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23
예를 들자면 이벤트 준비를 하고 있다거나.
굳이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문 밖까지 날법도 하다.
“…아카데미를 조금만 더 돌아다니다가 들어갈까.”
뭔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전익현이라는 인간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등장하는 쪽이….
“어? 연철아?”
익숙한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진슬아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철아. 너 휴학계 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휴학계를 빙자한 자퇴서지만.”
“그런데 여기는 왜 다시 찾아온 거야?”
“만날 사람이 있어서.”
“…나도 만날 사람 있어서 온 건데.”
남연철의 머리에 조그마한.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들었다.
“그 인간. 전익현이지.”
“…어.”
“만나기로 한 건 이 교실이고.”
“…그래.”
남연철은 열지 않으려던 문을 열어젖혔다. 안에 있는 것은 다섯 명. 스핑크스, 서윤하, 시레나, 신하연, 여한설.
모두 합해서 일곱 명.
빠각. 거리며 남연철의 이가 갈렸다.
“…너희도 고백 받았냐?”
“어. 딱 맞게 잘 왔네. 안 그래도 지금 뽑기 추첨 하고 있었거든.”
신하연이 손에서 쪽지를 흔들어 보였다. 쪽지에는 머리, 오른손, 오른다리 등의 각종 신체부위가 적혀 있었다.
이걸 어디 쓰는지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놈을 죽이는 건. 나다.”
“그건 능력껏 해야지.”
남연철이 입술을 깨물었다. 경쟁자가 여섯 명이나 되다니. 쉽지 않은 승부가 될 터였다.
* * *
“왠지 으슬으슬하네. 감기라도 걸린 건가.”
“자신의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몸은 알고 있는 거겠죠.”
듀얼 필드가 다 갖춰졌으니 이제 내가 ‘선택’을 할 방식을 설명해야만 했다. 강의실까지 가야 할 텐데. 거리가 좀 멀군.
“혹시 강의실까지 갈 수 있는 포탈 열어줄 수 있어?”
“죽을 사람 부탁 정도는 들어줘야죠.”
벡이 포탈을 만들었다. 나는 포탈을 통과했다. 아니, 포탈을 통과하려고 했다.
포탈 안에서 튀어나와 내 목덜미를 움켜쥔 손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다.
“켁!”
나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손의 주인을 바라봤다. 진슬아다.
“…이게 무슨…?”
“일단 생포 완료.”
“아악!”
팔에서 통증이 느껴져서 바라보니 스핑크스가 내 팔을 물어뜯고 있었다. 반대쪽 손은 시레나가 피라냐라도 된 것처럼 물어뜯는다.
“죽어! 죽어! 죽어!”
“전익현! 죽어!”
“야! 그만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그걸 몰라서 물어!”
팔다리에 몸통 앞뒷면으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린치가 이어진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너희는 대체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건데?
나는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벡을 쳐다봤다. 내 결백에도 불구하고 벡은 뱁새 다리 부러트렸다가 쫄딱 망한 놀부를 바라보는 표정이다.
“자. 거기까지.”
짝.
벡이 손뼉을 치자 투명한 벽이 내 몸을 감쌌다.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피투성이가 될 뻔 했다.
내 등을 후려패던 서윤하가 방방 뛰었다.
“야! 벡! 당장 멈추지 못해! 너 지금 저놈 편 드는 거야?”
“선배. 죄송합니다. 대회 상품을 부서지지 않게 하는 것도 운영진 일이라서요.”
“대회 상품?”
“네. 이우주 씨를 상품으로 하는 대회를 열기로 했잖아요. 이 대회에 개발진이 참석하기로 했거든요.”
서윤하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벡을 노려본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크하하! 안됐구만! 아무도 상품인 나를 심판하지 못해! 그게 이 게임의 룰이다!”
파삭! 내가 말을 내뱉자마자 내 주변을 감싸던 벽이 동시에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뭐야 이거! 무슨 일이야!”
“잠시 물리 법칙 차단막에 문제가 생겼군요. 수리까지 대충 5초 정도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너 새꺄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고…!”
“아, 5초가 아니라 10초가 걸리겠군요.”
“…….”
“우주야. 할 말 있어?”
“…죄송합니다.”
나는 10초간 지옥의 린치를 한 번 더 경험하고 나서야 다시 벽의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너무해.”
나는 훌쩍였지만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좋아. 일단 여기 왜 사람들을 모았는지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
“내가 여기 돌아온 건. 너희들을 모두 다 좋아하기 때문이야.”
“…….”
좋아한다는 말을 하니 그래도 분위기가 조금은 훈훈해지는군.
“그래서.”
“근데…결정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사귀어 보고 결정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러면 순서를 결정할 방법이 어렵고.”
“…그래서.”
“듀얼로 결정하기로 했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진슬아의 손이 움직였다. 콰드드득!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차단됐을 게 분명한 벽에 조그마한 금이 생겨났다.
“수련이 조금 부족했나.”
쟤는 도대체 무슨 수련을 하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본래도 인간 수준이 아니던 신체능력이 더 향상됐다.
너는 왜 이 세계에 있는 거니? 그냥 무협지에 가서 천하제일인에 도전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너보다 듀얼 잘하는 사람을 하나씩 암살해 나가던가.
“…벡. 이 벽 안전한 거 막지?”
“소형 핵미사일 정도의 충격은 견뎌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 이상이면 어떻게 되는데?”
“부서지는 거죠 뭐.”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데도 저렇게 무심하게 말하다니. 병아리 개발자 시절부터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런 취급이라니.
