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6
“강사님. 괜찮은 거에요?”
나는 신하연을 바라봤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내가 구해줬던 학생. 그리고 동시에 내 열렬한 추종자 중 한 명.
이 정도면 친밀도가 A는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조금 부족할지도. 이 거지같은 세계의 말아먹은 밸런싱을 보건데 방심해서는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친밀도를 올려놔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이 친밀도 수치를 올리느냐인데. 유성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0시간 정도.
그 사이에 이 친밀도인지 뭔지 하는 걸 A까지 올려놔야 한다.
서로 친해질 때 하는 일이 뭐가 있지?
나는 원래 세계에서 친구창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냈다. 보통은 소울 커맨더스를 하면서 친구추가를 받거나, 오프라인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연락이 되거나, 대회에서 만난 뒤에 친구가 되거나.
…어째 죄다 듀얼뿐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듀얼로 친해지는 건 지금은 힘들다.
‘그렇다는 건….’
듀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친해지는 방법.
선물이다.
“우리가 만난지도 꽤 오래됐네.”
“그렇죠?”
“그러고보니 별로 너한테 해 준게 없는 것 같은데.”
“으음. 얼마 전에 비누 카드 주셨잖아요.”
“그걸로는 부족한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신하연이 잠시간 갈등했다.
“어…강사님이 지난번에 쓰던 「미래 융합」이요?”
“그건 말고.”
“그것보단 안 좋은 카드지만…「심해의 수호자」는요?”
“그것도 말고.”
“한 칸 더 낮춰서 「시레나의 수통」도 좋아요.”
“그것도 말고.”
“…….”
신하연이 나를 불만 가득한 눈으로 노려본다. 뭘 그렇게 노려봐. 사람한테 카드를 요구해 놓고 받을 생각을 하는 게 비정상 아니냐?
게다가 어째 애가 원하는 게 죄다 내가 쓰고 있는 덱의 키 카드거나 오래 써 온 카드들이다.
속내를 간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덱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 전력을 약화시켜서 나를 이겨먹겠다는 속셈이겠지. 사악하기 그지없는 속셈이다.
듀얼 환경이라는 것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변하게 될 지 모른다. 듀얼리스트는 최대한 많은 카드들을 카드 슬롯에 확보해 놓고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카드는 말고. 뭐 필요한 거 없어? 산타 클로스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
“…나 짜증나는 사람 몸에 꽂을 전기 충격기요.”
그건 남연철한테 빌려놓은 게 있긴 한데, 왠지 심각하게 불길한 예감이 드니 그만두자.
나는 머리를 긁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확실히 카드를 나한테서 받고 싶기는 한 모양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카드에 미쳐 있는 세상이다.
나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서로 친해지는 데 카드를 주고받는 게 이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카드 선물이라. 나는 눈을 감고 내 덱에 있는 카드들 중에 신하연에게 줄 만한 카드들이 있는지를 천천히 고민했다.
물론 그런 건 없었다.
쓸모없는 카드면 내 덱에 안 들어가 있지.
* * *
신하연이 시무룩해진 채 떠나가는 데에는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평소에는 불도저처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매달려대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다.
왜 이렇게 포기가 빠르냐고 물었더니. 뭐라더라. ‘한 명당 30분이거든요.’ 라던가. 뭐가 30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내 카드들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뭘 그렇게 흐뭇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전익현! 표정 짜증나!]뿌듯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댄 채로 머릿속으로 듀얼을 하고 있는데, 많이 들어 본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시레나와 스핑크스다.
“너희는 왜 여기 와 있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중요한 것 같은데.
“왜 왔냐? 아카데미 오는 거 멀고 추워서 싫다고 그렇게도 버둥거리던 것들이.”
평소라면 난방기 온도를 끝까지 올려놓고 구들장에서 식빵을 굽고 있을 스핑크스가 나오다니.
그것도 시레나를 끌고.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슬슬 연말이로군.]“그래서?”
[그동안 우리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지.]“그래서?”
[들어 보니, 인간들은 연말이 되면. 자신들이 한 일에 맞춰서 보너스를 받는다고 하던데.]“그래서. 뭐 어쩌라고.”
[보너스로 카드 내놔.]왜 둘이서 나타났나 했더니. 팀으로 돌아다니는 노상강도였구만. 무슨 보니와 클라이드냐.
[보너스! 시레나 보너스 받아야 돼!]“너희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보너스는 일을 해야만 나오는 거다.”
[우리도 열심히 일했다! 신성한 노동의 땀을 흘려왔단 말이다!]“너희가 무슨 일을 했는데?”
[시레나 카드 만들었어!] [나또한 네놈이 요구하는 카드들을 열심히 만들어왔다!]너희 카드 만드는 거, 그냥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되는 일이잖아.
“발이랑 지느러미 까딱이는 건 일이라고 안 해.”
[네놈은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손가락 까딱이면서 일하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더냐!]“…그건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한 거고.”
[게다가 우리는 카드 만드는 것 말고도 바쁘게 일했느니라!]“뭘 바쁘게 일했는데?”
