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08
“복지 말고. 얼마나 학생들을 괴롭히냐고.”
“하루에 12시간이나 듀얼을 해야 된다니까요.”
“복지 이야기를 하지 말고 학생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이야기를 하라니까?”
“…….”
내 타당한 질문에 신하연이 실눈으로 나를 노려보다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루에 듀얼을 12시간이나 시키는 게 문제죠.”
내가 이 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하루’ ‘듀얼’ ‘12시간’ ‘시키다’ ‘문제’
단어 하나하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단어들이 조합되어 문장이 되는 순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린다.
이게 게슈탈트 붕괴인가 뭔가 하는 건가.
“…아무튼.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요. 이런 가혹한 환경은 차차 개선해 나가면 될 문제니까요.”
“그렇지.”
뭐가 가혹한 환경인진 모르겠지만 초등학생에게 12시간이나 듀얼을 시켜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혹독하고 끔찍한 교육이 있을 게 분명했다.
##외전#3 : 신하연(2)
[페가수스 초등학교]으리으리한 현판이 달린 초등학교의 입구를 들어서자 초등학교 안의 풍경이 조금 더 확실하게 보였다.
“엄청 크네.”
초등학교가 여한설네 경비실 정도의 크기라니. 이정도로 으리으리하게 지으려면 돈이 꽤 들었겠는걸.
“아무래도 최우등 사립 초등학교니까요. 한 학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어마어마해요. 그런데도 여기 자녀들 보내려는 학부모 분들 때문에 경쟁률은 미어터지죠.”
“이런 데에 네가 잘도 교생 실습을 붙었군.”
“이래저래 듀얼을 잘 하면 편해지는 부분이 많거든요.”
뭐, 초등학교에서 12시간이나 듀얼을 시킨다고 했으니 신하연 정도의 실력자가 우선적으로 뽑히는 것도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아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서 신하연을 이길 만한 사람은 교수까지 포함해서 열 명이 채 되지 않을 테니까.
그 중에서 세 명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고.
아무리 그래도 성적이 0점대에서 노는 신하연이 이런 엘리트 초등학교에 교생으로 나올 수 있다니. 이 세상은 듀얼을 잘 하면 확실히 여러 메리트가 있기는 한 것 같다.
왜인지 나한테는 귀찮은 일들만 잔뜩 생겼던 것 같지만.
“1분 27초 늦었군요.”
교무실에 도착하자 날카로워 보이는 중년 여자가 우리를 반겼다. 신하연의 교생수업 학급의 선생님인 모양이다. 안 좋은데. 이런 사람은 호감을 사기 쉽지 않은데.
“옆에 계신 분은?”
“아. 아카데미에서 제 지도교수를 맡고 계신 교수님이세요.”
“아. 그러시군요. 아카데미에서….”
“정교수를 맡고 있는 이우주라고 합니다.”
나는 종신교수직을 증명하는 테뉴어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는 카드를 살짝 보였다.
“아. 아카데미의 교수님이시군요. 이렇게 젊은데 테뉴어를?”
“실력이 좋았습니다.”
“…강사님. 보통은 운이 좋다고 하지 않나요?”
신하연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음. 말을 잘못했군. 실수할 뻔 했다.
“실력이 엄청 엄청 엄청나게 좋았습니다.”
“…….”
신하연의 표정이 굳든지 말든지 교무실의 분위기는 훈풍이 불어닥쳤다.
“저 사람. 테뉴어래.”
“엄청 젊어 보이는데?”
“그만큼 실력이 있는 거겠지.”
“눈이 좀 범죄 저지를 것 같지 않아? 저런 사람이 나중에 은행강도질 하곤 하던데.”
“에이. 원래 천재는 살짝 광기가 있는 법이라잖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내 눈에 대한 근거 없는 비평을 해 대는 선생님 한 명을 제외하고는 죄다 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교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짜 놨었는데. 그런 시나리오는 하나도 필요없었다.
시간강사 때에는 어딜 가나 불가촉천민 취급이었는데 지금은 카드 한 장 낸 걸로 가마라도 가져올 것 같은 기세라니.
교수직을 무리해서 딴 보람이 있군.
수업에 대한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은 나는 신하연이 맡고 있는 반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신하연이 맡은 반 이름은 「오벨리스크」였다. 이름하고는.
