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5
“신하연. 너 전익현한테 반년동안 카드 받아본 적 있어?”
“으음… 얼마 전에 「비누」카드 받았어.”
“그건 카드가 아니라 비누잖아.”
“…아무튼 받았어.”
그나마 가능성을 옹호하던 신하연의 어깨마저 축 쳐졌다.
“그럼. 다 포기하는 거네. 좋아. 불가능한 것을 포기하는 것도 오히려 좋을 때가 있는 법이지.”
짙은 패배자의 기색이 파티 전체에 감도는 것을 본 서윤하가 아쉬움의 한숨을 토해냈다.
“아쉽네. 보통 친밀도가 가장 높은 카드들을 받으면 「특이성」의 효율이 마나 3 정도까지도 올라가는데.”
“…하지만 때로는 도전정신을 발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나는 도전하지.”
“나도.”
“도전이 없다면 인생은 가치가 없는 것.”
서윤하는 눈 앞의 이우주화가 상당수 진행된 여학생들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저 좋은 특이성 준다니까 눈이 안 뒤집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스토리 디렉터들이 보면, 이우주 죽이려고 하겠네.’
뭐, 중요한 일은 아니다. 이우주를 죽이고 싶어하는 개발진은 평소에도 차고 넘쳤으니까.
* * *
[오늘 탑 공략 마치고 해산했어요.]“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구태여 파티가 몇 층까지 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덱의 세부 조정을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 올라가고 있겠지.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탑을 얼마나 올라왔는지는 나에게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가장 먼저 올라가는 것은 나일 테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공략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다른 카드들을 얻어내는 것.
전에도 이야기했듯 「파워」카드들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얻어야 할 카드들이다.
비용을 내서 발동을 해야 하는 카드들과는 다르게 「파워」카드들은 패에 있기만 해도 그 가치가 커다란 카드들이니까.
얼마 전에 이우주를 처치하고 얻었던 「메아리」카드의 경우에는 패에 있는 카드들의 효과를 두 번 발동해 주는 카드다.
「메아리」의 경우에는 단순히 한 턴에 한 번 뿐이지만, 이 제한이 없는 파워 카드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
“문제는 모조리 아카데미의 이벤트와 겹쳐 있다는 거지만.”
겨울의 초입마다 찾아오는 아카데미 문화제가 곧 열린다. 말은 겨울의 초입이지만 이미 칼바람이 매섭다.
따뜻한 온돌방 안에서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면서 덱 튜닝과 듀얼을 한다.
모든 TCG게이머라면 꿈꾸는 낭만은 이 세계에 없다. 이 세계의 듀얼은 철저한 아웃도어 컨텐츠이며, 카드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냉혹한 듀얼뿐이기에.
그래도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전번에는 휴대폰을 빼앗기는 온천에 가서 어쩔 수 없었지만 문화제에서조차 휴대폰을 빼앗지는 않을 테니까.
모소커 굴리면서 적당한 학생 한 명 데리고 「유성우」이벤트를 관람한 다음, 「공허 방패」나 먹고 집으로 돌아와야지.
나는 따뜻한 방구석에 앉은 채 해태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번 이벤트는 특별히 대단한 것 없는 이벤트다. 평화로운 연말을 준비하는 평범하고 별 일 없는 이벤트.
내 인생이 꽤나 꼬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이벤트까지 망할 정도로 꼬일 정도로 재수가 없지는 않다.
아니, 뭐, 좀 꼬인들 어떠랴. 「모소커」가 있으면 결국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간에 나는 버틸 수 있다.
* * *
탑에서 돌아오자마자 모여앉은 학생들과 강사들. 그들에게서는 기묘한 집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집중력이라고 해 봤자 남연철이 두드려대는 키보드 화면을 바라보는 게 전부지만.
[서버 HACK 준비 완료.]“다 된 거야?”
“어. 문화제 당일에 맞춰서 서버를 터트려버릴 거야. 관련 프로그래머들 컴퓨터도 모소커 서버엔 접근금지로 만들어놓을 거고. 복구하는 데 아무리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겠지.”
