다 처음 원턴킬 당하고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지. 그 직후 「보스라는 미명 하에 말도 안 되는 개사기 능력 넣지 마세요. 진짜 뇌가 어디에 있는···」으로 시작되는 친절하고도 섬세한 장문의 피드백을 5500자를 보냈는데.
씹혔다.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다.
“제세동기 준비해!”
“응급처치반 불러!”
“수술실에 불 속성 듀얼리스트와 빛 속성 듀얼리스트를 세팅하도록! 빨리!”
구조대원들이 몰려와 태진호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며 나는 저게 내 꼴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데. 뭐. 살아남겠지···?
빠직!
구조대원들이 잘못 건드려서 태진호가 갇힌 얼음에 크게 금이 갔다. 저대로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아니. 끔찍한 상상은 하지 말자.
듀얼은 즐거운 것! 사람은 죽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여 마음 한켠에서 살짝 자라난 죄책감을 지워버린 뒤 고개를 돌렸다.
흑.
신하연은 울고 있었다. 한 방울로 시작된 울음보는 커다랗게 터져나와 방울방울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그보다.
빌려준 카드 돌려달라고 해야 되는데.
흐으윽.
···지금 말하면 다시 흑화하겠지?
훌쩍. 훌쩍. 훌쩌억! 패애앵! 훌쩍.
···그냥 준 셈 치자.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얼음 방패는 좀 아쉽지만 빙결핵이나 얼음창은 지금에만 강한 카드들이다. 어차피 무한 발견이 불가능하게되면 그냥 평범한 카드들. 그런 카드들을 내어주고 1학기의 보스 캐릭터를 처리했다면 개이득이다.
나는 눈물콧물을 흘려대는 신하연을 놔두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총장실.
[연구중]본인이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검소한 행실거지 때문에 자주 드러나지 않지만, 이현일은 대내외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총장실의 명패에 연구중이라는 표시가 나와 있다면 문을 두드리거나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들어가겠습니다.”
이현일의 수행비서인 권보람은 거침없이 총장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으음.”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현일은 극도로 집중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현일의 떨리는 손은 섬세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손수건으로 매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 권보람 비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매듭을 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딴 것도 연구가 필요한 겁니까?”
“테뉴어복장을 하고 있을 때 어깨의 문장을 가릴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이에요.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내릴 수··· 아니, 아무리 움직여도 견고하고도 풀어지지 않는 매듭 방식을 고안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권보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제서야 이현일이 분위기를 파악한다.
“···다 끝나셨습니까.”
“커흠. 그래요.”
“보고는 받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역시 손수건의 재질은 살짝 빈티지 느낌이 나는 게 자연스럽고 좋···.”
“그거 말고.”
“아. 신하연 학생의 일 말씀이시군요.”
갈림길에서의 듀얼은 커다란 화제가 됐다. 2학년쯤 되면 학생이 종종 교수를 이기는 경우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엄청난 재능이 있던 학생들에 한정되는 일이다.
만년 열등생이 교수를 이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듀얼 중에 있었던 비정상적인 대화와 고성을 확인하고 바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단순한 언어 폭력 정도가 끝이었나요?”
“아닙니다. 상습적으로 지도받는 학생에 대한 언어적 폭력, 위압, 갈취를 했더군요.”
“허허. 그렇군요···.”
한국의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는 최고중의 최고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곳은 아니다.
개중에서도 태진호와 같은 썩은 부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현일은 탄식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이런 교수가 나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에.
“징계위원회를 회부하도록 하세요. 회복에는 최선을 다하되, 엄벌로 다스릴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보다···.”
“전익현 강사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가 이번에도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평범한 학생인 신하연이 미발매 카드를 구했을 리는 없고, 옆에 있었던 그가 넘겨줬다고 봐야 할 겁니다.”
“어디에서 구한 것인지는 사실 중요치 않아요. 그의 실력이라면 ‘탑’의 상층부에 도달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전익현은 왜 그런 희귀한 카드들을 넘겨준 겁니까?”
이현일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도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이성적으로는 어떤 답을 넣어도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순하다. 이성적이 아닌, 감정적인 행동.
“태진호가 신하연에게 하는 폭언을 본 거겠죠.”
“···겨우 그것 때문에. 미발매 카드들을 준 이유가 됩니까?”
“그는. 교사이니까요.”
교사. 권보람이 읊조렸다.
“교사는 학생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모든 학생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며, 반짝거리는 원석과 같은 존재. 그런 원석이 무시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한 거겠죠.”
“분노···.”
“전익현과 같은 인간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분노할 때, 정말로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태진호는 두 가지 면에서 운이 안 좋았다. 하나는 자신의 옆에 있던 시간강사가 놀랍도록 강한 존재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학생이 무시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열정적인 교사였다는 것.
권보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진호에 대한 처우가 어찌 되건 교수 자리가. 하나 비게 됐습니다. 회복한다고 해도 몇 달은 요양이 필요할 테니까요.”
“맡을 교수를 알아봐야겠어요. 제가 알아보도록 하죠.”
“···전익현 시간강사가 교수 자리를 맡는 건 어떻습니까?
권보람은 말을 내뱉고도 스스로 놀랐다. 시간강사에게 바로 정교수를 주다니.
유래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 능력과 열정이라면, 교수 자리를 주는 것도 틀린 일은···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에요. 권보람 비서. 그건 틀렸어요.”
“왜죠?”
“그건 특혜에요. 전익현 강사가 그런 특혜를 받을까요?”
···그럴 리 없다.
“게다가 그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모습을 숨겨 왔습니다. 이목이 집중되는 교수 자리를 준다면 훌쩍 떠나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저희 입장에서도 손해입니다.”
“하지만 그를 분노하게 만든 만큼, 그에게 적당한 보상은 줘야할 것 같군요.”
“일단 카드팩으로 보상을 해 주는 게···.”
“받지 않을 겁니다.”
권보람은 생각에 빠졌다. 그가 물질적인 보상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번에도 증명됐다.
이번에도 그렇다. 미출시 카드들을 가볍게 학생에게 건냈다. 아마 건낸 카드의 몇십 배는 미출시 카드들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터.
공식적인 보상으로는 어떤 것을 줘도 보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저희의 공식 예산으로는 그가 만족한 만한 보상을 줄 수 없습니다.”
“있어요. 권보람 비서. 우리에게는 그가 바라는 보상이 차게 넘치게 있어요.”
“···아!”
권보람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전익현은 교사다. 그것도 열정적인 교사. 그가 좋아하는 것은?
학생이다.
그에게 보상으로 전도유망한 학생을 주면 된다.
그리고 전도유망한 학생이라면 아카데미에 차고도 넘치게 있다.
“어느 학생을 주는 게 좋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의례적인 질문이었고, 예상하던 대답이 이현일에게서 흘러나왔다.
“물론, 신하연 학생입니다.”
이현일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아.
슬슬 날이 풀린다. 완연한 봄이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선선하며, 맥주는 맛있으며, 1학기 보스인 신하연은 사라졌다.
나는 보스가 사라진 기념으로 큰 맘 먹고 사온 오징어를 씹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징어가 아니라 스테이크라도 썰고 싶은데 시간강사란 거. 생각보다도 훨씬 월급이 적었다.
교수가 되면 돈 엄청 받겠지? 누가 교수라도 안 시켜주나. 교수 시켜주면 진짜 개처럼 가르칠 자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