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8
확실히 신하연의 실력이 늘기는 늘었나 보다. 여한설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을 텐데.
다시 생각해 보면 2학년 톱은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게다가 신하연은 심심하면 나랑 붙으며 실력이 일취월장한 상태다. 승률이 처참하긴 하지만, 아무튼 실력은 엄청 늘었을 거다.
그러니 여한설도 신하연과 듀얼을 하다 보면 많이 배우게 될 거다.
그러면···나한테도 포인트가 쌓일 테고.
이 듀얼은 둘의 실력을 모두 올려준다는 점에서 나한테도 이득이다. 일종의 자동사냥이라고 할 수 있다.
[당분간 좋은 지도 부탁한다.]알겠습니다! 라고 외치는 곰돌이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몇 번 더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지 자는 모양이다. 피곤할 만도 하다. 잘하는 상대랑 오랫동안 듀얼을 했으니. 나는 더 문자를 보내는 것을 관뒀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 세상의 불쾌함을 모두 짊어진 것 같은 표정의 고양이가 슬픈 표정으로 소파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왜 표정이 그러냐?”
[건전지.]건전지? 건전지가 왜? 스핑크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리모컨의 건전지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바닥에 리모컨이 떨어지며 건전지가 빠져나온 모양이다. 건전지를 끼워넣은 나는 스핑크스에게 리모컨을 건냈다.
리모컨을 건내자마자 스핑크스는 TV를 켜 도전무한의 구매 탭으로 넘어갔다.
[이거 사 줘.]오늘 좋아하는 TV프로의 1000회 특집이라고 하더니 못 본 모양이다. 그래서 뿔이 이렇게 난 거였군.
나는 비밀번호를 입력해 TV프로를 구매해준 뒤에-물론 스핑크스의 월급에서 차감이다- 맥주를 까들고 스핑크스의 옆에 앉았다.
“오늘 신하연이랑 여한설 둘이 듀얼 하는 거 어땠냐? 볼만했어?”
[신하연.]“신하연? 꽤 잘하지? 말 들어보니까 오늘 다 이겼다는데?”
[죽일거야. 언젠가.]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증오가 많아. 보아하니 듀얼하는 신하연한테 꼬리라도 밟힌 모양이다.
쪼잔하기는.
***
11층에 도착한 나는 내가 아는 11층과 층계의 형태가 같은지 확인했다. 달라진 점은 딱히 없었다. 커다란 금속으로 만들어진 세계.
10층까지의 층계들이 한 방에 몬스터 하나가 있는 방식이었다면 11층부터 19층까지의 층계는 한 층이 꽤나 큰 오픈필드다.
“어디로 사냥을 나가실 거죠? 11층에서 사냥하기에는 시계로봇들이 있는 곳이 좋다고 하던데.”
“기갑충들 사냥하러 갈 거야.”
기갑충이라는 말에 남연철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진다.
“괜찮을까요?”
[그러게. 기갑충이라 하면 탑을 올라가는 인간들이 가장 꺼리는 장소인데.]“혹시라도 「수은 벌」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 수은벌을 건드리러 가는 건데. 물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절대 안 따라 오겠지.
“사람이 없으니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사냥의 기회가 많다는 뜻이지. 기갑충들을 자극하지만 않으면 꽤나 안전한 사냥터이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아요?”
내 순수한 의도를 믿지 못하다니. 나는 썬캡을 내리고 내 초롱초롱한 눈을 보이며 신뢰를 유도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역효과가 제대로 난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런 표정을 지어보일 것까진 없잖아.
뭐. 상관없다. 어차피 파티장은 나니까.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
기갑충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의 인적이 뜸해졌다. 원래부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탑이지만 그 중에서도 기갑충들이 있는 곳은 더더욱 사람이 적은 장소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기갑충들은 모조리 「자폭」을 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적을 안정적으로 잡아야 하는 사냥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높은 데미지를 주는 자폭은 상대하기 아무래도 껄끄럽다.
“물론 자폭을 달고 있는 만큼 제각각의 개체들은 체력이 약하지.”
“···어그로덱이 상대하기 좋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어그로덱인 네 생각을 해 준 사냥터 선정이라고 할 수 있지. 고맙지?”
“아아무렴 그러시겠죠.”
