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1
【위대한 「탑주」라르가 카드화한 모습입니다. 그의 불길은 이 세계를 겁화의 불길로 뒤덮을 것입니다. 홍염의 화염은 꺼지지 않으며, 재가 되어서도 라르는 부활합니다. 그의 위대한 연대기에 따르자면….】
‘카드 설명은 필요없고.’
카드 밑면을 빼곡하게 채운 카드 텍스트를 무시한 남연철은 라르의 효과를 읽어나갔다. 10마나라는 코스트를 들여서 소환되는 소환수. 13/13이라는 능력치에 부활을 연속적으로 할 수 있는 소환수다.
[어떠냐! 이 몸의 능력치가!]라르는 불꽃으로 된 콧김을 훅 하고 뿜어냈다. 자신의 능력치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한 장 단위의 효과로는 굉장히 가성비와 효과가 매우 좋은 카드였다.
“그다지 안 좋네.”
문제는, 남연철은 한 장 단위의 카드를 사용할 자리가 덱에 없다는 점이었지만.
[…뭐, 뭐?]“「기계」속성도 아니라서 내 덱에 구태여 들어갈만한 자리가 없어. 마나도 10이나 먹고. 9마나라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본조本鳥의 효과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다니!]“안좋다는 건 아니고, 그냥 덱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라르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심장에게 패배하고 탑주가 되고 나서 처음 겪는… 아니, 전익현이 지나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겪는 모멸이었다.
자신의 이 대단한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가장 먼저 40층에 도착했기에 보는 눈이 조금은 있는 듀얼리스트일 줄 알았건만.
[흥! 네가 아니라도 나를 덱에 넣고자 올라오는 듀얼리스트들은 아직도 많이 남았느니라!]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라르의 머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치킨의 향기도 한 층 더 짙어졌다.
꿀꺽.
남연철은 군침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르의 불쾌감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지만.
[네가 나를 덱에 넣지 않는 것은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었다면 내 효과를 보고 바로 덱에 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카드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 *
카드화라는 건, 「탑」에서의 기능 중 하나지만 거의 쓰잘데기없는 기능이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카드화할 수도 없거니와, 대부분이 쓰잘데기없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불사조 라르」다. 메타가 몇 세대는 뒤쳐져 있는 단독 성능의 카드. 효과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연계 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탄환으로는 오래 써먹을 수 있지만 10이라는 마나를 생각하면 탄환으로 더 적절한 카드들이 훨씬 많다.
그래도 희귀한 카드인 탓에 몇 번 써 봤는데 그냥 애매해서 구태여 구할 필요가 없는 카드였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탑에서 「카드화」라는 게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있을 「성전」에서도 이 「카드화」가 중요한 키워드로 쓰이기도 하고.
[「성전」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승천자가 성전에 참여합니다!]고오오오!
하늘을 향해 떠 있던 계단의 위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흑암의 기운이 터져오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우리들에게 패배한 천사 놈들이! 새 친구를 데려왔군!”
“그래 봤자 우리를 이길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어둠」속성의 악마들이 제각각의 몬스터들을 타고 위쪽 층계에서 내려왔다. 악마들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 내려오는 것을 보는 것은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저런 도발에 넘어가지 마시기를.”
타우리엘이 내게 조언했다. 어째 조언하는 천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본인이 도발에 제일 취약한 것 같은데.
당초부터 나는 여기 있는 탑주건, 듀얼리스트건, 몬스터건, 누구에게건 처음에 무시당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지금은 꽤 덤덤해져 있는 상태였다.
“괜찮아. 무시받는 건 1년간 계속 경험했거든.”
나는 목을 두득거리며 풀었다.
[제 2108277M 번째「성전」이 시작됩니다!]“첫 번째 내 상대는 누구지?”
[승천자 전익현을 상대할 악마를 고릅니다.]공중에서 나타난 슬롯 머신이 몇 바퀴를 돌아가더니 36이라는 숫자에 멈췄다.
