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4
첫 번째 탑주를 처치해서 침식 속도를 늦춰 놓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마음 놓을 수는 없다.
굳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스피드런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손 놓고 놀다가 상황이 악화된 상태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방학동안 카드를 구하고 「소울 스톤」을 구하고, 탑을 공략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 할 수 있다면 20층까지는 공략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성을 올려야 된다는 거지.”
내가 가지고 있는 「대칠성」은 선택의 폭은 확실히 넓혀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덱 자체의 파워를 올려 주지는 않는다.
나는 「선택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 카드에 있는 인원은 세 명. 신하연, 여한설, 남연철. 내 특이성인 「시간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캐릭터들이다.
스핑크스는 선택의 카드에 없다. 나는 구석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를 바라봤다. 저래 봬도 「수호자」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서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는 않을까 했는데···
[흐아암. 졸려.]뭐, 없을 만도 하다. 방구석에서 하품만 쩍쩍 해대면서 사료값만 축내는 양아치가 스토리에서 중요하다면 그게 오히려 밸런스 붕괴지.
스핑크스의 특이성인 「시간의 모래」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통밥을 굴려도 쟤가 스토리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눈빛은 무슨 뜻인고?]“아니. 그냥. 많이 먹고 쑥쑥 크라고.”
[사료나 바꿔 주고 그런 말을 하거라.]“어디 사냥 같은 거 갈 생각은 없냐? 탑이라거나.”
[귀찮아.]···하긴. 카드 자판기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내 잘못이다. 아무튼, 이현일이나 권보람 같은 중역重易보다도 중요한 것이 이 세 명이다. 그러니 최소한이 세 명은 전력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
굳이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관계성에 따라 특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가 있다.
문제는 이 「관계성」인지 뭔지 하는 것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데 있다.
“에효.”
관계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그 작명으로 미뤄보건데 각자의 듀얼리 스트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때마다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셋의 성장에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으니 아마 관계성도 ‘미약’인 상태그대로일 터.
젠장.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아 죽겠는데 다른 애들이 크는 걸 어떻게 신경 쓰란 말이야. 나는 불평을 터트리며 신경질적으로 선택의 카드를 뒤집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특이성은 (3)종입니다.」
「1. 여한설(관계성 : 중간)」
「파헤쳐진 무덤 : 두 턴마다 한 번씩, 1/1 스켈레톤을 소환합니다.」
「2. 신하연(관계성 : 중간)」
「약한 마나 토템 : 발견 카드를 두 장 사용할 때마다 마나 1을 얻습니다.」
「3. 남연철(관계성 : 약간 높음)」
「기동 회피(3 mana) : 기계 종족 소환수 하나를 선택합니다. 선택된 기계는 다음 턴까지 파괴되지 않습니다.」
“······?”
뭐지. 왜 관계성이 이렇게 많이 올라 있는 거지. 심지어 이런저런 추가 능력 치를 부여할 수 있는 관계성 수치도 2천 포인트 가량 쌓여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이 세 명의 성장에 내가 뭔가 기여한 게 있는지를 찬찬히 되돌아봤다.
“···그런 거 없는데.”
수업 똑바로 하고, 덱 튜닝 좀 해 준 게 전부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의 냉철하고 완벽하기 그지없는 직관과 통찰력을 사용해 분석을 시작했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운이 좋군.”
***
“아가씨. 슬슬 주무셔야 할 시간입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여한설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빛 속성 덱은 튜닝을 더 할 여지가 없는 덱이다. 최소한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신 카드 발매로 메타가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굿 스터프 컨트롤덱의 특성상덱의 축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발매 당일에 좋아 보이는 카드들을 바꿔 넣어버렸고.
게다가 이 상태에서 제멋대로 튜닝을 했다는 게 걸리기라도 하면 조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불호령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한 학기 동안 튜닝따위나 하는 수업을 듣고 앉아있었느냐며 몇 시간짜리 장광설이 떨어질 테고. 이딴 도움도 안 되는 수업이 왜 있냐는 말이 나오면 전익현이 잘릴 수도 있다.
그러니 튜닝을 하는 것은 힘들다. 불의의 사고로 카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튜닝은 하지 않을 거다.
“···아오. 진짜.”
