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58
승리 불가능.
“돌겠네 진짜.”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안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어떻게 심장을 처치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한 탓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개발진에 대한 분노가 또다시 솟구쳐오른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요술망치를 써야겠다. 그 때를 위해서 품 속에 요술망치를 항상 휴대해야지.
머릿속으로 다시 카드들을 재점검한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뚜렷하게 활로가 보이지 않는 미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계속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판단력을 흐린다.
이럴 때에 필요한 것은 물론, 휴식이다.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휴대폰을 켰다. 역시 휴식 하면 「모소커」아니겠어? 쉬는 시간에 소울 커맨더스를 하는 것만큼 힐링되는 일이 없다.
[새 메시지가 201건 도착해 있습니다.]“아. 귀찮네.”
내가 탑에 있던 시간동안 쌓여 있는 메시지들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소울 커맨더스를 실행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성장했다. 나는 ‘모두 읽기’버튼을 사용해 읽었다는 표식을 남기고 소울 커맨더스를 켤 것이다.
메시지를 읽지 않으면 사람들은 화낸다. 하지만 읽었다는 표시만 내면 사람들은 화를 적게 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은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메시지 모두 읽기 버튼을 누른 나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를 실행하고 힐링 타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남연철 : 강사님] [남연철 : 강사님] [남연철 : 메시지 확인했던데. 탑에서 돌아온 거 맞죠?] [남연철 : 메시지 보셨으면 답변 부탁드릴게요. 급한 일이라서.]남연철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귀찮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챘다. 여기에서는 어른스러운 대처가 필요하다.
탁. 탁.
[「남연철」에게서 오는 메시지를 차단하셨습니다.] [「남연철」에게서 오는 모든 알람을 차단했습니다.] [모든 메시지를 삭제하셨습니다.]완벽하다. 어른스러운 대처를 끝낸 나는 자리에 누워 소울 커맨더스를 계속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딩동!
집의 차임벨이 울리는 소리. 문 밖의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의 하단에 머리털만이 살짝 보인다. 저 정도 키의 사람이라면 내 주변에는 인간 도토리 남연철말고는 없다.
[강사님! 집 안에 있죠!]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절대 들키면 안 된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절대 사양이다. 정말 오랜만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기회 아니던가.
[안에 있는거 다 알아요! 문 열어! 지금 당장!]쾅쾅! 딩동딩동! 쾅쾅! 딩동딩동!
나는 밖에서 소리가 나던지 말던지 쥐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없다고 버티는 게 최선이다. 내가 없다고 버티면 지가 무슨 수로 방 안에 들어올거야. 도어락을 열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커라도 되면 모를까.
그렇게 1분 정도를 버텼을까. 드디어 바깥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후. 좋아. 이제 다시 게임에 집중해 볼까.
나는 소울 커맨더스를 계속해 나가기 위해 휴대폰을 바라봤다.
삐빅!
[알 수 없는 이유로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서버 점검 중.]“…….”
[공지사항] [알 수 없는 서버 공격으로 인해 「모소커」의 서버가 다운되었습니다.현재 상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국가 전력급의 해커가 디도스 공격을 비롯한 서버 다운 공격을 시도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서버 오픈에 대해 정확한 일정을 공지해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딩동!
[강사님. 문 안 열면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서버 공격 안 멈출….]“이거 당장 풀어!”
“…거에요.”
남연철이 나를 노려봤다.
“역시 집 안에 계셨네요.”
“야. 암만 그래도 서버 공격을 하면 어떡하냐? 다른 사람들 다 불편해지게.”
“그거, 서버 공격 안 했어요. 서버 공격도 할 수 있긴 하지만 더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그런 방법을 택할 필요는 없죠. 강사님 휴대폰만 해킹한 거에요.”
“내 휴대폰은 어떻게 해킹한 건데?”
“휴대폰 해킹은 간단한 작업이죠. 비밀번호를 0000으로 해 놓는 사람 휴대폰은 더더욱.”
나는 휴대폰을 들어 비밀번호를 ‘1q2w3e4r!@#’으로 바꿨다. 이 정도면 해킹은 절대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시간 있어요?”
