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4
에효.
한숨이 절로 흘러나온다. 나는 애써 통장잔고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예를 들면···오늘 있었던 신하연의 듀얼이라던가.
다시 생각하니 화나네. 방밀 덱 상대로 기적의 환영을 그렇게 바로 던져버리는 플레이어가 세상천지에 어딨어?
다른 건 몰라도 후드로우는 진짜 한마디 했어야 했는데. 플레이 하기 전에 드로우를 하란 말이야!
덱의 파워와 별개로 신하연은 심각하게 실력이 떨어졌다. 원래 AI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보니 가르칠게 산더미다.
물론, 내 일은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지도교수 없어졌겠네.”
태진호가 사라졌으니 그녀의 지도교수는 아마 바뀌게 될 것이다.
“누가 가르칠진 몰라도 고생문이 활짝 열렸네.”
그녀를 앞으로 맡게 될 교수가 겪게 될 고난을 생각하니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원래 세상사란 게 다 그렇다. 남의 고통은 나의 기쁨인 법.
으흐. 맥주가 달다. 달아.
##오늘은 운이 좋군(2)
“안녕하세요! 강사님!”
뭔데 너.
라는 말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내가 도덕적인 인간이라서는 아니고, 지금 시비가 붙어서 듀얼을 붙었다가는 사기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신하연을 이길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왜 왔냐?”
“강사님 집이 여기니까요.”
내 집이 여기인 거랑 니가 여기 있는 거랑 무슨 관계인데.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졌다. 안그래도 오늘 할 일 많은데.
물론 나만 바쁜 것은 아니다. 눈 앞에서 여유롭게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신하연도 바쁘다. 아니, 바빠야 하는데.
“아! 저기 개나리가 피었어요!”
근데 얘는 왜 이렇게 여유롭냐?
“카드 구하러 안 가니?”
“중간 방학 일주일이나 있잖아요. 좀 천천히 출발해도 괜찮아요.”
특이성 검사가 끝난 이후, 아카데미는 한 주 동안 짧은 방학 기간을 둔다.
「속성」선택과 「특이성」이 결정된 순간, 덱이 대대적으로 갈아엎어지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방학기간동안 학생들은 자신들의 덱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고 필요한 카드들을 대거 사 모은다.
일종의 튜닝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튜닝 기간동안 열리는 거대한 상점 이벤트.
구룡보등九龍? 燈.
동탄에서 벌어지는 세계 최대의 카드 거래소가 내일부터 열린다. 이 이벤트 때문에 내가 카드 안 사고 죽자사자 포인트를 모은 거다.
구룡보등 가서 카드 구하려면 뭐빠지게 돌아다녀야 돼서 쇼핑 루트 짜고 있는 데, 벨이 울려서 나와 보니까 낙제생이 있다. 이러면 짜증이 나겠어 안 나겠어.
내가 불청객을 보는 눈으로 쳐다보자 신하연이 살짝 목을 움츠린다.
“총장님이···연락 안 하셨어요?”
“연락?”
나는 그제서야 휴대폰을 찾았다. 이 세계에 와서 휴대폰으로 연락 올 인간이 없는 까닭에 휴대폰은 거의 방치해 놨었다.
휴대폰을 이틀을 방치했는데도 와 있는 문자는 단 하나뿐이다. 괜찮다. 상처안 입었다. 휴대폰에 메시지 없는 거. 익숙하거든.
어제 온 메시지의 발신자는 권보람이었다.
[신하연 학생은 전익현 강사님의 학부연구생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전익현 강사님의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Ps. 이 특혜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달려있는 ‘쉿! 조용히!’ 아이콘.
···이게 뭔 개소리야?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해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특혜? 무슨 특혜? 눈 앞에 있는 신하연이 특혜야? 요새는 몸에 타이어 강제로 매다는 것도 특혜라고 하냐?
“학부 연구생?”
“네. 조교 역할도 좀 하고, 잡일도 좀 도와 드리고, 그런 거에요.”
일종의 대학원생이다. 문제는 나는 그런 게 필요가 없다. 특히나 손 볼 데가 심각하게 많은 하자품은 더더욱.
“강사님의 학부연구생이 되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면 학비도 좀 감면해 준대요. 이번 구룡보등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도 했고요.”
“근데 난 허락한 적 없는데.”
“···제가 싫으세요?”
내 표정이 안 좋은걸 읽었는지 신하연이 고개를 숙인다.
싫은건 아니다. 그냥 아무 감정이 없을 뿐이다.
근데 이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가는 크게 문제가 될 상황이다.
그녀가 본래 흑화했어야 할 이벤트가 끝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멘탈이 정상이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
여기서 조금이라도 잘못 대했다간 다시 흑화해 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흑화해 버리면 가장 먼저 사냥당할 사람은 바로 나일 테고.
뇌 한켠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붙어버렸던 태진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척 지는 건 삼가자.
“···쉽지 않을 건데.”
“괜찮아요. 지난 1년간 한 순간도 안 쉬웠거든요.”
“갑질도 있을지 모르고.”
“태진호보다 심하게요?”
그 정도로까지 할 자신은 없는데.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보아하니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해답이 간단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놔 두면 된다.
그녀는 지금 시점으로 아카데미에서 손꼽히는 강자다. 강한 학생은 가만히 놔두지 않는 아카데미의 습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게 될 터.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나한테 엉길 이유가 없게 되겠지.
그러니 잠깐만 참자.
“후. 그럼, 이번만이다.”
