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
새끼 비룡.
확실히 새끼 비룡은 필드 싸움이 게임의 전부인 현 시점에서는 좋은 카드다.
하지만 그래 봐야 1마나 2/2의 아무 능력이 없는 몬스터. 카드 한 장의 효율이 중요해진 나중에 가서는··· 아니, 게임의 초반부만 조금 벗어나도 거의 쓰이지 않는 몬스터다.
그러니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러워해!’라는 표정을 암만 지어 보여도 하나도 부럽지 않다.
턴 종료나 해. 할 거 다 끝났으면.
“우와. 새끼 비룡이다!”
“1턴에 나올 수 있는 최강의 카드다!”
“소문으로는 저 카드 하나가 강남 집 한 채 가격이라던데.”
···그건 좀 부럽네. 뭔 놈의 카드 한장이 그따위로 비싼 건데? 강남 집 한 채가 저런 거 하나 구하자고 사라져도 되는 거야?
내가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한 여한설은 그제서야 턴을 종료했다.
인성하고는. 대체 누구한테 듀얼 매너를 배운 건지.
“정말로 게임을 계속 할 생각이야? 네 덱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는 있지?”
“물론.”
“그런데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내 카드를 확인했다.
쓸 수 있는 카드가 있긴 하네.
【민들레 홀씨】
공격력 0/ 체력 1
「도발」「유언 : 0/1 민들레를 1장 소환합니다.」
같은 1코스트지만, 체력도 1에 공격력은 아예 0.
하지만, 민들레 토큰 덱의 핵심 카드다.
***
“흐음. 신기한 사람이군요.”
심판석에 앉은 이현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엇이 신기하다는 거죠?”
“아. 권보람 비서.”
“그보다. 옷은 왜 또 넝마짝이 돼 있으시군요.”
“그게···.”
“허름한 옷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조심해서 다뤄 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라···.”
“이번 달에만 그 피치 못할 사정이 네 번입니다.”
“···그보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현일은 불리할 때면 말을 돌리려고 한다. 권보람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더 타박하지는 않았다. 타박한다고 나오는 것도 없거니와 그녀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신입생 1위의 듀얼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새끼 비룡으로 민들레를 공격!”
파아앙!
민들레가 탈모인 머리숱 빠지듯 흩날리며 파괴되어 버렸다. 필드 상황은 압도적이었다.
여한설은 10턴이 되기 전인데도 고급 하수인들로 필드를 완전히 채워 버렸다.
반면 시간강사 쪽은 막는 데 급급할 뿐.
“압도적이군요. 거의 견제를 받지 않는 것처럼 몰아치고 있어요.”
“그게 맞습니다.”
“네?”
“저 시간강사는 전혀 상대방을 견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도 했지만요. 그가 사용하고 있는 덱 리스트를 보시겠습니까?”
권보람은 이현일에게 전익현이 쓰고 있는 덱리스트를 받아들었다.
“···이건?”
“역시. 바로 눈치채시는군요.”
“모든 카드의 공격력이 0이라니.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군요.”
물론 그런 만큼 수비력 하나만큼은 발군이다. 필드를 완전히 집어먹혔는데도 그만큼의 소환수들을 계속해서 소환해내고 있었으니까.
소울 커맨더스의 승리 조건은 상대방의 라이프 포인트를 0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격력이 0이라면 상대방의 체력을 깎아낼 수 없다.
글자 그대로 ‘이길 수 없는 덱’이라는 말이다. 아무리 훑어봐도, 승리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덱. 그런 덱을 살펴보던 권보람의 고개가 잠시 갸웃거렸다.
“그런데··· 덱에 있는 카드가 29장뿐인데요?”
듀얼을 하기 위한 최소 카드 장수는 30장. 그런데 카드 리스트에 있는 카드들은 29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한 장이 튜닝 카드입니다.”
