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98
휘익! 휘이익!
하지만 스핑크스의 몸은 액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빠져나갔다.
내가 목욕을 시키려는 분위기를 감지했을 때처럼 날렵한 움직임이다.
저 상태가 된 스핑크스를 잡는 방법은 츄르와 고양이 낚시대를 동원하는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던져!”
촤라라락! 스핑크스가 카드를 투척했다. 던져진 카드는 표창처럼 회전하며 투기장의 철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기는.
다른 사람들이 고밸류 카드 못 가지게 방해하는 거지.
내가 가지지 못하는 물건이라면 부숴버리고 싶어하는 것.
그것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내가 그러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다.
“다음! 왼쪽으로 5m 지점의 「바위-영롱한 터키석」!”
“그 다음!”
“그 다음!”
촤라락! 촤락! 계속해서 투기장 밖으로 투척되는 고밸류의 카드들.
스핑크스는 요리조리 도망치며 카드들을 바깥으로 투척해댔다.
스핑크스를 잡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사람들은 남아 있는 카드들이라도 줍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바닥의 카드를 주워들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카드가 늘어난 느낌 아니야?”
“그럴 리가. 멀쩡한 카드가 늘어날 리가 없잖아.”
“뭐, 뭐야! 이 카드는! 개쓰레기 카드잖아!”
눈치가 좀 느리군.
바닥에서 카드를 주운 사람들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카드가 늘어난 느낌이라고?
당연하지.
카드들은 실제로 늘어났으니까.
화라락! 화라락!
스핑크스는 카드를 던져대는 반대쪽 손으로 계속해서 바닥에 쓰레기 카드들을 투척해대고 있었다.
더미 카드를 늘리고, 페어카드를 줄인다.
완벽하기 그지없는 전략이다.
촤아악!
그러고도 기운이 남으면 제멋대로 뒤섞인 카드들을 헷갈리도록 발로 뒤집어 놓는다.
“이런 사악한 짓을 저지르다니!”
“네놈들은 듀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아아아!”
“악마들! 악마들아아아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발로 카드 섞는 건 너무했다. 사람들이 너 욕하잖아.
투기장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 절규를 뒤로 한 채.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음료수를 목 아래에 집어넣었다.
쪼옵. 쫍. 쫍.
맛있다.
아마 이 음료수보다 맛있는 음료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 * *
[덱 선택 페이즈가 종료되었습니다.] [덱을 구축한 플레이어는 네 명입니다.]네 명이라. 생각보다 적게 살아남았네. 플레이어들의 멘탈이 그만큼 크게 흔들렸다는 뜻이겠지.
좌우를 둘러보자 반쯤 정신을 놓은 출전자들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듀얼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너도 재밌게 해 놓고 갑자기?”
“…나도 조금은 즐기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묘하군.”
“극복하겠지. 듀얼리스트들이라면 모름지기 역경을 이겨내는 법이니까. 역경을 극복하고 나면 그만큼 더 강한 듀얼리스트가 될 수 있는 거야.”
“그 역경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낸 인간이 할 말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리고 사람들이 좀 슬퍼하면 뭐 어때. 100명의 사람들이 10만큼 불행해한다면, 내가 1000만큼 즐거워해주면 되잖아.”
“…….”
뭘 그렇게 봐.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완벽하기 그지없는 해결책이잖아.
스핑크스는 내 대답을 듣고 난 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무슨 생각하냐?”
“네가 여기서 죽어주는 게 세상 전체의 행복을 위해 올바른 길 아닐까 싶어서.”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하다니.
“그래도 내 덕분에 우승은 거의 확정이잖아.”
스핑크스의 방해공작 덕분에 남은 참가자들은 고작 네 명. 그조차도 덱이 반쯤 박살난 상태다.
남은 것은 남아 있는 세 명을 처리한 다음에 보상 카드와 보상 카드팩. 거기에 추가로 스핑크스에게서 카드팩 한 팩을 더 챙기는 것.
신규 한정 카드팩이 여섯 개라니. 오늘은 치성을 드리기 위해서 고급 식재료인 스팸을 구워도 괜찮을 것 같다.
대진표는 4강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듀얼에서는 설령 초등학생이 상대라도 전력을 다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나도 쉬운 승부였다.
“졌습니다….”
“정의가 패배하다니….”
“신이시여. 저 악마에게 천벌을 내려주소서!”
관중들의 분위기는 왜인지 심하게 험악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세상을 구했는데 이런 취급은 좀 너무하지 않나. 물론 저 사람들이 내가 이 세상을 구한 건 알지 못할 테지만.
뒤이어서 스핑크스도 상대를 두들겨패다시피 해서 승리를 거뒀다.
“좋아. 이제 결승전만 남았네.”
