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0
“물어보면 되지. 야옹아?”
파악! 야옹이라는 소리에 스핑크스가 진슬아의 손을 후려갈겼다. 물론 진슬아는 가볍게 피해냈다. 경이적인 반응속도다.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아니야. 고양이들은 야옹이라는 이름 좋아한다고. 고양이잖아. 고양이가 고양이 울음소리로 고양이라는 이름 받는 건데, 기분 나쁠 리가 없잖아.”
파바바박! 고양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스핑크스가 손을 휘저었지만 상대는 진슬아였다. 단 한 방의 발길질도 맞히지 못한 채 공격은 허공만을 갈랐다.
“엄청 무섭게 노려보는데. 그냥 스핑크스라고 부르면 안 되냐?”
“음. 그럴까? 원래 이름이 있으니까. 스핑크스. 너도 우리들이랑 같이 탑 올라갈래?”
인간은 모두 절멸시켜 버리겠다는 표정을 짓던 스핑크스가 홱 고개를 돌렸다.
“미운 털 박혔나 보네.”
“잠깐 기다려 봐.”
여한설이 백팩에서 고양이용 츄르를 꺼내들었다.
“츄르도 들고 다녀?”
“그냥. 혹시나 해서 들고다니고 있어.”
“혹시나가 무슨 상황인데?”
혹시라도 전익현의 집에 갔을 때 스핑크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라는 말을 여한설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게 있어.’하고 말을 얼버무렸을 뿐.
스핑크스는 그깟 츄르 하나따위로 나를 살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털을 바싹 세운 채 갸르릉거렸다.
스핑크스가 갸르릉거리는 사이에 여한설은 츄르의 껍질을 벗겼다.
화아악!
츄르의 껍질을 벗기자마자 농후하고도 풍부한 해산물향이 주변을 감싸올렸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의 침샘까지도 자극하는 냄새다.
“…이거. 무슨 츄르야? 어디서 산 거야?”
“파는 거 아냐. 북극해에서 가장 엄선된 물고기들만을 고르고 골랐다고 하던데. 할아버지의 거래처 사장님한테 부탁했더니 가져다 주더라고.”
주르륵.
효과는 확실했다! 스핑크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침이 흘러내렸다. 스핑크스는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생각과는 달리 발걸음은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홀린 듯이 최고급 츄르 앞으로 다가간 스핑크스는, 혀를 츄르 막대의 끝에 가져다댔다.
핥짝.
미미美味.
혀끝을 댄 순간부터 스핑크스는 츄르를 모두 먹어치울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시레나가 불만스럽게 어항을 뱅뱅 돌았다. 왜 스핑크스만 챙겨주냐는 듯한 움직임이다.
“아. 너 주려고도 준비한 게 있었는데.”
여한설이 백팩에서 자그마한 돌멩이를 꺼내들었다.
“겨우 돌이야?”
“히말라야 동굴에서 종종 발견되는 암염석이래. 물 속에 놔 두면 암염이 천천히 녹아서 물을 청소해 주고 미네랄 농도도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고 하더라고.”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아는 거래처 사장님이 독점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탓에 일반인한테는 전혀 안 알려져 있는 것 뿐이야.”
퐁당! 돌멩이를 어항 안에 집어넣자 불만스러워하던 시레나의 지느러미가 급속하게 느려졌다. 편안하기 그지없는 유영.
“좋아. 선물은 여기까지. 어때. 우리랑 같이 탑 올라갈래?”
시레나와 스핑크스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돈으로는 우정을 살 수 없다. 하지만 탑을 올라갈 믿음직한 파트너들은 살 수 있다.
세상의 진리에 대해서 조금 더 배운 진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략 탐색이라 쓰고 쉬는 시간 (5)
혜성가 내부는 개미굴과도 같은 곳이었다. 과거에 갔던 카드숍인 「구룡보등」도 꽤나 난잡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구룡보등은 카드들만 취급하는 데다가 구획이 나누어져 있었다.
잠깐 정신을 잃으면 어디인지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 바로 이 「혜성가」란 말이지. 「소커아」할 때에는 그냥 클릭 한 번으로 돌아다닐 수 있어서 그다지 관심있게 본 적이 없는데.
남연철은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길을 잘도 헤메지 않고 돌아다녔다. 행동으로 보건데 여기서 오래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의 뒷배경에 대해서 명확하게 다 기억하고 못하는 내 입장에서는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혜성가에서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다녀야 돼요. 안 그러면 누가 카드를 훔쳐갈 지 모르니까요. 옷에 구멍을 내서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만에 하나라도 누가 내 덱을 훔쳐간다면, 이 혜성가를 통채로 터트려버릴 거야.”
“강사님이 하면 농담도 농담처럼 안 들리니까 그런 농담 하지 마세요.”
“농담 아닌데.”
“…………”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남연철은 방금 전보다 비상구의 위치를 조금 더 꼼꼼히 확인하며 길을 찾아나갔다.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죄다 신분이 증명 안 되는 사람들이야?”
