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4
“너무해.”
“인생은 한 번에 끝나는 일필휘지다. 무르기가 있는 인생은 빌어먹을 가필加筆이지.”
“누가 한 말이에요?”
“주퀘도.”
그러니 무르기 같은 건 없다. 신하연은 낑낑거리며 망해 버린 필드를 부여잡고 다시 덤벼들었다.
성장하는 속도도 느리고, 답답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
이런 마음은 「미라클」덱에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미라클은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건 필사적으로 존재하는 해解를 찾아내야 하는 덱이니까.
[「신하연」에게서 무르기 신청이 왔습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거절]물론 무르기가 그 해라는 뜻은 아니고.
“무르기 신청 좀 하지마.”
“상대가 실수로 ‘예’버튼 누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참신하기 그지없는 해답이다. 왜, 갑자기 온풍기가 두꺼비집 내려서 판정승받는 것도 노려 보지.
나는 킬각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집행했다.
[승 리 !]“다시 떠요!”
[신하연이 당신에게 도전합니다!]승리 모션이 나오기도 전에 들어오는 도전 신청.
[신하연과의 관계성이 증가했습니다.]그리고 가끔 올라오는 관계성 증가 문구. 역시. 게임을 여러 번 하니 관계성이 올라가는군.
내가 굳이 신하연을 샌드백···이 아닌 1:1 연습 상대로 고른 이유는 마냥 그녀가 기대주라서만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신하연의 특이성은 굉장히 유용하다. 소커아의 컨텐츠 「탑」 의 괴악한 난이도를 생각해 본다면, 그녀의 특이성 레벨은 올려놓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이번에는 진짜 진짜 진짜 제가 이길 거에요.”
“맘대로 해.”
이런저런 시험을 해 오며 내린 결론인데, 이 관계성이란 거. 소위 시뮬레이션 게임에 존재하는 단순한 ‘호감도’와는 다른 스테이터스였다.
관계성은 소커아에 있는 캐릭터들의 성장이나 변화에 관계된 일을 하면 올라가는 스테이터스였다. 올라가는 수치들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면 끼칠수록 주는 포인트는 늘어날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신하연의 「특이성」을 각성시킨 경우가 있겠다. 즉, 그녀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내 덱 파워를 올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물론 정도를 넘는 도움을 줄 생각은 없다.
다만 나도 최소한 강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 맞는 최소한의 일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겸사겸사 공략에 필요한 포인트도 얻고.
“아!”
[「신하연」에게서 무르기 신청이 왔습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거절]거기에 인생이란 무르기가 없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얘는 뭔 실수를 한번 할 때마다 무르기를 하려고 하네. 동네 경로당에서 바둑 두다 이러면 바둑알로 배 채울 수도 있어 인마.
“다시 무르기 신청하면 그냥 집에서 내쫓아 버린다. 특훈이고 뭐고 없어. 알겠어?”
“너무해요.”
원래 세상은 너무한거다.
이 날, 신하연은 나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하루 내도록 도전한 결과 결국 내게서 1승을 쟁취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바로 바꿔온 270위권의 덱에 개박살이 났지만.
이길 때까지 하고 이기면 더 높은 순위를 가진 학생의 덱으로 바꾸기를 몇 번째 하고 나니, 등급전 당일이었다.
##등급전-2학년(3)
여한설은 아카데미의 경기장에 와 있었다.
“아가씨. 굳이 2학년들의 경기를 볼 필요가 있을까요?”
“2학년들이라고 해도 길게 보면 언젠가는 경쟁자, 혹은 협력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러니 일찍부터 실력을 확인해 놓는 것도 해야 할 일이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여한설은 지금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른 속성 카드들은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청노두의 금지옥엽외손녀니까. 문제는 빛 속성이 아니라 어둠 속성 카드들이다.
물론 여한설은 얼마 전에 어둠 속성 카드들을 한 번 대량으로 구매하긴 했었다. 하지만 인간의 물욕이란 것은 신기한 면이 있다. 몰래 구한 어둠 속성 카드 카탈로그나 유튜브 영상들을 볼 때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카드들이 좋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 모을 카드들을 메모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80장을 넘어갔다.
그러니. 자금이 필요하다. 그것도 최대한 많이.
“저기는 뭐 하는 곳이지?”
여한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뒤에 있던 베팅 센터를 가리켰다.
“델리만쥬 가게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오른쪽에.”
“아, 저기는 호두과자 가게입니다.”
“···그것보다는 왼쪽. 너무 멀리는 아니고 아주 살짝만.”
“아. 저곳은 베팅 센터입니다.”
“흐음. 베팅이라.”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이지후는 자신의 속내를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짐짓 관심없는 척 말을 이어나갔다.
“저런 것도 있군.”
“혹시 베팅에 흥미가 있으십니까?”
“아니. 베팅을 해서 돈이 늘어 봤자 어디에 쓰겠어?”
“그러면 바로 3층의 특등석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베팅과 반대로 내 보는 눈을 시험해보고 싶군.”
그렇습니까. 이지후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연기력에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베팅 센터 앞에 도착한 둘은 베팅 표를 바라봤다.
[백화 : 5.0서소소 : 6.4
이중민 : 7.1
···]
“역시, 자일색 멤버들은 꽤나 배당률이 낮군.”
“아무래도 1년간 보여 준 것이 많은 학생들이니까요.”
여한설은 배당을 주욱 훑어봤다. 결국 베팅이라는 것은 가능성과 배율의 저울 질이다. 마냥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배당이 높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닌 것이다.
여한설은 머릿속으로 배당과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몇 명 눈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역시, 그냥 집에 가야 되나.’
