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1
“방금 말 당장 사과해.”
“네가 한 짓이었나?”
“그래.”
“알고 있었다.”
“…………”
나는 이우주를 노려봤다.
“생각해놓은 카드 콤보들은 좀 있나?”
“일단은. 심장을 확실하게 이길 방법이라고는 생각이 안 되지만. 실험해 볼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몇 있지.”
여전히 승리는 머나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가져온 덱을 이우주를 통해 시험했다. 몇 개는 통했고, 대부분은 폐기됐고, 통한 덱들과 콤보는 진지하게 튜닝에 들어갔다.
“별별 미친 콤보들을 다 생각해냈군.”
「복싱로봇 무한 펀치」덱에 당한 직후 이우주가 말했다. 무한 궤도를 만드 복싱 로봇의 뎀프시롤에 999히트를 당했으니 정신이 어지러울 만도 하긴 하다.
“내가 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너라는 흑역사가 믿어지질 않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냥. 즐겁게 듀얼하는 법을 배운 거지.”
“그러니까. 왜 즐겁게 듀얼을 하자고 마음먹은 건지 묻는 거다.”
덱 메이킹과 튜닝은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일이다. 세부 덱 튜닝은 시간이 미친 듯이 들어가는 일이다. 이우주를 이겼던 카운터 덱이나 깜짝 덱 개발은 조커 카드로 둘셋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족하다.
시즌이나 대회에 조커 덱은 기껏해야 10개 내외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조커카드는 대회에서 사용 가능한 것만 세도 3000종류가 넘어간다. 이쯤이면 조커카드만으로 만들어진 플레이라고 봐도 딱히 틀리지 않는다.
물론 ‘즐겁게 듀얼한다’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듀얼을 하자’ 라는 내 모토에는 이보다 적절한 듀얼 스타일이 없지만.
이우주는 묻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조커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수없이 많은 카드들 가운데서 실용성이 없는 카드들도 꾸역꾸역 찾아내고, 쓰이지도 않은 것같은 콤보들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플레이에 카운터가 될 만한 카운터덱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뭐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거에 여한설에게 했던 대답과 완전히 같다.
“시간은 유한하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내 삶이 유한하듯이. 그리고 내 첫 팬이었던……서윤하에게 주어졌던 시간이 유한했던 것처럼.
* * *
“새 파티원. 「제왕」이라고 한다. 잘 부탁하지.”
흑일삭은 냉정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냉정함은 그의 리더십을 지탱하는 커다란 무기였다.
냉정함과 차분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듀얼리스트는 상대방을 위압할 수 있다.
그렇기에 흑일삭은 최대한 자신의 냉정을 가장했다.
“와아아! 반가워요! 무슨 덱 굴려요? 특이성은 뭐에요? 본인의 약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비록 앞에 서 있는 신하연이라는 아카데미 학생이 자신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어대고 있지만.
“고르디우스의 수장이라길래 조금 더 단련된 듀얼근을 바랬는데. 너무 근육이 빈약하네. 이두근과 삼두근이 좀 더 발달하지 않으면 안정된 듀얼 자세가 안 나와.”
진슬아라는 학생이 자신의 몸에 있는 근육을 확인하며 헬스장 관장같은 품평을 내려대고 있지만.
“덱 리스트. 얼마에 팔 거지?”
여한설이 자신의 덱 리스트를 팔라는 표정으로 블랙 카드를 든 채 자신의 덱을 쳐다보고 있지만.
흑일삭은 냉정할 수 있었다. 아마도.
파르르.
눈가가 파들거리기는 했지만 매일 아침 먹는 비타민 섭취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냉정이 풀려서는 아니었다.
“……전익현의 학생들이 분명하긴 하군.”
“강사님을 잘 알아요?”
“어느 정도는 알지.”
흑일삭은 전익현이 회귀자라는 것은 구태여 밝히지 않았다. 회귀자들은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자살이나 그에 준하는 행동을 통해 다시 세계를 되돌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흑일삭이 찾아봤던 회귀 관련 소설 일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패턴이 그랬다.
그러니 전익현이 회귀자라는 것은 절대적인 비밀이다.
‘그렇다는 건. 저 열대어와 고양이가 수호자인 「시레나」와 「스핑크스」인 것도 비밀이겠지.’
“열대어와 고양이의 이름은 뭐지?”