그렇게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
「히든 퀘스트 완료」
「스토리의 주요 인물인 ‘신하연’에게 깊게 관여하였습니다.」
「보상 : 랜덤 동일 카드팩 x5」
+
내 떨떠름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오늘의 교훈 :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
여한설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최고급의 소파가 여한설의 몸을 폭 감싸안았지만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기분이다. 집안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할아버지 반응은 어때?”
“안 좋으십니다.”
뭐. 예상은 했다. 애초에 그녀의 할아버지인 여진성은 뼛속부터 빛 속성 유저였으니까. 오만하고, 도도하고, 긍지높은. 그래서 배타적인 존재. 그렇게 여진성은 자신을 쌓아올려왔고 지금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어둠속성 이야기를 꺼내다니. 내가 미쳤지.’
어둠 속성. 어둠과 죽음을 다루는 힘이다. 여진성은 그녀가 어둠 속성의 이야기만 꺼냈는데도 펄펄 뛰었다.
혹시라도 어둠 속성을 고르기라도 했다간 금지옥엽 아끼던 그녀에게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어둠 속성을 고르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어떠냐고 물어보기만 한 거잖아.”
“회장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그야 알지만.”
왜 할아버지가 그렇게 과민반응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속성의 선택은 그 사람의 관념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둠 속성을 꺼린다.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둠 속성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뒷이야기가 나오고 암암리에 따돌림을 당하는 지경이니 말 다 했다.
‘역시. 어둠 속성은 안 되겠지.’
머리는 그렇게 판단한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이다. 그런 비주류 덱을 일부러 짤 필요는 하나도 없다.
‘대체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앞에는 이미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집한 초일류 덱 스타일리스트들이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빛 속성과 불 속성의 덱이 놓여져 있었다.
그녀는 덱을 탁자 위에 펼쳤다. 충분히 강한 덱이다. 이 덱을 집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카드 보급은 필요없을 터였다.
그 자체만으로 최선인 덱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덱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직까지 속성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강한 것만이 전부다. 다른 건 신경 안 써.’
튜닝이 중요하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 강사의 말이 그녀의 머리에서 빙빙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아직도 튜닝따위가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가 진 것은 그냥, 약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강해지면, 전익현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아무튼. 미친 소리를 해 대는 입과는 다르게 전익현의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렇게까지 단언한다면 어둠 속성의 카드들은 그녀에게 잘 맞는 카드일 것이다.
어쩌면···눈 앞의 덱들보다도 더.
“나는. 강해지고 싶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방향의 가능성을 모두 검토해 봐야겠지.”
“···슬슬. 불안해지는군요.”
검은 양복, 이지후는 여한설을 가장 오래 보필해왔다. 이지후는 여한설의의 눈빛만으로도 그녀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상태는 적색 경보. 여한설이 저런 눈을 한 건 이미 스위치가 들어갔다는 소리다. 그리고 스위치가 들어간 여한설은 무슨 짓을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아하니 어둠 속성 덱 하나는 만들어 놔야 직성이 풀릴 모양이시군요.”
“맞아.”
“그러기 위해서 구룡보등에 가실 거고요.”
“왜. 이를 거야?”
“그럴리가요.”
“안 이를 거지?”
“네. 아가씨.”
그녀는 거듭 이지후에게 확답을 받았다. 물론 이른다고 해서 그녀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그치만 비용이 문제네.”
여진성은 그녀가 어둠 속성 이야기를 한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카드 전부를 압수해 버렸다.
그런고로 지금 그녀의 지갑에는 신분증인 선택의 카드 한 장 말고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다. 어떻게 「구룡보등」에 간다고 해도 돈이 없다면 덱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잠시 머리를 굴리던 여한설은 무릎을 탁 쳤다.
“어렸을 적에 받은 세뱃돈 모아놓은 게 있었어.”
그녀는 벽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지라 구석에 쳐박아 놓고 잊어버렸지만, 분명히 있었다.
한참을 벽장을 뒤적인 끝에 그녀는 먼지쌓인 카드 슬롯을 찾아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카드 슬롯 안에 있는 카드들을 확인한 여한설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난 탓에 카드들의 가치가 많이 줄어버린 탓이다.
“···자금이 너무 적어.”
카드 슬롯 안에는 겨우 페라리 대여섯 대를 살까말까한 자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 코딱지만한 자금으로 덱을 반이라도 맞출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어.’
그녀는 여진성의 손녀다. 할 수 없는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다.
##오늘은 운이 좋군(3)
동탄역. 본래라면 아파트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할 장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커다란 몰mall이었다.
구룡보등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아홉 마리의 용 등잔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정도의 크기를 보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와. 저. 구룡보등 처음 와 봐요.”
신하연이 탄성을 내질렀다.
사실 나도 그래. 게임 내에서는 그냥 크다는 언급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임에서는 카드 구하는 건 그냥 클릭 몇 번이면 조달할 수 있었는데. 카드사는 것까지 내가 손수 해야 한다니.
나는 TCG게이머에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환경에 절망하며 휴대폰 앱으로 깔아둔 구룡보등의 지도를 열었다.
지도로 봐도 한참을 스크롤해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 커다란 크기 안에 무작위적으로 상점이나 카드가 널려 있었다면 답도 없었겠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지 속성별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제 어떡하죠?”
그러게. 어떻게 널 떼어내야 할까. 일단 카드팩 받아서 기쁘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신하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보모 역할을 해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너한테 필요한 카드 사서 모아.”
“···혼자서요?”
“그래. 그리고 여기에 6시까지 집합.”
원래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구룡보등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