“그냥 모소커를 완전히 없애 버리면 안 돼? 아니면 한설이가 모소커 회사를 완전 다 사 버리던가.”
“그러면 전익현이 한 시간도 안 빠지고 두 눈 시뻘개져서 듀얼 걸어댈 건데. 감당할 수 있어? 네가 그 사이코랑 몇 달이고 듀얼해 줄 거야?”
“…아니.”
“그러니까 일시적으로만 다운시키는 거야.”
타당한 반론에 신하연이 입을 닫았다.
‘고작 전익현에게 카드를 받아내기 위해서 게임 서버를 셧다운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신하연은 자신의 「마나 해일 토템」을 생각했다. 서윤하의 말에 따르자면 전익현에게 무언가 선물을 받는다면 마나 효율이 2에서 3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사용한 카드당 마나를 돌려받는 「마나 해일 토템」을 생각한다면, 한 턴당 받아내는 마나 코스트는 아무리 적어도 4 이상.
‘할 만 하네.’
게다가 자신이 무작정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능력이 강해지면 탑을 올라가는 속도도 빨라질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멸망할 확률도 줄어든다.
‘게다가 「모소커」는 불법 게임이잖아. 잠깐 셧다운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닐 거야.’
그러니, 이 방법은 괜찮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거다.
“좋아. 이제 모소커 서버 다운, 출구 봉쇄,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모든 듀얼 필드 무력화가 끝났어. 가장 간단한 문제들은 모두 해결된 셈이지.”
지금까지는 쉬운 일이었다. 남은 것은 가장 커다란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라면야 물론.
전익현에게 카드를 받아내는 것이다.
##카드잡기 (2)
나는 경비실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하릴없이 경비실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것은 권보람 때문이다.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으니 경비를 봐 줬으면 좋겠다나.
비정규직은 높으신 분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소리를 하면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이행할 수밖에 없다.
“오늘 하늘 왜 이렇게 어둡냐.”
가을을 넘어서서 겨울이 훌쩍 왔는데도 폭풍이라도 밀어닥칠 것만 같은 날씨다.
뭐, 내 마음도 날씨 따라 우중충해져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듀얼이 전면 금지됩니다.]“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에서 소울 커맨더스를 금지하는 게 맞는 거냐? 대학 축제할 때에도 도서관은 열잖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경비실 창문 너머에 있는 신하연의 대답.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이면 하루종일 소울 커맨더스만 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인데, 아카데미에서 쉬는 시간까지 주려고 하다니.
이래서 이 나라가 뒤쳐지는 거다. 듀얼리스트로 태어났으면 하루 24시간 중에 최소한 16시간은 듀얼을 하는 게 기본이 아니던가.
이런 본분을 다하지도 않은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지난 번 온천에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남녀가 짝지어 쌍쌍이 움직이는 학생들.
“오늘 뭐 할까?”
“음. 럭비부에서 구연동화 한다는데. 보러 갈까?”
“와! 재밌겠다!”
여학생이 까르르 웃는다. 재밌기는 개뿔. 구연동화가 뭐가 재밌냐. 유치원생이냐? 럭비부 애들이면 덩치도 산만한 놈들인데 그런 애들이 구연동화 하는게 재밌어?
“구연동화가 재밌는 게 아니라, 누구랑 같이 하느냐가 재미의 요소인 거에요.”
“근데 너는 왜 내가 있는 데 달라붙어 있냐?”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서 1번을 받았거든요.”
“누구랑?”
“안 알려줄 건데요?”
니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랑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너는 어디 안 가냐? 경비실 앞에 있어도 돼?”
“갈 데가 경비실인데요?”
“왜. 너도 권보람이 경비 일 시킨 거야?”
“아니요?”
“그럼 왜 경비실에 온 건데?”
나는 신하연을 노려봤지만 언제나처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보다 듀얼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니. 너무하잖아. 거기에 듀얼 필드도 죄다 수리중이고.”
