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35
“그 다음은….”
“뻔한 이야기야. 내가 생겨나고, 할아버지는 죽자고 둘 간을 방해하고,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하고, 내가 태어나고, 아장거리는 손녀딸을 보고 가족이 됐지.”
나는 여한설이 어릴 적에 어떻게 생겼을지를 상상했다. 고압적으로 사람을 노려보는 저 눈이 동글동글 귀엽고 젖살이 빠지지 않았을 얼굴.
당장 금지 제한 목록에 올라가야 할 반칙 카드잖아.
그런 손녀딸에게 넘어가지 않는 할아버지가 있다면 인간일지를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어. 엄마는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셨지. 카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덱을 짜야 하는지.”
“횡단보도 건너는 법은?”
“그런 쓸모없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게 돼.”
횡단보도 건너는 법은 여전히 이 세계에서 찬밥 취급이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어.”
“초대형 웨이브. 그러니까 「탑」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을 때를 이야기하는 거겠군.”
“잘 아네. 어머니는 웨이브를 막기 위해서 나가려 했어. 가족들은 말렸지. 나도 어머니가 나가는 것을 막았어. 하지만 자경단이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지. 자경단이라는 건 순수한 신념으로 움직이는 존재니까.”
나는 강제로 하는데.
“어머니는 사람들을 구했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끼어들었지. 꽤 괜찮은 활약이었어.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초대형 게이트. 설정상으로는 있지만 사실 버그에 가까운 현상이다. 초대형 게이트는 아무리 몬스터들을 처치해도 게이트가 닫히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게이트다. 이 게이트를 상대하다보면 게이트와의 듀얼을 계속 해야하는 탓에 게임오버는 확정이 돼 버리지만.
“초대형 게이트를 닫는 법. 알고 있어?”
“몰라.”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닫아야만 해.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게이트를 넘어오려던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홀로 상대해야만 하지. 게이트를 닫을 수 있을 때까지.”
“게이트를 닫고 나면?”
“돌아오지 못해. 몬스터들이 끝없이 펼쳐진 탑 안에 갇히게 되는 거야. 영원히.”
그런 개꿀잼 컨텐츠…가 아니라 어두운 설정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그러면 어머니는….”
“돌아가신 거지. 그래서 나는 「심장」을 죽여야만 해. 그리고 내가 탑에 빌 소원은, 어머니를 되살리는 거야.”
말을 끝낸 여한설은 욕탕 안에 들어와 머리까지 욕탕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뒀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다는 기분이 어떤지는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때로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 *
퍼어어억!
“크아악!”
묵빛의 외골격을 입고 있는 사내 주변에는 수십 명의 안전요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스텔스 기능은 해제된 채였다.
「메아리」를 얻는 것은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이 그저 지키는 사람들을 눕혀가기만 하면 된다.
“직접 공격.”
콰아악! 이클립스가 소환한 악어의 공격에 「메아리」를 지키던 마지막 안전요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꽤 데미지를 받았군.”
그래봐야 커다란 정도는 아니다. 도플갱어의 신체는 회복력이 좋은 편이니까.
이클립스는 무심하게 쓰러져 있는 안전요원들을 지나쳐 「메아리」가 보관되어 있는 보관고로 다가섰다.
삐빅!
[안전 경고! 권한이 없는 사용자입니다!]허튼 짓을. 이클립스는 손에 있는 해킹 툴을 사용해 안전장치를 풀어나갔다.
삐빅!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는 듀얼 퍼즐. 이클립스의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퍼즐을 풀어버렸다.
12단계의 최상위 퍼즐이었지만 그가 퍼즐을 푸는 데에는 단 한 순간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런 퍼즐을 푸는 일은 자경단 짓을 하며 수없이 해 왔던 일이다. 이 정도면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도 풀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심장」에게서 온 전익현에 대한 정보들에 대한 생각들 말이다.
“…흐음.”
「심장」에게서 전송된 전익현의 듀얼을 머릿속에서 복기한 이클립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익현이 이우주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약해졌군.”
놈의 듀얼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통산적인 승률을 깎아먹는 비합리적인 선택들과 덱 구성들.
이클립스는 머릿속으로 그의 Elo 점수를 계산했다. 대략 2600정도, 혹은 그 이하.
프로 최상위권의 점수인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급의 점수에는 이를 수 있는 점수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랜드마스터의 점수로는 자신을 상대로도 이길 가능성이 희소하다.
자신조차 이길 수 없는 실력이라면 「심장」을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좋은 상황을 만들었는지는 신기하기는 하군.”
이클립스는 계속해서 듀얼을 다시 재생했다. 낮은 승산에도 불구하고 듀얼을 시작하고. 하지 않아도 될 듀얼을 해 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지 않는다.
“신기하군. ‘듀얼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승률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 세계의 듀얼은 인간의 의지가 관여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전익현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듀얼혼’을 제대로 믿고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꽤나 낮다.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의 의지 하나만큼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그 덕분에 이런 듀얼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인지하고 하지 않는데도 그는 강하다.
“그것도 언젠가는 막히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는 보기만 해도 위태하기 그지없는 듀얼로그들을 다시 되새김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한때, 그래도 그라면 심장을 이기고 이 세계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한낱 허상일 뿐이었던 모양이군.”
이클립스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은 채 카드를 집어들었다.
