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11
쉬는 시간.
“후아아.”
신하연이 숨을 몰아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듀얼 복기는 네 판만 했을 뿐인데도 온 몸이 땀으로 절어 있다. 신하연이 수업시간에 한 피드백 방식은 정신력을 극도로 잡아먹는다. 자신과 다른 관점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을 연기하면서도 최선의 수를 계속해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신하연 선생님.”
“가, 감사합니다.”
“…이번 교생 실습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피드백이라면 만점을 주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하연은 계속 고개를 숙여댔다. 선생님은 몇 마디의 덕담을 더 한 다음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사라졌다.
복도에 남겨진 것은 나와 신하연뿐. 이제 단 둘이 됐으니 내가 신하연에게 피드백을 해 줄 차례다.
“겨우 네 판 피드백하고 이렇게 헉헉거리면 안 될 텐데.”
“열심히 한 거 멋졌다고요? 고마워요.”
“꼴랑 40분이잖아. 그거 하고 정신력이 바닥을 치면 어떡해. 나는 몇 시간이고 해 줬는데.”
“지금은 40분이지만 계속 연습하면 늘어날 테니까 실망하지 말라고요? 열심히 할게요!”
“…….”
글러먹었다. 피드백을 하면서 뇌세포가 불타기라도 한 건지 내 말을 제멋대로 들어먹는다. 이런 상태로 무슨 피드백을 해 봤자 의미가 없다. 피드백 중간에 사 온 이온음료나 마셔야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다음 이온음료의 뚜껑을 열었다.
“아앗! 그거 저 주려고 산 거죠! 주세요!”
“아니. 나 마시려고 산 거야.”
“내 거잖아요! 줘요!”
“나 마시려고 산 거라니까! 사람 말 좀 들어!”
나는 전력으로 저항했지만 신하연은 내 손에서 끝끝내 음료수를 빼앗아들었다.
“비겁하게 지팡이 짚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다니.”
“지팡이로 사람 배 찌른 사람이 지팡이 운운하는 건 너무 양심이 없지 않아요? 그리고 전익현 강사님 몸일 때도 저한테 몸싸움 이겨본 적 없잖아요.”
그건 내가 봐 준 거고. 신하연은 나에게서 폭력으로 불법강취한 자산을 입 안에 한 번에 털어넣었다. 형법 333조에 따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취해야 하는 강력범죄다.
신하연은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같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다음 내게 질문을 던졌다.
“강사님이 내 놓은 아이디어치고는 엄청 정상적인 아이디어였어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거에요?”
“너한테서.”
신하연이 듀얼에 들어가면 스위치가 들어가 버리는 건 나와 닮아 있다. 굳이 스위치만이 아니라 신하연의 듀얼관, 튜닝관, 카드 평가, 형세판단을 비롯한 많은 부분들은 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유대한 선생님과 닮아간다. 좋은 교사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행동을 통해서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한다. 학생들은 말보다 많은 것들을 교사에게서 배운다.
그러니 ‘피드백’도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성공이다.
“칭찬을 할 거면 입 밖으로 하라고요. 머릿속으로 하지 말고.”
“내 맘이야.”
“…아무튼 고마워요. 또 도움만 받았네요.”
“그래. 고마우면 오늘 밤에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꼭 들어오도록.”
“또 카드 이야기하는 척 하네요.”
“접속 안하면 음료수 강도로 신고할 거야.”
“…저도 강사님 도와주고 싶어요. 받은 게 많으니까.”
신하연은 ‘언젠가는….’ 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야. 언젠가는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오늘 들어오라니까?”
“강사님.”
“왜.”
“지팡이 없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
더러워서 운동을 하던가 해야지.
##외전#4 : 여한설(1)
“잘 오셨어요. 이우주 교수.”
총장실에 들어오자 이현일이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학교 생활은 잘 적응하고 계신가요?”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뒤이어서 몇 마디의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갔다.
“그보다 저를 부르신 이유는 뭡니까?”
“이우주 교수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이현일은 대답 대신 카드 한 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소울 커맨더스 카드가 아니라 카드 결제할 때 쓰는 체크 카드처럼 생긴 물건이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제공하게 된 문화복지 카드에요.”
“문화복지 카드?”
