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91
“네놈이 왜. 이 탑을 파티 없이 올라왔는지. 왜 「탑주」들을 파티 없이 혼자서 해치워 왔는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네놈은 네가 아는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혹시나 패배를 겪게 되면 네가 사랑하고 있는 자들도 같이 죽게 되니까.”
나는 눈을 들어 심장을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으로 천천히. 놈이 말한 단어들이 재생되었다.
“…파티?”
“그래! 「탑주」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파티플레이가 필수적! 하지만 네놈은 혼자서 모든 탑주들을 상대했지! 크하하! 성인이 따로 없어! 눈물겨운 희생이로군! 눈물겨운 희생이야!”
나는 놈의 도발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탑을 공략하며 있었던 수없이 많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근본적으로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나요?] [우주야.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없는지 생각해 봐.] [제발 시작할 때 튜토리얼 좀 읽으면 안 돼요?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걸수도 있잖아요.] [뭔가 난이도가 이상하다면 ‘근본적인 접근방법’이 잘못된 게 아닌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근본적으로….] [근본….]…
내 머릿속으로 소울 사의 관계자들에게 들어왔던 수없이 많은 메일과 대화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 탑에서 「탑주」놈들을 파티를 맺고 잡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다. 고인물중의 고인물인 내가 모를 리 없는 내용이다. 그런 당연하고 평범한 공략 방식을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않는가. 처음 「소커아」를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모르지 않았던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당연하겠지만 내가 알고 있던 내용으로는 내 멘탈을 조금도 공격할 수는 없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소울 사 직원들을 모아다 싸그리 화형시키는 상상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 포커페이스는 끄떡없다.
“괜찮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이거 피눈물 아닌데.”
“몸도 부들부들 떨리는군! 얼굴 표정도 일그러지고! 크하하! 정곡을 찔린 게 그토록 수치스럽던가!”
“몸 안 떨려.”
나는 심장의 흑색선전에 가볍게 응수했다. 내 완벽한 포커페이스가 흐트러질 리가 없는 탓이다.
까가각! 카아앙! 하고 어금니가 터지는 소리가 골을 울렸다. 이를 악물어서는 아니고 우연히도 내 치아가 타이밍 좋게 터진 것 뿐이다.
그 사이에도 심장은 계속해서 광소를 터트리고 있을 뿐이었다.
[「심장」이 곧 「휴면」상태로 들어갑니다.]내가 세상에서 243번째로 증오하는 심장의 몸이 서서히 굳어갔다.
소울 사 핵심 개발진이 242명이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심장」의 휴면 상태가 시작됩니다!]심장의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놈의 광소가 끝나고,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나는 가방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입에 밀어넣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사람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되는 법이니까.
나는 지금 상황의 긍정적인 면들을 떠올렸다.
하나. 목표가 없던 내 삶에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방금 242명이 생겼다.
둘. 지금 나한테는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소울 커맨더스 게임도 있고, 할 것 없을때 읽을 웹소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이 탑이 만약 파티플레이가 가능한 곳이라면, 나는 이 식량으로 「승리」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듀얼은 언젠가는 끝난다 (3)
“오늘도… 연락 안 되시네.”
하긴. 연락이 될 리가 없지만. 신하연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1년간의 폭풍같은 학년이 끝난 것도. 이 세계가 종말을 목도했던 것도. 그리고 전익현이 사라진 것도 벌써 2주일이 지났다.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세계의 끝을 기다리는 「탑」은 그대로였다.
탑의 붕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의 파동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수없이 많은 가설을 내어놓았다. 심장이 곧 세상을 멸망시킬 최악의 사태를 준비하고 있다는 가설. 창조자들이 드디어 심장을 막아내고 놈을 봉인했다는 가설. 심지어는 창조자들이 자신들이 불러낼 수 있는 사상 최악의 괴물을 불러내서 심장과 동귀어진시켜 버렸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한 몇몇은 알았다.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거부한 한 무리의 의인義人이 심장과 함께 자신들이 봉인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강사님은… 이 결과에 만족하실까? 어떻게 생각해. 죽창아?”
신하연은 전익현이 자신에게 맡긴 죽창이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전익현이 자신의 몸을 바쳐 심장과 공멸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동료로 삼을 것처럼 해 놓고. 자기들끼리만 가는 건 너무했다. 그치?”
