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49
“슬슬···하이재킹을 당할 타이밍인데.”
첫 번째 카드팩이 배송되고 난 이후, 두 번째 카드가 배송되는 타이밍은 하이 재킹 이벤트가 확정이다. 가만히 놔두면 무인비행선이 공중에서 요격당하고, 카드들은 산산히 흩어지는 이벤트.
처음에는 무슨 생각으로 이딴 이벤트를 만들었는지 욕했는데. 몇 번의 플레이 경험 이후에 내가 내린 평가는 정 반대가 됐다.
일견 위험해 보이는 이벤트지만, 사실 꿀 중의 꿀 이벤트란 말이지.
원래 필요한 건··· 「교수」에 준하는 직책이나 교수와의 높은 친밀도다. 내가 교수는 아니기는 하지만, 이 또한 해결해 줄 사람이 있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새 카드, 헌 카드(3)
나는 휴대폰을 들어 권보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통화연결음이 한 번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무슨 일이시죠.]권보람의 목소리는 피로했는지 살짝 갈라져 있었다. 권보람은 이현일의 비서 직을 맡고 있지만 아카데미의 대내외적인 일들을 총괄한다. 거기에 지금은 집 행자의 업무대행까지 하고 있을 터.
카드 팩 출시라는 상황 앞에서 업무과다로 시달리고 있겠지. 그녀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의 대부분의 교수들도 할일이 넘칠 것이다.
처음으로 시간강사라는 것에 감사했다. 내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뭐, 그건 그거고.
“혹시, 이번 카드 운송 비행기. 호송인원 안 필요합니까?”
[···호송인원이 필요하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사람이 부족해 보이길래요. 혹시나 했죠.”
[사람이 부족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외부 인원을 카드 운송 임무에 쓰는 건···.]하아. 씁쓸한 한숨을 터트린 권보람은 생각에 빠졌다.
소울 커맨더스 아카데미는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내내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플레이어가 중요한 에피소드에 쉽게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실제로 인력이 빵빵해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아카데미의 인원들이 처리할 수 있다면 수업만 듣다가 게임이 끝나 버릴 테니까 만들어진 설정이다.
이러한 스토리적 필요성 덕분에 권보람은 이래저래 극한으로 고통받는 포지션에 자리해 있다. 이현일은 어떠나고? 하루하루 살이 올라가고 있다고만 말해 두자.
나도 이현일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싶다. 밴 삼촌이 말했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적당히 큰 힘을 가지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도 적당한 권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겠죠. 침식도도 내려가 있으니 한 명으로도 수송허가는 떨어질 겁니다.]상념에 빠져있는 사이에 권보람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권보람과 이현일은 묘하게 나를 믿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줬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다만 시간 강사라는 직책으로 수송허가를 받을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아니, 우리가 당신을 신뢰하는 것과는 별도로. 원칙이 그러니까요.]“뭐. 그렇겠죠.”
[그러니 제가 드렸던 옷을 입으셔야 할 겁니다.]수트 갖춰 입으라는 이야기다. 사실 처음부터 입을 생각이기는 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데미지를 입지 않고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나도 아픈 건 싫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시간과 장소는 문자로 알려드리겠습니다.]뚝.
전화가 끊겼다.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안 물어봤네.
호송 수당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
남연철은 자신의 카드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고철 로봇」관련 카드들이라면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카드들을 죄다 사 모았다.
“이번에는 카드 살 필요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지난번 카드 발매에서 나왔던 「고철섬」카드가 쓸모는 전혀 없는데 반해서 희귀도는 너무 높은 탓에 구하느라 빈털터리가 됐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지원이 끊긴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에이씨.”
맞다. 정신승리다. 정신승리라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었다. 과거의 카드들에 대한 지원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고, 이내 끊기게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선택의 카드」로 속성을 선택하는 것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고.
뒷골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10년 전에 속성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특이성인 「고철왕」이 아닌 다른 특이성을 받았을 테고. 그러면 다른 덱으로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너도 지원 못 받았잖아.”
새벽녘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그의 덱인 「손님」은 완성도가 매우 높은 덱이다. 추가 지원따윈 없어도 이미 충분히 강한 덱이다.
왜 새벽녘이 고르디우스에 들어와 놓고 굳이 탑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탑에도 가려고만 하면 자리를 내어받을 수 있는 게 그의 덱이다.
가고 싶어도 어그로 덱이라 갈 수 없는 남연철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전익현에게 덱 튜닝을 도와 달라고 해 봤나?”
“관뒀어. 도와 달라고 한들 무슨 돌파구가 생기겠어.”
