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22
듀얼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듀얼혼은 없는 게 낫다.
“이번 달의 듀얼혼 패러미터는?”
“여전히 0이야. 이제는 굳이 매일마다 측정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얼마 전에 수치가 갑자기 올랐던 일도 있었잖아.”
남연철은 화면을 켜 그래프에 삐죽 솟아 있는 수치를 바라봤다. 두 달 전에 측정됐던 듀얼혼.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측정되지 않았지만 저 듀얼혼 수치는 각국에 퍼져 있는 측정기에 동시에 측정되었던 값이다.
즉 실제로 세상에 실존했던 듀얼혼이라는 것이다.
“저 수치가 의미하는 게 뭘까.”
“모르지. 정말로 잠깐동안 벌어졌던 오류같은 것일지도.”
“어쩌면 이세계에서 외계인이 침입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외계인이라. 외계인….”
중얼거리던 남연철이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확인할 게 좀 있어서.”
남연철이 확인한 것은 「모소커」에서 최고 점수를 연일 갱신하고 있는 일곱 개의 아이디들이었다. 소위 「칠성」이라고 불리는 천상계의 일곱 개의 아이디들.
일곱 개의 아이디의 순위만이 오락가락할 뿐, 8위와의 격차는 아득한 사람들.
“…혹은 한 명의 사람.”
“무슨 소리하는 거야. 아이디가 일곱 개인데.”
“한 명이 아이디 일곱 개를 쓰는 것일수도 있지.”
“접속 시간 확인한 적 없어? 당장 지금만 해도 일곱 아이디가 동시에 접속해 있다고.”
“일곱 개의 아이디를 동시에 굴리는 인간일수도 있지.”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말을 이어나가던 새벽녘의 말이 멈췄다. 그런 인간이 있긴 하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단 한 명.
“…근데. 그 인간은 죽었잖아.”
“죽은 게 아니라 다른 세계로 넘어간 거지. 다시 돌아왔을 확률이 적지만 있어.”
남연철은 아이디들의 접속 시간을 확인했다. 일곱 개의 아이디가 만들어진 날짜는 모두 동일했다.
그리고 그 날짜는 듀얼혼이 관측되었던 날짜와 일치했다.
‘…이 인간. 이 세상에 오자마자 모소커부터 깐 거야?’
언제나처럼 제정신이 아니다. 뭐. 그거야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남연철은 전익현의 신상을 확보했다.
“이우주라는 이름이군.”
이 세상에 온 지 몇 달이나 된 상태.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에 이미 종신 교수직으로 취직도 한 상태다.
“…이 인간이 전익현이라는 거냐?”
“눈매는 완전 전익현이긴 하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놈을 우리 편으로….”
“이 인간이 누구 편에 설 사람으로 보이냐.”
“그건 아니지.”
새벽녘과 흑일삭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왜 이우주를 찾아낸 거지?”
“연락하려고.”
남연철은 「모소커」의 운영자 계정을 켰다. 전익현의 아이디는 7개가 여전히 켜져 있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디는 6개, 매칭을 잡고 있는 아이디 1개.
남연철은 게임중이지 않은 아이디에 메시지를 보냈다.
[전익현. 맞나?] [전익현이 아니라 이우줍니다.] [되도 않는 소리는 거기까지 하고.] [누구?] [남연철.] [남연철이구나. 연락 언젠가 올 건 알고 있었는데. 바쁘냐?]연락이 바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익현의 메시지는 바로 이어졌다.
[바빠.] [나도 아이디 6개 돌리느라 좀 바쁘긴 해. 아무튼, 만날 시간은 있지?] [있지.] [그러면 만나자.]남연철은 실눈을 떴다. 만나자고 해 봤자 할 일은 뻔했다.
“뻔하지. 또 듀얼 샌드백으로 쓰겠지.”
“100%야. 100%. 안 봐도 이제는 훤하다고.”
“나도 아니까 호들갑 좀 떨지 말아 줄래?”
전익현만큼 예측하기 쉬운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무슨 짓을 벌일지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리고 전익현의 모든 짓은 듀얼로 통한다.
그래도 만나고 싶었다. 잘 지냈는지. 무엇은 하고 사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물어 보고 싶었다.
저 인간이 감정이란 걸 가지고 있을 리는 없지만.
남연철이 타이핑을 고민하던 사이에 메시지 하나가 더 올라왔다.
[좋아해.]“……안 속아.”
“듀얼을 좋아한단 거겠지.”
“그게 아니면 카드라던가.”
“카드깡이라던가.”
[듀얼을?] [듀얼도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미리 말해. 뭘 좋아하는 건지.] [굳이 알아야 돼?] [모르면 안 만나.] [널 좋아해.]“남연철의 덱을 좋아한다는 거군.”
“그게 아니면 듀얼 이기고 나서 분해하는 걸 좋아한단 거던가.”
“나도 아니까 조용히 좀 해 줄래?”
남연철은 손에 전기충전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제서야 흑일삭과 새벽녘이 조용해졌다.
