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29
그간 문제를 만들어 오셨던 선생님들, 그리고 교수님들. 존경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스러워한 끝에 깨달음은 찾아왔다.
“···어차피 문제를 얼마나 어렵게 내든간에 내가 문제를 푸는 게 아니잖아?”
즉,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 봤자 고통받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동안 학생 입장에서만 살아오다 보니 학생 입장에서만 계속해서 문제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이 쉬운 진리를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그간 내가 쳐 왔던 무슨 소리를 씨부리는지 모를 시험 난이도는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들. 그리고 교수님들. 괜히 시험을 어렵게 내는 게 아니었군요.
당신들은 전부 악마였어.
그리고. 나도 악마가 될 시간이다.
타다다닥!
나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기세로 문제를 만들어나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서 가장 어렵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으로.
어차피 얼마나 어렵게 내든간에 만점자는 분명히 나온다. 이건 내가 오랜 시간을 겪어오며 알게 된 만고불변의 진리다.
게다가. 문제 좀 어렵게 낸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중간고사(2)
남연철은 목을 좌우로 풀었다. 곧 「튜닝학 개론」시험이 시작된다. 그녀의 눈 아래로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긴 다크서클이 배여 있었다.
“연철아. 공부 좀 열심히 했어?”
“아니. 논다고 공부 하나도 못했어. 아. 망했다. 어떡하지?”
평소 수업을 같이 듣는 여학생의 질문에 남연철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오늘 새벽까지 코피를 흘리며 공부했다.
남연철은 자신의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여한설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전 익현의 「튜닝학 개론」은 여한설과 그녀가 함께 듣는 유일한 수업이다.
남연철은 여한설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무슨 일이지?”
“공부 좀 했어?”
“···넌 누구지?”
“···입학순위 2등. 남연철.”
“모르겠는데.”
“입학 시험에서 너랑 마지막에 듀얼했었잖아! 네가 운빨로 이겼던···!”
“아. 그랬었나.”
남연철은 머리에서 터져나오는 불길을 겨우 진압해냈다. 참자. 참자. 그녀는 지금 눈 앞에 있는 꼬맹이보다 6개월이나 연상이지 않던가.
“그래서. 공부 열심히 했어?”
“최선은 다했다.”
“그으래? 나는 집중이 잘 안 되더라. 열심히 했는데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나한테 지면 억울하겠다.”
“언제나 그렇게 살고 있나?”
“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이건 내 최선이 아니야.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아니···그게···.”
“졌을 때를 대비해 도망칠 쥐구멍을 만들어놓는. 그런 식으로 말이야.”
“아니야! 필사적으로 했어! 이번 시험에서 널 밟아주지! 찍 소리도 못하게!”
여한설은 뭐. 열심히 해 봐. 란 말을 하고는 다시 정리해놓은 메모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질 수 없다. 빠득. 남연철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가방에 있던 최종정리 요약집을 꺼내들어 전익현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읽어내렸다.
“자. 거기까지. 이제 시험 시작이다.”
전익현이 가져온 시험지를 배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예고했듯 10문제. 점수 채점은 AI 컴퓨터가 즉시 할 테니 시험지를 제출하면 자신의 점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어려운가요?”
의미없는 한 학생의 질문에 전익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희를 위해서 아주 쉽게 냈다. 대충 A 커트라인은 90점 정도일 것 같네.”
오오. 하는 기쁨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자. 시험지 다 받았나?”
예. 하는 소리에 전익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기간은 오늘 밤 12시까지. 도서관, 매점, 공원 등 바라는 어디에서든지 시험을 쳐도 된다. 중간에 시험이 있으면 시험을 치고 와도 괜찮다.”
“오픈북인 겁니까?”
“그래.”
“···답을 공유하면 어떻게 되죠?”
“아카데미 안에는 CCTV가 거의 모든 곳에 설치돼 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도록. 걸린 다음은 책임지지 않겠지만.”
아카데미 안의 보안은 꽤나 살벌하다. 후미진 곳을 간다고 해도 둘 이상이 모이는 수상한 상황은 발각될 확률이 크다.
“마지막 조언 하나 하지. 간단해 보이는 건 정답이 아니다. 자. 시험은 지금부터···시작.”
