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20
필드에 소환되었던 시초의 구체가 터져나가며 주변에 푸른 마나가 흩뿌려졌다.
지금부터 상대의 카드가 무엇인지를 봐야겠지.
[저는 「광인 공학자」를 소환하겠습니다.]+
【광인 공학자】
【유언 : 덱에서 트랩 카드를 발동합니다.】
【2/2】
+
광인 공학자. 무속성 카드인 동시에 덱의 트랩 카드를 활용할 수 있는 카드.
저 카드를 쓰는 순간 상대의 덱은 반쯤 확정되었다.
“비밀지기 덱이네. 전략이란 것도 없이 밸류로만 밀어붙이는 덱.”
“…어떻게?”
“전익현! 어떻게 안 거야?”
벡의 반응을 보아하니 맞는 모양이군. 시레나의 반응은 덤이지만.
“개발진들은 덱 메이킹 능력이 바닥이지.”
“……그렇죠.”
개발진은 실제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이 극히 적다. 물론 실력이 뛰어난 개발진들도 종종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개발자들도 덱의 뼈대인 ‘아이디어’는 만들 수 있지만 ‘최적화’를 하는 것은 힘에 부친다.
“그러면, 덱 메이킹은 외주를 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지. 덱 최적화로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프로는 고드프리, 레인타임, 이다현 정도쯤인가?”
“…….”
벡은 내게 조금의 정보도 더 주지 않으려 침묵했다. 하지만 고작 침묵 때문에 사람 마음을 못 읽는다면 소울 커맨더스 프로 실격이지.
“반응을 보아하니 고드프리가 만든 덱인가 보군. 어디 보자, 덱 리스트는 「시초의 구체」두 장, 「광인 공학자」두 장….”
내가 덱 리스트를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벡의 얼굴이 파리해진다.
“…마지막으로는 「로다이브」, 「트랩 수호자」, 「교수 붐」한장씩.”
[어떻게…. 제 덱 리스트를 아는지 모르겠군요.]어떻게 알기는. 내가 직접 상대해 본 덱들이니까 알지.
카드 게임이란 건 공식 룰 외에도 장외 룰이라는 게 있다. 소울 사에서 만들거나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유저들끼리 합의하고 룰을 만들어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지.
고이고 고인 플레이어들인 소울 커맨더스 프로들이 신 카드 테스팅을 위해 모인다면.
“‘장외 카드들만을 사용하는 룰’을 만들어서 해 보는게 당연하잖아.”
지금 정화자놈의 덱을 구성하는 ‘장외 카드 룰’은.
소울 사가 저 정화자라는 놈을 디자인하기 이전. 소울 사가 장외 카드들만을 사용하는 룰을 만들어내기 한참 전부터.
내가 즐겨왔던 룰이다.
프로들끼리 소소하게 대전도 하고, 상금도 걸고, 대회도 열었지.
최다 우승자이자 가장 악랄한 덱을 많이 만들었던 듀얼리스트는 두말할 것 없이 나다.
“근데 어떻게 가져와도 어떻게 고드프리 걸 가져오냐. 10위권에 맨날 간당간당하던 놈 덱인데.”
더 이상 정보는 필요없었다. 고드프리의 덱 리스트는 죄다 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고드프리의 덱을 기반으로 했다면 플레잉 데이터도 아마 고드프리의 것 그대로겠지. 나는 머릿속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고드프리의 플레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정화자의 카드를 읽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덱 리스트를 안다고 해도 이기긴 힘들 겁니다.”
“뭐, 그거야 보면 알 일이지.”
“저 덱의 밸류는 절대적입니다. 아무리 형이라도 쉽게는 못 이긴다고요.”
카드 게임 개발자라는 놈이 ‘절대’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짜잔! 절대란 건 없더군요!’ 같은 말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벡의 말이 어쨌거나 저놈의 덱이 실제로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다. 저코스트 위주로 만들어져 있는 덱, 빠른 덱압축, 불합리한 교환비, 너프가 절실한 카드들.
실제로 나조차도 카드의 교환비가 부족한 탓에 점점 핸드가 말라가고 있었으니까.
[핸드가 거의 바닥나가시는군요.]“반대로 덱도 거의 바닥나가지.”
[다 이길 것처럼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제 체력은 1도 깎이지 않았습니다.]“그러거나 말거나.”
[당신의 턴입니다.] [덱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남은 카드의 매수 : 1]이번에도 ‘킬 파츠’는 맨 밑바닥인가. 언제나 느끼지만 나는 참 운이 없는 편이다.
나는 핸드를 모두 털어내서 정화자의 필드를 밀어냈다. 비밀지기 덱의 단점은 즉발 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나는 섬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내 킬각을 회피한 다음 턴 종료를 선언했다.
“턴 엔드.”
[상대의 턴입니다.] [드로우.]정화자가 카드를 뽑아올렸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커다란 웃음.
[하하! 하하하하!]“…형. 졌어요.”
웃음을 터트리는 정화자. 정화자의 카드를 확인하고 고개를 가로젓는 벡.
[이 카드로, 저의 승리는 확실해졌습니다.]“빨리 플레이나 해.”
[저는 「절대적 광휘」를 발동!]+
【절대적 광휘】
【10 mana】
【한 턴동안 플레이어가 ‘광휘무적’ 상태가 됩니다.】
+
고오오오! 한여름 태양빛보다 강렬한 빛살이 정화자의 온 몸을 휘감았다.
