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0
“…….”
새벽녘은 이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상황은 꿈이 아니었다. 옆에서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권보람이 있었으니까.
「모래알」카드들은 세 번째 층계에서 강제로 덱에 들어가게 되는 카드들이다. 방해 카드라는 것은 평범한 듀얼에서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무의미한 카드들.
이런 카드들을 덱에 넣은 채로 플레이하는 것은 테뉴어급의 듀얼리스트들도 자주 겪어보지 못하는 일이다.
방해 카드를 포함하는 지속적인 플레이에 노출되면 실수가 누적되기 마련이다. 이 실수들은 자연스럽게 잘못된 플레이로 이어지며, 이 잘못된 플레이들은 「모래알」의 누적으로 또다시 이어진다.
그런데 눈 앞의 듀얼리스트들은 어떤가.
덱에 쓸모없는 카드들이 들어가는 것까지도 모조리 상정하고 듀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전에 이런 방식의 듀얼을 해 본 적이 있나?”
“있죠. 그것도 엄청 많이요.”
“어디서?”
“강사님이 시켰어요. ‘너희도 덱에 쓰잘데기없는 카드들이 들어가는 고통을 알아야 해!’ 라면서 매주 한 번씩 시켰어요.”
“또다시 전익현이군.”
“그래서 이렇게 쉽게 올라오는 걸지도.”
‘아니. 그것만은 아니지만.’
새벽녘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카드들을 뽑아내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았다. 한 판에도 네다섯 번씩 필요한 카드들을 덱에서 뽑아내는 것은, 웬만한 테뉴어나 「매듭」멤버들보다도 듀얼혼이 높아야만 해 낼 수 있는 기예였다.
그 기예가 심지어는 덱의 카드들을 몇 장 튜닝을 거친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대체 전익현이라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단기간에 학생들을 이런 경지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단 말인가.
“으음. 그래서. 30층은 오늘 돌파하면 되는 거겠죠?”
“…「제왕」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가도록 하지.”
새벽녘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서 자각했다. 놀랍게도 자신은 권보람과 더불어 이 파티의 최약체였다.
“…정말. 말도 안 되네.”
“…허허.”
남연철이 선심쓰듯 전익현의 녹음 테이프를 빌려준다고 했을 때 빌렸으면 이 정도로까지 차이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전익현 강사의 녹화 테이프. 공부해봐야겠네.”
“그래야겠군.”
새벽녘은 권보람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파티가 강하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 「탑」의 공략은 모든 인류의 비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두주자인 데다가 수뇌부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파티의 짐이 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저 학생들. 일정은 어떻게 되지?”
“일어나서 잘 때까지 강의듣고, 튜닝하고, 듀얼하고, 약점 체크하고, 서로를 피드백해 준 다음에 자러 갈 때까지 내일 쓸 덱을 튜닝하지.”
“하루종일 듀얼만 하고 듀얼만 생각하는 건가?”
“대충 그런 셈이지.”
“인간이 아니라 듀얼 기계들이군.”
“듀얼 기계들이라뇨.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듀얼하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 정도면 건전한 듀얼리스트지.”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새벽녘은 생각했다. 눈 앞의 학생들은 이 세계에서 듀얼이 사라지고 나면 바로 중증중독치료센터 입원행이라고.
자신들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한참 전에 건너버렸다.
치료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짧게 잡아도 일이 년은 잡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오늘 30층 공략하는 거죠?”
신하연이 30층에 있는 거대한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아, 그, 그렇겠지. 체력도 크게 상하지 않았고. 「제왕」만 오면 공략할 수 있을 거다.”
“그 「제왕」이라는 사람은 언제쯤 오죠?”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한 번 체크포인트를 갱신하러 온다. 곧 오겠군.”
“그럼 오늘 30층 공략할 수 있겠네요.”
“…아마 그렇겠지.”
“30층 공략하고 나면, 「제왕」이랑 듀얼해 봐도 돼요? 얼마나 강한지 궁금한데.”
“안 무섭나? 「고르디우스」의 수장인데.”
