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88
남연철은 이클립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부분은 믿을수 없을 것 같은 소리였지만. 전익현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게 당신이 강한 이유야? 조금이라도 이기려고 포기 안 하는 게?”
“아니. 그건 일부분일 뿐이야.”
전익현은 잠시 뜸을 들였다.
“결국 모든 일이 지나가고서도 내 삶은 크게 바뀐 건 없었어. 의식적으로 많은 것들을 바꾸지 않으려고 했거든.”
“계속 소울 커맨더스만 했다는 거군. 목숨도 안 걸린 듀얼인데 그렇게 집착할 이유가 있었나?”
“굳이 집착은 안 했어. …목숨은 걸려 있었지만.”
“듀얼에 져도 별 일 없는 곳에서 왔다며.”
실없는 농담일 줄 알았지만, 전익현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듀얼 하다보면, 패가 말릴 때 있잖아. 그럴 때, 패가 말린 것도 억울한데 계속해서 최악의 카드만 들어오는 경험. 해 본 적 있지?”
“모두가 겪는 일이지.”
“내 인생도 그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여자친구도 사라지고. 남은 건 내 몸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불치병에 걸린 거야.”
남연철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전익현이 말하는 불운에 대한 확률을 떠올렸다. 확률이란 것은 희소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벌어지기에 확률인 것이다.
불운 그 자체인 삶.
하지만 전익현의 얼굴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불치병이라면?”
“몸을 점점 쓸 수 없게 되는 병이야. 처음에는 다리, 팔같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갈수록 목, 몸, 얼굴을 쓸 수 없게 돼.”
“…….”
“병원비가 엄청 들어. 말했다시피 나를 간병해줄 사람도 없었고. 그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 돈을 벌 방법도 딱히 없지.”
“그래서….”
“소울 커맨더스 대회에 나가서 돈을 벌었어. 상금으로 병원비 내고, 간병인을 쓰고, 남는 돈으로 다시 카드를 샀지. 그러고도 돈 좀 남으면 영양제도 맞고, 소울 커맨더스 돌릴 컴퓨터 업그레이도 하고.”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죽는 거지.”
남연철은 그제서야 왜 전익현이 이 세계에 오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듀얼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여기서의 듀얼도 원래 세계에서의 듀얼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엿 같은 패였네.”
“엿 같은 패였지.”
“그런데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냐고?”
전익현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말했잖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내 듀얼관이라고.”
##종강 (4)
“아무리 나라도 하루 종일 실전 듀얼을 하고 있으니까 몸이 좀 찌뿌드드하네.”
해룡이나 악마, 마룡, 자이언트 골렘 같은 시시한 몬스터들이 상대였다면 체력 소모쯤은 무시하고 몇 마리든지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상대한 적들은 그런 허접한 몬스터들보다는 강한 듀얼리스트들이다.
본래라면 듀얼을 하면서 이렇게 힘든게 말이나 되냐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짜증보다는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래도 1년 가까히 옆에 붙어서 가르쳐 주니까 이 정도로는 강해질 수 있는 모양이네.”
“입…다물어.”
여한설이 갓 태어난 사슴새끼처럼 바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쥐어터지고도 용케도 일어서네. 내구도가 굉장히 좋다. 아마도 김태양에게 받은 수트 덕분이겠지. 이게 아이템 빨이라는 건가.
“그래도 그 다리로 더 싸우는 것 무리야.”
“빌어먹을 자식.”
저 독설에도 꽤 익숙해졌다. 사실 여한설의 독설이라고 해 봤자 인터넷 악플러들의 악성 댓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처음부터 크게 신경쓰던 바는 아니지만.
“네가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강하다면, 왜 나는 약한 거지? 나도 목숨을 걸고 싸웠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지. 그게 네가 평범했던 이유야.”
“평범하진 않았어! 입학 때의 성적은 1위였다고!”
거 참. 도토리 사이에서 1등 했다고 엄청 으스대네.
“나는 네 말마따나 소울 커맨더스에 미친 사람들의 동네에서 세계대회 우승을 밥 먹듯 하던 사람이라고.”
“그렇게 우승을 많이 했나?”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하진 못했어.”
