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95
“네놈! 전익현 맞잖아!”
“아니라니까!”
“전익현 맞으면 카드팩 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사실 맞아. 전익현.”
스핑크스는 카드팩 하나에 바뀌어 버린 전익현의 태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 대 패고 싶다.’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왔는데도 전익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소나무보다 더 한결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 * *
“이게 뭐야.”
나는 스핑크스가 나에게 보상으로 준 「자위하는 미친 해골」카드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쓰레기 카드팩이잖아.”
“그래. 카드팩을 주겠다곤 했지만 무슨 카드팩을 주겠다고는 말을 하지 않았잖느냐.”
“사기꾼 같으니라고.”
“다 나에게 가짜 타지마할을 준 놈에게 배운 것이니라.”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버릇은 도대체 어디에서 배운 건지.
스핑크스는 외전을 쓰겠다고 해 놓고 신작 게임에 시간을 부어넣은 웹소설 작가같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양심은 내다버린 인간도 아닌 무언가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타지마할 준 거 엄청 기쁘게 받았었잖아. 그걸로 다 된 거 아니었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스핑크스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품 안에 있는 「한정판 레어리티 컬렉션XXII」은 내 입장에서 정말 얻고 싶은 카드팩이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카드들이 수록되어 있는 신규 카드팩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메타의 주도 카드가 될 것이 분명한 「우라라의 하루」는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카드다.
“그런데 왜 이 세상에 돌아온 것이냐? 놓고 간 것. 혹시…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남겨둔 게 있어서 돌아온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카드팩 발매가 이쪽이 더 빨라서 넘어왔어.”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이로고.”
스핑크스는 자신도 이제는 인간이 된 주제에 인간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인간을 경멸하는 게 아니라 네놈을 경멸하는 표정이니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내 표정 읽지 마.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사람의 생각을 읽어댄다. 몸이 바뀌었는데도 이렇게 알아채다니.
게다가 숨기려고 했던 정체까지 바로 들키고 말았다. 진짜로 가면이라도 구해서 들고 다녀야 되나.
나는 「자위하는 미친 해골」카드팩을 뜯은 다음 스핑크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더 돌아다녀 봤자 원하는 카드팩은 구하지 못할 게 뻔했다.
오랜만에 스핑크스랑 대화라도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할 이야기도 꽤 있을 테고.
겸사겸사 카드팩을 탈취할 방법도 생각해 둬야지. 이제는 망할 놈의 시스템이 없는 탓에 카드팩을 탈취하는 것도 가능해졌으니까.
그리고 만나면 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카페라도 갈래?”
“네가? 카페를 가자고 한다고?”
스핑크스는 내 말에 고개를 기울여 나를 바라봤다. 과거에 의문스러운 일이 생기면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 그대로다.
고양이에서 사람이 됐는데도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하긴. 모습이 변한다고 해서 행동거지가 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만.
“왜. 카페 가자는 게 신기하기라도 하냐?”
“신기하지. 오늘 세상이 망해도 덱 튜닝을 하고 있을 인간이 카페를 가자고 하다니.”
오늘 세상이 망하면 당연히 덱 튜닝을 해야지. 오늘 세상이 망하면 내일은 덱 튜닝 못하는 거잖아.
“…아니. 됐다. 그보다 뭐라고 불러야 되지? 전익현?”
“내 원래 이름은… 이우주야. 하지만 원하는 대로 불러.”
“그럼 앞으로는 인간 언저리라고 부르도록 하지.”
“그게 아니라. ‘이우주’, ‘전익현’ 중에서 선택하라는 말이잖아.”
“인간 언저리. 카페로 나를 안내하거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스핑크스는 똑같았다. 그건 나도 피차 마찬가지지만.
내가 전익현이고 스핑크스가 고양이의 몸일 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다를 이유가 딱히 없었다.
이름이나 외견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외견이 아니다.
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드명이나 일러스트가 아닌 카드의 효과다.
카드명이나 일러스트 따위보다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느냐가 카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인간관계라는 것도 외견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스핑크스와 나의 관계가 그렇듯이.
“속으로 헛소리 하고 있지 말고 움직여라. 인간 언저리.”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인간 언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뜩찮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일반 카페도 갈 수 있지?”
“그렇지.”
스핑크스가 인간이 됐으니 갈 수 있는 선택지가 꽤 늘었다. 예전에는 고양이 카페 말고는 갈 수 있는 데가 없었는데.
“그마저도 카페 고양이들이랑 싸움박질을 해 대는 통에 몇 번 가 보지도 못했고.”
“그 놈들이 나를 고양이라도 쳐다보는 것처럼 노려봤단 말이다! 나는 스핑크스! 백수의 왕이다! 미물들이 마땅히 경배를 바쳐야 하는 존재!”
“싸우는 건 괜찮은데 맨날 두들겨 맞기만 했잖아. 두들겨맞으면 나한테 이르러 오고.”
“…그건 한 때의 수모일 뿐. 이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놈들을 유린할 수 있다.”
양 팔에 발톱 자국이 나 있더라니. 고양이 카페에서 사투를 벌이느라 생긴 거였군.
인간의 몸을 얻고 하는 짓이란 게 고양이 카페에서 고양이들 괴롭히는 짓이라니.
얘도 인간성과 사회성은 내다놓은 게 분명하다. 사람으로서 해야 되는 일들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을게 뻔하다.
고양이일 때처럼 바닥에 드러누워서 다른 사람이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더 깊게 엮이지 말자.
좀 더 깊게 엮였다가는 하루가 머다하고 나를 찾아댈 게 눈 앞에 훤하다.
그러니 이야기 좀 나누고, 저 품에서 카드팩 얻어낸 다음 다시는 연락 하지 말아야지.