“전부 그렇지는 않아요. 신분증명 덱이 없는 경우도 있고, 덱이 생기고도 「안쪽」에서는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니 여기 계속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다른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고 여기 숨어든 사람들도 있죠. 물론 가장 악질은 여기 사는 걸 즐기는 경우지만.”
“이런 범죄의 소굴같은 곳에 사는 걸 즐기는 인간이 세상에 어딨냐?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냐?”
“저도 1년쯤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그 정도면 나름대로 정상적인 편이더라고요.”
남연철의 생각이 어쩌다 변화하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뭐,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바뀌는 법이다. 나는 계기에 대해서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저는 여기서 나고 컸어요.”
“그래?”
“그다지 안 놀라시네요.”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느냐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멀쩡하게 자고 나라서 범법행위만 안 저지르고 살면 되는거 아니겠어?”
움찔. 하고 남연철의 몸이 움직였다. 범법행위라는 말에 조금 찔리는 게 있나보군.
“뭐, 찔리는 거 있냐?”
“아뇨. 없는데요.”
“괜찮아. 이제 입학한 아카데미생이 저질러 놓은 범법행위라고 해 봤자 무단횡단이나 버스 공짜로 타기 정도잖아. 방화, 요인납치, 전기 셧다운, 웹소설 불법 다운로드같은 흉악범죄만 안 저지르면 돼.”
남연철의 몸이 불안하게 꿈지럭거렸다. 설마, 이 녀석. 웹소설 불법 다운로드를 한 건 아니겠지.
“아, 아무튼. 중요한 건 이 세계가 좀 이상하다는 거죠. 안 그래요?”
“그렇긴 하지.”
“듀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으로 세계가 갈라져 있다는 건 너무 잔혹한 일이에요. 소울 커맨더스의 카드들이 가진 힘이 너무 강대하고, 모든 세계의 질서는 이 카드를 위주로 만들어져 있죠. 이 세계는 너무나도 불공평해요.”
이 세계에 대해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남연철은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고르디우스」가 가지고 있는 신념 또한 여기에서 출발해요. 수호자들이나 집행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고르디우스라고 하면 그 테러리스트들을 이야기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것도 같은 이름이다.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는 걸고 있는 이념이 정상적인 놈들이었군. 그렇다고 해서 놈들이 하는 짓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계시겠지만 「고르디우스」는 이 탑의 끝까지 올라간 뒤에, 이 세계에서 카드가 미치는 영향을 제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에요.”
물론 내가 상관해야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GORD」라고 불리는 익명의 듀얼리스트 집단을 제외하고는 내가 관여해야 할 범죄 집단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스토리 외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니 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잠깐.
“GORD. 고르디우스. 지, 오, 알, 디, 고, 르, 디우스.”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고르디우스, 스펠링이 어떻게 되냐?”
“G, O, R, D ……”
“……그거였군.”
놀랍게도 내가 지금까지 찾아온 익명의 범죄집단 「GORD」는, 「고르디우스」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눈치채기 힘든 복선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눈치가 비상하게 빠른 내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런 맹한 표정 짓고 있어요?”
“맹한 표정이라니. 사건의 진상에 도달한 명탐정의 표정이라고.”
띨한 표정 그만 짓고 걷기나 하라는 표정으로 남연철이 고개를 홱 돌렸다. 내 학생들, 가면 갈수록 나에 대한 비방의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내가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처사다.
하지만 눈 앞의 남연철은 지금 「고르디우스」와 꽤 깊게 영향력이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지금은 협력하는 척을 해야했다.
남연철은 발을 멈춰섰다. 내 몸이 남연철에게 부딪혔다. 남연철의 조그마한 몸이 주춤거리며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한 무리의 깡패들.
“오랜만이로군.”
“아는 사람들이야?”
“네. 지금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지만요.”
“그냥 듀얼로 때려눕히면 돼?”
“대화로 해결할 생각부터 하셔야죠. 왜 사람이 모든 걸 듀얼부터 시작하려고 그래요?”
아니, 척 봐도 그냥 듀얼하자는 인상이잖아.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의 다섯 명을 바라본 나는 실눈을 뜬 채 품 속에 있는 덱을 점검했다.
“「제왕」이 안 온다고 이렇게 막 나가는 거냐?”
“탑 공략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거지.”
“불법적으로 카드를 파는 걸 ‘준비’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흐흐, 그거야 너희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은 기계 덱이다. 남연철에게 「기계장치의 신」을 받게 되면 사용해 볼 덱들이 차고 넘친다. 아무래도 덱을 계속 손은 보고 있는데, 영 만족스러운 퀄리티가 안 나온단 말이지.
역시 여기서는 실력이 좀 부족해도 기계 속성 덱을 쓰는 남연철에게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기계 복제술」보다는 「양산공장」쪽이 템포 덱에는 더 좋겠지?”
나를 실눈으로 쳐다보던 남연철이 내 옆구리에 뭔가를 가져다 대고, 스위치를 꾹 눌렀다.
바지지직!
“게헤흐학!”
내 몸이 바닥에 엎어졌다.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타오른다. 하마터면 카드를 놓칠 뻔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카드를 손으로 잡았다.