“한 장을 바꿔 넣은 것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저 전익현이라는 사람은 이 듀얼을 아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습니다.”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세상에 비길 데 없는 바보거나, 아니면 그 반대거나. 아마 전익현은 99% 이번 싸움에서 지고 해고당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그가 이긴다면···.
‘이번 기수에서 재미있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란 말이겠지.’
어느 쪽이건, 이 듀얼이 끝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핸드를 바라봤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파츠」들은 모두 모였다.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건 따로 있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더럽게 막기만 하는군.”
여한설은 불쾌하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나는 묵묵히 쓸려나간 필드를 다시 구축해 나갈 뿐이었다. 상대의 소환수를 막을 수 있을 정도만 필드를 유지하고, 죽으면 죽은 만큼 필드를 보충한다.
“왜. 공격하는 데 지쳤나? 지금이라도 포기한다면 이번 학기 F 정도로만 끝내 줄 수도 있는데.”
“지긋지긋하게 막는 것도 여기까지다!”
자신만만한 것을 보니 자신의 에이스 카드를 뽑은 모양이다. 마나 코스트도 딱 10.
갓드로우네.
여한설이 필드에 몬스터를 소환하자-
고고고고!
주변의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속 보지만, 기술력 하나는 엄청나다. 이런 기술력을 좀 더 생산적인 데 쓰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와라! 나의 심복! 명계룡! 적을 압도하라!”
【명계룡】
공격력 8 / 체력 8
【소환 : 소환시 상대의 필드의 소환수들을 모두 파괴합니다.】
“우와! 명계룡이다!”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명계룡. 시즌 1의 메인 광고 몬스터이자 필드싸움을 한 순간에 압도해 버릴 수 있는, 범용성과 효율이 좋은 카드다.
명계룡의 소환이 완료되자 내가 겨우 깔아놨던 필드가 공간째 부숴져 내리기 시작했다. 꽃들 죽이는 데 이펙트가 너무 살벌한 거 아니냐?
그냥 제초제만 뿌려도 죽는 애들이라고. DDT를 뿌리던가, 아니면 병사들 동원해서 제초 작업을 하면 엄청 싸게 먹히는데.
고오오오오!
아무튼, 우주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는 제초작업이 끝나자 내 필드는 완전히 텅 비어버렸다.
“어떠냐!”
나는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저런 소환 하나하나에 일일히 반응해주다가는 몸이 다섯 개라도 부족할 테니까. 필드가 처음으로 비어버린 덕분에, 나에 대한 수비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에게로의 직접 공격.
“죽어라!”
죽긴 뭘 죽어. 필드 데미지로는 킬이 나오지 않는다. 만약 킬이 나오는 데미지였다면 다른 준비 과정이 필요했겠지만.
퍽! 퍼억! 퍼어억!
미리 소환되어 있던 소환수들의 공격이 내 몸을 쓸어나간다. 완전히 환상에 불과하지만 저절로 몸을 움찔하게 되는 리얼리티다.
나는 모든 공격을 받아낸 뒤에 내 라이프 바를 확인했다.
남은 생명력 : 1
아슬아슬해 보일진 몰라도, 다 계산대로다. 상대의 카드를 다 모른다면 조금 더 과하게 방어를 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여한설의 덱 리스트는 내 머릿속에 있다.
그녀의 덱에는 추가적인 공격력을 확보할 수단이 없다. 그러니 필드에 나와 있는 카드들만으로 최대 데미지를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포기해!”
미안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빨리 턴이나 넘겨.”
애초에, 내가 다 이겼는데 왜 포기를 한단 말인가?
##첫 수업(4)
나는 머리를 긁었다.
풀필드가 된 상황, 내 체력은 1, 상대의 필드는 풀 필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한설.
“항복한다면 퇴직금 정도는 챙겨받을 수 있겠군!”
“···시간제 강사는 프리랜서이므로 퇴직금이 없습니다.”
“라는군!”