“시레나랑 스핑크스.”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 오히려 나무를 숲에 숨기는 격인가. 흑일삭은 최대한 평정을 가장했다. 구태여 파티의 구성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저들이 선택되어 올라오는 과정에는 분명히 전익현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을 터이므로.
“덱 리스트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겠지?”
“충분하다.”
새벽녘의 대답에 흑일삭은 고개를 끄덕였다.
“30층은 거대한 콜로세움으로 되어 있다. 도전자들은 자신을 증명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지.”
흑일삭은 ‘도전자 등록소’라고 적힌 입구로 파티원들을 안내했다. 입구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고양이 귀가 달린 수인이었다.
“콜로세움 듀얼을 신청하러 왔는데.”
고양이 수인은 파티를 슥 훑어보더니 한 마디를 꺼냈다.
“……미안하지만 고양이같은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다냥.”
냐아앙! 냐아아아!
애완동물. 그리고 고양이라는 말에 스핑크스의 분노가 타올랐다. 시레나는 뭐가 그리도 기쁜지 어항을 빙글거리며 바쁘게 회전했다. 스핑크스가 못된 취급을 받는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빙글빙글빙글!
찰방찰방찰방!
“게다가 열대어까지…… 애완동물을 두 마리나 데려 오다니. 문제가 많은 파티다냥.”
멈칫.
빙글거리며 돌던 시레나의 회전이 딱 멈췄다. 보아하니 수인이 방금 말한 ‘애완동물’의 카테고리에 자신이 속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충격을 적잖이 받은 표정의 시레나를 놔둔 채 흑일삭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 둘도 대진표에 들어간다.”
“……진심이냐냥?”
“진심이다.”
“……별 미친 놈들이 세상에는 다 있는 것 같다냥.”
흑일삭은 반론하고자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하지만 맞는 말을 반론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덱 튜닝 (4)
30층. 「콜로세움」은 강자존의 장소다. 투사들이 끝없는 혈투를 벌이며, 이긴 자가 패자 위에 서는 장소. 수없이 많은 군중들도 저마다의 투사이며, 투사들의 정점이 「콜로세움」이라는 장소의 왕. 「탑주」로서 군림한다.
“그러니 왕좌가 비어 있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데.”
과거의 콜로세움의 주인이던 스핑크스가 수호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이후, 「신앙거석」이 이 층계의 탑주로서 계속해서 군림해 왔었다.
새벽녘은 이 상황에 대해서 대략은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흑일삭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딱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보면 알아’라는 표정만을 사람 열받게 보냈을 뿐.
“애초에 10명이서 한 「탑주」에게 도전하는 것이 기본 아니야?”
“우리는 아홉 명인데.”
새벽녘, 아카데미의 학생 네 명, 흑일삭, 권보람, 스핑크스와 시레나. 아무리 헤아려 봐도 듀얼리스트는 아홉 뿐이다.
[아니. 이제는 열 명이라네.]바닥에서 스르르 나타난 풀무불꽃이 대답했다.
“타이밍 좋게도 나타나시네요.”
[땅 아래에서 나올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네.]풀무불꽃의 훈수는 듀얼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니 여전히 아홉 명이기는 했지만.
지금 파티원들이 있는 곳은 투사들이 경기 전에 대기하는 격리된 우리 안이었다.
우리이라고는 해도 창살 사이의 간격이 넓어 스핑크스는 마음대로 오가고 있고, 어차피 물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시레나도 있는 데다가 물리적인 물체들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풀무불꽃까지.
사실 말이 철창 안이지 사실상 반쯤 자유나 다름없는 상태다.
[「콜로세움」의 자격증명이 곧 시작됩니다! 과연 이번에 덤벼든 겁 모르는 도전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대기실 너머로도 들리는 쩌렁쩌렁한 사회자의 목소리. 그리고 함께 들려오는 관중들의 함성소리.
[겁 모르게 도전한 도전자들이 입장합니다!]대기실 옆에서 기다리던 오크 진행도우미들이 우리를 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기실을 나오자 쿵쿵거리는 북소리와 수없이 많은 관중들이 파티원들을 맞았다.
“저 우리 안에 있는 게 뭐야?”
“고양이 같은데?”
“저 어항은 또 뭐고?”
“솜털도 채 사라지지 않은 꼬맹이들도 있고. 우리 「콜로세움」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잔뜩 날 선 분위기에 새벽녘은 잠시간 목을 움츠렸다. 권보람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전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어디를 가도 높은 대우를 받아왔다. 어딜 가든 자신들을 우러러보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아온 학생들 입장에서 이렇게 야유가 쏟아지는 환경에 처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듀얼이 멘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학생들이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자신들에게 악재나 다름없다.