+
【메아리】
【파워 카드】
【이 카드가 핸드에 있는 한, 듀얼에서 자신의 턴에 사용하는 첫 번째 마법은 두 번 발동합니다.】
【※ 이 카드는 탑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핸드에 쥐는 것만으로도 효용이 무궁무진해지는 파워 카드.
그도 한 때 모으던 것이 바로 이 파워 카드들이었다.
이 파워 카드들을 모으면 「심장」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그에게도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헛된 생각이었는지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너무 상념이 많았군.”
결국 중요한 것은 놈과의 듀얼이다. 놈의 실력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리고 놈의 운. 그러니까 ‘듀얼혼’이 기묘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해야 할 듀얼 방식은 정해져 있다.
운의 요소가 최대한 적게 관여하는 다전제.
그 중에서도, 자신이 모르는 카드나 그가 가지고 있는 「?」카드들을 사용할 수 없는 방식.
“치수置手방식을 하면 족하겠군.”
치수 듀얼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이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괜찮다.
이 세계에서 듀얼을 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는 셈이니까.
* * *
여한설과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여한설의 눈 아래가 퉁퉁 부어 있었던 까닭에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입이 있으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나를 바라보는 권보람의 눈이 차갑다. 손에 들려 있는 전화기는 이미 학부형. 그러니까 여진성의 전화번호를 누른 채다.
저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나에게 척살 명령이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
“그, 그게… 상황이 오해하기 딱 좋은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듀얼 금지 기간입니다.”
“…그래서요?”
“듀얼 금지 기간에는 덱 사용은 물론이고 학생과 듀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권보람의 훈계는 이어져나가고 있었다.
“그 말인즉. 듀얼 복기지도로 학생을 울려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지금 여한설을 과거 듀얼 복기로 울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라고 발뺌하지 마세요. 모든 학생들이 입을 모아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다른 학생들도 그런 반응입니까?”
“네. 그럴 줄 알았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인간 말종이 공식적으로 쉬는 날에도 학생들이랑 듀얼을 하려고 한다. 그런 반응들입니다.”
“…….”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한 오해다.
그렇기는 한데… 나에 대한 시선. 이대로 괜찮은걸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는 알 바 아닌 일이라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해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무튼. 여한설 학생을 제대로 케어할 수 있도록 하세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익현 강사님이 전담하고 있는 학생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여한설은 내가 봉변을 겪는 사이에 이미 여학생 숙소로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메아리」얻을 포인트 누적해야 되는데. 안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온천 (4)
나는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인파를 헤치며 둘쨋날의 이벤트 등록을 완료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거, 상을 탈 수는 있는 거야?”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잘 하느냐지.”
“왜 팀인데 ‘우리가’가 아니라 ‘내가’라고 하는 거지?”
어차피 내가 혼자서 점수를 다 따버릴 테니 나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머리빗이 날아오겠지.
“이 이벤트라는 거, 네가 잘 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니까.”
하지만 사람은 입 바른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내 팩트폭력에 여한설의 눈이 새초롬해진다.
“이 이벤트는 카드랑은 관련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해 왔을 게임들로 만들어져 있어. 너같은 백만장자로 살아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말이란 거지.”
“흥. 나도 이제 서민들의 인생에 대해서는 잘 알아. 나도 이제 서민이라고.”
“서민들은 하겐다즈를 한 입 먹고 버리지 않아.”
“…그치만 너무 달았단 말이다.”
하겐다즈를 한 입 먹고 버린다는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는 범죄를 저질러놓고 저 뻔뻔함이라니. 당장 듀얼로 구속을…
맞다. 카드 안 들고 왔지.
나는 덱을 집어올리려던 손으로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 강사님!”
신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따. 신하연이 멀리에서 손을 붕붕 흔들며 다가오다 내 옆에 서있는 여한설을 보고는 표정이 빠르게 식는다.
“너도 이벤트 하러 왔냐?”
“…강사님이랑 같이 해 볼까 했는데. 벌써 파트너가 있는 모양이네요.”
고작 이벤트에 불과한데 왜 화난 표정인지 잘 모르겠다.
“어제 찾아오지 그랬냐?”
“오늘 와도 안 늦을 줄 알았거든요. 강사님은 친구 없잖아요.”
이건 실망한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사람 열받는 말을 하네. 진작에 강도들이랑 한 편 먹을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도 친구 많아.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에서 내 기보를 보려고 몰려든 친구들이 2000명을 넘었다고.
“너는 나 말고도 아는 사람 있잖아. 게다가 이틀차에 파티 맺으면 점수 패널티도 있다고.”
“그래도 친한 사람이랑 하는 게 좋죠. 연철이랑 슬아도 둘이서 하는 것 같고… 으음. 김태양 오빠한테 부탁해 볼까.”
“그 인간. 여기까지 왔냐?”
“여기 올 때 SNS에 사진 올리고 있던데요. 중요한 일이 있느니 뭐니 하면서.”
“그 인간은 절대 안 돼.”
“왜요?”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다른 인간은 몰라도 김태양은 안 된다.
그 음흉한 선글라스와 사악한 금발 뒤에 도대체 무슨 심계가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내 예비 특이성들… 이 아니라 내 학생들한테는 손끝 하나 댈 수 없게 할 것이다.
하지만 신하연의 표정은 무슨 우위라도 잡았다는 표정이다. 흐흥. 하는 콧소리를 낸 신하연은 손을 비비 꼬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