세계대회 8강부터는 오프라인으로 치러진다. 내 몸 상태가 손이 움직이고 있던 때에는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카드 하나하나 낼 때마다 시지프스가 돌을 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듀얼은 할 수 있었지.
내 포커페이스는 무적에 가깝다. 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에도, 세 판에 한 판 정도는 카드를 떨어뜨렸음에도, 몸을 강제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약물의 통증에도.
누구도 내가 병에 걸린 것을 알지 못했으니까.
“대회에 1시간 일찍 나가서 자리에 먼저 앉아 있는 건 조금 의심을 사긴 했지만.”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진 못했다. 손이 내 생각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된 순간부터 나는 오프라인 대회에 전혀 나갈 수 없었다.
서서히 돌이 되어서 결국엔 잠이 들어 버리는 잠자는 숲속의 왕자님이 된 기분이었다.
동화였다면 나에게 한 눈에 반한 공주님이 와서 입을 맞추고 나를 깨웠겠지만 내가 있는 곳은 현실이었다.
“…힘들었겠네.”
“마냥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좋은 점도 많았어. 소울 사에서 눈으로 게임할 수 있는 기기를 여섯 대나 마련해줬거든.”
“그게 왜 여섯 대나 필요한데?”
“여섯 게임을 동시에 돌려야 되니까 그러지.”
얘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하면서 가끔 가다가 왜 이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하긴. 기계 설치하러 왔던 소울 사 직원들도 똑같은 눈을 했던 걸 생각하면 머리가 좋다고 해서 마냥 상황파악에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는 걸지도.
“게다가 밥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지. 링겔 주사로 모든 영양이 공급됐거든. 진작에 알았으면 고등학생때부터 계속 링겔 맞는 건데.”
“…….”
나를 쳐다보던 여한설이 바들거리는 다리로 나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남이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눈 하는 거 아니야 이 자식아.
“…아무튼.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세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뭘 또 세 가지씩이나. 하지만 질문의 내용이 뭔지는 이미 알 것 같다. 앞서의 세 명도 죄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으니까.
“하나. 그래서 네가 강한 이유는 뭐지?”
“이 세상에서는 목숨을 걸고 듀얼하지? 죽자사자 듀얼하고. 지는 걸 두려워하고.”
“그건 너도 그랬잖아.”
“아니. 난 목숨이 걸려 있었지 목숨 걸고 듀얼하진 않았어.”
듀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덱? 운빨? 실력? 모두 아니다.
이기는 것?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이기에 네 명 중 한 명쯤은 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듀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룰을 지켜서 즐겁게 하는 것.”
“자주 하던 이야기군. 지고 나서 바닥을 구르는 인간이 하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진지한 이야기 중이잖아. 지고 나서 바닥 구르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이라고. 지도 실수로 지고 리무진 안에서 울었으면서.
“그리고 삶은 듀얼이야. 목숨을 걸면 강해지지 않아. 지는 걸 두려워하게 되니까. 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목숨을 걸지 마. 설령 진짜로 목숨이 걸려 있어도 즐겨. 어떤 똥패가 들어와도. 싱긋 웃으면서 뻔뻔하게 좋은 패가 들어왔다고 상대방이 착각하게 만들어.”
“너처럼?”
내 삶의 방식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강한 이유는 모든 듀얼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즐겼기에 나는 계속해서 이길 수 있었다.
여한설은 나를 바라봤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포커페이스가 꽤 좋아졌다. 첫 듀얼할 때에는 무슨 패가 들어왔는지도 손에 잡힐 듯이 보였는데.
“둘. 왜 그런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지? 돌아가면… 죽는다며.”
“죽는게 확정은 아니야.”
내가 받은 상금의 규모는 상당하다. 병원비가 비싸기는 하지만 병원비를 충당하고도 얼마간 여유자금이 남을 정도는 됐다.
나는 이 여유자금을 통해서 내 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지원했다. 약물 개발은 돈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일이다.
“돌아가면 백억원을 받을 수 있거든.”