[당신의 상대는 ‘스톨라스’ 입니다.]스톨라스라. 뭐 하는 놈이었지. 이놈의 악마라는 놈들은 죄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72마리나 있어서 이름을 기억하기 귀찮기 그지없다.
카가가각!
창이 떨어져내리고 음산한 벌레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벌레들이 모여들어 악마의 형체로 화했다.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는 크기의 악마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오늘 네놈의 소환수들을 모조리 빼앗아 주마!”
천사들은 바짝 긴장한 채 카드를 움켜쥐었다. 지난 번에 패배한 후에 가지고 있던 카드들의 10%에 해당하는, 수십억장의 카드들을 빼앗겼다고 했다.
어짜피 죄다 쓰레기 카드들인데 수십억장 빼앗겨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싶긴 하다.
‘뭐, 상관없나.’
나는 내 앞에 있는 첫 번째 악마. 스톨라스인지 뭔지 하는 놈을 처치하는 데에만 전념을 다하면 된다.
[성전이 시작됩니다!]“듀얼!”
나는 듀얼을 외치는 대신 카드를 뽑아들었다.
“후후, 자신의 듀얼혼을 뽐낼 수 있는 ‘듀얼 시그니쳐 사운드’조차 외치지 않다니. 이 스톨라르님에게 잔뜩 쫄아붙은 모양이구나!”
이 층계에서는 듀얼 시그니쳐 사운든가 뭔가 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듀얼’을 외칠 때에 천사들과 악마들에게서 크고 작은 불빛과 화염이 튀어나오더라니. 그게 듀얼혼과 연결되어 있는 거였군.
미안하지만 나는 그딴 걸 외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듀얼혼이 얼마나 되는지 상대가 알게 되는 건 전력 누출이라고.
내 전력이 크건 작건 그걸 상대한테 알려주는 건 승률을 깎아먹는 행위에 불과하다.
몇천만년을 듀얼만 해놓고 그런 것도 모르다니. 이 세상은 어쩌면 뿌리부터 글러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듀얼 스타트!]첫 패 확인.
「선천성」으로 내 패에 들어온 「신살검」. 그리고 덱에 넣어놨던 「유성우」한 장.
첫 패 치고는 굉장히 잘 잡혔네.
[당신의 턴입니다.]+
【유성우】
【파워 카드】
【이 카드가 핸드에 있으면, 내 턴의 시작때마다 랜덤한 상대 필드를 소멸시킵니다.】
+
고오오오!
천상의 문이 열리며 유성이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콰과과광!
“뭐…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스톨라스의 필드다!”
듀얼이 한창인데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경할 시간이 있다니. 내 학생이었다면 진짜 오늘 밤 안 재웠다.
[「유성우」의 효과로 필드 하나가 소멸합니다!]“필드의… 소멸?”
스톨라스가 중얼거렸다.
「필드 락」은 꽤나 유서깊은 전략이다. 상대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제약해서 손발을 묶은 다음 자신의 플레이로 이기는 방식의 듀얼.
필드 락에는 여러 방식의 락이 있다. 「꽃잎 토큰」처럼 상대의 필드에 더미들을 채워서 막아내는 경우도 있고, 상대의 소환을 막아내는 경우도 있으며,
“지금처럼 필드를 소멸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
“…그런 테마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럴지도.”
필드 소멸 테마를 가지고 있는 「종말의 날」테마는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테스팅하던 테마니까.
정식 출시 이전의 카드들도 「?」카드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시험해 보다 알았지.
나는 패에서 「종말의 날」테마 카드인 「운석 충돌」을 뽑아들었다.
+
【운석 충돌】
【1 mana】
【4턴 뒤, 상대의 필드 하나를 소멸시킵니다.】
+
「?」카드 한 장을 쓴 것 치고는 좀 심심한 효과다. 혹시 되는지 싶어서 시험해 봤는데 진짜로 만들어질 줄이야.
왜 소중한 「?」카드로 이런 심심한 카드를 만들었냐고?
그거야… 길게 튀어나오는 약관에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드는 「운석 충돌」이 되었다.