“그러게요. 운이 없으셨네요.”
“근데 너는 왜 그렇게 방긋방긋 웃냐?”
“글쎄요?”
듀얼을 못하는 이런 상태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다니. 1년 헛가르쳤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외부로의 출입 통제도 안 되고, 오늘같은 이벤트일은 몬스터 등장도 억제되는 상황.
외통수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나는 평소처럼 머릿속으로 듀얼이나 굴리면서 「파워」카드나 얻을 생각을 해야겠다.
이번 겨울 축제 이벤트에서 중요 카드인 「유성우」를 얻어낼 수 있다. 얻어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카데미의 어느 건물이든 최상층에 올라가서 12시 정각부터 내리는 유성우를 같이 보며 소원을 비는 것.
유성우가 내리는 시간도 꽤나 널널하다. 12시부터 6시간 가량 산발적으로 내리니까, 대충 6시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지.
이 이벤트를 마지막으로 한 게 꽤 오래 전이라 패치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아마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유성우」를 얻지 못하게 될 일은 없다는 점이다.
띠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축제 마지막에 있을 「유성우」를 누군가와 함께 구경할 것.] [필요 조건 : 함께하는 캐릭터와의 친밀도가 A 이상일 것.] [보상 : 파워 카드 「유성우」]‘…친밀도?’
친밀도가 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관계성」수치는 확인이 가능한데, 친밀도라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수치다.
이 친밀도가 퀘스트에 포함되다니.
내가 마지막으로 「유성우」카드를 얻은 뒤에 잠수함 패치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본래라면 당황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특별한 스테이터스들을 물어볼 수 있는 재원이 있다는 말이지.
나는 남연철의 해킹 툴. 정확히는 벡이 들어가 있는 기계에 문자를 보냈다.
[친밀도가 뭐냐.] [친밀도요? 그거, 캐릭터들이랑 친하게 지내면 올라가는 수치에요.] [언제 이딴 걸 만들어서 넣었냐?] [알파 테스트부터요. 형 오기 전부터 있었어요.] [난 들은 적 없는데.] [튜토리얼부터 나오는데요.] [난 본 적 없어.] [안 본 거겠죠.]근거없는 비방을 한 귀로 흘려버린 나는 벡에게 친밀도에 대해서 물었다.
글렀다. 카드 게임 개발자라는 놈이 비텍스트적인 효과를 이렇게 좋아해서야.
카드 게임의 기본은 효과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확실하게 명시해놓는 거다.
효과를 숨겨놓는 것은 짜증나는 RPG 게이머들이나 좋아하는 거지. 우리 TCG 게이머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고!
[친밀도란 거. A면 높은 거냐?] [꽤 높긴 한데, 정상적으로만 플레이해 왔다면 쉽게 쌓을 수 있는 수치죠.]정상적으로 플레이하면 된다라. 그러면 나는 충분하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상적으로 플레이했을 경우니까… 형은 A가 힘들지 않을까 싶긴 하네요. 누구랑 했던간에.] [뭐래. 나만큼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어딨다고.] [여기 와서 주구장창 듀얼말고 다른 거 하지도 않았으면서.]소울 커맨더스 하는 세상에 왔는데 소울 커맨더스를 해야지. 그럼 도대체 다른 뭘 해야 되는데? 연애라도 하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얘는.
[시꺼. 이 친밀도 올리려면 뭐 해야 되냐?] [더 이상은 못 알려줘요. 굿 럭.]더 알려줄 수 없다는 거. 가면 갈수록 핑계처럼 들리는데.
하지만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단순히 소울 커맨더스만 주구장창 한다고 올라가는 수치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유성우」를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말이다.
「유성우」를 얻지 못한다는 상상만으로 눈 앞이 검게 점멸했다.
“으으윽!”
“강사님? 무슨 일이에요!”
후욱. 후욱.
나는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이토록 잔인한 상상에도 내가 기절을 하지 않다니. 내 정신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는 건. 누구를 데려갈지도 잘 생각해봐야 된다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