백억이란 돈. 많은 돈처럼 보이지만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돈으로는 푼돈중의 푼돈이다. 그 돈으로 내가 살아남을 약이 개발될 확율은 300장짜리 두꺼운 덱에서 단 한 장의 필수 카드를 한 번에 찾아내는 확률보다 더 낮다.
“여기서 그냥 살면 안 되는 건가? 지금의 네 몸은 건강하잖아.”
“저쪽에서의 내 인생은 제대로 안 끝났잖으니까.”
삶은 언젠가 끝나는 패배가 확정되어 있는 듀얼이다. 하지만 얼마나 거지같은 상대를 만나건. 듀얼은 제대로 끝내야 된다.
패배하고 나면 제대로 내가 썼던 카드들을 정리하고, 듀얼판을 접고, 상대와 악수하는 것까지가 듀얼이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듀얼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게, 내가 돌아가는 이유다.
그리고 혹시 모르잖는가. 백억으로 진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지.
“이제야 네가 강한 이유를 알았어.”
내가 방금 말했으니까 당연히 알아야지. 말 해 주는 그대로도 못 들어먹으면 그게 사람이냐? 시레나지?
“네가 강한 이유는. 네가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이기 때문이다.”
“멍청이 아니야. 너는 이렇게 듀얼 강한 멍청이 본 적 있냐?”
“아니. 너는 세상에서 가장 듀얼이 강한 멍청이다. 그리고 난, 네가 좋다.”
여한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듀얼리스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하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나에게 가지는 감정을 알면서도 나는 감정을 주지 않았다.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다.
여한설은.
내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세계에 와서도 팬들을 이렇게 양산하다니. 내 엔터테이먼트 듀얼은 우주 최강이 확실하다.
“멍청이같은 생각 하지 마! 똑바로 들어! 나는 네가 좋다고!”
“그래. 네 팬심은 잘 알겠어.”
“이 빌어쳐먹을 멍청이 자식아!”
애초에 듀얼이란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여한설의 표정을 읽지 않았다. 읽을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고 투명했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봐야 했기 때문이다.
신하연과, 남연철과, 진슬아와 듀얼할 때도 봤던 하늘이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다.
“우냐?”
“안 울어. 하늘 구경하잖아.”
“전익현이 울다니. 세상이 곧 멸망하려는 건가.”
시끄러. 안 울었다니까. 세상이 곧 멸망하려고 한다는 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세계가 정말로 멸망할 일은 없다.
세계의 종말을 막을 믿음직하고 친절한 이웃 전익현맨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희생이란 걸 하면서 이 세계를 지키겠단 마음은 크게 없지만 빌어먹을 심장 자식과 자폭하면서 겸사겸사 세상이 구해진다면 영웅 행세도 좀 하지 뭐.
수틀리면 자폭 안 하는 수가 있으니 나에게 태클 걸 인간도 없을 거다.
“자.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좋아. 마지막 질문이야. 왜 이 이야기를 모두 한 거지?”
“모든 듀얼은 끝나기 마련이니까.”
슬슬 시간이 됐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갇혀 버린 개발자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심장」을 처치하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엔딩이 시작될 시간.
[카운트다운 : 00:00:01] [00 : 00 : 00]삐비빅! 삐빅!
카운트다운을 맞춰놓은 시계가 삐빅거리며 울렸다. 심장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엔딩은 나의 패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패배를 긍정하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얻어온 승리또한 무의미한 것이기에.
콰드드드드!
동시에 온 세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세계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세계가 공명합니다.]역시 일주일동안 있는 능력 없는 능력 다 짜내서 세상을 파멸시키려고 하는구만.
“그럼. 간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내 듀얼 슈트의 헬멧을 썼다. 내 헬멧을 본 여한설이 내 헬멧을 뭐라도 되는 양 노려봤다.
“그 헬멧…. 뭐야?”
“뭐긴. 내가 듀얼할 때 쓰는 헬멧이지. 너랑도 몇 번 봤잖아.”
“그거. 이클립스의 헬멧이잖아.”
“맞는데. 뭐 이상해?”
내 무던한 대답에 여한설의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른다.
“…너. 너. 너!”
“뭐.”
“네, 네, 네놈. 이클립스였냐?”
“그걸 아직도 몰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