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9
“잠깐만 기다려.”
내 목적지는 이 둥지 가장 위쪽에 있는 둥지의 심장이다.
이곳을 돌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죄다 처치하면서 가는 것.
나머지 하나는. 이 외벽을 만들어내고 보수하는 있는 「개체」를 불러내는 것이다.
나는 벽을 짚고 빙빙 돌아다녔다. 손에 걸리는 부분이 이 쪽 어딘가에 있을 텐데.
툭. 손가락에 걸리는 느낌이 난다. 빙고.
“듀얼!”
“벽에 듀얼 신청한다고 듀얼이 성립하지는 않아요. 그건 상식이라고요.”
싸늘한 남연철의 말에는 왜인지 모를 깊은 자괴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몇 초 뒤. 키리리릭! 벽면이 거친 금속 마찰음을 내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내가 듀얼을 신청한 것은 벽면을 구축하는 기갑충. ‘기계벽 소라게’다.
키이이익! 키익.
벽에 반쯤 몸이 박힌 형태의 기계벽 소라게가 몸을 드러냈다. 싸우기 싫다는 오오라를 전력으로 뿜어내고 있는 소심한 눈빛이다.
“···누구는 벽이랑 듀얼이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누구한테 뱉어내는지 모를 자괴감 섞인 분노를 뱉어내는 남연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닐 터다.
[듀얼이 시작됩니다.]나는 따로 덱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기계벽 소라게는 비선공, 비공격형 몬스터다.
“빨리 올라타.”
남연철이 소라게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자동 세팅된 카드를 뽑아들었다.
[기계벽 소라게가 두려움에 떱니다.] [기계벽 소라게가 벽으로 숨고 싶어합니다.] [층계 올라가기 듀얼] [패를 사용해 탑을 올라가십시오!] [9턴 내에 올라가지 못하면 경비병들이 출동합니다!]패에 들어온 것은 「오른쪽」, 「왼쪽」, 「위로」카드들이다. 이 카드들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지형지물들을 피해 최상층까지 올라가면 된다.
이게 또 나름대로 재밌단 말이지. ‘물론 이 세상은 뭐든지 듀얼로 해결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는 해도. 결국 재밌으면 이런 문제는 어느 정도 희석되기 마련이다.
나는 벽의 구조물들과 떨어져 내리는 구조물들을 피해 둥지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둥지의 가장 윗부분에 도착하는 데에는 6턴밖에 걸리지 않았다. 신기록이다. 역시, 패가 잘 붙으니 빠르게 끝나는군.
[이런 몬스터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건가?]“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에요?”
둘이 동시에 비슷한 질문을 내게 던진다. 사실 개발진한테 심각한 버그 10개를 알려주는 것을 대가로 알아낸 기믹인데, 사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미친 놈 취급받을 거다.
정상인 그 자체인 내 입장에서는 미친놈 취급을 받는 것은 크나큰 손해이므로, 나는 적당한 변명을 찾아내야 했다.
“친구가 알려 줬어.”
“친구요?”
강사님한테도 친구가 있나요? 같은 표정이다. 야. 나도 친구 있어.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건 사는 게 워낙 빡빡해서 그런 거고.
“그래. 친구.”
“이름이 뭔데요?”
“제인. 제인 오스왈드.”
제인 오스왈드. 나랑 자주 교류전을 하던 미국의 프로게이머이자 작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나를 4강에서 탈락시킨 인간이다.
7전 4선승제의 마지막 판, 8대 2의 상성을 잡은 경기를 지는 바람에 나는 결승전에 가지 못했다.
100% 운빨로 졌다. 변명이 아니라 100% 운빨이었다. 패가 역대급의 역대급으로 말린 탓에 아무것도 못하고 져버린 경기였다. 나를 이기고나서 비열하게 웃던 오스왈드의 표정이 아직까지도 꿈에 종종 나온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고 이가 갈린다.
“그 사람은 강한가요?”