전익현과 함께 탑을 공략했던 정예멤버. 그 안에 자신이 들어갈 것처럼 이야기를 해 놓고도 자기들끼리만 쏙 가 버린 것이다.
여한설도, 남연철도, 진슬아도 죄다 낙오됐다. 전익현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에는 자신들이 전익현의 눈에 맞을 정도로 강해지지 못했으니 선택받지 못한 것이겠지만.
아마도 심장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고 있는데도 마지막 층계까지 오르지 못한 이유 때문이겠지.
세계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자 탑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도 탑은 꽤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저 자리에 방치될 것이다.
“…우리들이 하던 탑의 공략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 거겠지?”
공허한 말을 내뱉던 신하연의 머릿속에 전익현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즐겨. 목숨이 걸려 있어도 목숨이 걸려 있지 않은 것처럼.]그의 말대로라면. 「탑」은 공략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수없이 많은 모험들과 공략할 가치가 있는 「탑주」들이 있는 장소였으니까.
“아니.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야.”
신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탑은 세계를 멸망시키지도 않을 무해한 장소가 되었다. 그런 곳을 구태여 찾아가는 것은 머저리같은 일이다.
머저리같은 일.
전익현같은 일.
그리고. 정말로 듀얼을 즐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 신하연은 「탑」의 앞에 서 있었다.
탑 앞은 수없이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세계의 종말을 카운트다운하던 탑의 위협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확실히 몇 주가 지났는데도 기사로 쓸 만한 일이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탑 안으로 들어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야. 목숨을 거는 일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한 번 탑 안에 들어가면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고, 목숨을 걸어야만 하니까.
신하연은 홀린 듯이 탑의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탑」의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플로워에 도달했습니다.]플로워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제일 늦네. 하긴. 너는 1년 꿇었던 드랍 아웃 걸(drop out girl)이었지.”
“시끄러.”
여한설의 독설에 신하연은 가볍게 대꾸한 뒤 주변을 돌아봤다. 보이는 익숙한 얼굴들. 자신의 파티원들. 모조리 전익현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던 사람들이다. 여한설, 남연철, 진슬아, 권보람, 흑일삭….
“시레나! 다리 싫어! 스핑크스만큼 다리 싫어!”
“네가 네 발로 지느러미를 걷어차 놓고. 왜 투덜거리는 게냐?”
“지느러미론 계단 못 올라가! 스핑크스는 전익현이야!”
‘…저 둘은 누구야?’
둘이서 투닥거리며 싸우고 있는 두 명의 낯선 얼굴들을 본 신하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익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건데 전익현과 어떻게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분명한데.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저 둘은 시레나랑 스핑크스.”
“…저 둘이. 그 수호자라고?”
“그래.”
근데 수호자가 여기는 왜 온 거지? 아니. 애초에 둘이 수호자는 맞는 건가?
“아! 신하연! 반가워! 시레나! 신하연과 말 하고 싶었어!”
“아! 네, 어. 바. 반가워요.”
시레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가 신하연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어댔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시레나는 인어다. 그런데 시레나의 허리 아래는 아무리 봐도 다리가 달려 있었다.
스핑크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의 귀와 엉덩이에도 털 달린 귀와 꼬리는 없었다.
“무례하게 쳐다보는군. 하긴. 이토록 비천한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스핑크스가 인간 전체를 멸시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올려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말하는 태도와 분위기는 자신들과 함께해온 시레나, 스핑크스와 판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둘은 고양이와 열대어의 모습이었다는 것 정도.
“인간이 되었다는 건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의 의미다. 「수호자」는 인간 세계에 개입할 수 없다. 세상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힘을 포기해야만 하지. 모든 힘을 포기한 수호자들은 가장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존재. 즉 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런 힘을 왜 포기한 거에요?”
“네가 여기에 온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지.”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
더 이상 전익현은 이 세계에 없다. 그는 「심장」과 함께 공멸해 버렸으니까.
심장의 위협이 사라진 이 장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탑을 공략한다고 해서… 강사님이 살아돌아올 리는 없겠지.’
하지만 여전히 탑은 이곳에 존재한다. 신하연은 스스로의 마음에 물었다.
‘그러면. 왜 탑을 공략해야 하는 거지?’
…우문愚問이다.
탑을 오르는 이유는, 거기에 탑이 있기 때문인 것을.
그러니. 전익현이 올랐던 탑을 올라야 했다.