여한설은 짜증을 내며 발을 몇 번 굴렀다.
“···튜닝 관련 점수들은 다소 포기하자.”
어쩔 수 없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까. 튜닝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덱의 완성도는 꽤나 높다. 만점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점수는 받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남는 두 항목은 ‘상대 선택’과 ‘운영’ 부분이다.
1/3의 점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으니 여기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따야···아니, 최소한 한 부분에서는 만점을 받아야만 한다.
“상대 선택이라···.”
전익현은 강한 상대와 듀얼을 할수록 추가점수를 준다고 했다. 물론 무의미하게 졌을 때는 추가점수 대신 감점을 부여한다고 했지만.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상대는 여진성이었다.
“할아버지한테 듀얼 신청하면. 안 받아 주겠지?”
“어쩌면 받아 주실지도 모릅니다.”
“아냐. 받아줄 리가 없어.”
여진성이 그녀를 끔찍이 아끼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만큼 사랑하지는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그냥 트로피일 뿐이니까.”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점수를 받고, 한국 최고의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1등을 놓치지 않는. 그런 손녀이기에 소중히 여기는 것뿐이다.
다소의 어리광이나 짜증을 받아주는 것도 그녀가 주는 성과가 있으니 받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성과가 없거나 자신을 귀찮게 만들면 버림받는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러긴 싫어.”
여진성에게 듀얼을 신청하는 것은 무리다. 여한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현일이였다. 안 된다. 그의 실력은 진짜지만, 대외비로 알려진 정보가 맞다면 그는 듀얼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다.
그러면 탑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어떨까? 탑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도 꽤 괜찮은 듀얼 로그를 만들어낼 수 있을 터.
문제는 여한설의 옆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이지후다.
“탑에 가도 돼?”
이지후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할 태세를 취했다. 털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회장님께 통화’버튼을 발포할 태세다.
“···너무한 거 아니야?”
“생존을 위한 전략입니다.”
여한설은 뷰루퉁하게 다른 방법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기기만 하면 만점을 보장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절대 싫어.”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면 또다시 지게 된다. 여한설은 남연철의 결의에 찬 눈을 기억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자신의 패배는 필연적일 터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말고사가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다. 다른 과목 준비도 해야 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고민할 시간마저도 사치다.
“나갈 준비해.”
***
“···그래서. 나랑 붙자고 왔다고?”
“맞아. 네가 말했잖아. ‘누구’랑 붙어도 상관없다고. 당신이 그 ‘누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여한설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돌겠네 진짜. 안 그래도 집에 벌써 불청객이 와 있는 터다. 탑 공략하러 가야 되는데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구는 거야. 스트레스가 방학 첫날부터 쌓인다.
“바깥에서 이야기하긴 싫으니 잠깐 들어가도록 할까.”
내 집에 발을 디디려던 여한설이 멈칫한다.
“···창고치고는 꽤 단정하군.”
“창고가 아니라 집이야.”
여한설의 눈에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진짜 메다꽂아 버릴까.
악의가 없다는 점이 더 나쁘다.
그녀의 눈이 집 안을 쓱 훑는다. 켜져 있는 TV, 발톱 자국이 잔뜩 난 소파, 발톱 자국을 잔뜩 낸 범인까지 도달했던 여한설의 눈이 먼저 내 집에 들어와 있던 신하연에게 가서 멈춘다.
“내가 방해한 건가? ···미안하군.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아니. 그거 아니야.
방해한 건 맞긴 한데.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신하연은 제멋대로 우리 집에 찾아온 것뿐이다.
집에 대뜸 찾아와서는 ‘기말고사 도와주세요! 제 지도강사님이잖아요!’ 같은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는 방에 자리 잡은 것뿐이다. 자리 잡고 앉아서는 1분에 한 번씩 휴대폰으로 소울 커맨더스 모바일 대전을 걸어온다. 공부는 거의 하지도 않는다.
퇴학이 전혀 두렵지 않은 임전무퇴의 기상이다.
제발 다 꺼져. 탑 11층 공략하러 가야 한다고. 가만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듀얼을 하자고 들러붙을 두 명이다. 어떻게 떼어낼 방법 없나.
지끈거리며 머리를 짚으려는 순간,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떠올랐다.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묘수. 이이제이(以夷 J )의 기책.