[당신의 턴은 다음 턴이 마지막! 반면 저는 광휘무적 상태가 됐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길 방법은 사라졌다는 뜻이죠!] [광휘무적 : 플레이어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어떤 효과에도 면역입니다.]어떤 효과도 받지 않고, 어떤 효과에도 면역된다. 이를테면 상대 플레이어를 파괴하는 「조각난 크툴루」로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정화자의 천 개의 눈이 기쁨으로 흔들거린다. 솔직히 봐줄 만한 광경은 아니다. 그보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웃는 걸 보니 나까지 흐뭇해지네.
[턴을 종료하겠습니다!] [상태의 턴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의 턴입니다.]물론 내가 흐뭇해지는 건 저 자신만만한 웃음을 박살낼 생각이 벌써부터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드로우.”
+
【천지개변】
【5 mana】
【양 플레이어는 덱을 뒤집은 채 플레이합니다.】
+
마지막 장에 들어 있는 카드는 물론 「천지개변」이었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참아내며 관중석의 벡과 시레나쪽을 바라봤다.
“시레나! 전익현 이길 것 같아!”
“시레나. 아무리 이우주 형이 강해도 못 이기는 건 못 이기는 거야.”
“이우주 누구인지 몰라!”
“네가 전익현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원래 이름이 이우주야.”
“전익현은 전익현! 이우주 아냐!”
“…뭐가 됐건. 승부는 결정났어.”
“그래도 전익현이 이길 것 같아!”
“대체 뭘 믿고?”
시레나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대답을 내뱉었다.
“전익현은 전익현이야!”
흐뭇한 대답이군. 나를 저 정도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듀얼하는 맛이 배로 나지.
그럼. 나를 믿어 주는 관객을 위해 승리를 쟁취해 볼까.
“나는 핸드에서 「천지개변」을 발동!”
콰아앙! 주변부의 모든 필드가 뒤흔들렸다. 분명히 홀로그램일 텐데 기묘할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진다.
당장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용암도 가짜일 텐데 이상하게 따뜻하단 말이지.
그리 중요한 점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정화자의 덱과 내 덱이 완전히 뒤집어졌다는 거다.
“저딴 카드를 덱에 집어넣으신 겁니까?”
“그래.”
「천지개변」은 소울 커맨더스에서 유일하게 덱을 뒤집을 수 있는 카드다. 덱의 뒷면 대신 앞면을 보며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카드.
상대도, 나도, 앞으로의 카드를 보며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예능 카드.
아니,
예능 카드여야 했을 카드.
이 카드는 다른 한 장의 카드와 합쳐지면.
무적이 된다.
“그리고, 나는 핸드에서 「예지몽」을 발동!”
+
【예지몽】
【3 mana】
【상대 덱의 맨 위의 카드를 확인하고 원래대로 되돌린다. 상대는 그 카드를 확인할 수 없다.】
+
「예지몽」이 발동됐다. 정화자의 덱 맨 위의 카드가 내 앞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정화자의 눈이 자신의 덱 맨 위에 있는 「시초의 구체」에 갔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뒤이어 찾아오는 기나긴 침묵. 시레나도, 정화자도, 벡도.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뭐 한 거에요?”
의문 가득한 표정이 벡의 얼굴에 떠오른다. 비장의 카드라고 꺼낸 카드가 아무 일도 벌이지 못하고 사라졌으니 당황스러울만도 하다.
하지만 내 플레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천지개변-예지몽’ 콤보는 카드 발동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 콤보가 승리로 향하기 위해서는 주문이 필요하다.
나는 입을 열고 승리의 주문을 외쳤다.
“심파아아안! 저지먼트 요청!”
저지먼트 요청이라는 말에 벡의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왜 또 무슨 난장을 놓으시려고 저지먼트 요청을 하시는 건데요.”
“난장이라니. 내가 불합리한 상황에서 저지먼트 요청하는 거 본 적 있냐?”
“세계대회 8강에서도 제 시간에 카드 냈다고 빡빡 우겼잖아요.”
“난 냈다고! 냈다니까? 제 시간에 「수호 구마사」를 냈다고!”
“안 냈어요. VAR 판독까지 갔었잖아요. 서윤하 선배가 20번인가 확인해 줬잖아요.”
나를 음해하기 위해 VAR까지 조작했던 소울 사 놈들의 추잡한 만행은 일단 접어두자. 지금은 심판의 판정 시간이니까.
나는 카드를 집어올렸다.
“「예지몽」이 발동됐을 때 상대는 자신의 덱 맨 위의 카드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요.”
“그런데, 놈은 지금 「천지개변」으로 자신의 덱 맨 위의 카드를 확인했지!”
“……. 그래…서요…?”
벡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린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은 알아챈 모양이군.
“그러니 정화자는 룰 위반! 즉 반칙패다!”
“…….”
벡의 동공에서 영혼이 사라져나갔다.
##외전#5 : 시레나(5)
게임에서 룰을 어기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스포츠마다 조금씩 다른 편이지만 보통은 룰을 어긴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패널티를 부여한다.
소울 커맨더스도 마찬가지다. 소울 커맨더스의 진행에 관련된 법전 네다섯 개 분량에 이르는 상세한 규정이 있으며, 이 룰북을 어기는 경우 그 중대함에 따라 심판은 판정패를 선언할 권리가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상대로 하여금 룰을 어길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제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