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68
나는 샌드백 1호를 바라봤다. 근래에 남연철을 비롯한 샌드백들의 듀얼 실력은 물이 오를 데로 올라 있었다.
내가 덱 튜닝용으로 쓸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오다니.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신고한다?”
좀 쳐다봤다고 뭘 신고까지 하려고 하냐.
신고 버튼을 가지고 위협하는 동시에 전기 충격기의 충전을 시작하다니.
실력 올라가는 거랑 반비례해서 인성이 나날히 바닥을 향해 달려가네.
빨리 집에 가서 덱 튜닝이나 해야지.
그리고 김태양에게 전기 충격 방어도 좀 할 수 있게 슈트를 개조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 * *
남연철은 방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서 깡총깡총 뛰었다.
“야호!”
고르디우스를 괴롭히던 카드 복제하는 놈들을 처리했다는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기쁨의 원천은 따로 있었다.
[충분하고도 남지.]전익현이 한 말이었다. 전익현이 자신에게 파티에 들어와도 된다고 인정한 것이다.
전익현의 파티원들은 정예 중의 정예들이다.
전익현의 파티원들은 「집행자」들과 「고르디우스」가 눈에 불을 켜고 추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국의 분야의 괴물들이 모여서 추적하고 있는데도 전익현, ‘이클립스’가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에 대한 추적은 전혀 성과가 없었다.
어떠한 추적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고,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 허깨비같은 존재들이 바로 전익현의 파티원들이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분명한 것은 단 하나. 그들이 전익현과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듀얼 실력을 가졌다는 것 뿐.
이제 자신도 그 괴물과도 같은 멤버에 당당히 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탑 공략뿐이다. 전익현이 있는 층계에 도착만 하면 그의 옆에서 나란히 듀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고작 21층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전익현이 공략하고 있는 탑 고층에 도착하면 그의 파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는 건 「심장」을 공략할 수도 있다는 뜻.
전익현의 파티에 들어간다는 건, 소원을 빌 수 있는 가능성이 대폭 올라간다는 말과 동치다.
“파티원 모집은 도대체 왜 안 되고 있는 거야?”
남연철은 난폭하게 휴대폰을 잡아올렸다. 「신앙거석」을 공략할 멤버를 모집하고 있는 새벽녘을 독촉하기 위해서였다.
[「강철」이 채팅에 입장하셨습니다.] [카드 복제하는 놈들 잡아족쳤어. 더는 신경 안 써도 될 거야.] [그게 하루만에 처리가 되는 일인가?] [전익현이 왔었음.] [이해 완료.] [나, 각성한 특이성도 생겼어.] [각성?] [어. 「기계장치의 신」이라고.]남연철은 자신의 특이성에 대해서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다. 어떻게 각성했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정이 어떤지, 연습해야 할 덱들과 확인해 봐야 할 덱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보다.] [봐. 판정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진 모르겠지만 이 특이성으로 합체를 제대로 하면 반쯤 무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니까? 특수 승리나 덱이 모두 사라져서 패배하게 되는 상황, 무승부같은 상황에 당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그보다] [이 특이성과 견줄 수 있는 특이성은 내 생각에는 열 종류가 안 돼. 물론 듀얼리스트의 실력이란 게 특이성과는 다르게 결착이 나는 경우도 없지만 지금 전익현한테 배우고 있는 것들은 가볍게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신하연이 「토템」이랑 「타임 워커」얻고 나서부터 짜증날 정도로 강해졌는데, 이 「기계장치의 신」이라면] [그보다.] [내가 승산이 더 높을 수도 있어. 아니. 확신하건데 내가 더 세. 멋지지? 미라클 덱이 대응력이 강점이지만 신하연이 튜닝능력은 아무래도 좀 떨어지니까. 내가 더 세다는 이야기지.] [방장 「새벽녘」이 채팅창을 얼렸습니다.]“아. 왜? 할 말 많은데 왜 갑자기 채팅창을 얼리는데?”
남연철은 거칠게 키보드를 때렸다.
“어쩌다가 남연철이 이렇게 된 거지.”
“넌 또 왜 사람을 긁냐?”
“원래 이 정도로 듀얼에 미친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해킹 툴에서 인공지능이 쫑알거리는 귀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남연철은 해킹 툴을 컴퓨터에 연결해 백신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프로그램 실행중.] [악성 프로그램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나를 악성 프로그램 취급하다니!”