시간제 강사라는 거. 생각보다 훨씬 더 슬픈 직업이구나. 아무튼, 지금 상황은 칼 같은 항복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물론 내 항복이 아니라 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한설의 항복 말이다.
“소울 커맨더스의 승리 조건은 알고 있나?”
“그것도 모르나? 적의 체력을 0으로 만들면 이기는 거잖아!”
“맞아. 「소울 커맨더스」의 승리 조건은 매우 단순한 편이다. 적의 체력을 0으로 만들면 승리. 하지만 이 룰에는 맹점이 있지.”
“맹점?”
“예를 들어 서로가 모든 카드를 사용하고, 덱도, 카드도 없는 상황이라면, 승자는 누구인가?”
“그딴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
그다지 많이 있을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초반기 대회에서 이런 경우가 나와서 재경기를 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제정된 룰.
「덱이 0장이 된 상황에서 드로우하게 된 플레이어는 체력이 0이 된다.」
소위 ‘탈진사’라고 부르는 특수 승리 조건이다.
이 조건이 왜 중요한가 하면, 「꽃잎 토큰」의 승리 플랜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지.
지금 덱은 서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 내가 후공이었던 탓에 덱 한 장이 모자라는 상황이긴 하지만. 크게 상관없다.
“자신만만해 봤자 필드는 다 밀려버렸는데?”
“나는 마법「꽃밭」을 사용한다.”
【꽃밭】
【마법 : 지금까지 죽었던 꽃 속성 소환수들을 모두 소환합니다.
소환된 수만큼 덱에 꽃 속성 소환수를 추가해 넣습니다.】
바닥에서 꽃이 치솟아오르며 죽었던 꽃잎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필드가 완전히 복구되었다. 필드를 완전히 다시 메우는 꽃 속성 카드들.
원래는 벽으로 사용하라고 준 카드지만,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카드던지 카드사의 원래 용도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는 꼬인 인간들이다.
“그래봤자 죄다 공격력이 0인 버러지 카드들! 다시 뚫으면 끝이야!”
“뭐. 그렇겠지. 꽃잎 카드들은 죄다 공격력이 0인 버러지에 쓸모없는 카드들이니까.”
물끄럼.
내 말에 내가 소환해놓은 소환물들이 나를 꼬라본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뭘 봐. 내가 틀린 말 했냐?
“내가 튜닝해서 넣은 한 장의 카드가 뭔지. 알고 있나?”
“그딴 카드 알 바 없잖아!”
그렇겠지.
나는 핸드에서 꽃잎 토큰의 핵심 카드이자 내가 튜닝해넣은 키 카드를 발동했다.
【1:1 대응!】
【상대의 필드의 소환수들의 공격력을 마주보는 소환수들의 공격력과 같게 만듭니다.】
휘리릭!
1:1대응을 사용하자마자 꽃잎이 주변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닥한 군데에서 시작된 꽃잎의 폭풍은 점차 커져 온 세상을 뒤덮어나갔다.
오. 이펙트 한번 죽여주네.
평소에 모니터로만 보던 게임이 제대로 이펙트까지 나오는 것은 나름대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저럴 수가!”
“오오!”
마법이 완전히 발동된 이후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강남집 한 대 값이라던 「새끼 비룡」도, 그녀의 에이스 카드인 「명계룡」도 모조리 꽃잎에 휘말려 공격력이 0이 되었다.
“턴 종료.”
꽃잎 토큰의 승리 플랜은 바로 ‘필드 락’이다. 소울 커맨더스의 필드는 최대 7장까지의 소환물을 올려놓을 수 있다.
꽃잎 토큰의 승리 플랜은 상대방의 필드를 가득 채운 후에 상대의 공격력을 0으로 만들어 더 이상의 행동을 봉쇄하는 것.
“···드로우.”
여한설은 침울한 얼굴로 드로우를 했다. 하지만 드로우 한다고 해서 어떤 해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덱 리스트 안에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