“없어. 바빠 죽겠다고. 넌 모르겠지만 강사라는 건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다고.”
띠링!
[스토리 퀘스트 : 「남연철」] [퀘스트 보상 : 「남연철」에게 새로운 특이성이 부여됩니다.] [새 특이성 : 「기계장치의 신」]“…하지만. 학생을 위해서라면 시간 좀 낼 수는 있지.”
“눈이 탐욕으로 좀 번들거리는 것 같은데요.”
아닌데.
##공략 탐색이라 쓰고 쉬는 시간 (3)
“선택의 카드를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선택의 카드를 고르지 않더라도 일반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듀얼실력을 증명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증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어요. 예를 들면….”
「기계장치의 신」은 금속 속성 최강의 특이성이다. 굳이 랭크를 매겨야만 한다면 대충 신하연이 가지고 있는 「타임 워커」와 동급 정도의 특이성이라고 할 수 있지.
범용성도 높은 데다가 소환수들을 지킬 추가 카드들을 넣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덱이 말릴 가능성도 굉장히 줄어든다.
“…자신의 덱도 없어서, 신분조차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혜성가’에요. 무법지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죠. 근래 이 지역에….”
물론 금속 속성중 기계 종족들에게만 능력이 적용된다는 점은 마이너스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덱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다. 게다가 기계 종족은 금속 속성 가운데서도 메이저한 종족이다. 자체적인 카드풀만으로도 1티어 덱을 짤 수 있다는 말이지. 정 필요한 카드들이 있다면 「종족 변경 수술」을 쓸 수도 있기도 하고.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
“이야기 들은 거. 맞죠?”
“다 들었지. 글자 하나도 남김없이 똑바로 들었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네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세상에는 정답이란 게 없으니까. 우리들은 삶이라는 우주 속에서 선택이라는 우주선을 타고 무한한 가능성을 여행해 나가면 그걸로 족한 거야.”
나는 최대한 멋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연철은 ‘무슨 상황에서든 대충 쓸 수 있는 대답을 하는 것 같은데.’ 라는 버릇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남이 진심으로 조언해 줬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사람으로써 기본이 안 돼 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줬으니 퀘스트가 클리어되지 않았으려나. 나는 「선택의 카드」를 흘긋거렸지만 어떤 완료창도 떠오르지 않는다. 보아하니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특이성을 제공해 줄 모양이다.
거 참. 빡빡하기는.
* * *
남연철은 전익현이 운전하는 듀얼 바이크의 뒷좌석에 앉은 채 생각에 빠졌다.
‘이게 잘 하는 짓일까.’
혜성가 주민들의 암묵적인 룰. 혜성가의 일은 혜성가 안에서 처리한다. 아무리 내부에서 커다란 문제가 터졌다고 해도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남연철에게는 있었다.
‘그래도 전익현은 내가 혜성가 주민인 건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전익현도 자경단 짓을 하며 치외의 장소를 오가는 회색 빛깔의 인간. 최소한 완전히 바깥의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 괜찮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쏘다닐 시간은 있냐? 탑 공략 한다면서.”
“좀 쉬는 날도 있는 거죠 뭐.”
탑 공략은 지금 세 번째 층계에서 거의 멈춰 있었다. 30층의 「투기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원수는 10명 내외. 지금 남연철이 있는 파티 멤버는 전익현이 있는 파티를 제외하고는 가장 선두그룹이다.
선두그룹인 만큼 알려져 있는 정보들이 적다. 그런 만큼 정예멤버들을 모아야만 하는 상황.
이 정예멤버 발탁이 시간을 꽤나 잡아먹고 있는 탓에, 탑 공략은 답보 상태였다. 그 덕분에 혜성가에도 올 시간이 남아돌게 됐으니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었지만.
“자. 이제 여기를 넘어가면 혜성가에요.”
콘크리트와 건축자재들로 가득한 폐허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듀얼 바이크로는 더 못 들어가나?”
“진입할 수는 있지만 차체가 심하게 흔들려요. 게다가 운전 못 하는 사람이 듀얼 바이크를 잡으면 걷는 것보다 속도가 안 나죠.”