카드가 나온 지 오래된 테마의 덱은 최적화가 이미 끝났다. 앞으로 나아갈 일이라고는 없는 약해질 일만 남은 덱이 바로 그녀의 덱 테마인 것이다.
그렇기에 남연철은 전익현에게 묻는 것을 그만뒀다. 그가 가망이 없다고 대답한다면 정말로 희망을 놓을 것 같았기에.
“굳이 「탑」에 올라갈 필요 없지 않나? 탑에 가려고 하지만 않으면 네 덱은 충분히 강하니까.”
“이 이야기. 몇 번이나 한 것 같은데.”
“몇 번 했어도 크게 결과가 변하지 않으니까.”
새벽녘의 말이 맞다. 포기할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탑의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부터가 이미 틀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대단한 사람들이 끝없이 도전하고도 불락不落인 곳이 바로 탑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탑의 공략은 그녀같은 범재가 노릴 수 있는 목표가 아닐 것이다.
“···포기할까.”
“그것도 좋지. 굳이 탑을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니까.”
“기뻐 보이는군.”
“매번 새 카드가 나올 때마다 불평을 들었으니까.”
“그렇게까지 불평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
달깍. 새벽녘이 휴대폰의 저장된 음성을 튼다. 2.5배속으로 녹음된 남연철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튀어나왔다.
[진짜더럽게카드를지원을안해줘. 아무리오래된카드라고해도이렇게차별을하면···.]“뭐. 한 번쯤은 했을지도.”
달깍.
[이번에나온카드? 뭐? 고철섬? 이따위카드를준다고해서고철덱이살아남을수있는 게···.]“두 번은···.”
말을 하던 남연철은 입을 멈췄다. 새벽녘의 휴대폰에 ‘강철_징징_137.mp3’ 파일까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녹음하네.”
“첩보 생활을 꽤 하다 보면. 녹음은 생활화가 되는 법이지. 그래서. 포기하는 건가? 탑을 올라가는 건?”
“그래.”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덱이 변하지 않은 지도 거의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자신을 비롯한 고철 덱 유저들도 자신과 거의 똑같은 덱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게 최선의 덱이다. 나아질 것 없는 최선의 덱이 이 정도 파워라면, 탑은 요원하다.
“뭐. 그건 그렇고, 아카데미의 카드 수송은 어떻게 돼 가고 있지?”
“폐쇄회로라 해킹이 늦기는 했지만, 내부 카메라 정도는 볼 수 있어.”
“탈취할 수 있겠나?”
“불가능해.”
“왜지? 지난 번에는 위치만 알면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나?”
남연철은 대답하는 대신 내무 카메라를 틀었다. 카메라가 잡힌 곳은 무인 비행기의 호송자 탑승석이었다. 호송자의 얼굴을 확인한 새벽녘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전익현이군.”
타고 있는 호송자가 전익현이라면. 비행기를 탈취한다고 해도 손해가 될 터다. 아니. 애초에 탈취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보다. 전익현이 왜 호송 임무를 맡고 있는 거지?”
“모르지. 하이재킹을 해 오는 놈들이랑 듀얼을 하고 싶은 건지도.”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새 카드팩이 나오고 호송선이나 호송기가 탈취당하는 일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자신들만 해도 남연철이 해킹으로 내부인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수십명을 동원해 하이재킹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대로 놈에게 희생양이 됐을 테고.
“···운이 좋았어. 하마터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 뻔 했군.”
남연철의 말에 새벽녘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야. 개꿀이네.”
취안부카오에 도착한 나는 목을 두득거리며 풀었다. 호송 임무는 완전기계화가 되어 있어 편하기 그지없었다. 할 일이라고는 누워서 휴대폰을 보는 것뿐.
물론 돌아갈 때 귀찮은 전투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보상을 생각한다면 몇 번이고 할 수 있다.
“!@#! $!”
“%!! @#$!”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가 오간다. 취안부카오는 아시아에 있는 카드 운송허브 지역이다. 뭐, 이곳 말고도 카드 운송 허브가 몇 군데 더 있기는 한데.
생김새는 허브 지역들이 대충 다 비슷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나마 차이점이 있다면 언어가 다르다는 점 정도인데, 번역기가 있으니 만사 오케이다.
나는 비행기에 내장되어 있는 번역기를 켰다.
“카드 다 싣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번역기가 있었군요. 여섯 시간 정도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볼일을 봐도 괜찮겠습니까?”
“맡겨 주십시오.”
물건을 싣는 것을 일일히 볼 필요는 없을 터다. 국제 허브는 신용도가 생명이다. 게다가 지금은 신 카드팩이 나온 시점. 운송물을 누락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장사에 치명타가 올 터.
지금 카드를 싣는 직원들이 깍듯하게 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소에 혼자오면 개차반같이 대우하는데. 쯧쯧.