“…그냥 숫자로 반을 나누면 안 되는 거야?”
“이 학교의 전통이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놈의 전통이 그따위래냐.
신하연이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교실의 크기는 컸지만 학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여덟 명이라니. 학생의 수가 좀 적네요.”
“아무래도 학생의 수가 많아지면 교사가 봐 줄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적어지니까요.”
학생이 여덟 명밖에 되지 않으면 듀얼의 풀이 너무 좁아진다. 다양한 상대와 듀얼을 해 봐야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건데. 12시간이나 듀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환경이 완벽한 것은 아닌 모양이군.
“자! 아침 듀얼을 시작하겠습니다!”
[듀얼 필드를 세팅합니다.]하지만 상관없다. 아침운동 대신 아침듀얼을 한다는데. 그런 환경이 좀 부족하면 어떻단 말인가.
스르르륵!
교실이 슬라이드되며 근미래적인 듀얼 필드가 바닥에 순식간에 깔렸다.
“자! 학생들 앞으로!”
신하연의 호명에 조그마한 꼬맹이 둘이 덱을 들고 쪼르르 달려나왔다.
“잘 부탁드리게씁니다!”
“잘 부탁드리겠쯥니다!”
짧은 발음으로도 제대로 인사하고 제대로 악수를 했다. 확실히 듀얼은 매너가 중요하긴 하지.
그리고 시작되는 듀얼.
[듀얼 스타트!]“내 턴! 나는 「미니미 미믹」을 소환!”
+
【미니미 미믹】
【어둠 속성】
【1 mana】
【유언 : 카드를 한 장 드로우합니다.】
【0/1】
+
듀얼 필드에서 순식간에 조그마한 상자괴물이 튀어올랐다. 과거에는 실체가 있는 괴물이었지만 완전히 홀로그램으로 대체되어서 그런지 현실감이 좀 덜했다.
“어둠 속성 덱이네요.”
“요새 유행하고 있는 히어로 무비 「이클립스」덕분에 어둠 속성에 대한 평가가 많이 좋아졌죠. 애들은 대중매체 영향도 금방 받으니까요.”
“…그렇군요.”
수상할 정도로 돈 많은 내 팬이 영화까지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별로 인기 많을 소재도 아닌데 애들이 따라하고 있다니. 말세다. 말세야. 이제는 나랑 관계있는 일도 아니니 신경 끄자. 신경써 봤자 나만 손해다.
“그러고 보니 「이클립스」가 얼마 전에 관객 2천만명을 돌파했었죠.”
…생각해 보니 로열티 정도는 받아챙기는게 맞지 않을까. 뭐 하는 인간인진 몰라도 기회가 되면 찾아가서 돈 좀 내놓으라고 해야겠군.
“그보다 원래 어릴 때에는 속성 듀얼을 못 하지 않나요?”
“이제 더 이상 「듀얼혼」이 세상에는 없으니까요. 어릴때부터 티어 덱을 쓰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죠.”
듀얼혼이 없으니 「선택의 카드」도 없고, 그러니 듀얼을 하며 위험할 일이 생기지 않은 덕분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소울 커맨더스를 즐긴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듀얼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꼬맹이들의 듀얼을 찬찬히 훑어봤다. 나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군.
“신하연 학생의 수업은 어떤가요?”
“열정적이고, 인기도 좋아요. 듀얼 외적인 수업도 곧잘 하고요. 학생들의 마음도 잘 읽어내죠. 여러 모로 좋은 교사가 될 만한 자질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좋은 교사에게서 배운 모양이네요.”
“그런데 조그마한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짐작해 보시죠.”
조그마한 단점 하나라. 나는 머릿속으로 신하연의 단점을 떠올렸다.
덱의 튜닝에서 저코스트 카드를 너무 고평가한다는 것. 초반 필드가 밀리면 저도 모르게 승리 플랜의 카드를 써 버린다는 것. 똑같은 카드가 패에 있으면 카드의 가치를 낮게 생각하는 것. 리스크를 너무 회피하려는 탓에 승률이 낮아질 선택을 저도 모르게 한다는 것. 한 종류의 핵심 파츠에 꽂히면 다른 카드들을 써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카드 카운팅은 좋지만 난전이 되면 카운팅을 신경쓰다 수를 놓칠 때가 있다는 것.
