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3
20분이라. 생각보다도 더 오래 걸리네.
말이 움직이는 시간 동안은 게임에서 할 게 없다.
나는 노트북 키보드 위에 휴대폰을 얹고, 소울 커맨더스를 시작했다.
* * *
“처음부터 마교를 가면 어떡해! 그러면 깰 수가 없잖아!”
서윤하는 이우주의 어깨를 흔들어 봤지만 이우주는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마.’라는 태평한 소리를 해 댔다.
마교는 듀얼무림의 최종 보스 구역이다. 무공도 쥐뿔 없는 캐릭터가 깰 수 있는 구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언제 게임 안의 바이러스가 게임을 완전히 터트릴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이우주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표정이다.
“아. 패 한 번 더럽게 말리네.”
서윤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래. 저래 보여도 이우주는 이우주다. 무슨 생각이 있을 게 분명하다.
자신의 완벽한 게임 디자인을 생각한다면 클리어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우주니까.
서윤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은 채 이우주를 노려봤다.
“죽어라! 죽어! 끼요옷!”
[승리하셨습니다!]랭크 매치에서 승리한 다음 상대가 볼 리가 없는데도 포즈를 취해대는 이우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안 변하는 건지.”
“왜. 안 변하면 안 되냐?”
“좀 변하면 어때서.”
탑에서 거의 이삼 년만에 만났을 때도 이우주는 그대로였다.
죽는 게 거의 눈앞에 온 상황에서도 그대로였고, 목숨을 건 듀얼을 계속하면서도 그대로였고. 세상을 구한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은 채다.
“예전의 우주는 진짜 멋졌는데.”
뇌에 무슨 버그가 들어찬 건지 지금은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딱 듀얼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때에만 멋있다.
“으음. 그걸로도 충분한 걸까.”
사실. 그것마저도 자신이 불평을 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과거의 서윤하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서윤하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
어쩌면 자신을 이전 그대로 대해 주는 것은 이우주 나름대로의 배려인지도 몰랐다.
“근데 이번 의뢰, 만에 하나라도 실패하더라도 신규 카드 몇 장만 가르쳐주면 안 돼? 열심히 했는데 몇 장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잖아?”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걸지도.’
뇌에 카드와 카드와 카드뿐인 인간 같으니라고.
하긴. 그러니 주변에 그렇게 여자들이 꼬였는데도 아무 일이 없지.
경쟁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 훨씬 앞선 상황에서 시작해 있는 상황.
‘게다가 이우주는 카드바보지.’
카드 말고는 신경쓰는 게 아예 없는지라 관계가 진전되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별 일이 벌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 * *
[마교의 근거지-십만태산에 도착하셨습니다.]“벌써 도착했어?”
마교에 도착한 나는 빠르게 캐릭터를 움직였다. 내 덱은 스타팅 덱 그대로인 상황이다. ‘방어’ 카드 5장과 ‘공격’ 카드 5장이라는 말이다.
대놓고 카드를 차별하는 이 게임의 특성상 가장 밑바닥에 깔리는 카드들이 바로 이 공격 카드와 방어 카드들이다. 게임을 만든 사람의 의도는 이 카드들을 빠르게 제거하고 좋은 무공 카드들을 모으라는 거였겠지만….
‘그러기 싫은데.’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 게임을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캐릭터를 움직여 마교인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향해 돌진했다.
[뭐냐! 네놈은!] [마교도들이 당신에게 주목합니다.] [당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을 제시하십시오.]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자식! 중원에서 온 첩자다!] [잡아!] [당신은 수많은 마교도들에게 붙잡혀 뇌옥에 갇혔습니다!]“이 게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사천에서 얻은 「위조 호패」가 없으면 듀얼 없이 바로 붙잡히게 돼 있어.”
“소커아였으면 듀얼로 때려눕히고 진행할 수 있었을 텐데.”
“…그딴 짓 하지 마라고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거든?”
플레이어의 다양성을 제한하다니. 듀얼무림은 소커아보다도 똥게임이 분명하다. 뭐….
‘붙잡히는 것도 계획대로지만 말이지.’
내 캐릭터는 수없이 많은 마교도들의 손에 붙잡혀 뇌옥에 갇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심문.
[천마신교에 잠입하려는 간자 놈아!]심문의 과정은 꽤나 혹독했다. 새삼 이 게임이 노트북 안에서만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뇌옥에서의 고문으로 내공을 1 잃었습니다.] [남은 내공 : 2]“봤지? 그냥 무작정 마교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나는 서윤하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마교로 들어갔다.
[뭐냐! 네놈은!] [아까 왔던 미친 놈이잖아!] [다시 들어오다니. 정신이 완전히 나갔군!] [잡아!] [마교도들이 당신에게 주목합니다.]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마교도들에게 붙잡혀 뇌옥에 갇혔습니다!]그리고 뒤이어지는 고문.
[당신은 뇌옥에서의 고문으로 내공을 1 잃었습니다.] [남은 내공 : 1]“아니. 방금 안 된다고 내가 말 했잖아! 내공이 1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해!”
“어쩌긴.”
나는 다시 한 번 마교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지막 남은 내공 1도 삭제하기 위해서.
[당신은 뇌옥에서의 고문으로 내공을 1 잃었습니다.] [남은 내공 : 0]“……카드 게임.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고 있지?”