“나랑은 관계 없는 이야기네. 그러면 계속 바이크로….”
“폐기자재들에 바이크가 걸리면 바이크가 통째로 뒤집어지고 철골이 몸에 박히는 경우도 부지기수에요.”
“…가는 건 교통표지판도 없으니 그만두도록 하지.”
전익현이 얌전히 바이크를 되돌려놓는 사이에 남연철은 주변의 인기척을 느꼈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전히 적대적인 분위기다.
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쉬이 덤벼들지는 않을 테지만.
“자. 이제 어디로 가면 되지?”
“저를 잘도 믿으시네요. 혜성가에 온다고 하면 겁부터 먹는 인간도 많은데.”
“어차피 덤벼 봤자 듀얼로 박살내면 되잖아.”
“…그런 인간이었죠.”
자기 재미를 위해 탑을 오르고 흥미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인간에게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한 것부터가 모순이었다.
“뭐, 강사님한테 덤벼들 간 큰 사람도 별로 없기는 할 테지만요.”
전익현은 알지 모르겠지만 그의 명성은 근래에 꽤나 올라와 있었다. 「이클립스」의 이름을 빌어 놓지 않더라도 그에게 덤벼드는 생각 없는 혜성가 주민은 없을 것이다.
“일단 정보를 얻어야 하니 골목시장으로 갈까요?”
“이런 곳에도 시장이 있나?”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뭔가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남연철은 대답 대신 쓰레기더미를 뒤적여 동그란 맨홀 뚜껑을 찾아냈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커다란 통로가 있었다.
“자. 들어가죠.”
“그냥 들어가도 괜찮아?”
“괜찮아요.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게 혜성가니까.”
“안에 들어가면 휴대폰은 터지나?”
“간헐적으로 끊겨요. 하지만 문자나 전화 정도면 괜찮아요.”
“으음. 잠시만 있다가 들어가지. 할 일이 있어서.”
남연철은 전익현의 헬멧을 바라봤다. 헬멧 위에 떠올라 있는 소울 커맨더스의 필드다.
“…오면서도 소울 커맨더스 하고 있었던 거에요?”
“신호에 걸릴 때만.”
“…손은 계속 바이크 핸들 잡고 있었잖아요.”
“아, 이거? 핸즈프리 모드야. 김태양씨가 눈 동작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도와 줬어.”
“그런 데는 잘도 머리가 굴러가시네요.”
“예전에도 많이 해 봤던 방식이거든.”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핸즈프리 모드로 소울 커맨더스를 해 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남연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승리하셨습니다.]좌우가 뒤집힌 승리 화면이 나왔다. 이제 게임도 끝났으니 통로로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전익현에게서 움직임이 없다.
남연철은 전익현의 헬멧 너머로 보이는 화면의 반전된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네.] [다음 게임을 탐색합니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다음 게임을 돌리고 있는 전익현을 바라보던 남연철은 전익현의 헬멧을 움켜쥐었다.
“당장 꺼요! 뭐 하는 짓이야!”
“한 판만! 지금 기세를 탔다고! 흐름이야! 흐름이라고! 그러니까 딱 한 판만!”
“헛소리 하지 말고! 당장 꺼!”
“안 돼! 매칭 잡혔다고!”
남연철은 전익현의 헬멧을 벗겨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기본적인 체급차이가 월등한 탓이다.
남연철을 팽개친 전익현은 기어코 다음 게임을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실력행사로 나갈 수밖에 없다. 입술을 피가 터져라 깨문 남연철은 해킹 툴을 꺼내들었다.
[Fatal error! : 알 수 없는 오류로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가 종료됩니다.]“안 돼애애애애애!”
“자. 빨리 일어나요. 할 일이 많다고요.”
분한 듯 바닥을 두드리며 절규하던 전익현이 불만 가득한 눈으로 헬멧을 벗었다.
“악마… 내 모든 것을 앗아가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무나 순수하기 그지없는 분노의 표정. 남연철은 잠시간 자신이 잘못한 게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론 그런 건 없었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런 인간에게 자신의 문제를 상담했다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