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8
말도 되지 않는 포커 페이스지만 상황은 절망 그 자체다. 전익현에게 남은 체력은 11에 불과하다.
“다 끝났지?”
“···다 끝났네요.”
신하연은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전익현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신하연을 다시 노려봤다.
“괜찮아요. 같이 죽어드릴게요.”
신하연은 주먹을 꼭 쥐고 필사적으로 입을 열며 말했다.
“강사님이 처음 저를 알아봐 줘서 기뻤어요. 잠깐이지만 등수도 많이 올랐고.
평생 못 이길 것 같은 듀얼에서도 많이 이겨봤고···또···그러니까. 괜찮아요.”
신하연의 용기있는 말에 잠시 침묵한 전익현은 잠시 침묵하다 화답했다.
“죽을 거면 너나 죽던가.”
독설을 내뱉은 전익현의 눈이 더 가늘어진다. 이 사람은 듀얼을 벗어나면 참 포커페이스를 못 지킨다.
“핸드가 너무 깔끔하게 풀려서 다행이야. 예닐곱 턴은 가야 할 걸로 생각했는데.”
전익현은 다시 소환수를 필드에 깔았다. 뭔가 비장의 카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소환한 소환수는 전 턴에 소환했던 「대물 낚시꾼」.
촤르르르! 털컥! 낚싯대가 울컥하며 동풍전의 패에서 카드를 뽑아올렸다.
이번에 뽑혀올라온 카드는···
+
【★가학의 여사제】
【mana : 7】
【이 소환수가 피해를 주면, 내 영웅의 생명력을 5 회복시킵니다.】
【7/6】
+
요염한 여인이 채찍을 바닥에 휘둘렀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충격에 들썩거린다.
“어떻게 생각하냐?”
“뭐가요.”
“이 필드에 관해서.”
3턴에 불과한데도 상대방의 필드에는 12/12의 소환수와 7/6의 소환수가 놓여져 있다.
반면 전익현의 핸드는 한 장에 불과하다.
“망했네요.”
신하연은 삐딱하게 대답했다. 전익현의 눈썹이 삐딱한 대답에 잠시 움찔했지만, 금방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진짜로 끝났네요.”
“정답은 맞추네. 완전 정 반대로 맞췄지만.”
전익현의 대답에 신하연은 잠시간 필드를 다시 봤다. 이 필드를 뒤집을 방법이 그에게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단 한 장으로?
‘그래도 혹시나 모르지.’
전익현은 수호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수호자들에게는 법칙을 벗어나는 아득히 좋은 카드가 있을 지도 모른다. 일발역전의 카드.
전익현의 핸드에 지금 잡혀 있는 카드가 그런 최강의 카드라면···!
신하연의 눈이 전익현의 핸드에 있는 카드에 꽂혔다.
‘설마···저 카드가 이 판세를 뒤집을 물 속성의 최강의 카드···!’
“나는 돌진 멧돼지를 소환.”
+
【돌진 멧돼지】
【1 mana】
【중립 속성】
【속공】
【1/1】
+
“장난쳐요?”
흔해빠진 중립 속성의 1마나 하수인. 「돌진 멧돼지」를 소환하고 나자 전익현의 핸드는 완전히 비어 버렸다.
신하연이 뭐라고 한 마디 내뱉으려는 찰나, 전익현은 공격을 개시했다.
“돌진 멧돼지로 가학의 여사제를 공격.”
크르릉!
돌진 멧돼지가 엄니를 들이대며 가학의 여사제에게 덤벼들었다.
짜아악!
가학의 여사제의 채찍을 맞고 돌진 멧돼지가 그대로 파괴되어 버렸다.
[가학의 여사제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Hp -5]가학의 여사제의 채찍에 묻은 피가 동풍전의 몸에 쏟아졌다.
본래 가학의 여사제의 체력 회복 효과가 거꾸로 적용되어 동풍전의 체력을 깎아내렸지만. 그래봤자다.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 절망감이 그녀를 사로잡으려는 찰나.
촤아악!
[Hp -5]동풍전의 체력이 다시 한 번 떨어져내렸다.
“···이게 무슨···?”
카드 시스템이 오류가 발생했을 리는 없다. 물리 법칙처럼 절대적인 것이 바로 카드 시스템이니까.
그녀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다시 한 번.
[Hp -5]동풍전의 체력이 줄어들었다. 처음 시작된 반응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더니 동풍전의 몸을 온통 휘감아올렸다.
크에에에에!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는 중에 신하연은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가학의 여사제의 본래 효과는 피해를 입히면 체력을 회복시키는 효과. 그리고···동풍전의 특이성인 역반응에 의해서, 체력을 회복시키는 효과는 거꾸로···들어간다.’
즉. 회복하는 효과여야 할 가학의 여사제의 효과가 피해를 주는 효과로 들어갔고, 피해를 줬기에 가학의 여사제의 효과가 다시 발동하는 매커니즘인 것이다.
일종의 계속해서 반복되는 되먹임(feedback)과정. 상황만 본다면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게. 그 급한 상황에 상상해낼 수 있는 일인가?’
신하연은 전익현을 바라봤다. 「물」은 꿈꾸는 속성. 그 속성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리라.
이 매커니즘을 생각하고, 덱을 그 자리에서 구축하고, 실현하는 실력.
‘···인간이 아냐.’
신하연은 전익현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와 같은 듀얼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콰과과곽!
[남은 「동풍전」의 Hp : 0]반응이 완전히 끝나자 반쯤 구워진 동풍전의 몸이 바닥에 쓰러져내렸다. 데미지를 너무 많이 받아서인지,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전익현은 동풍전의 맥을 짚었다.
“그래도 살아는 있네. 우화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야.”
