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8
“···어쩔 수 없지.”
고철 로봇은 가장 오래된 테마 중 하나다. 새 확장팩에서 지원이 줄어들게 된지도 꽤 오래 됐다. 그래도 매번 두세 장의 간접적인 지원 카드들이 추가되던 다른 확장팩과 달리 이번에는 그 어떤 지원도 없었다.
어쩌면 지원이 완전히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아. 남연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른 학생들은 이번 확장팩으로 카드를 더 보강했다. 모두가 달려나가는데 뒤에 낙오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뿐이면 상관없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카데미 생활은 그저 가면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를 정말로 가슴아프게 하는 것은 추가적인 카드 지원이 없으면 「고철 로봇」으로는 「탑」을 전혀 공략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철 로봇」은 어그로 덱이다. 어그로 덱은 탑을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좋은 지원이 있기를 바랬는데.”
씁쓸하게 그녀가 웃는 사이에 전익현이 들어왔다. 출석을 빠르게 부른 전익현이 운을 뗐다.
“신규 확장팩이 나왔으니.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수업을 해 보고 싶은데.”
전익현이 수강생 목록을 쭉 훑어내렸다. 수강생 목록을 훑어내리던 전익현의 눈이 한 학생에게 가 멈췄다.
“김지훈 학생?”
“네? 아! 네!”
김지훈. 현재 190위에 있는 대지 속성의 학생이다. 그가 쓰는 덱은 빅 대지 덱. 특별하게 강하지는 않다. 좋게 말하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평범한 정도.
“오늘은 자네의 덱을 튜닝해 보도록 하지.”
##새 카드, 헌 카드(2)
[덱의 소유권이 이전됩니다.]나는 김지훈의 덱을 받아들었다. 주변에서 부럽다는 시선이 쏘아진다.
“나도 전익현 강사님한테 덱 튜닝받고 싶다.”
“저 사람이 그렇게 튜닝을 잘해?”
“지난 번에 들었는데, 2학년의 신하연 선배님이 지금 쓰고 있는 덱도 전익현강사님이 튜닝해 준 거래.”
“진짜? 그 2학년 1위가 된 선배?”
“그래. 전익현이 지도교수잖아. 소문으론 연습경기도 엄청 해 줬다는데.”
“부럽다.”
신하연의 덱을 튜닝해 준 건 신하연이랑 나밖에 모르는 일인데. 나는 입을 연적 없으니 소문이 퍼졌단 건 신하연이 직접 어딘가에 말한 것이 분명하다.
메모 : 신하연-입이 싸다.
머릿속에 인물 정보를 추가한 나는 김지훈의 덱을 살폈다. 새 카드팩 발매로 인해 덱이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김지훈의 덱과 대동소이 하다.
나는 강의용 카메라를 책상으로 돌리고 김지훈의 덱을 책상 위에 죽 늘어놨다.
지금부터 대지 덱에 「땅울림」이 얼마나 좋은지 설파할 시간이다.
나는 김지훈의 덱에서 피니셔 역할을 맡는 최상급 소환수 카드들을 덜어냈다.
나는 카드 네 장을 뺐다. 그보다 얘. 덱이 서른 한 장이네.
“덱은 왜 서른 한장이냐?”
“징크스 때문에···.”
휙! 나는 쓸모없는 카드 한 장을 집어던졌다.
“아앗!”
나는 카드 다섯 장을 뺐다. 덱은 특별한 일이 없는한 언제나 최소매수다. 아무튼. 뺀 카드들은 다섯 장. 넣을 카드들은 네 장.
+
【땅울림】
【3 mana】
【대지 속성】
【이번 턴 내 모든 소환수에게 공격력 +3을 부여합니다.】
+
+
【돌진암석】
【6 mana】
【돌진 능력의 (2/1) 「돌진암석 토큰」을 세 장 소환합니다. 돌진암석 토큰은 내 턴이 끝날 때 파괴됩니다.】
+
“땅울림과 돌진암석?”
“돌진암석만 새로 나온 카드지?”
내가 넣은 카드들은 땅울림 두 장과 돌진암석 두 장이다.
튜닝을 완벽하게 하자면 세부적인 라인업도 조금 바꿔야 하지만 그러면 튜닝이 아니라 덱 메이킹이 돼 버린다.