시작이라는 말을 외친 전익현은 그대로 시험장 밖으로 나가 버렸다.
‘흥. 1학년 문제가 어려워 봤자지.’
남연철은 시험지를 뒤집고 1번 문제를 확인했다. 이 수업을 맡은 강사의 이름은? 전익현. 보너스 문제인데도 10점이나 된다.
학생들 전부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모두가 10점에서 시작하면 의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연철은 2번 문제로 넘어갔다.
「2번. (3점) 덱을 30장 이상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세 가지 이상 서술하라. 그리고 각각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덱을 3종 이상 구상하라. 그리고, 이 덱을 카운터할 수 있는 덱을 각각 1종씩 구성하라.」
“······.”
그녀의 뇌가 침묵했다. 이게 겨우 3점? 30점 아니고? 점수를 뚫어지게 읽어봤지만 여전히 3점이다.
이 난이도가 3점이라고?
‘이런 미친─.’
오픈북 시험이었지만 교실을 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긴 적막 아래서, 시험의 난이도에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만 가끔씩 들렸을 뿐.
남연철은 문제를 쭉 훑어봤다. 그녀가 풀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카데미의 「교수」급이라고 해도 50점 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말이 안 되는 난이도.
‘이건 어쩌면···그냥 시험이 아닌지도 몰라.’
복면을 쓰고 느슨한 매듭의 손수건을 오른팔에 차고 있는, 처음 보는 학생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남연철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
“끄아아아.”
나는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역시 봄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다 끝나고 나니 후련하다.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의 시험채점은 AI가 맡는다. 그러니 나는 오류 검토만 하면 된다.
AI만세! 알파고 만세!
“자. 이제 움직여 볼까.”
시험을 오픈북으로 낸 것은 처음부터 구상하고 있던 바였다. 굳이 오픈북을 한 것은 내게 필요한 ‘시간’을 얻기 위해서였다.
중간고사 기간에는 학생이고 교수고 할 것 없이 시험장소에 묶여 있게 되며, 학생들의 부정을 감시해야 하는 인원들이 필요한 탓에 경비가 약해진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라면 들어가기 힘든 장소도 쉬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곳은 아카데미에 퍼져 있는 일곱 「성역」가운데 한 곳이다.
각각의 속성을 대표하는 일곱 성역은 카드를 ‘제작’할 수 있는 장소다. 나는 선택의 카드 뒷면을 확인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소울(soul)
대지의 소울 : 400]
소울(soul)은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재화다. 이 소울은 탑 혹은 게이 트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다. 나는 지난 번에 암석 거한을 두 마리 잡았다. 암석 거한은 대지 속성의 몬스터이기에 대지의 소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찾아가는 곳은 대지의 성역이다. 성역에서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며···물론 시간강사는 절차를 뚫을 수조차 없다.
그러니 몰래 침입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확연하게 줄어든 경비병들을 뚫고 대지의 성역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모래로 만들어진 사원이 나를 반겼다.
설정상 「수호자」가 성역에 힘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라나. 나는 성역 중앙에 있는 마법진 안으로 발을 디뎠다.
우웅.
마법진이 공명하며 귀 안으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아니, 낯익은 목소리라고 해야겠군.
수호자의 목소리다.
[이곳은 「대지」의 성역이다. 자격이 없는 자라면, 죽음의 형벌에 처해지기 전에 나가도록.]“알아. 나는 시험을 치르러 왔다.”
성역을 구성하던 모래의 일부가 손의 형상으로 화化해 내 몸을 쓸어만졌다.
[그대에게는···대지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군.]내가 대지 속성의 듀얼리스트라는 뜻이다. 지금 내 속성은 「대지」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대칠성」을 사용해 속성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시험의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노라.]모래들이 휘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작디작은 모래들은 모이고 뭉쳐져 반인 반수半人半獸의 형태가 되었다. 반은 여자의 몸이고, 반은 사자의 형상인 존재. 사막의 수호자이자 대지의 영혼.
「스핑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군.”
“반가워! 얼마만에 오는 손님인지 모르겠네! 반가워! 반가워어!”
