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79
“좋아. 슬슬 나가 볼까.”
[아무데나 꼬리치고 다니는 쓰레기가 일어났군. 그래. 오늘은 또 누구에게 꼬리를 치러 나가는 거지?]방에서 나온 스핑크스가 나를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예전에는 그래도 인간 중에서는 나를 최고로 평가해주는 눈빛이었는데 요새 와서는 경멸하는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나를 밑바닥으로 보는 듯한 눈빛이란 말이지.
“넌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그래. 몰라서 묻는 건데.”
내가 근래에 한 것이라고는 스핑크스와 「모래의 정령」을 교환했던 것과, 내가 시레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한테도 카드 교환을 반복해서 「유성우」카드들을 아홉 장 복사해 얻은 것밖에 없다.
스핑크스에게 미움을 살 일이라고는 츄르에 물 좀 섞은 거랑, 캣닢을 중국산으로 바꾼 거랑, 장난감 사준다고 하고 예방주사 맞힌 거랑, 지나가다가 꼬리 몇 번 밟은 거랑, 스핑크스가 좋아하던 쥐 장난감을 수리하다가 못 쓰게 만들어버린 일 말고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뭐, 니가 사람 싫어하는 데 언제부터 이유가 있었냐만.”
나는 혀를 끌끌 찬 다음 휴대폰으로 「탑」으로 향하는 길을 검색했다.
앞으로 남은 층계는 둘.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겨울 방학 동안 얻어낼 수 있는 특수 카드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탑 공략을 최대한 많이 끝내 놔야만 했다.
* * *
“오랜만이네요!”
[슬슬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풀무불꽃이 내가 들고 온 SD카드와 충전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나를 반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오는 웹소설들을 반기는 느낌이 드는데요.”
[강화해놓은 카드에서 눈이나 떼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거라.]“아니, 카드 나고 사람 났지, 사람 나고 카드 났답니까? 소설은 명백하게 이 세상에 사람이 나고 나서 생겨난 거잖아요.”
물론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는 사람 나고 카드 났지만, 이 세계는 카드가 나고 사람이 난 장소다.
즉, 내 말에는 논리적 허점이 없다.
“카드는 잘 강화됐습니까?”
[쯧. 잘 지냈냐는 안부도 없다니.]“잘 지내셨죠? 좋은 소설들 읽어서 그런가 때깔이 가면 갈수록 좋아지시네요.”
[입 발린 소리만 늘어서는.]말은 그래도 때깔이 고와졌다는 말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유령한테는 때깔 고와졌다는 말이 꽤 좋은 칭찬인 모양이네. 앞으로 유령 만날 일 있으면 참고해야겠다.
[강화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네.]입꼬리가 올라간 풀무불꽃은 별 말 없이 내가 맡겼던 카드를 건냈다.
+
【zl존_신神살殺검劍 +20강】
【무기】
【0 mana】
【선천 : 이 카드를 내 패에 든 채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되지 않는 적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공격받은 적에게 「필멸」효과를 부여합니다.】
【「필멸」효과가 있는 적을 재공격시 파괴합니다.】
【공격 시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필드를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공격한 필드를 소멸시킵니다.】
【100/100】
+
“…뭐, 나름대로 적당한 효과네요.”
나는 신살검을 준비해 온 프로텍터 안에 넣고 프로텍터 보호용 기밀용기 안에 넣은 다음 가져온 소형 금고 안에 집어넣었다.
[돌아가 있는 눈이라도 좀 정돈을 하고 말을 지껄여라.]“제 눈이 어때서요.”
“헛소리 하지 마세요. 제 카드에 손 대고도 칼 맞는 걸로 끝날 리가 없잖아요.”
[…….]이래서 사람들한테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 내 신살검에 손을 대고도 칼 맞는 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을 하다니. 내가 어지간히 호구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내 역작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 모양이군.]“음. 좀 더 효과가 좋았으면 만족했을 테지만 이 정도도 나쁘지 않네요.”
[아마 지금의 신살검이라면 「심장」놈도 일격에 처치할 수 있을 거다.]“…아니. 그건 무리일 거에요.”
이미 신살검으로도 죽일 수 없는 것을 한 번 목도한 터라, 나는 풀무불꽃의 말을 막았다.
내 대답에 반론을 제기해보려 입을 떼던 풀무불꽃은 곧 입을 닫았다. 카드에 대한 판단에서 내 판단이 틀릴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네놈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조금 더 강화를 해야 되는 건가?]“신살검을 더 강화해 봤자 심장을 처치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카드의 효과 추가에는 무리가 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강화된 신살검의 효과들은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필멸」의 효과 변동은 없었다.
