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7
“그래서. 오늘 듀얼의 마지막도 도발인 건가요?”
배우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다. 그리고 전익현의 표정으로 보건데. 꽤 오랜시간 만나지 못하게 되기 전의 마지막 듀얼이기도 할 것이다.
마냥 머리에 듀얼밖에 없어 보여도 그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야기할 것. 가르쳐줄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아니고. 오늘은 올해에 내가 한 수업중에 가장 중요한 수업이야. 자. 마지막 수업의 강의 주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경청하는 것.
“‘왜 전익현은 이토록 강할 수 있는가.’ 다.”
##종강 (3)
진슬아는 두둑거리는 목을 풀면서 내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다.
“하연이는 뭐라고 하던가요?”
“바로 납득하던데.”
그럴 만도 하죠. 하고 진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서서 몇 번의 듀얼을 하면서도 진슬아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진슬아의 덱인 「꽃잎 토큰」덱의 경우에는 첫 턴의 핸드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허다한 편인데도 말이다.
이 경우에는 그놈의 ‘듀얼혼’이 개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문득 궁금해진 건데, 그 세계에선 국가 간에 듀얼이 아니면 뭘로 승부를 봐요?”
“보통 전쟁이나, 경제 제재나, 핵폭탄 같은 걸로 승부를 보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맞잖아요.”
“아니라니까.”
얘들은 왜 이렇게 내가 있던 세계를 희망 하나 없는 절망적인 곳으로 말하고 싶어하는건지 모르겠다.
그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미사일을 쏠 수 있는 버튼을 미치광이들이 들고 있는 매우 안전한 세계일 뿐인데.
“근데. 왜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에요?”
“인생은 듀얼이니까.”
“…방금 듀얼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왔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구태여 남들이 들어 봤자 동정심만 살 뿐이니까.
나는 설명을 요구하는 진슬아의 눈에 대답하는 대신.
“듀얼.”
듀얼 선언을 했다.
“룰은 「핸드 오픈」룰로.”
「핸드 오픈」룰은 양쪽 모두가 서로의 패를 모두 볼 수 있는 변형 룰이다.
긴장도가 떨어지고 수읽기보다는 핸드 싸움으로 게임이 변질되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는 룰. 공식 대회에서는 물론 쓰이지 않는 룰이다.
나는 덱에 손을 올리고 패를 뽑아들었다.
“「꽃가루 벌 떼」 2장, 「진화하는 밀림」2장, 「무리의 습격」한 장.”
“개똥패네요.”
“듀얼이란 거. 정말 불합리하지 않냐?”
“덱 하나 짜려고 수십 수백시간씩 고민해도 바라는 대로 덱이 굴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덱을 최적화해도 매 판 제대로 굴러간다는 보장도 없고.”
그러니, 인생은 듀얼인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노력이 보답을 받는 경우도 없으며, 걸핏하면 패 사고가 나는 쓰레기같은 게임.
“지금 인생이 듀얼이라는 되도 않는 생각하고 있는 거죠.”
“왜. 딱 적절한 비유인데.”
“전혀 안 적절하거든요?”
시끄러. 세상에 딱 들어맞는 비유가 어디 있다고 그래.
“항복 안 해요? 이 정도 패면 승패는 결정난 것 같은데.”
“안 해.”
첫 핸드가 바닥 중의 바닥인 상황. 나는 첫 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턴을 종료했다.
“항복 안 할 거면 강사님의 저쪽 세상 이야기나 좀 해 줘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그랬다.
“인생이 듀얼이라면….”
“거 참. 안 맞는 비유는 언제까지 하려고 그래요?”
내가 주먹질을 진슬아보다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주먹질만 더 잘했어도 붕권으로 참교육을 시전해주는 건데.
주먹으로 모래폭풍도 만들어내는 몬스터 상대로는 단련을 해 봤자 무리겠지만.
“내 패는 개똥패중의 개똥패였을 거다.”
“강사님은 맨날 패 불평만 하잖아요.”
내 인생은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같은 개똥패중의 개똥패가 네다섯 턴쯤 더 들어와야 내 인생과도 비슷할 거다.
다만 서윤하도 내 곁을 떠났을 때 내가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인생을 듀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점이다.
인생을 듀얼이라고 생각하면 어렵고 고단해 보이는 선택들이 훨씬 단순해진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패가 들어온다고 듀얼을 포기하면. 듀얼은 이길 수 없어.”
개패가 들어왔다고 해서 포기한다는 것은 프로 실격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쓰레기같은 상황에 절망하면서도 매 선택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꽃말의 숲」발동.”
그 와중에 진슬아는 필드 전개를 벌써부터 시작했다.
“턴 엔드.”
3턴인데 벌써 필드가 가득 차 있다. 얘도 가만 보면 사기꾼이라니까. 저런 사기덱을 굴리는 건 법적으로 규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전판에 원턴킬 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뭐래 사기꾼이.”