잔뜩 무게잡던 것과 다르게 형태가 갖춰지자마자 스핑크스는 깡총깡총 내 주변을 바쁘게 뛰어다닌다. 새끼 진돗개를 열 마리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정말. 무게 잡는 것도 너무 힘들어! 명령이라서 따르기는 해야 되는데.
무게 잡는거 너무 힘들어서 말이야! 이해하지?”
반인반수라고 하기는 했지만 통상적인 스핑크스와는 형체가 너무 다르다. 여자애 몸에다가 사자 귀랑 꼬리 정도만 달아놓고 손발에 털만 좀 나게 한 정도.
반인반수도 아니고 95%인5%수(95%人5%獸)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처음에는 위엄있는 본래의 스핑크스 형태로 만들었지만 「소울」사의 사장의 강력한 밀어붙임으로 저런 모양이 됐다고 하는데, 사장의 취향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의심되는 형태다.
···일단 취향은 존중하겠지만.
“아니. 시험은 충분히 쉬고 나서 하자고. 어차피 시험을 치면 네가 죽을 거니까!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눠 놓는게 재밌지 않겠어?”
잔혹한 말을 내뱉는 스핑크스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녀가 사이코패스여서는 아니다. 그녀는 이 성역의 수호자다. 시험에 도전한 자에게 최선을 다해 맞서고, 시험에 패배한 자들을 죽일 의무가 있다.
「성역」의 경비가 살벌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카드에 목숨을 거는 것이야 하루이틀이 아닌 세계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과신하는 자가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스핑크스가 내게 다가와 내 몸의 냄새를 맡았다.
킁킁.
“···흐음. 특이한 냄새네. 자주 맡아보지 못한 냄새야.”
“그런가? 좀 싸구려 세제를 쓰긴 했는데.”
“아니. 그거 말고. ‘카드의 의지’의 냄새가 너무나도 짙게 난다는 말이야.”
“카드의 의지?”
“소울 커맨더스에 가지는 열망.”
그딴 거에도 냄새가 있냐? 아니. 설령 그딴 의지의 냄새가 있다고 쳐도 내 「카드의 의지」의 향기가 그렇게 짙을 리가 없다. 이 세상은 소울 커맨더스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냄새가 짙을 인간들이 최소한 50억명은 있을 것이다.
생긴 건 고양이인데 코 성능은 형편없네.
“너. 시험 안 치면 안 돼?”
“왜?”
“너를 죽이기 싫어졌거든. 좀 더 오래 보고 싶어. 살려 줄 테니까 가끔 여기 놀러 와! 그럼 되겠네! 가끔 와서 물도 마시고! 자! 마셔!”
스핑크스가 모래로 잔을 만들어 물을 담는다. 물에는 당연하게도 모래가 반은 섞여들어가 있다.
이딴걸 마시겠니?
게다가 내가 당연히 질 거라고 스핑크스는 생각하고 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무시당할 인간은 아닌데.
뭐. 이러니 저러니 해 봤자 결국 나는 싸우러 왔고. 스핑크스는 내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시험을 치르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지, 누구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듀얼을 선언하면 수호자인 스핑크스는 막을 수 없다.
“듀얼이다.”
“잠깐만! 잠깐만 더 생각해봐!”
고고고!
주변의 모래가 격랑하며 듀얼 필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쓸데없는 자원 낭비란 말이지. 듀얼이란 건. 맨바닥에서, 책상 위에서, 휴대폰을 켜고, 계산기를 들고 그냥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거창한 필드가 필요한 걸까. 이거 만들 돈으로 불쌍한 시간강사지원금 같은 거나 만들지.
[스핑크스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스핑크스의 시험 : 카드를 2장 고르세요. 고른 두 장의 카드가 15장씩 복사되어 덱이 구성됩니다.]스핑크스의 덱은 【모래의 집중】. 마나 펌핑 카드와 【모래 군주 라】두 장으로 이뤄져 있다. 이 ‘스핑크스의 시험’에서 굉장히 높은 승률을 보장하는 매우 좋은 콤보.
그리고 내가 고를 두 카드는 이 콤보를 찢어발길 카드들이다.
+
【★모래 수호신 패치】
【1 mana】
【내가 「모래」종족 카드를 낸 후에, 이 소환수를 덱에서 소환합니다.】
【1/1】
【종족 : 모래】
+
+
【모래의 수호】
【0 m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