남연철은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다. 어제도 그렇고. 묘하게 내 말을 안 믿는다. 내가 남연철에게 뭔가 신뢰를 잃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원래부터 조금 꼬인 애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면 뭔가 가정사나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불량학생을 계도하는 열혈교사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인간이다. 인간관계가 말라버린 21세기에 걸맞는 인재상인 나는 더 이상 파고드는 대신 입을 다문 채 걷는 것을 선택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키긱! 키리릭!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불쾌하게 나는 것을 보니 사냥터에 거의 도착한 모양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둥지(Hive)가 멀리서 보인다. 둥지로 깊숙히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RPG의 유구한 전통. 굳이 이유가 없다면 몬스터가 많은 곳으로 들어가지 마라.
사기템이 있을 때만 빼고.
나는 「보루방패」를 툭툭 두들겼다. 오늘 나는, 둥지의 끝을 볼 것이다.
키리리리릭!
우리의 존재를 감지한 척후병 역할을 하는 「금속 탐지개미」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원래대로면 나 혼자 두 마리를 잡고 싶지만···. 그러면 욕 먹겠지.
“듀얼!”
바닥에서 필드 두 개가 솟아올랐다. 나는 덱에서 카드를 뽑아들었다.
[후공입니다.]+
【개미산】
【플레이어에게 데미지를 3 줍니다. 매 턴 강해집니다.】
+
키리리릭! 탐지개미가 몸을 구부려 은색의 개미산을 나에게 뿜어냈다.
촤아악!
본래라면 데미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나에게는 해당 없는 일이다.
[소울 스톤의 효과로 방어력을 10 얻습니다.]미리 얻은 소울 스톤이 있었으니까. 촤악! 개미산이 만들어진 방패의 벽의 일부에 흩어져내렸다.
「보루방패」의 효과는 방어력 다음에 판정된다. 이런 점도 소소하게 좋다는 말이지.
“소울 스톤. 좋은 효과네요.”
“운 좋게 구했어.”
“그렇군요.”
자신이 굴리는 덱만큼이나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대답을 내뱉는 남연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드를 확인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다른 탐지개미가 몰릴 가능성이 크다.
사냥은 많이 하고 싶지만 탐지개미를 많이 잡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러니 해야 하는 것은 속전속결.
“나는 「가제트 I」을 소환!”
+
【가제트 I】
【1 mana】
【소환 : 가제트 II를 덱에서 가져옵니다.】
【2/1】
+
“가제트네요.”
가제트 시리즈는 소환 시에 덱에서 가제트를 가져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가제트 I은 II를, II는 III을, III은 I을 가져오는 형태다. 지속적으로 핸드를 보충해줄 수 있는 데다가 덱 압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속 덱 유저라면 꽤나 자주 사용하는 카드 시리즈다.
6장이 한 세트인 데다가 희귀도도 높아 가격이 꽤나 나가는 카드기는 했지만, 이번에 포인트를 엄청 딴 김에 질러버렸다.
가제트를 계속 돌릴 수 있는「가제트 양산공장」이나 「합체야수 가제트」를 사지는 않았다. 굳이 테마 카드를 사지 않아도 가제트는 충분히 좋은 카드들이니까.
파바박! 필드에 가제트가 소환되자마자 탐지개미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
【개미 턱】
【소환수 하나에게 2데미지를 줍니다. 매 턴 강해집니다.】
+
기계 종족의 몬스터들이 이래서 좋다. 보통의 몬스터들은 여러 행동 선택지가 있다면 하나를 랜덤으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경향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지를 고를 때도 있다는 말이다.
반면 기계 종족은 기계라는 테마를 반영해서 똑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반응한다. 게다가 조건도 굉장히 알아채기 쉽다.
「탐지개미」의 경우에는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개미 턱’과 ‘개미산’ 두 가지뿐.
필드에 소환수가 없으면 개미산으로 본체를 직접 공격하고, 필드에 소환수가 있으면 개미 턱으로 소환수를 공격한다.
보통이라면 핸드에 소환수가 떨어지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몬스터지만 「가제트」가 있는 입장에서는 핸드에 소환수가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나는 필드에 가제트를 채워 나가며 탐지개미를 부숴나갔다.