“너. 악성 프로그램 맞아. 남의 물건에 갑자기 만들어져서는 쓰잘데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백승태는 ‘악성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해졌다.
남연철은 애꿎은 해킹 툴을 몇 번 흔들다 문득 얼려진 채팅창을 바라봤다. 30중 가까히가 자신의 덱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 채팅창을 봤다면 전익현의 채팅창이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한 채팅창이다.
듀얼 방사선에 자신도 피폭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한 남연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리 좀 됐냐?] [조금은. 세 번째 층계 공략할 멤버는 좀 구했어?] [아직.] [왜 아직 못 구하는 거야?] [몇 번 말했지만 30층을 공략하려는 듀얼리스트들 자체가 거의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파티가 벌써 있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 파티에 아카데미 학생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오지 않으려고 하지.]남연철은 입을 삐죽였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놈들을 날려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한가득이지만, 그랬다가는 안 그래도 없는 지원자의 싹마저 잘릴 게 분명했다.
[사실 오늘 지원자가 있긴 했는데.] [뭐? 지원자가 있었다고?] [있긴……했는데. 좀 이상한 파티라서.] [그냥 받을 수 있으면 받지? 왜. 우리 파티도 좀 이상하잖아.]아카데미의 학생과 매듭 두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라는 것도 이미 충분히 기묘한 조합이다.
[게다가 우리가 뭘 가릴 처지냐?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에.] [고양이 손이던데.] [뭐가?] [일단 돌려보냈어. 다른 멤버들이 온 상황에서 결정해야 될 것 같아서.] [네 결정을 믿는다니까. 나도, 신하연도 동의한 거잖아.] [그게. 웬만하면 그렇게 할 텐데……]긴 채팅의 공백 뒤. 새벽녘이 채팅을 한 줄 더 밀어올렸다.
[진짜 고양이 손이더라고.]남연철은 실눈을 떴다. 자신이 잘못 읽은 건가 했지만 텍스트는 전혀 변하지 않는다.
‘진짜 고양이 손’ 이라는 암호가 우리 「고르디우스」에게 있었던가.
“뭔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는 거래.”
직접 가서 확인을 해 보든지 해야지.
##덱 튜닝 (1)
나는 자리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었다. 공강시간이면 으레 한두 명씩은 있던 내 교실이 텅 비어 있다. 아무도 교실에 없었다. 도착하면 손을 붕붕 흔들던 신하연도, 나를 이기겠다며 바득바득 덱을 튜닝하던 여한설도, 움직이는 게 가능한가 싶은 덤벨을 흔들어대는 진슬아도, 아무도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나는 패닉에 빠진 채 휴대폰을 열어젖혔다. 휴대폰에 남겨져 있는 메시지들.
[오늘부터 당분간 휴강할게요.] [자체휴강.] [오늘부터 며칠간 빠질게요!] [며칠 못 갈 것 같아요.]네 명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휴강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것도 내 「자르카날」을 보기도 전에.
자르카날을 사용할 덱을 5개나 짜 온 데다가 예비 덱 25개, 추가 덱 리스트 37종, 튜닝 포인트 377개와 대체 카드 1082종을 준비해 온 나는 닭 쫓던 개 꼴이 돼 버렸다.
인간은 이 커다란 우주에서 외톨이다. 나는 절망에 빠진 채 자리에 앉아 내 「죽음의 부패 OTK」덱을 멍하니 바라봤다. 열심히 준비해 온 덱인데. 함께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주르륵.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상대할 만한 테뉴어 교수들이 있는 교수동으로 가는 수밖에. 테뉴어 교수 열댓쯤 상대하다 보면 튜닝 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교수동 출입권한은 이번에 준 정교수급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이미 얻어놨다.
침입한 다음 듀얼 선언만 하는 것으로 나는 편해질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쫓겨나긴 하겠지만. 인간은 종종 정해진 결말을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결심을 굳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옆. 이현일이다. 「소커아」세계관에서 손가락에 들어가는 강자이자, 이 아카데미의 학교장.
솔직히 말하면 충분히 상대할만한 적이다.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고 있군요. 아무래도, 학생들이 허락도 없이 탑에 간 것이 마뜩찮은 모양이네요.”
“…학생들이 탑에 갔어요?”
“네. 아마 21층 이후. 30층까지 도전하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몰랐다는 연기, 서투시군요. 그렇게 사람 죽일 것 같은 기세를 풀풀 풍기면 누구나 거짓말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아니. 오고 가면 이야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리고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죄다 같이 탑에 가면 어떡해. 오늘은 내가 덱 튜닝하는 날이라고. 하루종일 일정을 비워 놨는데.