스핑크스와 나는 공동체나 다름없다. 마지막 결승전은 의미없는 승부인 것이다.
“전익현. 네놈과는 오랜만에 붙는군.”
“그러게. 오랜만이네.”
방구석에서 굴러다니면서 심심할 때마다 스핑크스와 듀얼을 하고는 했었지.
거의 대부분은 내 승리였다. 물론 아주 가끔 스핑크스가 비겁하게 운으로 이기고는 했다.
이기고, 지고 했던 모든 시간들을 떠올렸다. 스핑크스는 좋은 듀얼리스트다.
그리고 좋은 듀얼리스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생각은 없지?”
“물론이다.”
“전력으로, 정정당당하게 하는 거고?”
“물론.”
나는 웃었다. 스핑크스도 웃었다.
[결승전을 준비해 주십시오.]“나쁜 손버릇은 쓰지 말도록 해라. 듀얼은 듀얼이니까.”
“손버릇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게다가 나는 카드마술을 망나니처럼 마구잡이로 쓸 정도로 멍청이가 아니다.
손장난은 듀얼리스트를 약하게 만든다.
여차하면 카드마술을 쓴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문제다.
카드마술에 중독되면 카드마술을 쓸 수 없는 중요한 듀얼에서 이길 수 없다.
눈 앞의 한 판은 이길 수 있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자신을 갉아먹는 독과 같은 것이 카드마술이다.
그렇기에 나는 카드마술을 정말 친한 사이, 혹은 정말로 급박한 상황에서만 써 왔다.
예를 들어서 서윤하가 생활비 관리 명목으로 뺏어간 내 신용카드를 되찾을 때라던가.
한 달 생활비 5만원만 빼고 나머지 돈 전부를 카드 사는데 쓰는 게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듀얼이 시작됩니다!]듀얼이 눈앞인데 정신을 너무 다른 데 썼군.
집중하자.
[당신의 턴입니다.]투기장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는 가위-바위-보의 시리즈 카드들이다.
완벽하게 상성이 잡혀 있는 카드들.
그렇기에 초반에는 카드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
첫 카드를 내서 상성을 잡히면 한 장의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것이 되기에.
이 격차를 줄이려면 사용 가능한 마나가 조금 쌓이고, 패 또한 충분해진 다음에 공세에 나서는 것이 정석.
“턴 엔드.”
[상대 턴입니다.]나는 턴을 종료한 다음 스핑크스의 패를 바라봤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뒷면으로 카드들을 식별하는 데에는 여전히 무리가 없었다.
“패가 잘 안 풀렸나 보군?”
“그럴지도.”
스핑크스의 패의 템포가 상당히 빠르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초반에 공세에 나서는 것이 괜찮을 만큼.
하지만 그건 내 패를 모두 알 때나 할 수 있는 판단이다.
스핑크스는 내 패를 알 수 없다. 그러니 나처럼 초반부를 스킵할 가능성이 크다.
“초반부에는 그냥 턴을 종료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네 패를 모르니까 말이야.”
“초반부엔 턴 종료를 하는 게 정석이긴 하지.”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 없어! 나는 가위로봇을 소환!”
+
【가위-로봇】
【1 mana】
【무속성】
【‘보’카드들에게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2/2】
+
“턴 엔드!”
“그렇게 카드를 막 써도 괜찮겠어?”
“괜찮으니라!”
내 물음에도 스핑크스는 득의양양했다. 내 패에 가위 카드를 제압할 바위 카드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다.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패를 뽑아들었다. 상대가 공세에 나왔으니 나도 대응에 나서야 했다.
대응에 나서기 전에. 스핑크스가 정말로 내 카드를 다 읽고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할까.
“나는….”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카드를 잡아들었다. 지금 내가 활용 가능한 카드는 두 장. 똑같은 「가위-로봇」. 혹은 패에 한 장뿐인 「바위-돌멩이」.
스핑크스 입장에서는 내 「돌멩이」를 처리하고 싶겠지.
나는 「돌멩이」에 손을 얹으며 스핑크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흥! 이몸의 표정을 읽으려 해 봤자다!”
확실히. 내가 없는 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핑크스의 포커 페이스는 굉장히 단단했다.
아무리 나라도 포커페이스를 장착한 스핑크스의 표정을 단기간에 읽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하지만….
쫑긋쫑긋!
살랑살랑!
‘귀랑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내가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스핑크스의 꼬리와 귀가 주책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 움직임은 작디작다. 하지만 나는 스핑크스와 좋든 싫든 1년을 같이 살았다.
저 정도도 읽지 못한다면 주인 실격이겠지.
나는 살랑거리는 꼬리를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스핑크스는 확실하게 내 패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겁한 수단으로 남의 카드를 읽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