빠직거리며 진슬아의 머리에 힘줄이 돋거나 말거나 나는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턴 엔드.”
[당신의 턴입니다.]듀얼에 일단 돌입하게 되면 만나는 상황들의 99%는 내 손을 떠난 것들이다. 사용 룰, 처음 들어오는 패, 상대의 패, 상대방의 덱, 상대방의 플레이.
이런 모든 것들 가운데서 듀얼리스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극히 적다.
따지자면 99%정도가 정해진 상황에서 1%만을 선택할 수 있는 정도겠지.
“드로우.”
하지만 이 극히 적은 선택들이 듀얼리스트를 듀얼리스트로 만든다.
“그냥 깔끔하게 패배선언하는게 편할 텐데.”
“난 항복선언 안 해. 그건 내 듀얼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짓이거든.”
“…그러고보니. 강사님의 듀얼관은 뭔가요?”
거의 반년을 나를 봐 놓고도 내 듀얼관을 모르다니.
“한 번 맞춰 봐. 내 목표가 뭔지.”
“최대한 비열하고 사람 기분 더럽게 하기?”
“아니야.”
“졌을 때 기분 더러운 덱 10만개 만들기?”
“아니야.”
“안티팬 100만 명 만들기?”
“아니라고.”
그리고 그건 이미 달성한 목표다. 듀얼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음해하는 무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우주 패배 하이라이트 공식 유튜브’의 구독자가 100만명이나 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밖에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상대의 턴입니다.]“그보다, 킬각이 나왔네요.”
필드 위에 있는 카드들과 진슬아의 패에 있는 카드들로 30이라는 데미지가 이미 충분한 상황.
“항복선언 안 해요?”
“안 해.”
“그러고 보면, 모소커 할때도 절대 항복선언 안 하시죠.”
맞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결론에 다가서네.
“지금처럼 실전 듀얼에서도 항복선언 절대 안 하고.”
“그래.”
“항복선언 해야 덜 맞지 않나요?”
진슬아가 패를 전개해 나갔다. 「야생 포효」와 「밀림의 진균」을 모두 사용하면 나오는 킬각. 마나가 2 더 필요하지만 패에 있는 「모래 회복」을 사용하면 코스트도, 데미지도 딱 맞다.
“먼저 「모래회복」을 사용하고… 「야생 포효」를 발동.”
+
【모래회복】
【0 mana】
【이번 턴에 마나를 2 회복합니다.】
+
“그리고 「야생 포효」를 사용하면 킬각.”
[마나가 부족합니다.]“…어?”
진슬아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래회복」은 「모래의 집중」과는 달리 사용한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마법이다.
즉 마나를 쓰기도 전에 발동하면 아무 효과가 없는 카드라는 뜻이다.
어처구니없는 자신의 실수에 진슬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우주 패배 하이라이트.17’에서 내가 킬각을 놓치고 역킬각을 맞았을 때랑 비슷한 정도로 달아올랐다.
“왜. 쪽팔리냐?”
“조, 조용히 하세요!”
진슬아는 당황한 탓인지 내 본체를 후려치는 판단을 내렸다.
쾅! 우드득!
[Hp -3] [Hp -3] [Hp -2]…
“그 판단. 맞냐?”
“…턴 종료.”
[당신의 턴입니다.]꽃잎 토큰 덱은 필드를 한 번 역전당하면 뒤집는 힘이 극도로 부족한 덱이다.
꽃잎 토큰 덱간의 미러전에서는 무슨 짓을 하건 상대의 필드를 밀어내는 데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 그러면…
“역킬각이 나오거든.”
촤르르륵!
나는 핸드를 단숨에 털어 필드를 강화했다. 필드 데미지만으로 확정적으로 30데미지가 넘어가는 상황.
“졌습니다.”
[듀얼에서 승리하셨습니다!]누구라도 항복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항복선언을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알아? 내가 실수로 킬각이라도 놓칠지.”
“안 놓칠 거잖아요.”
“나도 가끔은 실수해. 백만 번에 한 번 정도는.”
진슬아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백만번에 한 번 정도는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거라는 뜻이다.
“내 듀얼관은,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이기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듀얼이야.”
희미하고 실낱같고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듀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실전 듀얼에서 30데미지를 두들겨 맞으면 회복실 신세를 지게 되는데요.”
“그렇지?”
“몸도 엄청 아플 거고요. 그런데도 그런 것쯤 상관없이 계속 듀얼을 한다는 거죠?”
“맞아.”
“…진짜로 듀얼에 뭐 안 걸리는 세계에서 온 사람 맞아요? 암만 봐도 한번이라도 지면 능지처참당하는 세계에서 온 사람 같은데.”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이런 반응이라니. 나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던가.
서럽다. 학생들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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