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0
“덱 리스트는 맞는 것 같네요. 근데···카드 상태가 별로 안 좋은데···.”
“형씨. 클래식 룰 처음 해 보지?”
“아. 네.”
“클래식 룰은 말이야. 세 번째 확장팩까지의 카드까지밖에 못 쓰는 룰이라고.
죄다 오래된 카드들밖에 없으니, 형씨가 봐 왔던 카드들이랑은 카드 상태를 다르게 평가해야 돼.”
이건 맞는 말이다.
“그렇군요!”
“지금 형씨한테 준 카드들이면 굉장히 양호한 급이야. A급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이것도 맞는 말이다. 쳐맞는 말. 폐지나 다름없는 상태라서 조심조심 잡아야 되는 카드들을 줘 놓고. A급? A급??
머릿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른다. 새삼 느끼는 건데, 배우들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표정연기를 하는 걸까. 나는 제트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 걸로만 이미 한계지점인데.
그래도 거의 다 왔다.
“그럼···가격은···.”
“아. 형씨가 처음 온 것 같은데. 내 동생 같아서 말이야. 특별가로 반 값으로 해···.”
“이 정도면. 되나요?”
나는 「홍련」을 꺼내들었다. 불 속성의 필수 카드이며 주가가 괜찮은 카드중 하나다. 얼추 계산해도 내가 살 덱의 세 배는 훌쩍 넘는 가격의 카드다.
꿀꺽. 주인장의 목 울대가 욕망스럽게 꿈틀거렸다.
“아! 홍련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값을 치를 수 있지!”
점장의 손이 게 눈 감추듯 내 손에 있던 홍련을 들고갔다. 좋아. 첫 번째 목표. 클리어.
“좋은 거래였군.”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덱을 챙겼다. 그리고 품에 있는 거래용 카드들을 다시 확인하는 척을 했다.
“아···!”
“왜. 무슨 일이지?”
“그게. 제가 홍련을 한 장만 드렸나요?”
“···한 장이라니?”
“그게. 사실 홍련 두 장을 팔아서 덱을 맞추려고 했거든요.”
“···두 장이라고?”
나는 홍련 한 장을 더 꺼내 보였다. 점장의 눈이 좌우로 떨린다. 눈 앞에 있는 호구에게서 두 배나 뜯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싸게 사서 다행이네요!”
“잠깐! 기다려 봐!”
“안녕히 계세요!”
나는 홍련을 흔들어 보인 뒤에 품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적당한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최대한 후미지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만한 골목. 그러니까, 호구를 등쳐 먹기 딱 좋은 후미진 골목 말이다. 골목에서는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나를 쫓아오는 인간이 충분히 나를 추적할 수 있도록.
세 번째로 후미진 골목을 돌아 들어갈 쯔음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호구.”
뒤를 돌아보자, 나한테 방금 사기아닌 사기를 친 점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패거리는 세 명. 실망스럽다. 이 두 배는 더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긴. 카드 내 놓으라는 일이지.”
“아. 안티 룰로 듀얼을 하고 싶다는 말이신가요?”
[안티 룰(Ante rule)을 신청하셨습니다.]“안티 룰? 아, 뭐. 대충 그런 거지. 네놈의 카드가 다 털릴 때까지 게임 할 거라는 것만 빼면.”
킬킬대는 소리가 퍼져나왔다. 하지만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다. 지금 내 귓가에는 바라마지않던 말이 울려퍼지고 있었으니까.
[상대가 안티 룰(Ante rule)을 수락하셨습니다.]역시. 통하는구나. 아카데미 내부에서 상대를 도발해서 안티 룰을 자주 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상대의 카드를 빼앗는 안티 룰 자체가 너무 큰 손해를 강요하기 때문에 학생이고 교사고 할 것 없이 거북해 하기 때문이다.
여한설같은 돈이 썩어날 정도의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안티룰을 받아들일 인간은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아닌 바깥은 그렇지 않다. 특히나 이런 후미진 골목에서 남의 등을 쳐먹는 듀얼리스트들은 안티 룰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센 놈들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지만, 카드 값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는 바로 잡으려 든다는 거지.
