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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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보상 카드를 읽고 또 읽었다. 확정적인 것 하나. 이 카드는 내가 얻었던 카드 중 한 장. 이를테면 「불안정한 구체」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사실 불안정한 구체만 해도 나머지 두 장의 보상인 「들풀녘」, 「원시림」보다는 좋다. 「대죽림」과의 비교는 조금 어렵지만 한 턴에 필드를 완전히 클리어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체는 어떤 덱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번밖에 못 쓴다는 디메리트를 감안할 가치가 있다.
자. 여기까지는 ‘확실한 것’들.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추론의 영역이다. 추가적으로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방법 하나. 「?」카드인 상태 그대로 덱에 넣는다.
만약 「?」카드가 그대로 덱에 들어간다면 가능한 방법이다. 카드의 설명대로라면 덱에 넣어놓고 위험한 순간에 쓰는 예비 카드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덱에 쓸모없는 카드 한 장에 들어간다는 디메리트가 있기는 하지만 덱이 꼬이거나 위급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위험한 순간에 패에 쟁여둔 「?」카드를 콤보 파츠나 즉시 필요한 카드로 바꿔 쓸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마음에 드는 활용법은 아니다. 덱에 쓸 데도 없는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르카날」한 장이면 족하다.
···이 방법은 일단은 보류.
그리고 두 번째 활용법은···. 가능할지 아닐지를 확신할 수 없다. 아니,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99%, 아니, 99.99%의 확률로.
이 활용법이 가능할 가능성은 0.01%다. 소울 커맨더스의 창렬 팩으로 유명한 「절대자M」팩에서 「집황자의 검」이 나올 확률이 0.00008%니까 0.01%는···.
뭐지.
0.01%면 완전 개혜자잖아?!
내 손이 망설임없이 「?」를 향해 도착했다.
[「?」가 당신의 카드 목록에 추가됩니다.] [당신의 여정에 행운이 함께하기를.]카드를 받자마자 나는 「?」카드를 덱 안에 넣어보려 시도했다.
[덱에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쳇.”
역시 안 되나. 세상이 그렇게까지 만만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두 번째 활용법인데··· 당장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을 꾹참은채 나는 「?」 카드를 품 속에 집어넣었다.
내 생각대로의 활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여전히 무슨 카드로 바꿀지는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보상을 받아든 나는 포탈을 타고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나는 탑을 올려다보았다. 외견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는 다르다. 본래라면 몬스터로 가득차 있어야 될 1층부터 10층까지가 텅 비어있게 됐으니까.
엔드 컨텐츠에 한 발을 내딛었다는 생각을 하자 조금은 후련했다. 아직 한참 이 더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갑갑하기는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고 무한루프도 카드 한 장 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
단요구와 신하연은 목이 빠져라 전익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려고 하는 찰나에 전익현으로부터 [왜 전화 했었냐?]라는 문자가 왔었기 때문이다.
“언제 온다고 하나?”
“30초 전에 물으셨잖아요. 곧 도착한대요.”
“언제 온다는가? 언제? 언제?”
“······.”
집 나간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의 눈을 하고 있는 단요구에게 차마 쓴 말을 하지 못한 신하연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신하연이 ‘이제’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게 됐을 때쯤.
“무슨 일로 기다리고 있는 거냐?”
전익현이 나타났다.
“강사님!”
“넌 표정이 왜 그래. 누구한테 고문이라도 당했냐? 옆에 계신 분은?”
“아. 이 분은 듀얼 물리학과···.”
“물.리.학. 과의 단요구 교수일세.”
전익현의 눈이 단요구의 몸에 치렁치렁 달린 기계로 가 향했다. 딱 봐도 사이 비 과학자 느낌이 풀풀 풍기는 인상이다.
“강사님은 어딜 다녀 오신 거에요?”
“탑에 잠시 갔다 왔어.”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잠깐 기다려보게.”
단요구는 자신의 몸에 달려 있던 치렁치렁한 측정기를 켰다. 전익현이 수호자라는 것이 거의 확정되기는 했지만. 교차검증은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만약 전익현이 진짜로 수호자라면-틀림없을 테지만- 거의 측정기가 폭발할 정도의 반응이 있을 터!
그런데···.
“왜? 이게 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측정기의 바늘은 평소보다 조금 높지만 지극히 평범한 수치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이게 뭔데요.”
“자···네··· 인간이었군···.”
“그럼요. 당연히 인간이죠.”
“그래···. 그럼···. 당연하지···인간이겠지···허허···.”
당첨된 로또용지가 파쇄기에 들어간 다음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단요구가 측정기를 껐다.
“불러세워서 미안하군. 이제 들어가 쉬게.”
“···그래도 될까요? 곧 쓰러지실 것 같은 얼굴이신데.”
“괜찮네.”
대체 자신이 무엇을 했기에 단요구가 저런 표정을 짓는지 잠시 고민하던 전익현은 이내 고민을 멈췄다. 괜찮다는데 굳이 나서서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가 없는 탓이다.
“신하연.”
“네? 네!”
“왜 온 거야?”
“그게···얼굴 보고 싶어서요.”
“실없긴. 곧 나올 새 부스터팩 공부나 해. 오는 길에 보는데 카드 목록 떴더라. 난 간다.”
“알겠어요. 들어가세요.”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탕!
전익현이 방으로 들어간 다음에도 단요구는 한동안 황망한 눈빛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삐리리리!
문득, 단요구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화의 발신자는 단요구의 밑에서 수학했던 학생이자 범국가연합 침식도 연구실에 취업한 이응도였다.
그래. 세상은 때때로 실망을 안겨주는 법이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단요구는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무슨 일이지?”