반쯤 마음을 접었던 그 때. 그녀의 귀에 옆에서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신하연. 이번에도 꼴등이네?”
“3연속 꼴등은 진짜 전설이다.”
“근데, 이번은 다를 수도 있어.”
“하긴. 그 태진호도 박살냈었으니까. 잘 하면 100위 정도까지는 올라오지 않을까?”
신하연. 여한설은 신하연과 실력을 겨뤄 본 적이 있었다. 약점이 확실하지만 그 덱 파워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등급 상승이 보장된 다크호스. 만약 그녀가 300등이 아니었다면 여한설도 망설임 없이 신하연에게 투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300등으로 시작해서는 10등 안에 들어올 수 없지.’
“근데 믿을 만한 정보원 말로는, 조금 더 쓸만한 정보가 있어.”
“뭔데?”
“신하연. 아마 지도교수랑 1:1 교습을 꽤 오래 한 모양이더라고.”
“그건 다른 애들도 하잖아. 신하연 지도교수가 누군데?”
“몰라. 시간제 강사라던데?”
“시간제 강사도 지도교수가 되나?”
“아무도 안 맡으려고 하니까 시간강사한테 맡긴 거 아냐?”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여한설의 눈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신하연의 지도교수는 전익현이다.
“베팅은 어디 하시겠습니까? 역시 백화 학생에게 베팅하시는 게···.”
“경마를 할 때. 말의 질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뭔지 아나?”
“뭡니까?”
“마주馬主. 능력 있는 마주가 뽑는 말은 필연적으로 준마駿馬인 법.”
여한설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하연에 대해서는 알음알음정보가 퍼져 있지만, 아무래도 전익현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퍼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30분 후 전체 베팅 마감입니다!”
전체 배팅 마감시간이 거의 다가와 있었다.
여한설은 배당비를 확인했다.
[신하연 : 100.00]전익현이 얼마나 괴물인지 알려져 있었다면, 그리고 그 전익현이 고른 것이 신하연이라는 것이 알려졌다면 이런 배당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터.
승부수를 띄우기에 적절하기 그지없는 순간!
여한설은 소지하고 있던 덱 슬롯을 꺼내들었다. 지난 번에 어둠 속성 카드들을 사고 남은 잔금殘金이 덱 슬롯 안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이번 달의 용돈을 지갑에서 꺼내들었다.
“···이 카드들까지. 전부 신하연에게 베팅하도록 하지.”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런 식으로 용돈을 써 놓고 추가로 회장님께 용돈을 받으려고 하시면···.”
“안 그래. 그러니까 가서 베팅이나 하고 와.”
“알겠습니다.”
이지후는 군말 없이 베팅을 하고 돌아왔다. 여한설이 베팅한 금액은 거액이다. 그것도 심각하게 큰 거액.
이렇게 큰 금액을 배팅하면 당연하게 배당비는 줄어들게 된다.
‘이걸 이야기를 해야 하나?’
게다가···.
“야. 방금 보는데, 여한설이 신하연한테 베팅한 모양이더라.”
“진짜? 뭔가 다른 정보가 있는 거 아닐까?”
“청노두 외손녀잖아. 우리가 모르는 정보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야. 베팅했냐? 안 했다고? 믿을 만한 정보가 있는데···.”
수근거리는 주변의 다른 학생들. 부화뇌동해서 신하연에게 베팅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적게 잡아도 십수 명. 아직 시간이 더 남은 것을 고려하면 신하연에게 베팅하는 사람의 수는 그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한다면 100배라고 나오는 배당은 아마 본래 배당의 1/10, 어쩌면 그보다 더 아래로 쪼그라들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알고서도 베팅하신 거겠지.’
원래 투자는 100% 본인의 책임인 법이니까.
***
“등급전이 곧 시작됩니다. 덱 준비해 주세요.”
신하연은 듀얼 필드에 서서 마른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등급전이 이뤄지는 시합장의 최외곽에 위치한 곳이다.
등급전은 일종의 평가전인 동시에 대회다. 동시다발적으로 십수 경기가 치러 지기 때문에 주목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경기는 접근성이 좋은 곳에 배치하고, 주목도가 낮은 경기들은 외곽으로 배치한다.
물론 신하연이 배정받은 경기장은 최외곽의 경기장이었다.
그녀의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은 거의 없다. 경기장을 보러 온 것은 대략 10명 가량.
10명을 다시 톺아봐도 전익현은 없다. 심판으로 다른 경기장에 불려간 까닭이다.
‘아니. 강사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
애초에 듀얼은 고독한 것이다. 누군가 응원하는 사람이 있건 없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신하연은 마음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했다.
다행인 것은 첫 대전 상대가 연습을 해 본 상대였다는 점.
그녀는 「양자기갑공룡」덱을 쓰는 상대를 노려봤다.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양기공 vs 신하연] [듀얼 스타트]신하연은 빠르게 필드를 전개했다. 「양자기갑공룡」덱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 있다. 몇 번이나 전익현의 양자기갑공룡덱에 잡아먹혔으니까. 양기공의 덱은 298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덱이었다.
특히나 무서운 것은 끝까지 버티다 내놓는 ‘디랙스’ 콤보다. 다행인 것은 콤보가 만들어지려면 8턴 정도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3턴. 앞으로 5턴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니 템포를 최대한 끌어올린다.
‘디랙스 콤보가 나오기 전에 끝을 내야···.’
“나는 디랙스를 소환.”
3턴에 튀어나온 희미한 공룡이 애처롭게 포효했다.
신하연은 잠시 머리가 멎었다. 자신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최중요 파츠인 디랙스를 꺼내놓는다고?
‘함정인가? 심리전? 공격을 위한 포석?’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굴러가는데도 몸은 기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