“음흉한 흉계를 세우는 얼굴이로군. 하지만 네놈의 뜻대로는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남 생각 읽지 마라니까.
##외전#1 : 스핑크스(2)
「소커아」에는 특이한 가게가 굉장히 많다. 세계관 자체가 미쳐돌아가는 탓도 있지만 이 세계를 만든 제작진들의 취향이 특이한 탓이다.
뭐, 제작진들의 취향이 특이한 건 스핑크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뭘 봐.”
“아니. 아무것도 안 봤는데.”
나는 말을 돌리며 눈 앞에 있는 간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드 코스프레 카페]“그러니까 코스프레 카페 정도면 그다지 특이하지 않은 편이라는 거지.”
“…코스프레가 무엇이지?”
“그런 게 있어.”
보통의 코스프레 카페라는 것은 종업원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고 고객들은 그런 코스프레를 구경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코스프레 카페라는 곳은 그것보다 상태가 심각하다.
“안녕하세요. 코스프레 카페입니다. 코스프레를 하신 분은…?”
“이쪽입니다.”
이곳은 입장객 중 한 명 이상이 카드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카페다.
“코스프레하고 있는 카드는 「고양이 변신사」입니다.”
“으음…퀄리티가 조금 애매한데요.”
“제작비가 조금 부족했거든요.”
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퀄리티로도 출입이 안 되는 건가.
“내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니 무슨 말이냐?”
“이 귀에 달린 고양이귀, 움직이는 고양이꼬리. 보시다시피 어미에 ‘~냐’도 충실하게 붙이고 있죠.”
“그게 무슨 개소리냐?”
내 머리를 단번에 후려치고 싶어하는 스핑크스의 눈빛을 무시했다. 점원의 얼굴은 여전히 조금 애매하다는 표정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성의’이다. 나는 점원에게 카드를 건냈다.
“…으음.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네요.”
“감사합니다.”
내 피같은 「진격의 G」가 이렇게 날아가다니. 그리 비싸진 않지만 필수 카드라서 예비 카드가 많이 필요한 카드인데.
그래도 이 코스프레 카페에서 입장 권한은 받았으니 스핑크스는 제 값을 다 한 셈이다.
우리는 그렇게 코스프레 카페 안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카페에 왔으니 용서해 주도록 하마.”
“여기, ‘바삭바삭 고양이 쿠키’랑 ‘특상 연어회’ 하나 주세요.”
“흐음. 내가 좋아할 만한 메뉴도 바로 주문하다니. 이 몸을 섬기는 법은 아직 잊지 않았나 보구나.”
스핑크스가 내 메뉴 선택이 마음에 들었는지 낮게 갸르릉거렸다.
기분도 좋은 것 같으니 빠르게 이탈해 볼까.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천천히 다녀오거라.”
나는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가며 머릿속으로 메뉴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쿠키랑 특상 연어회가 나오려면 적어도 십 분은 걸릴 테고. 먹는 데는 30초니까… 10분 30초 정도를 번 셈이다.
비밀 통로를 뚫고 이 카페의 지하에 들어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
그러면 나는 내 볼일을 다 끝내고 이곳을 탈출할 수 있다.
그것도 딸린 혹 같은거 없이. 완전히 혼자서.
* * *
스핑크스는 자리에 앉은 채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심장이 사라진 이후에 지구에서도 여러 종류의 아인종들을 볼 수 있게 되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인종들이 탑에서 지구에 오는 것은 엄격한 관리와 심사를 거쳐야만 하는 일.
지구에서 이렇게 많은 아인들을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 가게에서 말하는 ‘코스프레’라는 것은 아인종들을 이야기하는 것인 모양이다.
스핑크스는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의 아인종들을 하나하나 관찰해 나갔다.
“오오! 파라오의 사도가 아직도 이 땅에 있을 줄이야!”
“샐러맨더의 불꽃 치고는 약한 것 같지만. 믿음이 강해지면 불꽃도 강해질 수 있을 게다!”
“기갑공룡들은 왜 죄다 그리도 불쾌한 소음을 내는 건지.”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관심거리들이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사람들과 몬스터들이 제 몸을 뽐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싫증이 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결국 이런 것들은 수호자생활을 할 때에도 지겹도록 봐 온 것들이었으니까.
“노예 녀석은 왜 이리도 늦는 거지.”
스핑크스는 전익현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하품을 했다. 오 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전익현은 아직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 간다고 해서 도망친 것도 아닐 테니. 그냥 기다리도록 할까.”
그녀는 신이었다. 전익현은 자신의 신자였다. 가끔은 놈의 충성심이 의심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전익현은 매일같이 스핑크스에게 식사와 빗질을 제공하던 시종.
그러니 전익현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리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익현이 노리고 있는 카드팩도 나에게 있지.”
스핑크스는 품 안에 손을 집어넣고 카드팩을 꺼내들었다. 놈의 카드에 대한 집착은 불나방 수준이다.
이 ‘레어리티 컬렉션 XXII’ 카드팩이 있으니 전익현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자위하는 미친 해골]“…?”
스핑크스는 품 안에 들어 있던 카드팩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분명히 자신이 전익현에게 줬던 카드팩이다.
원래 있어야 할 레어리티 컬렉션 카드팩은 온데간데없다.
스핑크스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익현이 자신의 품에서 카드팩을 훔쳐갔다는 것과, 전익현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스핑크스의 눈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전익현…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고양이 쿠키 나왔습니다. 어디 둘까요?”
“아! 여기다! 여기에 공물을 바치거라!”
일단 이 바삭바삭하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쿠키부터 먹은 다음…
“추가 주문된 특상 연어회는 조리에 좀 시간이 걸릴 예정입니다.”
“으음… 알겠다.”
…에 연어회까지 먹은 다음. 전익현을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