“경찰이나 심판은 없냐?”
“경찰이라도 부르려고? 미안하지만 이 동네가 치안이 안 좋아서 말이야.”
“그거 다행이네. 카드를 빼앗아도 신고도 못 할 테니까.”
“우리 걱정을 해 줘서 고맙군.”
킬킬대며 웃는 쓰레기들.
아카데미 주변에서 안티 룰을 일반인을 상대로 했다는 게 걸리면 징계나 감봉, 혹은 그에 준하는 패널티를 먹을 테지만, 여기는 타향만리 중국이다. 거리낄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카드의 가격 같은 건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빼앗으면 되니까.
“듀얼이다.”
듀얼 필드가 솟아올랐고, 나는 웃었다.
***
“다녀왔습니다!”
“카드 운송 준비 완료됐습니다. 이제 출발하면 됩니다.”
처음 만났을때의 친절함과는 달리 눈에 살기가 감도는 비행장 직원. 뭔가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비행선에 실린 카드팩들과 내 소중한 배송품들을 재차 확인한 다음 의자에 몸을 기댔다.
[비행이 곧 시작됩니다.]나는 품에서 「홍련」두 장을 비롯해 새로 얻은 「절대자 톨러런스」, 「사멸검제」, 「기동공장」을 뿌듯하게 확인했다. 이 카드들은 물론 선한 외국인을 털어먹으려고 했던 사악한 중국인들의 카드들이다.
아카데미 수업으로는 한달 내도록 굴러야 얻을 수 있는 카드들이 순식간에 세장이나 늘어났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 이벤트는 꿀이다. 이 짧은 퀘스트 시간동안 내가 얻은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고철 로봇 덱에 필요한 카드 28장.
2. 아카데미에서 나오는 위험수당.
3. 레어 카드 세 장.
4. 자고 있을때 고양이가 밥 달라며 머리를 후려패지 않는 편안한 잠자리.
이런 가성비라니. 그냥 아카데미 때려치우고 세계 순방 하면서 사이드 퀘스트들이나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륙을 시작합니다.]알림음이 들렸다. 고도가 올라가고, 비행기가 제 궤도에 올라갔다. 벨트를 풀러도 된다는 알림음을 들은 나는 바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비행기가 제 궤도에 올랐다는 것은 슬슬 이벤트가 발생할 때가 됐다는 뜻이니까.
나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쳐다봤다.
고고고고!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게이트의 크기는 자그마했지만 갯수가 많았다. 갯수를 굳이 셀 필요는 없다. 열다섯 개다.
캬오오오!
자그마한 게이트에서 박쥐의 날개를 달고 있는 용 짭퉁 모양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게이트에서 나온 것은 「원시 비룡」들이다.
[돌발 미션 : 무인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에「원시 비룡」을 모두 처치(0/15)(보상 : 없음)] [히든 미션 : ???] [「클래식 룰」로 돌발 미션을 해결시 히든 미션이 해금됩니다.]오랜만에 나온 미션창이다. 돌발 미션 하나와 히든 미션 하나. 충분히 알고 있는 미션이기에 굳이 확인을 두 번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션창을 보는둥 마는둥 한 채 해치를 열고 비행기 바깥으로 몸을···
휘이이잉!
와 씨. 바람 겁나 세네. 까딱하다간 날아갈 뻔 했다. 이거, 그냥 안 하면 안되···
꽝! 꽈아앙!
끼에에엑!
···안 했다간 비행기가 백퍼센트 추락하겠지.
나는 창문 아래로 펼쳐져 있는 바다를 내려다봤다.
해발 고도와 내가 맥주병인 것을 감안하면 내가 저 끝모를 바다에 쳐박혔을때 살아남을 가능성은 당연히 제로다.
꽝! 꽝!
젠장. 나간다. 나가. 자식들아. 나는 해치를 열고 비행기 위에 섰다. 휘이이 잉! 칼바람이 몸을 당장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다.
나는 다시 비행기 안으로 몸을 피했다.