나는 내 실수로 「?」카드가 「운석 충돌」로 변한 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일주일간 울기만 했었다. 내가 강인한 듀얼리스트가 아니었다면 마음이 꺾여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지도 모른다.
“네놈! 기묘한 카드를 쓰는군! 하지만 그딴 카드를 써 봤자 승리에는 다가갈 수 없다! 우리들은 불멸자들이다! 필멸자인 네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을 가르쳐주지!”
“…상상하지 못할 절망이라.”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정당하고 온당한 거래」를 「데스티니 드로우」를 쓴 탓에 영영 헤어지게 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카드를 만드시겠습니까?’라는 경고 메시지에 무심결에 ‘예’ 라고 대답한 탓에 「?」카드가 「운석 충돌」로 변해버린 순간또한 떠올렸다.
이 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시스템에 애걸복걸을 했던 순간, 그리고 이 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신을 찾았던 절망의 나날들.
누군가는 절망을 쉽게 입에 담는다. 고통을 너무나도 쉽게 입에 담는다.
진정한 절망과 고통은 결코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장을 통째로 누군가가 도려간 채 심해에 쳐박혀 죽을 것만 같은 고통. 결코 언어화될 수 없는.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그러한 고통.
악마가 어떤 절망을 내게 선사할 수 있는진 모른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내가 견뎌온 절망보다 커다란 절망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뺨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 옆에서는 타우리엘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승천자님?”
“왜.”
“무슨 기억을 떠올리신 거죠?”
“왜 묻는 거지?”
“그저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지으시기에.”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만 같은 기억.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런 추억을 떠올렸을 뿐이야.”
이 듀얼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카드에 대한 장송곡이 될 것이다.
“나는 「운석 충돌」을 「구사일생」으로 샐비지! 뒤이어「지존신살검」을 장착!”
내 손 은빛 검이 찬란한 광채를 내며 만들어졌다.
“저…저 카드는 도대체?”
“0마나에 100/100…?”
“저게 가능한 수치라고?!”
“하! 공격력이 뭐가 어쨌다는 말이냐!”
스톨라스가 비웃는 소리를 내며 허세를 부렸다. 이런 오버파워 카드는 처음 보는 거겠지.
하지만 「지존신살검」의 진정한 힘은 공격력이 아니다.
“나는 「지존신살검」으로 네놈의 필드 하나를 공격!”
콰드드득!
[상대의 필드 하나를 소멸시킵니다.]스톨라스의 필드 하나가 또다시 줄어들었다.
“크흐흐. 멍청하기는!”
스톨라스가 비웃음을 터트렸다. 사기나 다름없는 신살검을 보고도 놈이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것은 이 층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듀얼이 「성전」듀얼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정해진 턴 수인 30턴이 지나면 그대로 듀얼이 종료된다.
정 버티지 못한다면 몬스터를 소환하지 않고 버티는 방식의 듀얼도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인간이니까. 카드를 빼앗아 봐야 수십만장 정도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스톨라스의 생각이 맞다. 인간은 기껏해야 백 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 그 사이에 빼앗을 수 있는 카드의 숫자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성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소환수를 처치하는 것! 내 필드를 줄여 준다면 나는 필드를 쓰지 않으면 된다! 머저리같은 자식!”
놈은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마음껏 웃어둬라.’
이 듀얼이 끝나고 나면 두 번 다시는 웃을 수 없게 될 테니까.
##탑#6+7 (3)
콰아아앙!
마지막 스톨라스의 필드가 박살났다. 그 와중에 스톨라스의 표정은 평온한 채였다.
다른 「성전」의 필드에서는 카드 뺏기가 열심히 진행되고 있었다. 비등비등한 필드에서는 서로의 소환수를 조금이라도 좋게 교환하기 위한 발버둥이 벌어지고 있었고, 한쪽이 압도적인 교환비를 가져간 필드에서는 소환수를 더는 내어놓지 않는 고착적인 상황이 이어진다.
이래서 이놈의 「성전」에서는 상대의 핸드에서 소환수를 꺼낼 수 있는 낚시꾼 시리즈들이 반쯤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 쪽 필드는 어땠냐고?
“턴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