“진짜 무서운 건 「슬라임 번식」같은 덱에 손발 묶인 채로 지는 걸 보고 무섭다고 하는 거죠. 전익현 강사님도 아닌데. 진다고 별 일 있겠어요?”
“맞아. 기껏해봐야 지면 몇 달 입원정도 하고 끝이겠지.”
“쓰레기같은 덱에 질 바에는 입원하는 게 훨씬 낫지.”
“맞아. 맞아.”
“…….”
새벽녘은 입을 닫았다. 누군가 그랬던가. 외눈박이들의 세상에서는 두 눈 가진 자가 이방인이라고.
스스로가 정상인임을 납득하기 위해 새벽녘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덱 튜닝 (3)
쿠우웅!
히든 보스 「무저갱」이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뭐, 간단하네. 역시 그래봐야 탑이 아닌 필드에서 만나는 보스지.”
10분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공략은 5분만에 끝났다. 자르카날을 사용한 마나 탄환 원턴킬 콤보가 네 턴만에 잡혔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아쉽지만 덱 평가도 하기 힘들다. 퀘스트 보상도 적당한 걸 주지도 않고.
나는 혀를 차며 바깥을 향해 걸어나왔다. 할 일이 끝났으니 나는 하루 내내 자유인의 신분을 확보했다. 「무저갱」공략이 끝났으니 빠르게 「호박방」을 향해 가 보도록 할까.
나는 타고 왔던 듀얼 바이크를 타고 아카데미 안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타다다닥!
내 질주에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저 듀얼 바이크. 고장난 거 아니야?”
“아닌 것 같은데. 점검등이 초록불이잖아.”
“근데 어떻게 걷는 것보다 느려?”
시끄러. 여러 번 말했지만 제한속도의 60% 아래로 달리는 게 모범적인 운전자의 자세라고. 어리석은 우민들 같으니. 근거없는 모략질이 아카데미 내부에 만연해있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걸어서 갈 수도 있지만 「호박방」은 「무저갱」이 있는 위치와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 인도어 게이머인 내 입장에서는 이런 거리를 걷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라는 말이지.
그렇게 나는 아카데미 부지 안에 있는 호박방이 있는 동굴로 향할 수 있었다.
[보안 카드를 입력하세요.]자, 이제 준비해 온 이현일의 카드를 입력하고.
삑.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안으로 입성.
[「호박방」으로 입장하셨습니다.]「호박방」은 수없이 많은 호박으로 둘러쌓여진 동굴이다. 동굴 안에 있는 것은 물론 이름에 걸맞는 호박들.
천장에서 내려온 빛이 호박에 난반사되어 아름다운 방을 연출하며 호박 안에 갇힌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이 장소가 특이한 것은 세 가지다. 하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방인데도 딱 적절하게 듀얼을 할 수 있는 필드가 세팅되어 있다. 물론 이 세계를 디자인한 개발진이 인위적으로 필드를 깎아내고 만들어낸 덕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듀얼.”
호박들 안에 들어 있는 몬스터를 비롯한 듀얼리스트들에 듀얼을 걸 수 있다.
그리고 이 「듀얼리스트」의 상대는. 내가 만나왔던 상대 중에서도 고를 수 있다.
거대한 호박 안에 갇혀 있는 「도플갱어」덕분이다.
[「호박 속의 도플갱어」에게 듀얼을 신청하셨습니다.] [바라는 상대를 선택하십시오.]이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호박방」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모두 완료한 다음 상대해 봤던 듀얼 상대를 만나서 덱을 테스팅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클리어 특전 룸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특전 룸의 존재를 알아챈 건 벡에게 꽤나 많은 버그들을 알려 줬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치명적인 버그들을 리포팅해주는 댓가로 특전 룸의 위치와 입장 방법을 알아냈지.
그 때 벡이 ‘리포팅할 버그들 더 없죠? 제발 없는 거 확실하죠?’ 라고 물었었는데. 연결되어 있던 통화품질이 갑자기 저하되는 탓에 내 대답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었지.
아무튼, 이 「호박방」의 존재는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상대를 선택하셨습니다.]“오랜만이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건 여전하군.”
