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
“턴 엔드.”
그대로 턴 종료. 나도 드로우를 하고 턴을 종료했다.
“···이거. 저 신입강사가 이긴 거야?”
“진짜로? 여한설을 상대로?”
“말도 안 돼.”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는 주변 시선들. 후. 낭중지추라 했던가. 잘난 사람은 숨기려고 해도 드러나기 마련인 법이다.
“턴 엔드.”
“턴 엔드.”
패배가 명확한데도 게임을 종료하지 못하는 건, 그녀가 이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말한, 게임을 지면 아카데미를 나가겠다는 말 때문일 터다.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자퇴하던지 말던지. 자존심 때문에 자퇴할 가능성이 100%긴 하지만.
“근데. 여한설 자퇴해도 저 시간강사는. 괜찮으려나?”
“그러게. 여한설 할아버지가 여한설 엄청 아끼잖아.”
“지난 번에는 어깨 좀 부딪힌 걸로 조폭들이 데려다가 협박했다는데.”
“그러면 혹시 진짜 자퇴라도 하면. 저 시간강사,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
진짜 그런 짓 하는 건 아니겠지?
“미리 말해 두지만. 겨우 듀얼 한 번 졌다고 자퇴를 할 필요는 없···.”
“입 닥쳐.”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울기 직전이다. 얼굴은 빨갛고 호흡은 가빠져 있다.
아니 뭐 게임 한 판 진걸로 애 얼굴이 이 모양이 되냐. 다 이긴 듯이 자랑해 놓고 쪽팔리게 지긴 했는데.
“지면 반드시 자퇴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바라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세상이 멸망해도 자퇴할거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녀는 말했다.
좆됐다. 어떻게 하지.
***
여한설은 무의미한 드로우를 이어나갔다. 방금 전부터는 핸드가 10장이 넘어 드로우한 카드는 그대로 버려지고 있었다.
몇 번이고 검토해 봐도 지금의 핸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확정된 패배.
자신이 무시하던 시간강사는 그녀를 확실하게 이겼다. 그것도 쓰레기 카드뭉치에 카드 한 장을 넣는 것만으로.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어떻게 들어온 아카데미인데. 이렇게 끝이라니.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패배를 납득하는 것은 그녀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까.
그녀는 자신의 덱에 있던 마지막 카드가 타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다음 턴이면, 그녀는 패배하는 것이다.
“턴 엔드.”
자신이 턴을 마치자 전익현은 드로우를 했다. 계속해서 드로우와 턴 엔드만을 외치던 그의 입이 턴 엔드를 외치지 않았다.
“두번째 턴. 교환순서에 문제가 있었지?”
“뭐라고?”
“두 번째 턴에, 교환하는 순서 때문에 손해를 봤잖아. 순서대로만 했다면 1데미지를 더 밀어넣을 수 있었어.”
그녀는 이전의 턴을 떠올렸다. 이전의 턴을 기억해내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다.
“다섯 번째 턴에는 소환하는 순서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필드의 총 데미지가 줄어들었지. 그때 네 핸드는···”
하지만 카드 게임은 상대의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보이는 자신의 핸드와 필드를 떠올리는 것과, 보이지 않던 상대의 핸드를 모두 기억하는 것은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전익현은 매 턴마다의 자신의 핸드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자신의 미세한 실수들을 짚어 나가고 있었다.
복기復碁.
전익현은 프로 기사가 아이에게 설명하듯 모든 실수 하나하나를 낱낱이 알려 주고 있었다. 납득되는 실수들. 납득되는 결과들.
“···결국. 최선의 수를 다 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 거란 뜻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던 인간에게 이렇게 하나 하나 사사받고 있다니.
게다가. 선택이 아닌 실수만을 짚어 이야기한다.
비참하다.
자신이 항복하지 않는 이상, 자신은 여기에 서서 자신의 실수를 말하는 연설을 듣고 있어야만 한다.
차분하게 이어지던 복기는, 마지막 턴에 가서 멈추었다.”
“···이게 마지막 실수였지. 반론 있나?”
“···없어.”
“아. 그리고.”
“뭐지?”
“다음 수업 시간부터는 교사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멍청하기는. 그녀에게는 다음 수업 시간 같은 건 없다.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뎅!
뎅!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려퍼졌다.
“수업 종료 종이 울렸군. 오늘의 수업은 여기까지다. 즉, 이 패배는 ‘이번 수업’의 패배가 아니라는 말이지.”
“그딴···!”
그녀는 이 게임을 졌지만, ‘수업에서’ 지지는 않았다.
그러니, 자퇴할 수 없다.
말장난하지 마! 라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소울 커맨더스」에서도 한 글자의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으므로.
그냥 자퇴하는 것보다.
이렇게 추하게 살아남는 것이 훨씬 더 부끄럽다.
그리고 이어지는 턴 엔드.
[패배하셨습니다.]여한설은 자신의 눈 앞에 떠오른 패배 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첫 수업(5)
[게임을 승리하셨습니다.]나는 빙긋 웃었다.
「퀘스트 완료 : 게임에서 1회 승리(150p)」
크아. 이거지. 150포인트를 받으니 오늘 하루를 제대로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이걸로 어떤 카드팩을 사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거지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이를테면···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아까보다도 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저 살벌한 눈의 여한설은. 절대로 생각하지 말자.