「필멸」의 상위 효과라도 있으면 심장을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20강까지 했는데도 「필멸」의 효과에 변동이 없다. 추측컨데 앞으로도 「필멸」효과를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강화 수치가 너무 높다.
“다시 강화하려면 포인트가 얼마나 들죠?”
[이제는 백억대 이상의 포인트에 소울도 그에 비견될 정도로 필요할 거다.]“아뇨. 정가 말고, 97프로 할인가로 말해 주셔야죠.”
내 머리에 풀무불꽃의 망치가 다시 날아왔다.
휘익!
언제나처럼 영혼 망치는 내 머리를 허무하게 지나갈 뿐이었지만.
[제기라아알!]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할인율을 적용해도 소울이 부족하다. 더 이상 강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겠군.
남은 시간동안 포인트, 소울 노가다를 통해 강화를 조금 더 시도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써야 하는 시간의 양이 너무나도 많다.
좀 아쉽네. 「알파 베타 감마」루프가 패치만 안 됐어도 수천억 포인트 정도는 껌처럼 낼 수 있는데. 그러면 20강이 문제가 아니라 40강 정도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
강화하는 데 풀무불꽃의 소울이 엄청나게 더 소모되겠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이 정도가 최대인 거겠지.
[뭔가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그냥 상상이에요. 그다지 무시무시한 것도 아니고요.”
나를 못 믿을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노려보던 풀무불꽃이 내 손에서 sd카드를 빼앗아 들고 사라졌다.
어떻게 사는지 대화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바빠 보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럼, 마지막 층계 공략을 해 볼까.”
* * *
[여섯 번째 층계, 「빛의 계단」에 도착하셨습니다.]「빛」과 「어둠」의 층계로 대표되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층계는 둘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상 하나의 층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말하자면 하나이자 둘인 층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 하나이자 둘인가 하면 두 층계는 영원히 싸움을 반복하며 이전의 전쟁에서 승리한 층계가 위에 올라가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전 번에는 빛의 층계가 진 모양이네.”
내가 도착한 곳이 「빛」의 층계이니 이전 번의 전쟁에서는 「어둠」의 층계가 승리했다는 뜻이 된다.
나는 무심하게 신상에서 흘러나오는 텍스트를 읽어나갔다.
[「빛」과 「어둠」은 영원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두 층계에 존재하는 자들은 영원히 끝없는 듀얼을 해야만 하는 지옥에 갇혀 있습니다. 당신들의 목표는 당신들이 도달한 「빛」의 층계를 도와 「어둠」의 층계에게서 승리하는 것입니다.이 전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이 영원한 전투를 끝낼 ‘누군가’가 이 땅에 올 때까지.]
“제발 좀 텍스트 좀 정리좀 하라니까.”
잘못된 부분이 몇 부분이나 있잖아. 먼저, 왜 당신 ‘들’ 이냐고. 이 층계에 오는 사람이면 당연히 혼자라니까. 왜 계속 복수형을 텍스트에 강조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명색이 카드 게임사면 텍스트 한 글자로 바뀌는 차이를 모르지도 않을 텐데, 내가 피드백을 몇십 번이나 했는데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설정 오류. 영원히 끝없는 듀얼을 하는 장소가 도대체 왜 지옥인 건데? 듀얼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게 지옥이냐? 그렇게 행복한 지옥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
지옥이라면 모름지기 듀얼을 할 수 없어야 지옥이라고 칭할 수 있는 공간이지, 듀얼을 무한히 할 수 있는 곳이면 누구도 지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쯧쯧, 세계를 이렇게 대충 만들어놓으니 「심장」같은 놈이 세상을 부수겠다고 설쳐대는 거 아냐.
그나마 이 층계를 돌파하는 최소한의 힌트 정도는 마지막 줄에 남겨 놨으니 참는다.
나는 벡에게 보낼 피드백을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거렸다.
보낼 피드백의 글자수가 7800자가 다 되어갈 때쯤.
“오셨습니까. 승천자여.”
펄럭이는 날개소리와 함께 한 명의 천사가 내게 다가왔다.
“반갑다. 내 이름은 전익현이라고 한다.”
“반갑습니다. 승천자여. 저의 이름은 타우리엘. 선의 천사입니다.”
타우리엘이 눈부신 미소를 내게 보이며 인사를 건냈다.
그보다 상대는 「어둠」층계로군. 조금은 귀찮게 됐다. 어둠 속성의 탑주인 「미몽」은 상대하기가 빛의 탑주보다 짜증나는데.