“그거야 뭐 놀랄 일이라고. 잠깐 침식도가 내려가는 건 늘상 있는 일 아닌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근래의 수치의 절반 가량···아니, 줄어드는 추세를 봤을 때 1/4 가량까지도 줄어들 것 같아 보입니다!]그 말을 들은 단요구의 눈이 커졌다. 침식도의 수치는 급격하게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는다. 하루만에 수치가 절반이나 내려가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탑’의 탑주가 사라지는 정도의 일이라도 벌어져야 한다.
“설마 20층이 공략된 건가?”
[아닙니다. 확인해 본 결과 20층의 공략은 아직 답보상태입니다. 이건 극비중의 극비 정보인데···.]“무슨 정보?”
[10층이. 공략된 것 같다고 합니다.]단요구는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얼마 전에 새로 탑을 도전하려는 사람이 탑에 진입했는데, 1층부터 10층까지가 완전히 비어 있었더라는 이야기였다.
1층에서 미상의 강력한 카드들이 다수 사용된 흔적이 있더라. 사용된 카드들을 탐지해 보니 「숲」의 카드들이 사용된 것 같다는 이야기들도 줄줄히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전익현도 방금 「탑」에 갔다 왔다고 했지.’
수호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아니, 수호자가 거의 확실한 자가 탑을 다녀온 다음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갈 때에는 수호자였는데 돌아올 때에는 인간이 됐다는 뜻이다.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물리학자의 머리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능한 가짓수를 찾아내는 데에 누구보다도 특화되어 있다.
무한한 가짓수를 탐색하던 단요구의 뇌가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가능하다.’
허허. 단요구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올랐다.
“역시. 강사님은 수호자가 아니셨네요.”
“맞네. 더 이상은 수호자가 아니지.”
“그게 무슨 말이죠? ‘더 이상은’ 수호자가 아니라뇨. 그러면 예전에는 수호자일 수 있다는 말인가요?”
“세계는 유래없는 종말의 위기 앞에 있네. 탑의 침식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소수중의 소수만 제외하고는 탑을 공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이기성 때문이다.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기에 그 누구도 탑을 공략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단위로 탑을 공략하는 것을 막는 곳도 있을 지경이다.
이것은 과거에 수많은 나라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 아닌 누군가가 하기를 바라는 마음.
“자네가 영원한 시간을 가진 수호자 중 한 명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멍청하다고 생각하겠죠.”
“그래. 평범한 절대자라면 그렇겠지. 실제의 다른 수호자들의 반응이기도 하고. 그런데 만약, 인간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수호자가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인간을 구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맞아. 탑을 공략하려 하겠지.”
“그런데 이상해요. 수호자들은 인간의 세상에 개입하는 게 금지되어 있···아앗!”
말을 이어나가던 신하연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인간세상의 큰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순간 수호자는 자신의 힘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지. 가령, 「탑」을 공략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야.”
“설마···탑이···.”
“공략됐네. 첫 번째 층계인 10층의 탑주가 처치됐다고 하는군.”
“···강사님이 탑주를 처치한 거군요.”
신하연의 몸에 짧은 전율이 지나갔다. 그녀의 머릿속에 일곱 수호자들의 회담이 그려졌다.
[수호자는 인간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인간을 멸시하는 다른 수호자들. 이들에 대항해 전익현은 말했으리라.
[만약,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어야 한다면. 나는 인간이 되리라.]그리고 떨어진 것이다. 당신의 의지로.
이 가설대로라면 탑에 가기 전까지는 수호자였다가 탑을 공략하고 돌아왔을 때에는 인간이 됐다는 상황이 설명된다.
“그렇지만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잖아요.”
“그건 지금부터 성역들을 돌아다녀 보면 알 일이지. 수호자가 사라졌다면 측정기로 알아낼 수 있을 걸세.”
둘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짜기라도 한 듯이 성역을 향해 걸었다.
일곱 군데의 성역 중 한 군데의 성역에서 더는 수호자 측정기가 반응하지 않았다.
수호자 가운데서도 가장 인간을 멸시한다고 알려졌던 「스핑크스」의 성역이었다.
***
[미천한 인간놈들.]집에 도착하자 스핑크스는 평소처럼 인간에 대한 적개가 가득한 채였다.
“너는 어째 갈수록 인간 혐오가 심해지냐? 인간들이 너한테 뭐라도 했어?”
[오늘 낮잠을 자는데 인간들이 귀찮게 뭔가를 창문으로 집어넣었다.]“뭐야. 도둑이야? 도둑이 들었던 거야? 도둑이 들었는데 넌 도대체 뭘 했어!”
[불쾌해하고 있었다.]자알 했다. 짜식아.
나는 방구석에 있던 카드북을 꺼내 사라진 카드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사라진 카드는 없었다.
도둑이 들었는데 없어진 카드부터 점검하고 있다니. 이 세상에 착실하게 물들어 나가는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피어올랐다.
안 돼. 이 세상에 더는 적응해서는 안 돼.
[걱정 마라. 사라진 물건은 없으니까.]“그것 참 다행인 일이네.”
[그보다 네놈에게서 「탑」의 냄새가 나는데.]“개코네. 탑 갔다 왔어.”
인간혐오자 고양이가 ‘개’코라는 말에 나를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음.
방금은 내 말 실수다.
[어디까지 갔느냐?]“첫 번째 탑주, 사냥하고 왔어.”
[잘 했다.]“안 놀라네.”
[그 정도는 해 낼 줄 알았다.]네가 탑주를 사냥하는 것을 못 봐서 아쉽군. 그렇게 말한 스핑크스는 바닥에 배를 붙이고 골골댔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보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당분간은 쉴 수 있겠지. 첫 탑주를 죽였으니 적어도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쉬엄쉬엄 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