그 외에도 수십 가지의 크고작은 단점들이 있는데. ‘고작 단점 하나’라니.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다.
혹시 답이 이건가.
“…그냥 듀얼을 잘 못 한다?”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신하연_단점_압축파일.zip’이 아니었다니. 그럴듯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옆의 선생님은 그저 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 깔깔 웃고 말았다.
듀얼 못하는 건 웃을 일이 아닌데.
“자. 인사!”
내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생각해 보는 사이에 첫 듀얼이 끝났다. 그리고 바로 복기 시간이 이어졌다. 신하연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피드백도 좀 널널하게 하지 않을까.
“정룡아. 「미니미 미믹」을 「쿠키 좀비」대신 소환한 건 좋아. 그런데 그랬다면 초반에 필드가 밀리는 걸 감수할 다른 수단이 핸드에 있었어야지.”
“네에….”
“그리고 아연아. 카드를 뽑자마자 써 버리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상대가 내 패가 별로인 걸 알아차린다고 했어요.”
“맞아. 그러니까 좋은 패를 드로우 했더라도 핸드로 일단 가져온 다음에 써야 해. 상대가 나를 읽지 못하게. 알겠지?”
“알겠어요….”
나는 피드백 과정을 바라봤다. 신하연의 단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이는 피드백 과정이다.
아무리 신하연의 듀얼 실력이 괜찮은 편이라고 해도, 여기는 학교다. 신하연은 학생이 아닌 선생인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하는 건데.
“이게 바로 신하연 선생의 단점입니다.”
“이해했습니다. 이런 피드백은 단점이라고 볼 수밖에 없네요.”
“맞아요. 신하연 선생은 피드백을 너무….”
“…널널하게 하네요.”
“…가혹하게 합니다.”
“…?”
“…?”
조그마한 의문이 나와 선생님 사이에 떠올랐다.
* * *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 시간. 전장이나 다름없는 애들 밥 먹이기가 지난 다음에서야 우리는 조그마한 휴식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도 저질러 버렸어요.”
신하연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같이 우울해해주고 싶지만, 애들이 던진 스파게티를 맞은 자국이 볼에 남아 있는 애 상대로는 우울한 표정을 짓기가 힘들다.
애들은 피드백을 받을 때에는 완전 울상이더니 다른 시간에는 신하연이랑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선천적으로 애들이 좋아하는 아우라가 풍겨나오기라도 하는 건가.
“선생님들이 다 제 피드백 수위가 너무 세대요.”
“별로 그렇지도 않던데.”
“제가 직접 찍어서 보는데도. 애들한테 너무 많은 피드백을 하고요.”
“딱히 문제없어 보이는데.”
“엊그제는 역전해서 이긴 애한테 순서 틀렸다고 지적을 해 버렸어요. 칭찬을 해 줬어야 했는데.”
“순서 틀렸으면 혼나야지.”
“…위로는 고마운데 지금은 위로가 아니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요.”
위로가 아니라 진심인데. 신하연은 고개를 들어 내 표정을 보더니 ‘강사님은 그런 인간이었죠.’ 라는 말을 내뱉고는 다시 침울해졌다.
“어떻게 피드백을 약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말을 안 하면 되는 거잖아. 해야 될 말 하면 안 될 말 가려서.”
“좋은 말이네요.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다 하는 강사님이 할 조언은 아닌 것 같지만요.”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는 건 너 아닐까.
“근데. 이게 듀얼에 관계되기만 하면 말하는 걸 제어하는 게 안 돼요. 갑자기 다른 힘이 제 몸을 제어한다고 해야 되나.”
신하연은 듀얼을 할 때와 듀얼을 하지 않고 있을 때의 분위기가 굉장히 차이가 난다. 평소에는 헤실거리고 맥아리 없는 슬라임 이미지지만, 듀얼할 때의 분위기는 냉기가 풀풀 풍기는 북극 슬라임이 된다고 해야 하나.
“비유를 하실 거면 북극 슬라임이 아니라 얼음미녀라고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얼음미녀라고 평가를 받고 싶으면 듀얼 실력을 더 키우던가.”
그리고 내 생각 읽지 마랬지.
문제는 이 듀얼용 인격이 학생들을 상대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신하연을 채용하는 건 내가 아닌 학교다. 학교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교사로 채용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해답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