퍼억! 퍼어억! 가제트의 물량 공세에 탐지개미의 연약한 몸체가 빠르게 부숴져내렸다.
얼마나 공격이 이어졌을까. 탐지개미의 외골격이 반쯤 박살나고 안에 있는 기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쯤.
키긱! 키기기긱!
탐지개미의 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탐지개미의 남은 Hp : 10】
기이이이잉!
[탐지개미가 ‘자폭’을 선택합니다.] [남은 HP만큼 적 전체에게 데미지를 줍니다.]나는 보루방패를 들어올렸다.
콰아앙! 커다란 폭연이 필드 전체를 들썩였다. 필드를 차지하고 있던 가제트들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물론 나는 멀쩡했다.
[「최후의 보루방패」의 효과로 데미지가 무효화됩니다.]역시. 사기무기는 달라도 다르다.
[···이래서 보루방패를 선택한 거군. 확실히 기갑충들은 자폭을 신경쓰지 않을 수만 있다면 다른 구역의 몬스터들에 비해서 상대하기 매우 간단하니까.]“맞는 설명인데. 누구한테 설명하는 건가요?”
[나 스스로에게 하는 걸세.]예. 많이 하세요. 나는 풀무불꽃의 말을 무시한 채 보상을 확인했다. 11층부터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보상이 튀어나온다.
[듀얼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매우 작은 강화석을 얻으셨습니다.] [카드팩 「은의 영역」을 얻으셨습니다.]듀얼에서 승리하자 보상 목록이 떠올랐다. 11층부터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그에 걸맞는 보상이 나온다.
매우 작은 강화석은 검림에서 얻은 무기들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이다. 일종의 화폐와 같다. 화폐로 따지면 10원짜리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그보다 「은의 영역」이라니. 오래된 카드팩이 나오네.
역시 11층이라 그런지 그다지 좋은 카드팩은 주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카드팩을 가져온 가방 안에 챙긴 다음, 남연철이 탐지개미를 잡는 것을 기다렸다.
우드득! 탐지개미의 몸이 남연철의 소환수의 맹공에 한 방에 우그러졌다. 자폭을 하게 만들지 않는 것을 보니 확실히 공부는 하고 온 모양이다.
남연철은 보상으로 나온 강화석과 카드팩을 챙긴 다음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정석대로라면 주변을 순회하면서 혼자 떨어져 있는 몬스터들을 조금씩 잡아야 하는데.”
지금부터 하이브로 갈 거다. 문제는 그대로 말하면 남연철이 절대 가지 않으려고 할 거라는 데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남연철을 설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옛 말에. 태풍의 핵이라는 말이 있어. 가장 위험해 보일 수 있는 태풍의 가장 중심이 오히려 가장 안전···.”
“하이브로 가자는 말이군요. 준비할게요.”
“···반대 안 해?”
“반대하면 저 버리고 혼자 갈 거죠?”
···그건 그렇긴 한데. 남연철은 덱을 뽑아들고 덱을 조금 더 수비적으로 튜닝했다. 위험한 상황을 덜 겪어도 되게 튜닝하는 것이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몰라도 잘 배웠네.
“가는 이유는 안 물어봐?”
“물어봐야 되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날벌레는 불만 보면 미쳐서 달려들어요. LED등이건, 모닥불이건 상관없이 밝기만 하면 달려들죠. 잘은 모르지만 핵폭탄이 눈앞에서 터져도 달려들 걸요.”
“···그게 지금 우리 상황이랑 무슨 관계인데?”
“아주 밀접한 관계요.”
이번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비유다. ···뭐, 설득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 둘까.
끝
둥지까지 도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테스트하며 몇십 번은 반복하며 돌아다녔던 길이다. 타이밍만 제대로 맞추면 몇 번 전투하지 않고도 둥지 주변까지는 올 수 있다.
[처음 왔을 텐데 많이 와 보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는군.]“그럴 수도 있죠.”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는 풀무불꽃의 시선을 놔둔 채 나는 둥지 앞에 섰다.
둥지의 크기는 건물 몇 채를 겹쳐 놓은 것 같은 크기다. 둥지 안의 몬스터의 출현빈도는 매우 높다.
가져온 덱만으로는 상대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은 곳.
“이제 어떻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