둘은 동풍전의 몸을 들쳐맸다. 가장 가까운 응급실은 1km정도 떨어진 곳이다.
부지런히 걸어야 할 터였다.
##등급전?-1학년(1)
“듀얼 준비!”
심판의 목소리를 들으며 신하연은 덱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등급전의 마지막 듀얼. 그녀의 승수는 13승 0패. 그리고 눈 앞에 서 있는 상대는···현 2위. 아니. 이제 동풍전이 없어졌으니 1위인 백화다.
“훌륭하네.”
백화가 순수한 칭찬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신하연의 현재 순위는 17위. 전승으로 올라온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1위인 자신에게 도전한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은 순위가 올라오면 올수록 가까운 등수의 학생부터 이기려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신하연의 덱은 미라클 덱.
미라클이 상성을 타지 않는다곤 하지만 미세한 유불리가 존재한다. 10위권 안에 있는 학생들의 덱 가운데 신하연이 가장 상성이 안 좋은 덱이 바로 백화의 「염제」덱이었다.
신하연이 현재의 2위인 서소소와 붙었다면 역으로 그녀의 승산이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하연은 그녀와의 싸움을 선택했다.
“상성 관계가 좋지 않은데도 덤벼들다니. 이유가 있어?”
“···강해지고 싶어서.”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닿고 싶어. 신하연이 중얼거렸다. 어디에 닿고 싶은지, 무엇에 닿고 싶은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러려면 강한 상대와 싸워야 해.”
신하연이 이미 동풍전을 이겼다는 소문은 파다했다. 동풍전이 불법 사용 약물을 사용해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다는 것도.
동풍전이 신하연에게 졌을 때. 약물을 사용하고도 졌을까? 졌다면 어떻게? 왜?
아니. 이런 것들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잡념은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 1위를 수성하는 것. 백화는 덱을 잡아들었다.
[듀얼 스타트]백화의 첫 핸드는 좋았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신하연의 핸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초반에 신하연은 주춤주춤 밀려나기만 했다.
백화는 한 템포도 쉬지 않고 신하연을 밀어붙였다. 누구나 포기했을 상황까지.
그런데도, 신하연은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기게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중반에 접어들자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백화가 밀고 있다고 자신했던 필드가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백화 쪽이었다. 당황은 필연적으로 실수를 낳는다.
“읏!”
백화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터져나왔다. 평소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치명적인 미스. 신하연은 실수를 놓치지 않고 무게추를 절반으로 돌렸다.
이후부터는 난타전이었다. 서로 핸드를 끝까지 소모하고, 뽑은 카드들을 최대한 짜내 쓰고, 아주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쌓기 위해 발버둥치는.
‘숨이 막혀.’
몸 전체가 물에 잠겨 있는 것만 같은 듀얼 속에서, 백화는 문득 눈을 들어 신하연을 바라봤다. 신하연도 자신과 같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녀가 바라는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신하연은 물 속에 잠긴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공기가 아닌 물 속에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백화는 신하연의 듀얼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조그마한 손해에도 몸을 떨어 대고, 데미지를 입을 때마다 얼굴을 구기고, 실수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던 낙제생.
대체 뭐가. 그녀를 이렇게 바꿔 놓은 것일까.
“뭐가 널 이렇게 바꿔 놓은 거지?”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답 대신 들려오는 것은 혼잣말이 분명한, 중얼거림.
“내 덱에 남아 있는 카드. 얼음 방패 한 장, 물의 환상 한 장, 물의 침묵 한 장, 물결치는 저항 두 장, 빙결핵 한 장, 얼음창 한 장··· 상대의 덱에 있는 카드. 염제염황 한 장, 화염구 두 장, 불기둥 한 장, 불꽃 도마뱀 두 장···.”
그녀가 카운팅(counting)하는 덱의 카드가 완전히 맞다는 것을 깨달은 백화의 등에 소름이 내달렸다.
서로의 패가 완전히 마른 상황에서 듀얼리스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덱을 카운팅하는 것은 승률에 아주 조그마한 영향밖에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듀얼리스트는 이런 상황에서 그저 좋은 카드가 다음 번에 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도, 신하연은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카운팅을 반복하고 있다. 아주 조그마한 극미차極微差의 승산을 쌓아내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목표점의 차이. 때문이리라.
백화는 1위가 되기 위해서 듀얼하고 있었다. 반면, 눈 앞에 있는 신하연은. 1위가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백화에게 지금의 상황은 등급전의 마무리였지만, 신하연에게는 강해지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녀에게 지금의 이 듀얼은 1위가 되는 것은 목표점이 아니라 그저 넘어야 할 언덕일 뿐이다.
백화는 그 순간. 자신이 이 듀얼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
흐흐흥♪ 흐흥♬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웃음이 입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신하연이 무슨 일로 백화를 상대한다고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상성상 유리한 애들이 쌔고 쌨는데도 신하연은 1위를 상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그러면 듀얼 안 해 준다고 했는데도. ‘그러시던가요.’라고 대답하다니.
1등 못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설득이 통할 것 같지도 않았던 탓에, 나는 백화의 덱으로 신하연과 듀얼을 해줬다.
백화의 덱은 꽤나 강한 덱이다. 덕분에 마지막까지도 신하연은 나를 이기지 못했다.
덕분에 좀 쫄렸다. 실제로도 패 한 장, 한 턴 차이로 승부가 갈리기도 했고.
만에 하나라도 졌으면 신하연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의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중요한 건 결과.
결과는···보다시피!
[1등 : 신하연]“크으!”
짜릿하다. 1주일 내내 잠도 안 자고 신하연과 주구장창 듀얼한 보람이 있다.
사실 1등이건 10등이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하연이 10등 안에 들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신하연이 10등 안에 들어온다고 베팅을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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