“……그건 누구지?”
“너희가 알 필요 없어. 너희가 불법적으로 카드를 만들어대는 건 우리들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사회적인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짓을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서 저질러서는 안 돼.”
“고루한 소리 지껄이기는! 그딴 노친네같은 원칙은 우리 알 바 아니다!”
“원칙이 없으면 우리는 짐승에 불과해!”
“하! 할 수 있다면 힘으로 막아서 보던지. 「매듭」중에서도 쓸모없는 밑바닥인 네가 우리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나를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원칙을 무시하는 건 절대 넘어갈 수 없다.”
“그러면……”
“듀얼이다!”
것 봐. 어차피 듀얼할 거잖아. 무슨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젠장. 나도 듀얼하고 싶은데. 입이 제대로 안 움직인다.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입을 열었다.
“듀어브버벟.”
“뭐라는 거야?”
“몰라. 그냥 ‘강철’이나 빠르게 처리하자고.”
역시 안 되네. 할 수 없다. 그냥 덱 리스트나 점검해야지.
나는 바들거리는 손으로 하던 로봇 덱을 점검했다. 머릿속에서 전류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 「기계 복제술」과 「양산공장」을 쓰는 대신 그냥 「미래 융합로」를 두 장 써 버리는게 낫지 않나?
덱을 만들어서 확인해 보자 내 생각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 「미래 융합로」는 템포도 빨라지고 뒷심까지 챙기는 완벽한 선택이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가능해지다니. 전기 충격기로 머릿속에 전류가 스쳐지나가게 하는 거. 꽤 쓸만한 일일지도.
나중에 남연철에게 전기 충격기를 다시 한 번 빌려 써봐야겠다.
[덱 편집을 완료하셨습니다.]덱 편집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몸은 일으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아쉬운대로 관전이라도 하자. 나는 바닥에 모로 드러누운 채 듀얼을 관전했다.
듀얼은 남연철의 공격일변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그로 덱 대 어그로 덱인데도 꽤나 격차가 많이 나는 필드상황. 남연철의 지금 덱은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어그로 덱이다. 템포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나조차도 애를 먹는데, 평범한 범죄자들이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콰아악! 뻐억!
처음 호기만만하게 나섰던 대장 격의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크으윽. 꽤 하는군!”
“예전의 내가 아니야! 지금의 내 덱 운용은 완벽 그 자체라고!”
“야, 인마! 7턴째에 실수했잖아!「가제트」를 쓸 거면 핸드에서 겹치는 가제트부터 내야 된다니까!”
나를 짜증난다는 듯 흘긋거린 남연철은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다시 듀얼을 선언했다. 타당하고 합당하기 그지없는 피드백을 했는데도 없는 사람 취급이라니.
이래서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면 안 된다는 거다.
“저 사람은 왜 데려온 거지? 짐꾼인가?”
“나도 모르겠으니까 듀얼에나 집중해.”
“야, 카드 들 때에는 아치 형태로 들어야 된다니까! 그래야 주변에 안 보인다고! 사소한 거 하나하나를 언제까지 지적을 해야……”
빠직! 빠지직!
남연철이 옆에 있는 전기 충격기에 전원을 다시 올렸다.
나는 폭력에 굴복해 입을 다물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불초소자는 물리적 폭력에 굴종하는 아들로 자라고 말았습니다.
남연철이 폭력으로 나를 압제하건 말건 흐름은 그녀의 쪽이었다. 평범한 듀얼리스트라면 다대일의 듀얼을 해 볼 일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내 방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은 1:1 연속 듀얼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하고 있다. 남연철은 그 가운데서도 최고 연승인 7연승 기록을 가지고 있지.
그 상대가 최상위권의 듀얼리스트인 여한설, 진슬아, 신하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그 두세 배의 듀얼리스트가 덤벼와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젠장. 어떻게 이런……”
“그 단기간에 이 정도로까지 강해지다니. 대체 어떻게……”
“두 놈째. 받은 데미지는 7. 더 덤벼봐.”
게다가 상대는 연속 듀얼을 그다지 해 보지 않은 티가 역력해 보였다. 내 학생들은 연속 듀얼을 하면 연계 플레이가 확실하게 되는데. 여기는 오합지졸에 가깝다. 하긴, 언제 한 명을 상대로 린치 놓는 듀얼을 해 보겠어.
저거 봐. 지금만 해도 데미지를 더 주는 선택 대신 방어에 급급하잖아. 이래서야 남연철을 상대로는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눈 뜨고는 못 봐줄 듀얼이다.
“야! 거기! 데미지 피할 생각하지 말고 달려들어야지 너희 편이 이길 확률이 올라갈 거 아냐!”
“뭐, 뭐?”
“데미지 주는 카드를 쏟아부으라고! 한 판 져도 안 죽잖아! 「집중 사격」을 소환수에 쓰는 머저리가 어디 있어! 키 데미지 카드인데!”
내 훈수에 스킨헤드를 한 깡패가 혼란스럽게 자신의 패를 바라봤다.
“……강사님은 대체 누구 편인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