“그래요. 여러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직원 전부에게 지급되는 카드죠. 복지 차원에서 얼마 전에 새로 신설한 제도에요.”
나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문화복지 카드라. 몇 푼 안 되겠지만 카드 사는 데 보탬이 될 터였다.
“참고로, 문화복지 카드는 카드를 사는 데 쓸 수 없어요. 이 카드는 오로지 문화생활을 하는 데에서만 결제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 쓰잘데기 없는 물건이었군. 오가는 데 시간만 낭비했다.
문화복지 카드인지 뭔지 쓸 데가 있을지 모르겠다. 카드를 제외하고 내가 하는 문화라고 해 봤자 웹소설 결제가 전부인데. 카드의 모양을 보아하니 웹소설 결제가 딱히 될 것 같지도 않고.
“잘 받았습니다. 이제 가도 되나요?”
“아직 설명이 덜 끝났어요. 교직원들은 매월 카드로 문화생활을 하고 그 생활을 보고할 의무가 있어요.”
“…안 쓰면 보고 안 해도 되죠?”
“반드시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도대체 왜입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내 눈빛에 이현일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카데미의 교직원들은 듀얼에 굉장히 심취해 있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이 몰두가 지나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소위 듀얼 중독이라고 하지요.”
“교직원이 듀얼 중독이면 좋은 거 아닙니까?”
“우리 학교가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인 만큼 적당한 정도의 듀얼 중독은 암묵적으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맞아요.”
“그런데요?”
“그 정도가 심한 교직원이 있다는 제보가 지속적으로 들어왔어요. 해당 교직원은 숨어 있다가 학생, 교사, 심지어는 지나가는 학부형을 상대로까지 듀얼을 걸어대고 있다고 해요.”
이현일의 말인즉 어느 중증 듀얼 중독자가 하루종일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혀댔고, 그 치료의 일환으로 문화복지 카드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거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교수진 전부가 감상문을 내야 한다니. 민폐도 적당히 끼쳐야지.
그런 놈 때문에 새벽 3시부터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랜덤 인카운트 듀얼강습」을 하는 선량하고 성실한 교수인 나까지 피해를 입는 것 아닌가.
“그냥 그 자식을 치료소에 강제로 입원시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싶은데 그 사람이 꽤나 중요한 사람이라.”
보아하니 아카데미에서 강제로 쫓아낼 수 없는 뒷배가 있는 인간인 모양이다.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인간이라니. 그 따위로 살다가는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된다.
“혹시 감상문 제출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별 건 없고 중독 치료소에서 보호치료를 일주일 정도만 받으면 됩니다.”
일주일이나 중독 치료소에 갇혀서 듀얼을 할 수 없다니. 상상만으로도 공포로 몸이 덜덜 떨려온다.
절대 감상문 제출이 늦어서는 안 된다. 나는 결연하게 문화복지 카드를 받아들고 총장실을 나섰다. 카드의 지정한도는 꽤 높았다. 책을 사 봐도 꽤 오랫동안 책을 읽어야 할 게 분명한 수준의 한도다.
나는 좀 더 빠르게 카드의 한도를 쓸 만한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 * *
“전익현! 여기다! 여기!”
멀리서 스핑크스가 깡총깡총 뛰어대며 나를 불렀다. 평소에는 후줄근하게 다니는데 오늘은 잔뜩 멋을 부렸다. 멋을 부렸다고 해도 참치 모양 장식의 팔찌와 타지마할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게 전부지만.
“잘 찾아왔네. 집에서 거리가 좀 멀었는데.”
“쉬운 일이지. 네놈의 냄새가 나는 곳만 따라오면 되는 일이니라!”
집에서 여기까지는 지하철 역이 다섯 개는 되는데 잘도 찾아오네. 저놈의 냄새 추적 시스템 때문에 스핑크스의 추적에서 도망을 칠 수가 없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와줘서 고맙다.”
“흐흥, 바쁘디바쁜 이 몸을 불렀으니 그만한 공물이 있어야 할 게다.”
스핑크스의 귀가 즐겁게 쫑긋거렸다. 오랜만에 먼 곳까지 놀러와서 그런지 즐거운 모양이다.
“공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영화나 보자고.”