그러니 이 정도로 바꾸는 게 임팩트가 가장 클 터.
“자. 덱 완성.”
“···고작 이걸로 될까요?”
“그럼. 되지. 자! 김지훈과 듀얼해 볼 지원자 있나?”
손을 드는 학생이 없다. 구태여 방금 튜닝된 덱과 상대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지.
“야. 안 붙어봐도 돼?”
“안 붙어봐도 약해 보이잖아. 빅 덱에서 레벨 높은 소환수가 네 장이나 빠졌다고. 저 덱이 세겠냐?”
“그런가?”
“저거. 다 약 팔려고 그러는 거야. 카드평가 방송처럼. 딱 보아하니 돌진암석에 올인 박고 물린 거겠지.”
누구냐. 방금 말한 놈. 거의 정답에 근접했잖아. 다른 점이라면 나는 돌진암석에 묻은 게 아니라 땅울림에 넣었다는 것과, 약 파는 게 아니라 진짜 센 콤보를 팔고 있다는 것 정도지만.
“이 덱과 듀얼해서 이긴다면, 추가점수 10점 주마.”
10점이라는 점수가 걸리자마자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지난 번 중간고사에 점수가 개판나버린 학생들이 꽤 있다.
점수를 메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건 할 수 있으리라.
“저···강사님. 저. 듀얼해야 되는 거였나요?”
살기등등한 학생들의 눈빛에 질렸는지 김지훈이 나에게 애처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맞아. 걱정 마. 의료반을 불러놨으니까.”
의료반을 불러 놨다는 말에 김지훈의 얼굴이 헬쑥해진 채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아무래도 듀얼을 하기는 좀···제가 몸살기운이 있어서.”
“한 번 이길때마다 5점. 아니, 질 때에도 5점을 주지.”
“몸살쯤이야 근성으로 극복하는 거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하고많은 대지 속성 학생들 중 굳이 김지훈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김지훈은 설정집에 따르면 성적에 대한 갈망이 지독한 학생이다. 반면 김지훈의 중간고사 점수는 0점.
무슨 수를 써서도 이 점수를 만회하려 들 것이라는 내 계산은 그대로 적중했다.
내 권리를 악용한 폭거라고 보일 수 있지만, 선택한 것은 본인이다. 그리고 킬각 근처에서는 공격을 멈추도록 할 테니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을 테고.
김지훈은 점수를 얻고, 나는 광고기회를 얻는다.
이게 바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첫 번째 지원자?”
“제가 하겠습니다!”
건장한 체구의 남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이름이···뭐였더라. 내가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이에 필드 세팅이 완료됐다.
[듀얼 스타트!]“푸른 비익조 소환!”
비익조 덱이네. 그러면 저 덩치의 이름은 유지태다. 1학년 중에 비익조 덱은 한 명밖에 없다.
역시, 내 기억력은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
내가 내 기억력에 대해서 뿌듯해하고 있는 사이에 듀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초반에 몇 번 맞기는 했지만 김지훈은 마나 펌핑을 빠르게 해 냈다. 마나 펌핑이 되고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고 교환비의 카드들.
게임 중반. 유지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필드의 교환비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유지태가 선택한 것은 직접 공격이었다.
“나는 필드의 몬스터들로 직접 공격!”
빠아악! 김지훈의 체력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공격을 하다니. 끝났네.
“나는 「돌진 암석」과 「땅울림」을 사용!”
돌진암석-땅울림. 소위 돌땅콤보가 튀어나왔다.
바닥에서 암석들이 솟아남과 동시에 땅이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쿠쿵! 돌진 암석과 땅울림만으로 만들어지는 데미지의 총계만 해도 15.
필드를 정리하지 않아서 추가되는 데미지의 합계는 13.
유지태의 체력은 24. 킬각이다.
“게임 중지. 유지태. 패배 인정하나?”
“···졌습니다.”
나는 김지훈의 승리를 선언했다.
김지훈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걸로 5점. 이라는 표정이다.
“다음 지원자?”
다음 지원자의 덱은 리빙 소드 덱이었다. 이름은 모르겠다. 1학년중에 리빙소드를 쓰는 학생이면 신지아, 이주현, 진우영 셋 중 한 명인데. 덱 리스트가 세 명이 비슷한 탓이다. 덱 리스트라도 달랐으면 좀 알아채기 쉬웠을 텐데.