“신하연.”
“네?”
“나랑 붙고 싶냐?”
“네!”
“여한설.”
“왜.”
“나랑 붙고 싶지?”
“굳이 매달리진 않아. 부정하지도 않겠지만.”
“좋아. 나는 바쁜 몸이야.”
“방학 아니에요?”
“교사는 원래 방학 때 더 바빠.”
교사가 방학 때 바쁘다는 건 물론 거짓말이다. 선생님들, 교수님들. 이 개풀씨알도 안 먹히는 거짓말을 내뱉을 때 이런 기분이셨군요.
“아무튼. 나는 방학 일정으로 일주일이 가득 차 있어. 시간을 아무리 짜 봐도 하루에 한 판 정도만 너희와 듀얼을 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둘이서 싸워서 결판을 내란 거군.”
“맞아.”
“방식은?”
“시험도 준비해야 할 테니 격렬한 방식은 안 될 테지. 정식 듀얼을 하면 체력 낭비도 심하고 제대로 된 듀얼을 뒤이어서 할 수 없고. 그러니까···.”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로 승자를 가려라. 그 말씀이시죠?”
역시. 척 하면 척이다.
“나는 급한 용무를 처리하고 밤에 돌아올 테니 알아서 승자를 정해 놓도록.”
말을 마친 나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 방식이라면 하루에 한 번 듀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적당한 이유를 들어서 진짜 듀얼이 아닌 모바일로 때울 수도 있을 테고.
나는 탑으로 향하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목표는 기말고사 종료일까지 20층에 도달하는 거다.
##기말고사(3)
신하연은 여한설이 어딘가에 전화를 한 이후 날아온 두 개의 박스를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았다.
박스 하나에 들어 있는 것은 진짜 듀얼 디스크와 거의 흡사한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디스크였다.
어둠의 경로에서도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한정적으로 판다는 물건이다.
“···모바일로 해도 되지 않아? 이거 비쌀 텐데.”
“최소한 진짜 듀얼은 안 해도 진짜 카드는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가 가짜 카드들을 쓰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사실 신하연도 본인의 카드를 쓰지 않는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에 어느 정도의 거부감이 남아있었다.
전익현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모바일로도 덱을 썼지만, 아무리 그대로 진짜 카드를 쓰는 것이 낫다.
신하연은 여한설이 건낸 듀얼 디스크를 받아들이고 카드를 세팅했다.
[덱 동기화 중.] [동기화 완료.]여한설은 신하연을 노려봤다. 가벼운 신경전.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신하연이 움찔거린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뱀 앞의 쥐 같은 얼굴이다. 한 번 노려봤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2학년 1위의 신하연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맥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하연은 2학년 1위. 하지만 그건 등급전 때의 이야기다.’
그녀의 등급전 승리의 대부분은 얼음창-빙결핵 콤보로 만들어낸 것. 이 콤보는 새 확장팩이 나오면서 「발견」카드들이 늘어난 바람에 사용이 불가능한 콤보가 됐다.
즉, 새 확장팩이 나온 지금 그녀의 원 턴 킬 콤보는 무효화된 상태.
여한설은 머릿속으로 자신의 승률이 어느 정도나 될 지 떠올렸다. 대략 70프로. 혹은 그 이상.
‘···정식 듀얼이 아닌 듀얼은 운의 비중이 크다.’
혼魂의 맞부딪힘이 아니기에 그렇다. 여한설도 PC버전의 소울 커맨더스를 하며 종종 실력차가 엄청나게 나는 상대에게 종종 지고는 했다.
단판으로 한다면 자신이 질 수도 있다.
“방식은 다전제로 하지. 판수 제한 없이, 2시간동안 더 많이 이긴 쪽이 전익현과 붙는 걸로.”
여한설은 이 듀얼 말고도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이 하루에 이 시험에 가용가능한 시간은 두 시간 정도가 한계다.
“괜찮나?”
“어떤 방식이라도 괜찮아.”
자신에게 불리한 방식인데도 신하연은 전혀 상관없는 표정이다. 어벙하고 틈이 많아 보이는 모습. 여유로운 얼굴은 승부사의 그것이 아니다.
“그럼 시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