꿈에 나올까 무서워라.
「이제 집으로 돌아가 쉬십시오.」
말 안해도 알아 임마.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나는 바닥에 나타난 집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따라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다. 내가 걸어가지 못한 것은, 내 눈 앞을 여한설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내가 왼쪽으로 가려 하면 왼쪽으로 쫓아와 가로막고,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가서 가로막는다.
뭐 하냐. 길막하냐?
니가 잠만보야?
“집으로 가야 하니까 비켜 주지 않겠나?”
“···.”
그녀는 너무 분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을 한 채. 덱을 나에게 내밀었다.
···뭐 어쩌라는 말이지. 덱을 확인해 달라는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서 덱을 받아들었다.
「덱 리스트
새끼 비룡 x2
지축을 울리는 용 x2
···
명계룡 x1
···
욕망의 단지 x1」
마법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밸런스가 그나마 잘 잡혀 있는 덱 리스트다. 이전에 내가 손을 본 덕분이다. 이거. 처음에 봤을 때는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지. 그나마 덱이 사람 꼴을 하게 된 게 내가 넣었던 피드백 덕분이다.
생각해 보니. 너는 나한테 감사해라. 진짜로.
아무튼 덱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가져갈 카드나 골라.”
「여한설의 덱의 소유권을 일시적으로 얻었습니다.」
「안티 룰에 따라 가져갈 카드를 선택하세요.」
아. 맞다.
안티 룰(Ante rule)을 했었지.
어떻게든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을 하는 탓에 잊어버릴 뻔 했네.
“···요.”
그렇게 깨달음을 얻은 찰나에 귀에 들릴듯말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한테 존댓말 한 거야?
그러고 보니 존댓말을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긴 했었지. 복기를 다 하고도 시간이 애매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건데.
그렇다고 진짜 존댓말 할 필요는 딱히 없는데.
“와. 안티 룰로 여한설 카드를 들고 간다고? 저 인간 인생역전했네.”
“미쳤다. 진짜. 나도 저런 기회 있으면 좋겠는데.”
“그 전에 여한설을 먼저 이길 수 있어야 기회도 있는 거지.”
나는 차분히 덱리스트를 읽어나갔다. 내가 카드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여한설이 움찔거린다. 특히나 「명계룡」을 만지작거릴 때에는 너무 심하게 몸을 움찔거리는 통에 발작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만지작.
움찔! 움찔!
만지작.
움찔찔!
가져갈 생각은 없지만. 은근히 재밌네 이거.
그녀가 가지고 있는 덱이 굿 스터프 덱이라 효율과 교환비가 좋은 카드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한두 장의 카드로 내 덱 전체의 파워를 극적으로 올려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러한 종류의 교환 좋은 카드들만 넣은 덱은 다음 부스터 팩의 발매 이후로 사장된다. 그러니 몬스터 카드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 봤자 넣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 「속성」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모른다는 것도 있고.
결정했다.
“나는. 이 카드를 받아가지.”
“그 쓰레기 카드? ············요?”
한 10초쯤 텀을 두고 ‘요’만 붙이는 게 존댓말이냐?
따끔하게 혼을 내고 싶지만 지금은 도덕시간도 아니고 내 수업시간도 아니다.
나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마법 : ‘욕망의 단지’의 소유권을 얻으셨습니다.」
【0 mana】 【욕망의 단지 : 카드를 한 장 뽑습니다.】
“겨우 저 카드 하나를 받은 거야?”
“당연히 명계룡을 받아야지. 으휴. 그러면 인생역전인데.”
나도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 극성맞다는 여한 설의 할아버지한테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비싸다고 해도 나를 제약하고 있는 시스템 때문에 팔 수 있을지도 모르기도 하고. 「트레이드」를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비싼 카드들은 쉽사리 트레이드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럴 가능성이 적은 카드들 가운데서 가장 쓸만한 카드를 고른 것이다. 다행히 반응을 보니, 욕망의 단지는 그다지 비싼 카드가 아닌 모양이다.
이상하네. 욕망의 단지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카드인데.
“욕망의 단지? 저거 무슨 카드야?”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는 카드야. 1장을 써서 1장을 드로우하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잖아.”
“그렇네. 그런데 여한설은 왜 저 카드를 쓴 거지?”
“글쎄? 명계룡을 한 장 더 못 구해서 넣은 것 아닐까? 명계룡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있는 종류의 카드가 아니니까.”
뭐.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 크게 이해가 안 가는 반응은 아니지만.
“아무튼. 덱 확인은 끝났다. 누가 짰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잘 구성된 덱이군.”
나는 내가 짰던 덱에 대해 공치사를 가볍게 한 후 강의실을 나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부탁하셨던 전익현 시간 강사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현일은 총장실의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까딱였다. 권보람은 조사해 온 자료들을 책상 위에 올렸다. 이현일이 확인하지 않을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차는 절차였으니까.
“뭔가 있던가요?”
“전혀 없습니다. 그저그런 대학을 졸업했고, 돌아가신 양친도 별 특이사항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위 논문도 읽어 봤는데 그다지 특별할 점 없는 논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