[시레나 열심히 헤엄쳤어!] [본 스핑크스도 인간 위에 최선을 다해 군림했느니라!]얘들은 왜 헤엄치는 거랑 사람들 경멸하는 걸 계속해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둘이 죽이 척척 맞는 것을 보면 입을 맞춰서 온 것이 분명했다. 처음 올 때는 싸워대더니 근래는 내 뒷담으로 퍽 친해져 버렸다.
[시레나 헤엄 안 치면 사람들 슬퍼해! 사람들 슬프면 세상도 슬퍼져!] [군림하는 자가 없다면 세계는 파멸하고 마는 것이니라!]이 패턴을 참아주는 것도 슬슬 한계다.
슬슬 만들 카드들도 거의 다 만들었는데, 얘들 진짜 쫓아낼까. 안 그래도 하루종일 난방 켜 놓는다고 난방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카드를 달라고?”
[그래! 이제야 말을 알아듣는군!] [전익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똑똑해졌어! 시레나 기뻐!]“안 주면, 어떻게 할 건데?”
[아… 안 주면?]시레나와 스핑크스의 눈이 마주쳤다.
이 자식들. 카드 안 주면 어떻게 할 지는 생각도 안 했구만.
잠시 주춤거리던 스핑크스가 분노에 찬 채 입을 다시 열었다.
[본 수호자는 여기서 네놈이 우리들에게 보너스로 카드를 주지 않으면, 노조를 결성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하노라!]“노조를 결성하면 어떻게 되는데?”
[네놈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에 돌입할 것이다!]“파업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렇군요. 무시무시한 일이네요.
나는 권보람에게 위임받은 아카데미 관리 업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했다.
불법으로 아카데미에 침입한 두 마리의 동물을 아카데미 밖으로 쫓아냈다는 말이다.
##카드잡기 (3)
냐아아! 냐아!
퐁당! 퐁당!
문 바깥에서 구슬프게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와 물고기 퐁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코코아를 홀짝였다. 머릿속에 당분이 들어오니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은 돌아온다.
“뭐 하고 계시죠?”
무슨 바톤 터치라도 하듯이 나타난 권보람이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그냥. 앉아 있는데요.”
“꽤나 여유로우시군요.”
“아무래도 경비실이란 게 그렇죠.”
“전익현 강사는 언제나 침착하네요. 세상이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다면 침착해야만 해결할 수 있고,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을 써 봐야 해결할 수 없으니 마음에 두지 않는 게 편하죠.”
나는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권보람은 내 대답에 꽤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모르겠네요. 대충 두세 달? 그보다 적을 수도 있고.”
“세계는 멸망하고 마는 걸까요?”
“그러지는 않을 걸요.”
내가 만들어놓은 덱을 가지고 가서 심장과 자폭을 하면 이 세계는 멸망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이 세상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이 확정이라는 이야기지.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배드 엔딩이지만.
「탑」은 여전히 건재하고, 탑에 있는 세계들은 풀려나지 않고, 심장도 여전히 존재하는. 불완전한 엔딩.
어쩌면 이 정도 엔딩에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어정쩡한 엔딩과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죽는 건 싫다. 죽으면 더 이상 소울 커맨더스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익현 강사가 그렇게 말하니까 빈 말이라도 안심이 되네요.”
빈 말 아닌데.
“그래서. 제가 경비는 잘 서고 있는지 감시라도 하러 온 겁니까?”
“표면적으로는요.”
“표면적이 아닌 이유는 뭡니까?”
“음.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거든요.”
“왜 굳이 저한테 이야기를 하죠?
“당신 덕분에 다시 교사직에 복귀하기로 마음먹었었으니까요.”
“잘 됐네요.”
그녀가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된 모양이다. 어느 정도의 심리 치료는 필요할 테고,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부모님이 하루에 8시간을 재웠을 때 얼마나 슬펐던가.
나와 같은 희생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셧다운제가 폐지된 것은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저를 응원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응원 정도야. 권보람처럼 사명감 넘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은 멋지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그러면, 응원의 표시로 「모래를 금으로」카드를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웃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답했다.
“안 됩니다.”
* * *
“어떻게 아직까지도 안 되는 거지.”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서버는 아직까지 서버가 다운되어 있었다. 아무리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곳이라지만 이 정도쯤 되면 슬슬 화가 난다.
서버를 해킹한 놈이 누구인지만 알았어도 내가 족쳐 버리는 건데.
소울 커맨더스를 할 수 없는 휴대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시간 표시기에 불과하다. 나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집어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으려니 몸이 찌뿌드드했다. 인계내용에 있는 순찰 시간이기도 했다.
바깥을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듀얼을 할 수 있는 핑계를 찾…는건 아니고, 무슨 위험한 일은 없는지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경비실 밖을 빠져나왔다.
아카데미는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1티어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 양자 기갑 공룡 로봇 배틀 대회, 라이더 변신 벨트 판매와 같은 시시한 것들 뿐이었다.
“시시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