[「이우주」를 상대로 선택하셨습니다.]“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도플갱어 주제에 죽었다 살아나는 거에 대해서 왈가왈부해서 뭐하냐. 어차피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몸이잖아.”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군. 나를 왜 소환한 거지?”
“덱 테스팅 하고 싶어서.”
“덱 테스팅이라면 네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있잖나. 설마 학생들이 너랑 듀얼 안 해 주는 건가?”
아닌데? 완전 잘 대해주는데?
“표정을 보니 정곡을 찔린 모양이군. 그러게 거지 같은 덱은 적당히 굴렸어야지.”
“쓰레기 덱 굴려서 친구창에 친구도 없었던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자해하는 것은 거기까지 해라.”
이 싸가지없는 놈과 이야기하는 건 상성이 그다지 안 좋다.
“이 방은 뭐 하는 곳이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클리어 특전 룸이야. 원하는 상대를 골라서 무제한으로 듀얼할 수 있는.”
“그러면 데미지는 얼마 받건간에 상관없다는 말이군.”
“아마 그렇겠지?”
예전의 나. 아니, 이우주는 몸에 있던 외골격을 귀찮다는 듯 하나하나 벗었다.
“외골격은 갑자기 왜 벗냐?”
“평소에 덱을 굴리던 상태와 달라서 거추장스럽거든.”
놈은 간단한 차림새가 된 채 무표정하게 덱을 확인했다. 덱을 확인한 이우주는 평소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쓸 덱은 그대로 해도 되나? 어떻게 해 주길 바라지?”
“뭐야. 너. 이우주 맞냐?”
버그인가. 사회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싸이코패스의 입에서 내 덱 튜닝을 도와주겠다는 말이 순순히 나오다니.
“덱 튜닝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 협력해 줄 생각인 것 뿐이다.”
“그야 그렇지만. 넌 덱 손대는 거 싸이코처럼 싫어하잖아.”
“전력이 약화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싸이코는 너다. 내가 아니라.”
얘 진짜 짜증나네. 딱 봐도 친구라고는 없이 방구석에서 듀얼만 하는 놈의 사회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쉽게쉽게 협력해주네.”
“나도 네놈이 심장을 어떻게 클리어할지 궁금하거든. 강구해놓은 방법은 있나? 놈의 특이성은 글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인데.”
“음. 일단 준비를 시작하긴 했어. 두 장짜리 카드 콤보부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작 카드 콤보라니. 어떤 콤보이건 간에 겨우 두 장으로는 할 수 있는 플레이는 별 게 없다. 좀 더 네 작은 머리를 굴려보도록.”
“듀얼.”
이 싹퉁머리 없는 놈을 참교육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 * *
“……어처구니가 없는 콤보로군.”
내 「자르카날」콤보에 당한 이우주의 촌평이었다. 한 대 맞아서 죽고 다시 살아났는데도 생각보다 쌩쌩하네.
“꽤 쓸만하지?”
“확실히. 마나는 소울 커맨더스의 근간이지. 플레이의 한계점을 지정하는 마나의 풀을 늘린다는 건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마나가 무한하진 않다는 거지?”
“맞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무한 콤보라는 것은 실제로는 무한하지 않다.
게임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일들에 존재하는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한 턴에 주어진 시간은 90초. 그 안에 모을 수 있는 마나는 많아 봐야 270 가량이겠군.”
“보통이라면 그걸로 충분하고도 남지만……”
“상대가 「심장」이라는 게 문제군.”
이우주는 턱을 괴고 생각에 빠졌다.
“만약 시간이 무한했다면 서치 카드나 발견 카드를 통해서 특수승리 카드들을 제작해서……”
“특수승리 카드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거 막힌지 꽤 오래 됐는데. 탑주전에서는 특수승리 카드들이 발견 안 돼.”
“……왜 막힌 거지? 보통은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을 위해서 살려둘 텐데.”
“그게. 「카드 고정」소울 스톤을 써서 덱을 고정해서 쓸 수 있다는 게 걸렸거든. 베타 테스터 중 한 명이 「엑조드」다섯 장만 남기고 카드 다 증발시켜서 무한 승리를 하다가 패치당했어.”
“별 또라이같은 자식이 세상에 다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