‘뭐, 크게 상관은 없나.’
이 「빛과 어둠」의 층계는 꽤 귀찮은 장소다.
평범하게 플레이하면 결코 깰 수 없도록 만들어진 악랄한 장소.
이 층계를 돌파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
중재와 화해.
「어둠」과 「빛」의 층계를 화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거야 쉽지.’
평범한 듀얼리스트에게는 어렵기 그지없는 퀘스트다.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다.
단언컨데, 이 세계에서 나보다 화해협상을 잘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탑#6+7 (1)
타우리엘은 눈앞에 있는 비열한 미소를 짓는 남자를 쳐다봤다.
천사와 악마는 소멸과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비록 기억은 잃어버리게 될지언정 그들의 삶은 영존永存하는 것이다. 짧게 말하면 볼꼴 못 볼꼴 다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눈앞의 인간의 눈은 영원함마저 지워버릴 것만 같은 불길함을 담고 있었다.
“이곳은 「탑」의 최상층입니다. 이곳의 위에는… 「심장」밖에 존재하지 않죠. 그곳으로 이르기 위한 길은 현재는 막혀 있습니다만.”
“막혀 있는 이유는 물론 「빛」과 「어둠」의 전쟁 때문이겠죠?”
“그러합니다. 저 어둠의 군세들이 「심장」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건 저쪽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불쾌한 악마들의 말이니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악마는 선과 악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천사입니다. 믿을 만한 존재죠.”
“하얀 피부랑 새하얀 날개에 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라는 건 인종차별 아닐까요?”
“…네?”
“별 말 아니었습니다. 이곳의 듀얼 룰은 여전한가요?”
“여기에 오신 거. 처음 맞으시지요?”
“당연히… 처음이죠.”
처음 온 것 치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익숙함이 감돈다. 그리고 눈에 있는 기묘한 광기와. 「어둠」에 있는 악마들을 악동같이 보이게 할 정도의 불길하기 짝이 없는 듀얼혼의 아우라. 그가 가지고 있는 듀얼혼은 계단을 걸어올라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타우리엘은 그를 악마의 신이 아닐까 착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우리엘은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탑」은 탑을 오르는 존재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소. 인간의 영혼은 탑을 오르기에 연약하다. 50층이 넘는 탑을 올라오다 보면 인간의 마음은 마모되고 깎여나가기 마련.
그러니 눈 앞의 인간처럼 어딘가 뒤틀려 있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 것이다.
‘불쌍하게도.’
자신의 앞에 있는 인간도 탑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타우리엘은 조금의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를 「계단」의 입구로 안내했다.
* * *
‘그래도 이번에는 뽑기를 잘 했네.’
타우리엘이라는 천사는 수다스럽지 않고 꽤나 조용한 편이었다.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서 뿔이 없는지 확인하고, 꼬리가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한다며 엉덩이 부근을 만진 건 다소 불쾌했지만.
“자. 도착했습니다. 승천자여. 당신은 이곳에서 필요한 소환수들을 골라 덱을 구성하면 됩니다. 무기, 마법, 지속물과 같은 소환수를 제외한 카드들은 당신의 뜻대로 자유로이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시길. 당신의 듀얼에서 사망한 소환수들은 당신의 편이 아닌 저 「어둠」의 편이 된다는 사실을.”
「빛」과 「어둠」. 마지막 층계의 듀얼 방식은 꽤나 특이하다. 이곳에서의 듀얼은 상대 듀얼리스트를 공격하거나 처치할 수 없는 듀얼이다.
어떻게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듀얼 방식이다. 있는 것은 그저 소환수의 전투뿐. 죽은 소환수는 상대방으로 넘어가고, 내가 죽인 소환수는 아군의 카드로 환생한다.
「어둠」과 「빛」의 환원, 혼돈이나 윤회 사상과도 같은 이야기다. 빛과 어둠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솔직히 딱히 승패가 정해져있지 않은 듀얼이라서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소환수 카드들을 상대 진영에서 빼앗아내면 승리하는 형식의, 진영간의 전쟁 방식의 듀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번의 전쟁에서, 전쟁의 승패가 나오는 데에는 얼마나 걸렸죠?”
“대충 1나유타那由他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유타가 얼마나 되는 시간이었던가. 아무튼 겁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말이다.
듀얼 실력이 천사들과 악마 간에 비슷한 것도 문제고, 소울 커맨더스란 게 소환수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도 하나의 문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한 번의 승패를 나누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우리들이 쌓아온 카드들의 수가 엄청난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