“굳이 따지면 강하지.”
운빨로 마지막 판을 지기는 했지만 다전제에서 나를 상대로 마지막 판까지 끌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고수라는 이야기다.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언젠가는 복수전을 할 거야. 그때는 지지 않을 거고.”
“···그냥 오늘 나가서 찾아가면 되잖아요. 방학이라 할 일도 없으신데.”
나도 마음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문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원래의 지구가 아니라는 데 있지만.
“못 해.”
“왜요?”
“걔는 지금 멀리, 아주 멀리에 있거든.”
“얼마나 멀리요?”
“아주, 아주 먼 세상에 있어.”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네.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지구로 돌아가면 복수전부터 해야겠다. 그 전에 끝마쳐야 할 일이 산더미기는 하지만.
길고긴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한숨이 나온다. 하아. 나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
무슨 일인지 방금 전까지 꼬치꼬치 캐묻던 남연철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에 살짝의 물기가 떠올랐다.
“죄송해요.”
뭐가.
[힘내거라. 회자정리會者定離는 필연인 법이니.]잠자코 있던 풀무불꽃도 내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렸다.
아니, 대체 뭘 힘내란 건데.
***
제인 오스왈드란 이름은 남연철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전익현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강하다’고 말했으니 그 강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사람이 죽다니.’
아주 먼 세상이라고 전익현은 말했지만 그것이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이름을 말했을때 전익현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분노에 차 있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제인 오스왈드라는 사람은 전익현에게 꽤나 중요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면 뭔가 큰 일에 휘말렸던 것이겠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그녀도 안다.
어쩌면 전익현도 피가 흐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남연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 다 됐으면 공략하러 가 보자고.”
“그럴까요?”
억지로 밝은 척하는 전익현의 장단을 맞춰주며 남연철은 둥지의 최상층으로 발을 디뎠다.
도착한 장소는 조그마한 창틀이었다.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는 장소에서 그녀는 최상층의 상황을 조망할 수 있었다.
둥지의 최상층의 안에는 수천 마리의 은빛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벌레들은 어떻게 길러지느냐에 따라 다양한 기갑충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는 유충들이다.
그리고 이 수많은 벌레들을 양육하고 있는 한 마리의 몬스터.
「여왕(Queen)」
“자. 지금부터 공략을 말할 테니까. 잘 들어. 기본적으로 여왕은 방어 능력이 출중한 대신 공격능력이 거의 없어. 덱에 수비 카드들 꽤 넣어놨지?”
“네.”
“네가 여왕을 맡아. 수비 카드들을 써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얼마나요?”
“할 수 있는 최대한 오래.”
이해가 가지 않는 공략방식이다.
“여왕이 살아 있으면, 저 유충들은 몬스터로 변화하지 않나요?”
“맞아.”
“그러면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내 말대로 해. 그러면 퀸에게서 나오는 보상은 너 다 줄 테니까.”
자신이 여왕을 처치한다고 해도 전익현이 진다면 수만 마리의 기갑충에게 둘러쌓이게 되는 상황.
평소라면. 아니, 다른 누가 이런 소리를 했든간에 그녀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익현이다.
‘뭔가 생각이 있겠지.’
다른 모든 일에 생각 없이 갖다박는 인간이긴 하지만 듀얼을 끼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든든한 것이 전익현이었으니까.
“여왕한테서 나오는 보상은 다 저 주시는 거에요.”
“그래.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겠냐.”
여왕은 둥지 구획을 책임지는 필드 보스 몬스터다. 그녀를 처치했을 때에 나오는 보상은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날 터.
‘절대 포기할 수 없어.’
필드 보스 몬스터의 경우에는 고르디우스도 종종 공략에 성공하고는 했지만 피해가 막중했다. 얻는 보상도 대부분 제왕의 손에 들어갔다.
필드 보스의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기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민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남연철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며 여왕을 향해 외쳤다.
“듀얼!”