아무튼 리빙 소드 덱을 쓰는 여학생은 처음부터 돌진 암석과 땅울림을 경계하며 플레이를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필드를 강박적으로 정리했다. 돌진 암석과 땅울림을 계속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필드를 계속해서 정리하다 보니 불리한 교환비를 강제당했고,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필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밀려 버렸다.
“···졌어요.”
다음 지원자도, 그 다음 지원자도 똑같았다. 콤보에 패배하거나, 콤보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필드를 밀리거나. 4승째에 이르고 나자 지원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 이상 유효한 듀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남아 있는 학생들도 듀얼을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김지훈의 체력적 한계를 보고 덤벼드는 것에 가깝고.
“거기까지.”
내 말이 마치자 김지훈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3승 정도만 해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선전했다.
“슬슬 이 정도면 이 콤보의 사기성을 다들 알아챘을 거다. 돌진암석과 땅울림이 덱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돌진암석-땅울림 콤보를 의식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 점은 너무나도 크다. 보통의 콤보 덱은 사전 작업이 필요하거나, 데미지가 정해져 있거나, 각각의 파츠들을 쉽사리 쓸 수 없다.
하지만 땅울림과 돌진암석은 사전 작업도 필요없고, 데미지도 필드의 상황에 따라 엄청나게 늘어나며, 각각의 파츠들을 별개로 쓸 수도 있다. 심지어 마나를 추가적으로 얻을 카드들이 많은 대지 속성의 특성상 추가 카드들로 버스트데미지를 더더욱 올릴 수 있다.
이런 무궁무진한 응용성이 「램프 대지」덱을 티어권에 오르게 만들었다.
실제 환경에서는 견제 덱의 연구로 독주가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소커아 세계관의 듀얼 발전은 꽤나 느리다.
이 세계의 듀얼의 발전 속도가 느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듀얼 경험을 실전으로만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듀얼을 하기 힘든 환경에서 듀얼 발전이 빠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 세계는 실카드를 사용한 듀얼이 아니라면 멸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왜 그토록 실물 듀얼에만 집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몇 가지 가설이 있기는 하다. 뭐, 언젠가는 알아봐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램프 대지 덱을 공개한 순간 당분간은 램프대지 덱이 메타를 점령하게 될 거라는 점. 하나뿐이다.
“···아무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나는 수업을 마쳤다. 평소처럼 빠르게 교실을 나서지는 않았다. 학생들의 여론, 특히 대지 속성 학생들의 여론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땅울림. 구해 놓은거 있냐? 와. 하는 거 보니까 그냥 개사기더만.”
“솔직히 쓸 생각도 안 했는데. 오늘 보니까 사야 될 것 같더라.”
“나도. 가격 올라가기 전에 구해 놔야겠다.”
“와. 벌써 가격 두 배나 뛰었는데?”
“누가 벌써 영상 올렸네. 빠르다 빨라.”
영상을 올린 건 물론 나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가격이 벌써 두 배나 올랐댄다. 내 감으로는 대충 사흘이나 나흘쯤 후에 최고가를 찍을 것이다.
그 때 땅울림을 팔기만 하면 30배··· 아니, 50배의 수익은 보장되어 있다.
15만 포인트의 50배라면···750만 포인트. 웃음이 절로 터져나온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학생들이 다 빠지고 혼자 남은 나는 광소를 터트렸다. 솔직히 전재산이 50배불어난다는데 안 웃고 배기는 것이 미친 놈이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는데,
“···뭐 해요?”
남연철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뭐야. 너 아직 안 갔냐?”
“물어볼 게 있어서 남아 있었는데···물어보기 싫어졌어요.”
병원에서 방금 탈출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을 한 남연철은 평소대로의 강사님이네요. 란 말을 내뱉은 채 교실을 떠났다.
평소대로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평소대로라니.
왜인지 기분이 나빠지는 말이었지만, 내가 벌게 될 돈을 생각하니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 번의 등급전의 상황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지난 번에는 알 수 없는 불의의 사고로 배당이 개박살이 났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들어 배송상황을 다시 조회했다.
[전익현님이 주문하신 ‘포일’ 「땅울림」카드의 배송 예정일은 이틀 후입니다.]해외에서 오는 카드들은 특별 통관을 받은 후 빠르게 배송된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