“형이 언제 저 먹여주고 재워줬는데요.”
“내가 카드 사는 데 돈 엄청 썼잖아. 그 돈이 네 월급으로 들어갔으니까 먹여주고 재워준 거지.”
“벽 없애도 돼요?”
“…….”
조금 더 자극하면 손을 튕겨서 벽을 없앨 것처럼 보이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듀얼 룰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토너먼트? 혹은 리그?”
토너먼트나 리그를 할 리가 없잖아. 그런 식의 룰을 채용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듀얼의 판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냥 나랑 1:1을 하면 돼. 게임은 내가 질 때까지 계속 실행한다. 나를 이기는 듀얼리스트가 나랑 처음으로 사귀는 거야. 아주 심플하고 간단한 룰이지?”
“…심플하긴 하네요.”
물론 대충 져 줄 생각은 없다. 나를 가질 수 있는 여자라면 그만한 듀얼 실력은 가지고 있어야 할 테니까.
“카드 풀은요? 제한 없이?”
“카드 풀이나 세부 룰은 제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벡이 끼어들었다.
“카드 풀은 ‘팩 리미티드’ 입니다. 한 종류의 카드팩에 있는 카드들만을, 자신이 받은 카드팩 안에서 뽑은 카드들로만 듀얼을 할 수 있는 룰이죠.”
“팩 리미티드를 하면 운의 영향이 너무 클 텐데.”
“운까지가 듀얼의 요소죠.”
팩 리미티드는 내 입장에서는 그리 반길만한 요소가 아니다. 기껏 카드팩을 뜯었는데도 괜찮은 덱을 만들 수 있는 카드가 없다면 덱의 파워가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니까.
머리를 좀 썼군.
“덱은 만든 이후 수정할 수 없습니다. 메타 파악 후 덱 교체를 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죠.”
허울 좋게 포장했지만 이 또한 여러 덱을 상대해야 되는 내 입장에서는 불리한 요소다.
“그리고 제공될 카드팩은 차차기 팩으로 예정된「창세기」팩입니다.”
“…나는 들어본 적 없는 팩인데.”
처음 들어보는 팩이라는 듯 윤하가 중얼거렸다.
“윤하 선배한테는 안 알려주고 개발중이었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이 상황을 예견하고 만들었다는 말이군.”
“그렇죠. 이우주 씨가 어떻게 죽을지는 저희도 관심이 정말 많거든요.”
나는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창세기」라는 카드팩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의 카드팩은 그 팩에서 메인이 되는 테마를 중심으로 명명된다. ‘창세기’라면 떠오르는 테마는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테마다.
필요한 카드를 생성하는 매커니즘이나 퀘스트를 완료하면 특정 카드를 얻어낼 수 있는 매커니즘 정도일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필드 싸움과 소환이 중심이 되는 덱이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메타의 중심이 되는 덱들과 메타를 카운터할 수 있는 메타비트 덱, 그리고 이 메타비트덱을 카운터하는 메타비트비트 덱의 아키타입을 정리했다.
카드를 받아들기 전에 이렇게 덱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놓는 것도 작게 듀얼에는 도움이 된다.
전쟁은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자. 슬슬 준비를 시작해야겠군요.”
딱! 벡이 손가락을 튕기자 관객석에 수없이 많은 포탈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수많은 관중들.
모두 내가 아는 얼굴들이다. 개발자들과, 내가 가르쳐준 학생들, 탑에서 만나온 듀얼리스트들, 풀무불꽃과 해태까지 있다.
“…이래서 이렇게 커다란 필드를 만들어놓은 거였구만.”
“형의 듀얼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엄청 많거든요. 거기에 이번 카드팩은 관객이 반드시 필요한 카드팩이기도 하고.”
“관객이 필요한 카드팩이라니.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벡은 더 말을 하는 대신 손을 흔들었다. 공중에서 눈부신 빛살을 터트리며 생성되는 한 덩어리의 카드팩 박스들.
[카드팩이 제공됩니다.]한 통의 카드팩이 나에게 배달됐다. 한 통 40팩이 들어있는 카드팩. 총 200장의 카드.
부여된 시간은 고작 30분.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자원, 그리고 운에 좌우되는 카드풀.
이 카드로 나는 최선의 덱을 짜기 위해서는 효율의 극한에 다다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걱정은 없었다. 효율적인 움직임의 극한은 내 전문 분야니까.
내가 패배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덱 튜닝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촤악! 나는 카드통을 뜯고 바닥에 카드팩을 늘어놨다. 조금의 시간도 지금은 소중하다. 언제나 소지하고 다니는 카드팩 개봉용 가위를 써서 카드팩을 일사불란하게 개봉해 나갔다.
파바바박!
안에 있는 카드들을 뽑아내며 카드의 종류/ 코스트/ 효과에 따라 바닥에 정렬!
타다다다닥!
덱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 이상의 카드들은 그대로 카드팩 통으로 제외!
파바바박!
“이우주 뭐야? 움직임이 안 보여!”
“미쳤다!”
“도대체 카드팩을 얼마나 까 본 거야!”
관객석에서 내 움직임에 환호성이 터져나오거나 말거나 내 머리는 전에 없는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카드 팩에 있는 카드들의 레어리티가 전반적으로 너무 낮다.’
물론 레어리티가 높은 카드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더 강력한 카드들이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레어리티가 높은 카드들은 그 특수한 효과들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카드들을 쓰지 않더라도 카드에 대한 정보들은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