아무튼 이런 연유로 운송할 목록들이 다 실렸는지는 다 실은 다음에 확인만 하면 될 것이다.
여섯 시간이라. 내가 필요한 카드들을 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저. 혹시 이 주변에 옛날 카드 파는 상점이 어디 있습니까?”
“주변의 상점들에 대해서 알려 드리는 것은 정책 위반입니다.”
카드 내놓으라 이거군. 나는 준비해 놨던 레어 카드를 슬그머니 직원의 호주머니에 찔러넣었다.
“크흠흠. 하지만, 처음 오신 분 같으니 간단하게 말을 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공항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만 가면 조합룡? 合? 이라는 장소가 나옵니다.”
“이름을 적어 주실 수 있습니까?”
가게는 간판으로 찾아야 한다. 번역된 대화로는 찾을 수 없으니 한자로 적힌 이름을 받아둬야 할 터다.
“제가 특정 가게의 선전을 했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남으면···.”
나는 카드 한 장을 더 직원의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제서야 직원은 웃는 얼굴로 한자로 된 가게명을 휘갈겨 건내 줬다.
“도움 감사드립니다.”
“다녀오십시오.”
나는 내가 건낸 것이 레어 전화 카드라는 것을 직원이 알아채기 전에 재빨리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탔다.
내가 지금 갈 곳은 앤틱 카드를 전문으로 파는 매장이다.
···앤틱 카드라고 하니 뭔가 엄청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오래 돼서 아무도안 찾는 카드들이다.
이 카드들로 덱을 짜야 한다. 오래 된 카드들은 쉽게 구할 수 없다. 더 이상 쓰는 사람이 없는 탓에 대부분이 버려지고, 그래서 오히려 구하기가 더 힘들다. 싸구려지만, 입수 난이도는 귀찮게 높은 카드들이라고 할까.
나는 버스를 타고 직원에게서 받은 한자와 똑같은 글자가 적혀 있는 상점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닥에 낡아빠진 카드들이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고, 오래된 카드들이 여기저기 프로텍터도 없이 전시되어 있다.
“싸구려 카드들 팝니다! 상태도 좋고! 나름 쓸만허요!”
“거기 잘생긴 형씨! 카드 좀 사 가시게!”
“손님, 맞을래요? 진짜 맞을래요?”
···전문적인 가게를 기대했지만 싸구려 카드들을 파는 곳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오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던 모양이다.
가게는 커녕 시장바닥 같은 느낌이다. 중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데다가 현지 시세도 모르는 만만한 외국인이 물건을 사려고 했다가는 덤터기를 쓸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나는 만만한 외국인이 아니지만.
##새 카드, 헌 카드(4)
나는 주변을 쓱 훑어봤다. 내 계획을 위해서는 적당히 호구를 잘 잡는, 제멋대로인 점주 한 명이 필요하다.
“어이. 거기 형씨. 이리 와 봐!”
바로 저런 인간 말이지.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은 호구 그 자체인 연기력이다.
“저. 저요?”
“그래. 너 말고 누가 있냐. 이리 와 봐.”
까딱까딱 손가락을 나에게 놀려댄다. 그냥 연기고 뭐고 뒤집어엎어 버릴까.
아냐. 참아, 내 안의 흑염룡.
“뭐 사러 왔냐?”
“그게. 「클래식」 룰에 맞는 덱을 하나 맞추고 싶어서요.”
“오. 클래식 룰이라니. 우리 가게의 전문 분야지. 덱 리스트는 있냐?”
나는 쭈뼛쭈뼛 휴대폰을 건냈다.
“이렇게 만들면 좋다고 지인이 그랬어요.”
“아이고. 고철 로봇 덱이라. 이거. 비싼 카드들밖에 없네.”
개소리 하고 있네. 내가 준 덱 리스트에서 그나마 비싼 카드라고 해 봤자 「고철수집 고철로봇」말고는 없다.
참자. 나는 지금 연기자다. 나는 철부지 억만장자를 연기하고 있다. 나는 순수하고 카드 시세를 모르는 얼치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우리 가게가 이런 고오급 카드들을 꽤나 비축해 놓는 곳이라는 거야.”
“그런가요?”
“그럼. 다른 데 갔으면 덱은 다 맞추지도 못하고 옴팡 바가지까지 썼을 걸.”
점장은 가판대 여기저기서 카드들을 꺼내 모았다.
“자! 자네가 바라는 덱 리스트야!”
덱을 만지는 순간 덱리스트가 떠올랐지만 나는 카드 한장한장을 확인했다.
“허허. 거 참 꼼꼼한 형씨군. 그래. 그렇게 확인해야 사기를 안 당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