쫄아서는 아니다. 낙하산을 매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바이크를 탈 때에도 한 번 강조했지만,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쫄아서 낙하산을 맨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낙하산이 불량품일 가능성을 대비해 낙하산 두 개를 앞뒤로 맨 채로 해치 바깥으로 나왔다.
“듀얼!”
[다수의 몬스터가 감지됩니다.] [가장 가까운 몬스터를 듀얼 필드에 격리합니다.]파지지직! 비행기 천장에서 전기가 피어오르며 원시비룡 한 마리를 붙잡았다.
그 사이에 나머지 원시비룡들은 비행기를 두들기고 있다. 꽝! 꽝! 몸통박치기가 한 번 성공할 때마다 비행기가 휘청거린다.
솔직히 엄청 쫄린다. 그냥 원래 쓰던 돌진 사냥꾼 덱을 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아니. 안 돼.’
돌진 사냥꾼 덱을 쓰면 안정적인 클리어는 가능하다. 하지만 사냥꾼 덱을 써서 원시 비룡을 잡으면 히든 미션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히든 미션에서 나올 ‘소울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소울석은 탑을 공략하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 얻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소울석을 확보해놔야 한다.
즉. 이번 기회를 놓치면 「탑」의 클리어에서 한 발짝 멀어지게 되는 셈이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시도해야 한다.
나는 내 「특이성」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특이성 : 카드 아카데미 시간강사] [속성 변경 가능까지 남은 시간 : 0시간] [속성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좋아. 완벽하다. 나는 내가 짜 온 「고철 로봇」덱을 세팅했다.
[경고 : 현재 당신의 속성이 아닌 카드들이 (2)장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속성이 아닌 카드들은 효과가 아예 발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경고문이 떠올랐다.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
“물론.”
***
“뭐 하는 거지?”
남연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게이트가 전익현이 타고 있는 비행기 주변에 생겼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에는 긴장했다. 하지만 그 긴장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원시 비룡」. 전익현이 지난 번에 쓰던 「돌진 사냥꾼」이라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런데. 전익현은 돌진 사냥꾼을 쓰지 않았다. 그가 꺼내든 덱은 손때가 타다 못해 카드가 거의 삭기 직전의 덱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저렇게 오래된 카드들은···?”
“클래식 룰로 사냥할 모양이군.”
“말도 안 돼.”
클래식 룰은 오래된 연식의 카드들만을 쓸 수 있는 룰이다. 그리고 클래식 시대의 카드들은 극소수의 카드들을 제외하고는 죄다 나사가 하나씩은 빠져 있는 카드들이다.
그 나사가 빠져 있는 카드들 가운데는 남연철의 「고철 로봇」덱의 카드들도 다수 포함된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클래식 룰로 「원시 비룡」들을 사냥했을 때 「원시 고대룡」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지만···.”
굳이 원시 고대룡을 불러내는 미친 놈은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클래식 룰로는 원시 고대룡을 잡아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시 비룡」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빠른 덱의 속도가 필수적이다. 반면 「원시 고대룡」을 잡기 위해서는 빠른 템포의 덱이 아닌, 빅 덱의 요소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만족하는 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클래식 룰에서는 다르다.
“둘 모두를 만족하는 클래식 룰의 덱은···.”
“없지.”
클래식 룰은 매우 오래된 모드다. 덱에 대한 연구는 진행될 대로 됐다. 고전덱 연구학자인 캘빈 톰슨은 ‘이제 클래식 룰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카드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 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덱 발전은 존재하지 않아.”
불가능을 단언하는 입.
그런데도 남연철의 눈은 화면에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새 카드, 헌 카드(5)
[듀얼 스타트] [원시 비룡의 hp : 20]원시 비룡들의 체력은 낮다. 언제나 나올 때마다 떼지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처리하기 쉽지만, 데미지가 누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끼이이이!
원시 비룡이 울부짖었다. 가청 영역과 초고주파 사이에 있는 불쾌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
【특이성 : 원시의 울부짖음】
【매 턴 상대 필드의 몬스터의 체력을 1씩 깎습니다.】
【다섯 턴 뒤, 포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