돈을 빠르게 쓰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물이 바로 이것.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돈을 더 빨리 쓰는 방법으로는 전시회같은 것도 있었지만 난해한 현대예술을 감상하고 감상문을 쓰기는 쉽지 않다.
혹시라도 감상문의 퀄리티가 낮다는 이유로 중독 치료소에 갇힌다면….
덜덜덜.
나는 떨려오는 몸을 겨우 붙들었다. 공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실존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에서 오는 것이기에.
“영화라면 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더냐! 집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이 몸을 부르다니! 뻔히 보이는 얕은 수작이로고!”
스핑크스는 왜인지 승리감에 찬 콧김을 뿜어냈다.
“하긴! 그 서윤하인지 뭔지 하는 비실비실한 것과 이몸은 비교도 되지 않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어. 서윤하 도착했대.”
“…?”
스핑크스가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서윤하? 그것이 여기는 왜 오는 것이냐?”
“왜 오기는. 내가 불렀으니까 오지.”
“그러니까 왜 불렀냐고!”
아오. 시끄러. 귀청 찢어지겠네.
“그야 여러 명이서 봐야 그만큼 돈이 더 나가니까 그렇지.”
티켓가격을 계산해 보니 네 명이서 영화를 보면 한 번으로도 아슬아슬하게 데드라인을 충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락되는 인맥을 총동원했다. 스핑크스, 서윤하, 신하연.
“아! 우주야! 먼저 와 있었….”
밝은 모습으로 다가오던 서윤하의 얼굴이 스핑크스를 마주치고는 급격히 굳어졌다. 과거에 내가 세계대회 우승상금을 치료비까지 몽땅 카드에 부어넣어서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의 얼굴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신하연은.
“…강사님이면 그럴 줄 알았어요. 죄다 예측범위 안이었다고요.”
예측범위 안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내 지팡이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계속 치지 마. 싼 지팡이라서 쉽게 휜단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내가 영화표 쏘는 거야! 박수! 박수! 와아아!”
“…….”
“…….”
“…….”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지팡이 짚는 손까지 써서 박수를 쳤지만 얼어붙은 분위기는 전혀 해동되지 않는다.
이 냉랭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 내 지인들은 어째서인지 죄다 서로 사이가 안 좋다. 이렇게 서로 사이가 안 좋기도 힘든데.
이렇게 사이가 안 좋다가도 내 이야기를 하면 신기하게도 유대감이 있으니 세상사 모를 일이다.
“뭐. 이우주는 원래 그딴 인간이니까.”
“먼저 질려서 떠나가면 지는 거지.”
“가끔, 아주 가끔은 그냥 조각을 내서 나누는 게 편할것 같다고 생각하곤 해요.”
앞의 두 이야기는 분위기상 내 험담인 거 알겠는데. 신하연의 말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조각을 내다니.
뭘 조각을 내는데?
케이크? 케이크 이야기하는 거지?
* * *
“…어떻게 음식 가격이 티켓 가격보다 더 비쌀 수가 있어.”
나는 순식간에 홀쭉해진 계좌 잔고를 바라봤다. 내 옆에 앉은 세 명의 손에는 양손 가득 음식이 들려 있다.
바닥에 사람 그림을 그린 뒤 절취선을 만들기 시작한 세 명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서 영화 보는 건데.
“그보다. 영화 제목은 뭐에요?”
“「이클립스」.”
“…영화를 고르는데 본인 이야기라고 고른 거야?”
“하여간 자기애 하나만큼은 비할 데 없이 높은 놈이로군.”
“내 이야기라고 고른 게 아니라 15개 상영관이 아침부터 밤까지 죄다 「이클립스」뿐이었다고!”
이놈의 영화는 뭐 하는 영화인데 스크린 점유율이 이래? 스크린 쿼터제는 어디 갖다 버린 거야!
“들었어? 이 영화 제작사. 다른 영화들의 개봉일을 미뤄 버리고 독점상영하는 거래.”
“그래서 영화가 하나밖에 상영을 안 하는구나.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이야?”
“그게, 영화 개봉일을 미룰 정도로 엄청난 금액을 경쟁작들에게 줬다고 하더라고.”
“배급사가 돈이 썩어넘치나 보네.”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뒷좌석에서 들려온다. 하여간.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