그녀의 호령에 호응하듯 듀얼 필드가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여왕과의 듀얼이 바로 시작됐다.
[여왕이 침입자에게 거센 분노를 표출합니다.] [여왕이 매 3초마다 유충들을 변태시킵니다.]끼리리릭!
3초가 지나자마자 유충 한 마리가 주변의 기어들에 맞물려 순식간에 변태했다.
캬아아아아!
“···수은 벌···.”
변태가 끝마쳐지자마자 나온 것은 그녀도 익히 아는 몬스터다. 10층대에서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몬스터 중 하나인 수은 벌이다.
극도의 공격성과 자폭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그 공격과 자폭턴이 너무 빠른 데다가, 나오는 보상도 밑바닥중의 밑바닥이라 그 누구도 상대하려하지 않는 몬스터가 바로 수은 벌인 것이다.
하지만 전익현의 눈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보석이라도 본 것 마냥 빛나고 있었다.
“듀얼!”
전익현도 듀얼에 들어갔다. 남연철은 시간이 남아돌았다. 여왕의 체력이 800이라는 괴악한 수치기는 하지만 공격력은 거의 전무. 천천히 때려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살아가느냐 못 살아가느냐는 전적으로 전익현에게 달린 일이 되는 것이다.
남연철은 전익현의 듀얼을 바라봤다.
첫 번째 턴. 부우웅! 수은 벌이 거대한 벌침을 장창처럼 내밀며 전익현에게 돌진했다.
+
【독침 돌격】
【적의 본체에 10 데미지를 줍니다.】
+
부우웅! 강력한 독침이 전익현의 몸에 박혀들려는 순간, 은빛의 방패가 독침을 가로막았다.
콰드드득!
「소울 스톤」으로 얻은 추가 방어력이 독침의 공격을 정면으로 상쇄시켰다.
하지만 이건 첫 턴에 불과하다. 수은 벌의 체력은 15.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수은 벌은 한 턴의 공격기를 가진 후, 바로 다음턴에 자폭을···.
“···!!”
그제서야 남연철의 눈에 전익현이 들고 있는 방패가 눈에 들어왔다.
저 방패. 듀얼마다 한 번 데미지를 무효화해주는 방패다.
“턴 종료!”
전익현은 자신에게 턴이 돌아오자마자 턴 종료를 외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턴, 수은벌이 자폭을 시전했다.
콰아앙! 매캐한 폭연이 주변을 감쌌지만, 전익현의 몸은 멀쩡했다.
“듀얼!”
그는 바로 다음 듀얼을 선언했다. 주변은 모조리 「수은 벌」로 가득차 있었다. 기계류 몬스터는 같은 상황에 같은 반응밖에 하지 않는다. 아마 여왕의 머릿속에는 심장부에 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수은 벌」을 변태시킨다는 선택지만이 있을 터.
그리고 수은 벌은 전익현에게 어떤 상처도 낼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모한 공격과 무모한 자폭이 전부.
이 모든 것이 전익현의 계산대로다.
‘전혀 걱정할 필요 없었네.’
전익현은 웃음을 터트리며 ‘듀얼!’과 ‘턴 종료!’만을 외쳐대고 있었다.
“듀얼! 턴 종료! 듀얼! 턴 종료! 듀얼! 턴 종료! 듀얼! 턴 종료!”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수은 벌들이 전익현의 눈앞에서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끼야호오오!”
한 때 남연철은 전익현도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틀렸다.
그의 혈관속에는 승리를 바라는 광기와 듀얼본능만이 흐를 뿐이다.
“다 덤벼! 다 덤벼 자식들아아아아!”
강해지고 싶지만, 저렇게까지 되지는 말자. 남연철은 교사이자 반면교사인 전익현을 경멸과 경외가 뒤섞인 얼굴로 바라보며 다짐했다.
끝
작가의말
시작시 일정 방어도를 주는 아이템과, 듀얼당 한 번의 공격을 무효화해주는 아이템.
사기 아이템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고증입니다.