전익현이 탑을 올랐던 마음가짐과 같이 오를 것이다.
탑을 즐기면서.
즐기면서 오르면 올라가는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즐기겠다는 마음이다.
속도 따위가 아니라.
* * *
“대체 언제 오는거야… 빨리 오라고… 거북이라도 삶아 먹었나. 이러다 나 죽어….”
나는 가방에 있는 음식의 양을 확인했다. 2주가 지난 지금도 음식은 아직 꽤 남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식의 양이 아니었다. 사람은 음식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듀얼로 사는 것이니.
“제기랄… 벌써 이틀째 듀얼을 한 판도 못 했어….”
나는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벌써 흘릴 눈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가져왔다고 생각했던 소울 커맨더스 게임들은 여기의 격리 생활이 시작한 지 하루만에 끝나 버렸다. 가지고 온 배터리는 엊그제 동나 버렸다. 넉넉하게 배터리를 챙겨 왔다고 생각했는데. 재미를 위해 게임기를 여러 대 동시에 돌린 게 패착이었다.
게임기가 모조리 동나고 나서부터는 머릿속으로 상상 듀얼을 돌리는 것과 자각몽 듀얼을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듀얼의 전부였다.
내 상상 듀얼은 오랜 시간동안의 수련을 통해 굉장히 해상도가 높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그 느낌에서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머릿속으로 상상 듀얼을 돌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게 상상 듀얼만을 2주동안 한 결과, 나는 지금 심각할 정도의 듀얼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을 좀 덜 챙겨오고 배터리나 챙겨오는 건데.”
나는 내가 듀얼 없이도 하루 정도는 살 수 있는 평범한 듀얼리스트라고 생각했다. 내가 평소에 소울 커맨더스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는 것은 구태여 듀얼을 중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의지가 없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나는 듀얼 없이는 몇 분도 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부정해 왔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나. 어쩌면 듀얼 중독 초기인 걸지도….”
만에 하나라도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가벼운 약이라도 처방받아야겠다. 그래도 행운인 점이라면 듀얼 중독을 초창기에 발견해냈다는 점이다.
중독은 그 상태가 심각할수록 치료가 힘들어지는 법. 지금의 내 상태라면 하루이틀쯤 치료받고 나면 듀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치료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니다.
“…내 승리는 확정적이지만.”
탑의 듀얼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필드에서 몬스터들을 만나서 싸우는 「필드 듀얼」. 그리고 탑주나 심장과 같은 한 층계를 모두 사용하는 「탑주전」.
이 「탑주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은 탑주가 있는 층계로의 출입은 완전히 봉쇄된다.
오직 한달 동안만.
한 달이 지나면 「탑주전」을 치르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듀얼리스트들은 출입할 수 있게 된다.
왜 한 달이면 출입이 열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측컨데 개발진들은 듀얼 한 판이 한달이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본게 분명하다.
상상력이 그렇게 부족하니 게임 밸런스가 개판이 나는 것도 당연하지.
아무튼, 한 달만 있으면 이 층계는 출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출입하는 사람은 심장과 듀얼할 필요가 없지.”
기본적으로 「탑주」들은 클리어되고 나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후보자들이 대체하게 된다. 풀무불꽃의 경우에는 별 능력 없는 풀무불꽃이 그 자리를 대신했던 것처럼, 원래 있던 탑주를 대신해서 난이도가 조금 더 낮은 「탑주」가 그 자리를 채우는 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심장」이 듀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자리를 대체할 존재는 누구인가.
아마도. 본래, 이 「소커아」의 최종보스로 계획되었던 캐릭터.
「혼돈악의의 듀얼광인」이 나오게 될 것이다.
원래라면 이 캐릭터를 공략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확한 카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략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놈의 모델링은 왜인지 한 번도 본 적 없다. 내가 보면 기분 나빠할 거라던가. 뭐, 모델링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듀얼은 외모가 아니라 능력으로 하는 것을.
아무튼 서윤하의 요청에 따라 몇 번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놈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심장」과는 달리 공략이 가능은 한 최종 보스다.
물론 상대가 쉽지는 않다. 나조차도 승산을 장담하기 힘든 캐릭터가 바로 「혼돈악의의 듀얼광인」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죽음에 모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으니까.
하지만….
“10대 1 정도로 다구리치면 당연히 이겨야지. 아니, 이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