“저쪽에서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라. 결국 듀얼의 신은 잘 하는 자의 손을 들어 주시니까.”
새벽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멘탈이 부서지고 있을 학생들을 다독였다.
그런데, 그의 걱정은 모두 기우였던 모양이다.
“뭐라고 꽁시렁거릴 거면 직접 덤벼! 다 상대해 줄 테니까!”
“우민들이 헛소리를 하는군.”
“으음. 역시 「물의 침묵」은 빼는 게 좋으려나.”
네 명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창살은 흔들어대는 남연철.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여한설. 그러거나 말거나 덱 튜닝을 하는 신하연.
두드득!
진슬아는 아무 말 없이 창살을 좌우로 벌리기 시작했다. 쇠로 된 창살이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 모양으로 뜯어져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넘어서서 오히려 반가워하는 기색까지 엿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베테랑인 자신보다도 훨씬 상태가 양호한 상황.
“…대체 어떻게 이렇게 괜찮을 수 있는 거지?”
“거야 강사님이 매일같이 하는 피드백을 빙자한 정신공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하루의 시작이 어제 잘못한 거 꼬집는 것부터 시작하잖아.”
“게다가 야유에 신경쓰면 듀얼에 집중 안 한다고 정신공격하고.”
“심지어 죄다 맞는 말만 해서 더 짜증나. 지금처럼 근거 없는 시비면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텐데.”
“사람 열받게 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니까요. 전익현 강사님은.”
끄덕끄덕.
네 명의 학생들. 거기에 스핑크스와 시레나. 풀무불꽃, 거기에 왜인지 흑일삭까지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무튼 멘탈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는 것은 호재 중의 호재다.
[자격증명은 10전제로 진행됩니다! 도전자들은 콜로세움에서 선별된 투사들과 몬스터를 상대하게 되며, 10명이 합쳐서 100마리 이상의 적을 이겨야만 합니다!]“흐음. 룰이 좀 바뀌었는데?”
“탑주전은? 탑주는 어딜 간 거야?”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흑일삭이 입을 열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우리 입장에서야 편한 일이지. 「신앙거석」은 상대하기 정말로 까다로운 탑주였으니까. 그보다 미리 충고 하나 해 두지. 전대 탑주였던 「신앙거석」에 대해서는 관중석에 들리게 이야기하지 말도록.”
“왜요?”
“설명하자면 귀찮다. 그냥 하지 마라.”
[자! 첫 번째 도전자는 누굽니까!]첫 번째. 아무래도 유대를 오래 쌓아온 파티의 경우에는 가장 믿음직한 멤버가 선봉을 맡게 된다. 유대고 자시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파티의 경우에는 최대한 자신의 순번을 뒤로 미루고 싶어할 터.
첫 멤버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첫 번째 멤버는…”
“가위 바위 보!”
“지금 뭐 하는 거지?”
“처음 나갈 멤버 뽑는데요. 이긴 사람이 나가는 거에요. 아! 새벽녘 씨는 안 냈으니까 탈락!”
안 내면 탈락이라니. 그 말은 마치 나가지 않으면 손해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목숨을 걸고 콜로세움에 나가는 것을 반기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듀얼에 미친 사람도 아니고. 정상인이라면 최대한 뒤에 나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맞다. 여기, 정상인 없었지.’
새벽녘은 스스로의 판단에 자책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듀얼중독자 농도가 중증 격리 수용소보다 높은 파티가 바로 이 파티인 것이다.
“야호!”
피 튀기는 가위바위보의 첫 승자는 신하연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기쁜 표정으로 덱을 쥐고 창살 밖을 나섰다.
“으으으.”
“제기랄. 어떻게 해야 가위바위보를 이길 수 있는 거야!”
생사가 걸려 있는 듀얼에 늦게 나가게 된 상황. 그런데도 정말로 슬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새벽녘은 이 파티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 것인지를 다시 되짚어보려 했다.
구태여 깊게 되짚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전익현이었다.
* * *
“…그래서 자면서도 자각몽으로 듀얼한다고 하니까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고.”
“확실히. 기본기에 불과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쳐다보는 건 이상하긴 하군.”
역시 이우주다. 이 정도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양 손으로 각기 다른 듀얼필드를 돌리며 휴대폰으로 모바일 대전까지 동시에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