[내 덱이 세기는 하지.] [덱 이야기 아니야. 네 덱도 좋아하지만.] [덱 말고 좋아하는 건?] [남연철. 널 좋아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그게 무슨 소리?] [나머지는 만나서 이야기하자.]모니터를 바라보던 세 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언가 출력 오류가 있는 게 분명하군.”
“아니. 컴퓨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뭔가 암호 같은 게 들어 있는 건가?”
“아니. 암호문처럼 보이지는 않아.”
“그러면 남는 결론은 하나.”
“…저 인간은 전익현이 아니야.”
세살 난 꼬맹이라도 알 수 있는 결론을 내린 세 사람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 인간이 전익현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높아. 하지만 만나 보고 싶어.”
“전익현 아니라니까. 말 하는것만 봐도 알잖아. 아카데미 측의 비열한 수작이거나 외계에서 온 괴물이 분명해. 위험하다고.”
“어느 쪽이건 전익현이라는 인간보다는 덜 위험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남연철을 걱정하던 새벽녘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느 쪽이건 전익현보다는 덜 유해하고 전익현보다는 덜 강할 게 분명하다.
그러면 한 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다.
* * *
“그래도 연락이 닿아서 다행이네.”
나는 손가락을 꼽으며 중얼거렸다. 진슬아와도 연락이 된 상태에서 남연철만이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조금은 걱정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모두가 모여 있어야 나중에 다른 말이 안 나올 테니까.
“…진짜 듀얼로 결정하시게요?”
벡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백 번은 더 넘게 물었잖아. 내 대답은 바뀔 일 없다니까?”
“형. 싸인 받아놔도 돼요?”
“갑자기 싸인은 또 왜. 내가 해 준 거 몇 장 있잖아.”
“그건 희소성이 적어서요.”
“그럼 지금 해 주는 싸인은 희소성이 있냐?”
“유명인이 죽기 직전에 한 싸인은 희소성이 엄청 크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죽을 일이라도 있는 것 같잖아.
딱히 내가 죽을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피 검사 결과도 괜찮고, 병은 후유증은 남았지만 완치됐고, 듀얼혼은 사라졌으니 듀얼로 죽을 일도 없다.
밤마다 악몽을 꾸고 하루 6번 약 먹는 것 말고는 건강하기 그지없는 육체란 말이지.
“잔말 말고 듀얼 필드나 제대로 만들어.”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있다고요.”
벡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듀얼 필드를 만들고 있었다. 손짓 한 번에 돌이 생성되고 쌓여 나가는 것은 꽤나 장관이다.
벡은 굳이 이 ‘선택’ 듀얼이 이뤄지는 듀얼 필드를 자신이 만들고 싶어했다.
관객석이 왜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김에 관객석까지 제대로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보다 룰은 어떻게 할 거에요?”
“세부적인 룰은 아직 안 정했는데. 큰 틀만 만들어 놨을 뿐이지.”
사실 소울 커맨더스의 룰이라는 게 엄청나게 다양한 탓에 무슨 룰로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어렵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정한다는 건. 룰, 순서, 듀얼 방식, 제한 카드. 결정해야 될 일이 너무 많아.”
“…….”
벡이 움직이던 커다란 돌 하나가 내 머리위에서 잠시 멈칫거린 것 같은데. 아니겠지. 벡이 내 머리 위에 돌을 떨어트리려고 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정할 가장 공정한 방식은 없을까?”
“보통 사람들은 직접 마음 쓰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시간을 쌓으며 자신의 마음을 확인해 나가는 방식을 쓰죠.”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은 식상해.”
“보통 사람들은 이런 걸 보고 구태의연하다고 하지 않고 인간성이라고 불러요.”
그건 논듀얼리트스(non-duelist)에게나 적용되는 말이고. 듀얼리스트들의 유대에는 대화가 필요없다. 서로의 마음 깊숙히 듀얼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 마디 대화보다 듀얼 한 판이 더 값지다는 것은 내 온 생애를 통해 증명해오지 않았던가.
“보아하니 깜짝 파티도 아니고 진짜로 듀얼로 승부하실 것 같은데.”
“당연히 진짜지.”
“그럼 저희가 준비중인 룰로 해 보는 건 어때요?”
“새 룰을 또 만들어? 개발진 놈들은 있는 카드들 밸런스도 못 잡으면서 무슨 새 모드를 만들겠다고 까부는 건지.”
“두 시즌 뒤에 나올 카드들만으로 하는 룰인데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실패하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지.”
인간은 언제나 새로움을 직면하는 모험이 있어야만 위대해질 수 있는 법. 누군가 그랬던가. 배는 항구에 정박해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정박해있는 것은 배가 만들어진 이유가 아니라고.
“그 방식으로 하지.”
“룰은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뭐가 됐건. 새 카드들 들어가는 룰로 하자고.
##외전#6 : 듀얼(2)
남연철은 전익현과의 약속 시간이 되기 3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 장소는 전익현의 예전 강의실이 있던 곳.
“아무리 그래도 30분 전에 오는 것은 좀 심했나.”
이렇게 일찍 도착하면 왜인지 간절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자신은 간절할 것 하나 없는 상태 아니던가. 구태여 전익현과 엮이지 않더라도 할 일은 엄청나게 넘친다.
남연철은 문고리를 노려봤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안에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