“잘 알아.”
잘 아니까 이렇게 하고 있는 거지. 한 번 더 잡해서 내공량이 0에서 1 더 줄어들면 수치가 폭증하는 오버플로우(overflow) 버그가 발생하는지 시험해 봤지만 아쉽게도 오버플로우는 막혀 있었다.
옛날에 내가 썼던 버그를 막아 놓다니. 그래도 조금은 성장한 모양이다.
“야! 내공이 0 됐으니까 이제 다시 시작하기나 해! 이 게임은 꼼수 따위는 없는 정정당당하고 양심적인 게임이라고!”
“게임의 룰을 사용하는 건 비겁한 게 아니야.”
그리고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듀얼에서 양심 찾는 것만큼 양심 없는 행위는 없다.
“듀얼은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온 영혼과 전략, 지식을 동원해 맞부딪히는 정정당당한 싸움. 이 영예로운 전장에 양심 따위의 인간이 만들어낸 잣대가 들어올 곳은 어디에도 없어!”
“네가 양심 터졌다는 말을 멋들어지게 포장하려고 하지 마.”
서윤하가 내 심장에 있는 양심의 삼각형을 건드려 보려 했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내 양심의 동그라미는 이미 충분한 수련을 통해 완전한 원형으로 만들어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건데? 내공이 0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이 상황쯤 됐으면 내가 뭘 할 지에 대해서는 알아챘을 줄 알았는데. 게임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나 생각이 없어서야. 투덜거리는 걸 상대로 싸워 봤자 내 손해다. 직접 보여주면 저런 투덜거림도 환호성으로 바뀔 테지.
나는 내 상태창을 다시 점검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덱 구성을 만들 수 있는 두 가지 조건. ‘섬전창’과 ‘내공 0’은 달성 완료.
이제 클리어를 위한 마지막 조건. ‘폭뢰심공’만 얻으면 된다.
##외전#2 : 서윤하(4)
[크헤헤헤헤! 거기 서라!] [꺄아악! 도와 줘요!] [크큭. 그래 봤자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나와 비무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마교의 졸개가 지나가는 여자에게 음흉한 표정으로 다가가 비무를 신청하는 모습은, 뭐랄까. 초현실적이었다.
이 마교인 놈들은 두 번째 플레이를 끝내고 세 번째 보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이거. 맞아?”
“맞는데. 왜?”
“아니. 마교라는 놈들이 지나가는 사람 잡아다 하는 게 고작 비무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마교는 무공에 미친 놈들 집단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미친 사람이라면 했을 법한 느낌으로 스크립트를 짜 봤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다니! 비무다!] [네 놈. 눈이 초롱초롱하군. 비무로 상대해 주겠다!] [비무… 비무가 필요해…! 벌써 세 시간째 비무를 못 했어…!]“확실히 미친놈들이긴 하지만….”
마교도 놈들은 상태가 심하게 안 좋았다. 시뻘개진 눈을 한 채로 비무를 할 사람을 찾아다니는 망령들이라니. 모티브가 된 사람이 누군진 몰라도 절대 가까이 하면 안 될 미친놈이 분명하다.
나는 마교의 무공에 미친 놈들을 피해 움직였다. 내공도 하나 없으니 여기서 걸리면 그대로 끝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마교도 놈들이 제 놈들끼리 싸우느라 어그로가 나한테는 덜 쏠린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비무를 피해 움직였을까. 나는 마교 입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쓰레기장」구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쓰레기장] [마교도들이 버린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가득한 공간입니다. 쓸만한 물건은 없어 보이지만 기연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히든 퀘스트를 받는 게 아니면 쓰레기장에 쓸 만한 물건은 없을 텐데. 퀘스트를 안 받고 오면 죄다 쓰레기들뿐이라고.”
이전 회차에서는 히든 퀘스트로 「녹옥불장」을 얻을 수 있었지. 부처님 손바닥 모양의 녹색 장갑인 「녹옥불장」은 공격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상대에게 퍼센테이지로 데미지를 입히는 초월급 장비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여기 온 것은 퀘스트 보상이 아니라 그 ‘쓰레기’에 관심이 있어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윤하는 옆에서 훈수를 두고 싶어서 근질근질해하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훈수를 두고 싶어하면서 ‘근본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은 훈수 안 하고 잘도 참았네.”
“그건 네가 제대로 안 읽은 게 문제잖아! 개발자 탓 하지 말고 설명서를 줬으면 읽으라고!”
“설명서를 찾을 수도 없는 구석에 좁쌀만한 글자로 적어놓고 내 탓 하는 거냐?”
“튜토리얼 중간에 다섯 번이나 이야기해 주잖아! 너 말고 모든 유저들이 제대로 플레이했다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파티 플레이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 없다. 방귀낀 놈이 성낸다더니. 가만 놔 두면 계속해서 억지를 부릴 게 뻔했다.
내가 잘잘못이 너무나도 확실한 말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에 내 캐릭터는 열심히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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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
【무기】
【비도류 공격 카드들의 데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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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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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소드】
【무기】
【인살류 방어 카드들의 회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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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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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뢰심공】
【무공】
【마공인 ‘폭뢰심공’의 비급. 빠진 곳이 너무나도 많아 그대로 익힐 시 부작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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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게임 클리어를 위한 마지막 조각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 * *
“그 무공은 어디서 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