내가 말이 없자 이현일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더니 내 표정을 읽어냈다.
“전익현 강사가 걱정하는 바가 이해는 가요. 하지만 전에 강사가 말했던 것처럼, 학생들은 충분히 강해요. 전익현 강사 입장에서는 탑에 간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학생들은 이미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했어요.”
“그런가요.”
그래도 죄다 같이 탑에 갔다니 조금은 걱정이 된다. 근래 들어서 나랑 듀얼을 잘 안 하려는게 이것 때문이었군. 탑 공략이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한 명쯤은 아카데미에 남아서 나랑 듀얼을 좀 해 주면 안 되는 건가?
층계 공략이야 여러명이서 할 수 있다손 쳐도 어차피 탑주 공략이야 혼자 하는 거잖아. 화장실 가는 여고생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닐 이유가 도대체 뭐야.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전익현 강사. 걱정이 많나 보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사람을 한 명 보냈으니까요.”
“안전 책임자요?”
“네. 전익현 강사만큼은 아니라도 믿을 만한 사람이랍니다. 그러니, 마음 푹 놓고 오늘은 아카데미 안에서 쉬도록 해요.”
이현일이 내게 자신의 「총장 권한 카드」를 보였다. 이 카드가 있으면 아카데미 안을 자기 안방마냥 돌아다닐 수 있다. 이 카드만 있으면 지금 최고의 상대를 만날 수 있는 「호박방」에도 들어갈 수 있다.
순식간에 불쾌감이 가라앉았다.
“후후. 누가 갔는지 알아챘나 보군요.”
“총장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거겠지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런 거겠지. 솔직히 걔들 한명한명 내놔도 딱히 큰일이 날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그러니 중요한 건 지금 눈 앞에 있는 총장 권한 카드다.
이현일이 총장 권한 카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눈도 같이 흔들거렸다.
“저를 그렇게 믿어준다니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이 카드를 내민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 거라고 생각해요. 아카데미 내부에 큰 일이 벌어졌거든요. 지하시설의 「무저갱」이 풀려나기 일보직전이에요. 테뉴어 교수들은 30층과 이후 층계들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내고 있고…. 그러니. 아시겠죠?”
「무저갱」이라면 지금 내가 있는 덱으로도 10분이면 처리할 수 있다. 그러면 남는 시간은 「호박방」에서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협상이다. 「무저갱」은 처리하는 데에 그리 쉽지 않다는 인식이 많은 몬스터. 대충 하루 정도 걸린다고 이야기하면 괜찮을 거다.
“…「무저갱」이라면. 아무리 저라도 하루종일은 걸릴 겁니다.”
“사흘 밤낮 정도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전익현 강사군요.”
제기랄. 한 일주일 정도를 이야기할걸 그랬다. 사흘에서 하루로 줄어들다니.
이현일이 흐뭇한 표정으로 총장 카드를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전익현 강사.”
“맡겨 주십시오. 아카데미의 위협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제거하도록 할 테니.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 총장으로써의 면이 안 서도록 하는 데 일가견이 있군요. 앞으로는 이런 부탁은 하지 않도록 할게요. 시간강사님께 너무 많은 폐를 끼치는 일일 테니까요.”
아니. 언제든지 부탁해 달라니까? 총장 카드를 빌려주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처리해 준다고.
내 간절하고도 아련한 눈빛을 받고도 이현일은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앞으로 총장 카드를 받아내는 일은 없을 듯해 보인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은 오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뿐이겠지.
나는 바쁘게 일어나 준비해 온 트렁크에 카드들을 싣기 시작했다. 내게는 시간이 많이 없다.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 * *
“…진짜 고양이라니.”
남연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네 명의 듀얼리스트. 정확히는 두 명의 아카데미 학생과 한 마리의 고양이, 한 마리의 열대어였다.
“이제 증명은 끝난 거지?”
「흙의 권사」를 처치해낸 고양이는 피곤하다는 듯 진슬아의 어깨에 몸을 기대 벌써부터 졸기 시작했다.
이미 난이도 있는 듀얼퍼즐을 푸는 것과 몬스터 두어 마리를 상대하는 것을 지켜본 뒤라 실력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물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뭐, 상관없지 않을까!”
신하연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신하연은 파티원으로 시레나가 들어온다는 게 퍽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다.
“둘이 아는 사이냐?”
“우리는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